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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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의 이야기를 다룬 <노후파산>이다. 실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어려웠다. 불과 3-4년 전 일본의 모습이니 지금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다. 한국도 이미 일어나고 있고 이대로 가면 책에서 언급하는 모습을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교사 삼고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준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일본 홀로 사는 고령자는 600만 명에 이르는데 연수입이 생활 보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절반이고 이 가운데 생계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은 70만 명이다. 예금 등 모아놓은 재산이 있는 사람을 제하면 200만 명이 연금만으로 겨우 살아간다.  

책에 나오는 많은 독거노인들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1000원에서 2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은 예금이 있으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없다. 노인들은 장례비로 사용될 마지막 돈까지 쓰고 싶지 않아 결국 생활보호를 받을 수 없다. 당연히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 

"병원에 가야 하지만 돈이 없어 참고 있다오." 

"연금만으로 생활해야 해서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해도 1000원은 쓸 여력이 없다오." 

책에 나오는 노인들이 젊었을 때 방탕하게 산 것이 아니라 더 충격이다. 이들은 대기업에서 일하기도 했고 나름 성실하게 살았다. 자신들도 이렇게 빈곤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고백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노후를 맞이한 것이다.  

"설마 내가 노후파산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지금처럼 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요. 열심히 일해왔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은 두 사람 연금을 합쳐서 생활해서 어느 정도 유지가 된다. 그런데,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그때부터 빠듯한 삶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집 임대료를 비롯해 고정지출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병에 걸려 수술이 필요하거나 입원을 해야 할 때 노후파산에 처하게 된다.  

생활보호를 받으면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예금이 있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금이 50만 원 미만일 때 신청할 수 있다는데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또한, 자신의 집을 소유한 사람도 생활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은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버리면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누굴 위해서 살고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그러니깐 미련 따윈 없습니다. 그저 빨리 죽고 싶을 뿐입니다." 

연금 최고 금액은 65만 원이고 회사원이었으면 후생연금을 합쳐 100만 원 정도이다. 집세를 50-60만 원 내고 공공요금과 보험료 내면 결국 20만 원 밖에 없다. 20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 돈으로 식비를 써야 한다. 당연히 병원에 갈 수도 없다. 집세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월세가 싼 곳으로 이사하면 될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이사 비용이나 보증금이 없다는 점이다. 

"노후파산이 확산되는 가운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료조차 멀리하는 고령자가 나타난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자신의 노후 같은 건 생각을 안 하지 않습니까? 매일이 바쁘고 매일이 즐겁지요. 그래도 열심히 일해왔는데 설마 이런 노후를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특히 책은 연금을 받아도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고령자들이 이에 대해 모른다고 한다. 결국,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고령자가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부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가족에게도 미안해서 연락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소중한 가족이기에 돈 문제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장 소중한 가족이야말로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와 지인을 잃고 점점 고립된다. 

"돈이 없는 것,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 제가 더 괴로운 일이 있습니다. 친구와 지인을 잃었다는 것이지요." 

일본에도 한국과 같이 돌봄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책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1.6%가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일부 자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4~5만 원 정도) 그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도에 대한 전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료와 돌봄 서비스 비용의 감액과 면제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를 시대에 맞게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고령자 본인이 신청하는 것이 아닌, 정부나 지자체가 먼저 그런 고령자를 찾아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고령자들은 바로 파산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조금 있는 돈을 조금씩 쓰면서 결국 노후파산에 이른다. 통장에 돈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불안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지속적인 의료비 지출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경기 침체로 인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고용의 증가는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자식들이 어쩔 수 없이 부모 연금에 빌붙어 생활하는 것은 공멸할 초래할 수 있다.  

