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얘가 <라이언 일병...>을 안봤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난 오늘 설날 특집으로 MBC에서 해주는 걸 볼 때까지, 비디오로조차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영화를 안본 이유는 별 게 아니다. 같이 볼 여자가 없었던 탓. 스물을 넘기고 나서 내 곁에 여자가 없었던 것은 2000년과 2001년, 딱 두 해인데, 이 영화는 아마도 그때 개봉했었을 거다. 지금이야 혼자서 극장을 찾을 정도의 뻔뻔함이 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남녀끼리, 혹은 여여끼리 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영화는 그래서 안봤다고 치자. 그럼 비디오로는 왜 안봤을까? 집에 비디오가 없었으니까! 생활 수준에 비해 우리집에 없는 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디오고, 또하나는 씨디 플레이어다. 후자는 컴퓨터를 사면서 해결이 되었고, 비디오는 2년 전 미국에 가는 누나로부터 가로챘으니 지금은 부족한 게 없다. 욕심이란 게 끝이 없어, 디지털 카메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비디오만큼 절실하진 않다.

 

어찌되었건 궁하면 통한다고, 안보고 버텼더니 이렇게 TV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보니 <타이타닉>도 작년 추석인가 TV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할 때는 같이볼 여자가 있었지만, 외환위기 직후라 쇼비니즘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타깃이 직배로 들어온 <타이타닉>이었다. 난 "그 영화를 보면서 고단함을 잊는 관객들을 죄인으로 몰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어딘가에 썼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극장에 갈 용기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난 추석 때 눈물을 흘려가며 그 영화를 보았고,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극장에서 못본 걸 후회했다. 화면이 작은 것도 그렇지만, 우리말로 더빙을 해놓은 걸 보면 영 생동감이 떨어지니까. 그래도 본 게 어딘가. 좌우지간 날 먹여살리는 것은 팔할이 명절이다.

 

다들 알겠지만, 영화는 라이언의 형제 셋이 죽어서 톰 행크스를 비롯한 여덟명이 마지막 남은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하필 그가 있는 곳이 독일군이 우글대는 지역, 한명을 구하러 여덟이 목숨을 건다는 건 그 여덟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높은 분들은 그런 명령을 내리면서 "아, 우리는 정말 인도적인 나라야"라고 스스로 감동할 테고, 생색도 지들이 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톰 행크스를 비롯한 병사들의 희생을 딛고 라이언은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죽을 때 그랬는지, 탐 행크스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살아야 해"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이 된 라이언은 탐의 묘지를 찾는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서 살았읍니다. 다리 위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의인들이 있었지. 몸을 던지는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람들이. 그로 인해 살아난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신이 빚진 몸값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며 자신을 살렸다는 건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 중 하나가 우리가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산다면, 그 누군가의 희생은 덧없는 것일까. 아니, 가치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도대체 어떻게 나누어지는 걸까?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 영화를 보고나니 전쟁이란 것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거다. 흥행실적으로 보건대 미국 내에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을 터, 그런데 그들은 왜 전쟁이라면 그렇게 환장을 하는 걸까? <라이언...>을 보면서 전쟁의 잔혹함에 대해 느끼는 대신, 라이언 일병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자신을 어떤 경우에도 책임진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닌지.  하여간 희한한 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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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2-2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998년 가을에 개봉했는데요? 제가 98학번이라 정확히 기억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