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매트릭스 2>를 봤을 때, 난 너무도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아는 분들은 전부다 "1편보다 못하"며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한다. 전편을 빌미로 속편을 폄하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을까 의문스러웠다. 혹시 매트릭스의 흥행을 방해하려는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매트릭스>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1편과 2편을 비디오로 빌려본 결과, 그들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모든 장면장면이 다 예술인 1편에 비해, 2편의 구도는 너무도 느슨했고, 자주 튀어나오는 액션장면은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2편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건 바로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씬 때문이리라. 웬만한 거 하나만 있으면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액션영화 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그 화려한 액션에 넋이 나갔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다.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라는 책을 쓴 이정우는 1편이 "정말이지 뛰어난, 매우 특별한 영화"라며 2편은 "뛰어난 영화와 시시한 영화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교훈적으로 만든 영화 같"고, "여름이면 늘 개봉되는 수많은 블록버스터들 중 한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두편의 차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1) 분위기의 차이

-1편: 시작부터 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논리와 이미지가 연속된다

-2편: 구성이 짜임새가 없고 느슨하며,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2) 대사

-1편: 철학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긴박감 넘치게 전개되며,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면서도 힘이 있다

-2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몰고가는 긴장감이 없고, 대사들 또한 맥 빠진 맥주처럼 싱겁기 그지없다.

3) 운명이란 말

-1편: 매우 묵직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옴. 모피어스와 네오의 첫 만남에서 나온 운명에 대한 대화, 지구 멸망을 이야기하며 모피어스가 말한 운명과 아이러니, 오라클과 네오가 나눈 대사에서의 운명... 관객의 가슴 깊숙이 자리를 잡는다.

-2편: 네오.모피어스.트리니티가 출전할 때 한 젊은이가 와서 네오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며 운명 운운함. 하지만 그 젊은이가 누군지, 어떤 맥락에서 네오에게 운명 운운하는지가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던져지는 이 대사는 "싱겁"고 "뜬금없다"

4) 모피어스

-1편: 네오는 미지의 세계에 한발짝씩 나아가는 인물이지만 모피어스는 그 모든 것을 주재하며, 1편의 뛰어난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모피어스의 입에서 나온다.

-2편: 시온에서 한 연설이나 마지막 작전을 위해 모인 동지들에게 한 연설은 너무나 진부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책을 보는 느낌

5) 액션

-1편: 액션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개상 필수적,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나오는 트리니티의 액션이 황당한 느낌을 주지만, 영화 전개에 따라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모피어스가 네오를 수련시키는 장면, 네오가 '그'임이 입증되는 장면, 지하철에서의 결투...모든 액션이 설득력 있게 전개됨

-2편: 불필요한 액션들을 너무나 지루하게 늘어놓아,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싸움 장면만 나오는 홍콩액션영화를 연상케 한다. 특히 그런 액션에 익숙한 동북아 관객들한테는 더더욱 지루함을 준다.

6) 편집

-2편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한박자씩 빠르게 편집, 각각의 시퀀스가 가져야 할 감동과 여운이 증발되 버린다. 총알을 맞은 트리니티에게 네오가 기를 불어넣어 살릴 때, "이제 서로 빚을 갚은 셈이야"라는 대사도 맥빠지지만 길게 여운을 끌어야 하는 대목임에도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어 호흡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는다.

7) 새인물

-2편에서 나오는 새 인물들은-페르세포네, 니오베 등...-하나같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영화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불쑥 나타나 액션만 휘두른다.(이상 위의 책에서 베낌)

으...이렇게 베끼다보니, 2편이 형편없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일 뿐, 아무 생각없이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아까도 말했지만 고속도로의 액션 장면은 다시봐도 멋지더만. 이야기 전개상 속편이 꼭 필요한 감독들은 1편을 대충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같다. 2편은 나오기만 하면 욕을 먹으니까. 물론 그건 우리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다이하드> 2가 나왔을 때조차 "1편보다 못하다"는 인간을 보면서 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2편을 보기 전에도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날고 기는 영화 전문가들이 늘 혹평만 써대는 것도 그들이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의무적으로 보는데다 단점을 집어낼 준비를 하고 보는데 어찌 재미있을 수가 있겠는가.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관람이 훨씬 더 즐거울 거다. 특히 2편을 볼 때는 1편의 기억을 다 잊고 전혀 다른 영화를 본다는 기분으로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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