노인들을 위한 저가 임대 주택의 마련이 절실하고 의료비의 무료 및 돌보미 서비스의 무료가 필요하다. 또한 잃어버린 유대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나는 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 이들도 열심히 성실히 살았고 자신들이 이렇게 노후파산을 맞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국민연금과 회사 연금으로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연금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너무나 잔인한 상황들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무엇을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고 사회복지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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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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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라고 말한 것을 리뷰를 쓰는 지금 알았다. 최근, <오직 독서뿐>과 <책에 미친 바보>를 읽으며 이덕무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데, <문장의 온도>는 이덕무에 대한 세 번째 책이다. 문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좀 더 깊이 읽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붓은 마른 대나무와 죽은 토끼의 털이고, 먹은 묵은 아교와 까만 그을음이고, 종이는 떨어진 삼베와 헌 천 조각이고, 벼루는 오래된 기와와 무딘 쇳조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물건들이 어떻게 사람의 뜻과 생각과 더불어 기이한 변화와 신기한 조화를 부릴 수 있을까?" 

이덕무의 글을 읽으면 탁월한 문장은 기본이고 사고의 기발함과 신선함, 주의 깊은 관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위의 글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없는 붓과 먹, 종이와 벼루로 사람은 생각을 드러낸다. 이 글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여러 사람을 옮겨 다니며 감정과 생명을 전파한다. 이것만큼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 있을까 싶다.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돌담은 내가 오줌을 누는 곳이다. 그 돌담에는 사향쥐 구멍이 있는데 사향 냄새가 밖까지 새어 나온다. 매번 오줌을 눌 때마다 쥐구멍을 파내 포육을 만들 생각이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생각을 바꿔 생물을 죽이는 마음을 경계했다. 날마다 이와 같이 경계하면서도 아직 그 생각을 통쾌하게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힘을 쓰니 지금은 그런 생각이 끊어져 살생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이와 같은 것은 별반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곳에 힘쓸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일상의 모든 것이 사고의 훈련이고 배움의 연장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인지하는 것은 배움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덕무는 이 부분이 탁월하다. 힘을 써 살생하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도 놀랍지만 나아가 이런 하찮은 일보다 더 중요하고 큰일에 힘써야겠다는 다짐은 도전이 된다. 나는 지금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쓸데없이 나의 시간과 정신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주변 모든 것을 세심히 관찰하며 배움을 얻고 사색을 한다. 풀, 해바라기, 금봉화, 눈, 서리, 나무 등 자연을 관찰하며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다.  

"널리 알면서도 편찬하거나 저술하지 못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나 다름없다. 이미 떨어져 버린 꽃이 아니겠는가. 편찬하거나 저술하면서도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은 근원이 없는 샘물이나 다름없다. 이미 말라 버린 샘물이 아니겠는가." 

"천리마의 한 오라기 털이 하얗다고 해서 미리 그 천리마가 백마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온몸에 있는 천만 개의 털 중에서 누런 털도 있고 검은 털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이치로 보건대, 어찌 사람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겠는가." 

언어의 마술사 같다. 어쩜 이렇게 그때마다 적절한 비유 대상을 찾아서 이야기하는지. 너무나 배우고 싶은 능력이고 노력이다. 사람을 한 가지 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천리마에 비유하는 탁월함은 이덕무의 것이다. 다양한 사물과 개념을 하나로 연결하는 능력은 4차 혁명 시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도 필요하다. 이처럼 적절한 비유를 읽으면 개념이 머리에 쏙 들어오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이덕무는 관찰을 통하여 자연을 배우고 공부한다. 이를 박물학이라고 한다.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쥐, 닭, 뱀, 지네, 거위, 오리, 전갈, 달팽이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닭은 두꺼비 새끼를 통째로 삼키기를 마치 물을 마시듯 한다. 거미 오줌이 닿으면 지네가 물이 되고, 달팽이 침이 묻으면 지네의 발이 다 떨어진다. 달팽이는 전갈도 제압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하나의 즐거움이자 배움인 것이다. 나도 4살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가면 하염없이 앉아서 개미가 움직이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할 때가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자연을 관찰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이를 통해 좀 더 친숙해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덕무는 기존에 내려오던 지식을 직접 의심하고 확인한다. 소나무는 굳센 기운을 지녀서 매미가 깃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내려왔는데 그는 직접 확인하며 그렇지 않다고, 자기가 소나무에서 매미가 우는 모습을 봤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그는 기존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확인하는 태도를 지녔다. 

