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게 취미이긴 해도, 인터뷰를 할 정도는 아닌지라 웬만하면 안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이 내 책을 내주겠다는 유일한 곳인데다 인터뷰에 응하면 10만원짜리 상품권을 준다는 말에 혹해, 인터뷰에 응했다. 그냥 가기 뭐해서 무슨 말을 할까 정리를 좀 했는데, 그랬더니 인터뷰 자리에서도 미리 적어간 말만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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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로 언제 읽니?

=직장이 천안이라 4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 동안 책만 읽는다. 흔히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읽는다고 하는데, 사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면 의외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보면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가 늦게 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예전에는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기도 했는데, 공사장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진 뒤부터는 자제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책을 읽었니?

=97년부터 읽었으니 얼마 안된다. 그전까지는 정말이지 스포츠서울 같은 것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는 책을 읽을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말로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책을 읽는 게 사치로 생각된다. 고교생이 소설책을 읽고있어 봐라. 당장 "낼 모레가 시험인데 이따위 책만 읽고있어!"라는 호통이 날라올 거다. 이러다보니 애들이 커서도 책을 안읽게 되고. 나도 사실 중고교 때 삼국지 말고는 읽은 책이 없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우리나라의 독서시장을 위축시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든다면, 어른들이 책을 안읽으면서 애들한테만 책을 읽으라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책에 대한 너의 생각은?

=책은 좋은 취미이긴 하지만, 지고지선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고 남보다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을 안읽는다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런데 <느낌표>를 보면 책을 안읽는 사람을 굉장히 무안하게 만들던데, 그건 나쁘다고 본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신의 고양이라고 치자. 꼭 책을 읽어야만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음악, 미술, 영화, 게임, 인터넷 등 어떤 취미든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닌가?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를 쓴 이영미 씨는 어린 시절 TV만 보는 테순이였기에 그렇게 훌륭한 책을 쓴 거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그렇게 물으면 다들 최근에 읽은 책을 대지 않나? 나같으면 책을 읽을 때의 감동이 오래가지 않던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섬데이 서울>이란 책이 가장 좋았고, <대한민국사>도 젊은 분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느리게 사는 의미를 강조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건 내가 그렇다는 거고, 정말 책을 읽으려면 자기 스스로 책을 고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읽을 책을 어떻게 고르나?

=옛날에는 책광고나 미디어서평에 의존했었는데, 요즘은 다른 분들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놓은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쟝르는...예전엔 언론개혁, 사회비평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새로나온 책을 뒤지다 보면 읽고 싶다는 필이 온다.

 

-어떤 분이 '책읽기가 왜 취미가 되야 하냐. 밥을 먹는 것과 똑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지'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좀 오버인 것 같은데...아까도 말했지만 책읽는 게 특별히 우월한 취미는 아니다.

 

-통계를 보니 읽는 사람만 읽고, 성인의 절반 가량이 일년에 한권도 책을 읽지 않았던데..

=모든 취미가 그렇지만, 책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기 마련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되고, 읽을 책이 더더욱 많아지고...그렇게 된다. TV 드라마도 안보면 그럭저럭 살아도, 일단 보기 시작하면 죽고 못살지 않는가. 다른 취미처럼 책도 지나친 건 안좋은 것 같다. 일년에 300권을 읽는다는 남자의 부인이 라디오에 나왔는데, 자기랑 거의 말도 안하고 책만 본다면서 불만을 터뜨리더라. 책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취미기 때문에 혼자면 모르겠지만 가족이 있다면 너무 책만 봐서는 안될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으니 뭐가 좋니?

=아까도 말했지만 짜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고... 난 처음에 책을 많이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글도 좀 잘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별로 그런 건 아니다. 딱 하나 좋은 건, 말을 하다가 "누구누구가 이렇게 말했는데 말야" 라는 멘트를 하면 내 말에 권위가 부여되고, 듣는 상대는 기가 죽기 마련이다. 옛날에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썼다. 그걸 읽고나서 하는 말마다 그사람 얘기를 했던 유치한 과거도 있다. 하여간 책은 상대를 기죽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할 말은?

=도서상품권은 주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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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ave 2004-01-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느낌이 모닝355 해피샵 고객 인터뷰틱하군요. 아닌가;;;

연우주 2004-01-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압권인데요? ^^ 저도 10만원 준다고 하면 당장 응할 텐데, 저는 아직 미약한지라 알라딘이 부를 리 없죠..^^

연우주 2004-01-2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차, 착각. 마태우스님 충분히 자격있으시다는 거 아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