이상한 일이다. 사촌형님과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그 노래가 떠오르니.
‘헤어지기 섭섭해서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간단한 리듬에 잔잔한 남자가수의 음성. 이제는 KBS의 ‘가요무대’프로그램에서나 나오는‘검은 장갑’이란 노래다. 형님과 나는 지금 식당에서 삼겹살을 안주로 술잔을 나누고 있다. 삼겹살이 골고루 구워지는지 살펴가며, 간간이 숯불에서 튀는 불티들을 피해가며, 구워진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상추 잎에 싸 먹으며, 술잔을 부딪친 뒤 술을 들이마시며, 그러면서 지난날을 얘기 나누는 복잡다단한 행동 중에도 그 노래는 내 머릿속 한편에서 맴돌고 있다.‘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아무래도 노랫말이 잘 나가다가 끝에서 실패했다. ‘저 달은 웃으리’가 무언가? 근사한 품격이 동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육십 년대 유행가의 한계가 아닐까. 이 노래가 맴돌면서 서울 미아리 허허벌판에 서서 눈을 맞고 있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떠나온 그 겨울' 중에서>
'검은 장갑'
손석우 작사 / 손석우 작곡 / 노래 손시향 孫詩鄕.
1.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2. 잔을 비고 청해봐도
오지 않는 잠이여
닿지 않을 사랑이면
잊느니만 못해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라
검은 장갑 어울리는
마음의 사람아.
<사진 클릭시 '검은 장갑' 노래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