그는 포식이 좋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해 독서에 크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나도 배가 부를 때 독서하면 집중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덕무는 정말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인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신장-귀, 폐-코, 심장-혀, 비장과위장-입술, 간-눈이 형상이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 

"신장 두 개는 마주 붙어 있는 형상이다. 바깥쪽은 원형으로 구불구불하고, 안쪽은 굽어 있고 오목하다. 이러한 까닭에 양쪽 귀는 마주 붙어 있고 바퀴 구멍 형상으로 되어 있다. 폐는 아래쪽으로 늘어져 있다. 이러한 까닭에 코의 자리는 아래로 꼿꼿하게 달려 드리워져 있다..." 

웃음에 대해서도 뼈 있는 이야기를 한다. 

"웃음에도 세 가지 품격이 있다. 기뻐서 웃는 것, 감개해서 웃는 것, 고상한 뜻이 서로 맞아 웃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무시해서 웃거나 아첨하느라 웃는 짓은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나쁜 소식은 몇 배가 되어 퍼져 나가는 반면 좋은 소문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언급한다. 이는 최근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진 일이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나쁜 소식에 더 많은 클릭을 한다. 여기까지는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이덕무는 '군자는 반대로 힘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현상과 문제에 대한 분석으로만 끝나면 안 되고 그다음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이 외에도 주옥같은 말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릴 때의 마음과 돈을 갚을 때의 마음은 다르다. 그러나 인덕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가 울고 웃는 것은 타고난 천성이다. 어찌 인위적으로 하 것이겠는가! 어른들은 기쁘고 노여운 감정을 거짓으로 꾸민다. 어린아이에게 부끄러워할 일이다." 

"망상이 분주하게 일어날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자. 온갖 잡념이 일시에 사라질 것이다. 바로 정기가 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모공과 뼈마디는 모두 어른만 못하다. 그러나 유독 눈동자만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라. 바로 크게 기이한 조짐이다." 

"원망과 비방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나는 까닭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진실로 즐겁다. 그러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 이것은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기회는 일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만나면 3시간, 4시간 금방 지나간다.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며 서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고민을 말하며 조언을 건넨다. 가끔은 서로 말하려고 세 명이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만나면 즐겁고 헤어질 때 아쉬운 관계이다. 이덕무의 말처럼 이런 관계의 즐거움은 너무나 크다.  

"가난으로 반 꾸러미의 엽전도 모으지 못하는 처지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구하려 하고, 어리석고 둔해 단 한 권의 책도 다 통해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 모든 서책을 다 보려고 한다. 진실로 탁 트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어리석은 자라고 하겠다. 아아, 이덕무야! 이덕무야! 네가 바로 그렇지 않느냐." 

"사군자가 한가롭게 거처하며 일도 하지 않고 독서조차 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독서하지 않으면 작게는 정신이 혼미해져 잠이나 자고 노름이나 하게 된다. 더욱이 크게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색욕에 빠지게 된다. 오호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독서할 따름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정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다음은 습득해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넓고 깊게 아는 것이다." 

"일을 처리할 때는 통용을 귀중하게 여긴다. 독서할 때는 활용을 귀중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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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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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유익,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느낌이다. 간혹 독서를 하다 이런 즐거움을 누리는데 <열두 발자국>이 바로 그런 책이다. 특히, 강의했던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서 몰입도가 더 높았다. 마치 교실 맨 앞자리에서 저자와 눈을 맞추며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책에는 12개의 강의가 들어 있는데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먼저 의사결정과 계획이다.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다.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기보다는 일단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며 계획을 수정하며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이를 '실행을 통해 배우기'라고 한다. 나아가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일단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라고 조언한다.  

인센티브는 단기적으로는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 성취도를 떨어뜨린다. 인센티브를 줄 때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 것, 계획에 너무 매몰되지 말 것!" 

이직에 대한 의사결정은 매우 어려운데, 이에 대해서도 뇌과학 입장에서 조언한다. 바로, 지금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직하는 회사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지금 힘들고 싫은 회사에 다닌다면 무엇을 꿈꿔야 할지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으라고 덧붙인다. 

일단 인간은 기본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좋은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라고 조언한다. 특히,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유형이라면 의사결정을 바꾸더라도 리더십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이 필요한데 성공한 사람과 경험이 많을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늘 회의하고 의심하며 자기 객관화를 해야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미덕 중 하나가 '겸손함과 결단력'입니다. 내 의사결정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가 되면 의사결정을 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사람, 유치원생들처럼 끊임없이 실행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자는 길을 잃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길을 잃는 과정을 통해 도시 전체가 배우 듯, 방황을 통해 인생의 지도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줄 수도 없다. 내 인생의 지도는 내가 찾아야 한다. 

결정 장애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도 연결된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택할 때 지나치게 고민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잘하는 것, 실패하지 않는 길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실패 후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결정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스톱 같은 것을 통해 빠른 의사결정을 연습하라고 한다. 덧붙여 저자는 결정 장애와 우유부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유부단함은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결정을 지나치게 미루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황상태에 빠지면 그 사람을 결정 장애라고 봐요." 

결핍은 건강한 성장의 발판이 된다. 결핍이 욕망을 만들고 무엇을 실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요즘에는 결핍을 느끼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부모가 알아서 무엇이 부족한지 판단해서 재빠르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하나 혹은 둘이라서 가능하다. 결국, 결핍을 모르는 아이들은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마감이 다가오면 효율이 늘어나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결핍의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락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물론, 지나친 결핍은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 

의사결정에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감정이 만들어낸 선호와 우선순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중요하지요."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순위를 두면 판단 기준이 생겨 의사결정이 단순해지고 빨라진다. 더불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떠올리면 무엇이 중요한 지 더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독서에 대한 저자의 경험은 자녀를 양육할 때 좋은 지침이 된다. 

"대학보다는 대학원 때, 대학원 때보다는 교수가 돼서 훨씬 더 많은 책들을 읽게 됐고, 많이 읽다 보니 난독증도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책에 대한 결핍이 늘 책을 가까이하는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스스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놀이에 대한 저자의 충고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의사결정 과정을 익힌다. 놀이라고 해서 장난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난감 없이 창의적으로 장난감을 만들며 놀 때 뇌가 더 발달한다.  

습관은 에너지를 덜 쓰려는 생존 본능이다. 중국집에 가면 습관적으로 짜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50% 정도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뇌를 쓰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반대로 습관을 바꾸고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가진 사람을 불편하더라도 만나고 습관에 젖은 사고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후회에 대하여 저자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후회를 통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성찰을 통해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적절한 태도라고 본다. 후회를 통해 절박함을 만들고 새로운 환경을 추구할 수 있다. 삶에서 80~90퍼센트는 기존대로 살더라도 10~20퍼센트는 새로운 탐색을 통해 실패도 해보고 기쁨도 누리라고 조언한다. 

미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미신을 의지하기 보다 내가 원인을 파악하고 노력해서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미신을 제1종 오류(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는 오류, 없는데 있다고 판정)와 제2종 오류(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는 오류, 있는데 없다고 판정)로 설명한다. 미신 같은 제1종 오류는 제2종 오류에 비해 틀려도 치명적이지 않다.  

실험을 통해 행복에 대한 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고 말한다. 월급보다 지나가다 만 원 주을 때 더 기쁘고 군대에서 유격 훈련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다. 또한 저자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며 과학적인 사고, 이성적인 판단, 논리적인 추론이 일상에 더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의심과 열린 마음의 균형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삶의 태도란 논리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보고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의 태도를 권해드립니다... 회의주의적인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려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때 뇌에서 어떤 신호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진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개념들이 연결되고 관점이 바뀔 때 창의적인 사고가 일어난다고 연구자들은 해석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쓸 때 DNA에 관한 글을 써야 하면 DNA 관련 책이 아니라 문학 서적 등을 뒤적거린다고 말한다.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도 창의적인 발상에 도움을 준다. 수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도 매우 중요하다. 

4차 혁명 및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코딩 교육은 중요하다. 다만, 코딩 교육은 빈칸 채워 넣기 같은 문제 풀기가 아니라 논리 교육이며 창의성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다 맞다는 전제하에 정보를 수집하고 결정을 내린다. 인간은 데이터가 공정하고 평등한지 등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감정을 읽는 능력과 공감 능력은 인공지능이 당장 구현할 수 없다. 저자는 '인간의 직업은 사회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나아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는 몸과 뇌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에 갇혀 있으면 뇌만 쓰게 된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뇌만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몸을 쓰는 것이다. 이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사고방식과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 사이의 균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잘 관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최대한 정확히 계산하려고 한다. 다만, 그 계산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과학자, 시인, 작곡가, IT기업 창업자들을 조사해보니, 위대한 성취가 20-30대에 일어난 경우는 40퍼센트, 40대 이후가 60퍼센트나 된다는 점이다. 나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똑똑한 사람은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모두 뛰어나다. 또한 다른 똑똑한 사람과 시너지를 만드는 집단 지성을 활용한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한 세대에 쏟아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기서 저자는 솔직한 소통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탐험'이겠지요. 그중에서 성취를 이룬 자들은 사려 깊게 준비한 탐험가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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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독서 -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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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고른 책인데, 책 목차를 보고 단순히 추천 도서를 알려주는 책인가 싶어 약간 실망했다가 실제로 책을 읽으며 매우 유익했던 <엄마의 독서>이다. 저자는 결혼부터 육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책을 읽었고 책의 도움으로 다음 여정을 갈 수 있었다.  

먼저 결혼이다. 언제부터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자리 잡았을까? 이에 대한 답을 <남과 여>라는 책에서 찾는다. 선사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최근에야 이런 가부장제에 균열이 생겼다고 말한다. 또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란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남녀가 집 밖에서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지하면서도 집에서는 반대로 평등을 외쳐서 부부는 갈등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결국, 남편이 집안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문제라는 진단이다.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육아를 담당하며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그만두어야 했다. 반면, 남편은 커리어를 쌓으며 대학원도 다니는 등 자신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참 뒤 돌이켜 보니 남편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그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임신 기간에는 추리소설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다고 고백한다. 시간을 잊고 나를 잊게 해준 구원자라고 고백한다. 소설을 읽으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가라앉고 소외감이 줄어들게 된다. 소설을 쓰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육체의 피곤함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너무 괴로웠다고 말한다. 나도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나니 가끔 자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괴로울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감정이 고조되기도 한다. 이제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4살이 되었다는 생각에 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실컷 혼내고는 미안해서 안아주고 마무리할 때도 있다. 저자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저자는 "혹시 나는 쓰레기인 것일까?"라고 말한다. 깊이 공감이 간다. 

"국가와 제도가 제발 있는 그대로 사회상을 반영하길.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경직된 성별 역할을 토대로 삼지 않고 남녀 모두 일과 가정에 고루 동참할 수 있도록 제도를 쇄신하길. 그리하여 아빠들이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사와 육아라는 생명력 넘치는 일에서 소외되고 불행해하지 않길." 

저자는 <아빠의 이동>을 통해 아빠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된다. 아빠들은 도통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이미 밖에서 구시대적 생각을 너무나 많이 듣고 접해서 분간도 잘 안된다. 따라서 알아서 척척해주기를 바라면 안 되고 하나부터 알려주고 책도 읽으라고 권해야 한다. 이렇게 엄마가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상냥하고 민주적인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웃으며 차분히 설명해주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자기주장만 하고 엄마의 공감을 붙들고 끝까지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 떼를 쓴다. 나도 마찬가지다. 머리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아이에게 훈육할 때마다 발견한다.  

훈육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에서 말하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매사에 의사를 물어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 안에서 3,4살 아이가 자동차를 타며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상냥하게 타이르는 것보다 자동차에 끌어내려 자동차를 안 보이는 곳에 치우라고 말한다. 아이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가 내 말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규칙을 정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라는 존재는 연약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랄 만큼 강하기도 하다. 어른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에 울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 넘어가면 그 어른이 천사처럼 대해준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고 영리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어른의 특성을 꿰뚫어보고 필요에 따라 연약한 상태를 연출하기도 한다." 

<엄마됨을 후회함>이란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사회는 엄마라는 존재에게 후회라는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땅히 감사하고 좋은 엄마가 되라고 '강요'한다. 여기에는 다른 옵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이에 반기를 들며 사회가 모성을 신화화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강요만 하는 사회이다. 이렇게 여성은 엄마됨을 강요당하고 어디에도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말하면 우울증 딱지를 붙인다. 

저자는 큰 돌파구를 찾는데 바로 집안일을 아이들에게 분배한 것이다.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는 것을 아이들에게 시키자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를 통해 행복과 가슴 벅참을 경험한다. 집안일을 아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이롭다. 나도 아이들이 빨리 커서 제 몫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결국 관계는 솔직함과 진정성이라고 정리한다. 사회의 요구와 강요에 따라 가면을 쓰고 아이를 대하면 거짓된 관계가 만들어지고 언젠가는 무너진다. 기분이 나쁘면 솔직하게 아이에게 말하고 혼자 집안일하는 것이 부당하면 이야기해야 한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면 '조은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그냥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내가 좋은 인생을 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 감정에 충실하고, 다른 이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면 된다. '엄마'가 나의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분, 나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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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9-12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건 저도 그런 엄마라는 것이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흑흑! 읽어봐야겠어요.

데굴데굴 2018-09-13 08:35   좋아요 0 | URL
자녀 양육은 정말 답이 없나 싶기도하고 너무나 다양하게 이야기해서 쉽지는 않네요 저도ㅠㅠ 그래도 공부는 계속 해야 될 것 같고 ㅜ ㅎㅎ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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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류했다. 특히, 박지원은 이덕무와 30년 동안 우정을 쌓았다. 박지원에 따르면 이덕무는 늘 남에게 책을 빌려 보았는데 남들 또한 아무리 귀한 책이라도 기꺼이 빌려줄 정도로 이덕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그는 벼슬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재물에도 욕심이 없었다. 실제로 적성현감에 임명되었을 때 녹봉을 털어 청사를 새롭게 수리하기도 했다. 

이덕무가 평생 읽은 책은 이만 권이 넘고 베낀 책만도 수백 권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라고 불렀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스스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스스로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말한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르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네 가지를 비록 죽을 때까지 잘 하지 못한다 하여도 해가 되는 것은 없다. 만약 자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나는 당연히 먼저 이 네 가지를 하지 않도록 그들을 이끌 것이다." 

그의 벗 이형상이 10만 관(10만 관은 10냥이 1관으로 1냥을 5만 원이라고 보면 500억에 해당한다)의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묻는데 그 답변이 기가 막히게 멋있다. 절반으로 밭을 사고 나머지는 친척 중 가난하고 굶주린 자에게 나눠주고 수만 권의 책을 사서 똑똑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자들에게 빌려준다고 한다. 절반으로 밭을 사는 것은 재물 늘리는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덕무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 답변을 보면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보통 돈이 생기면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어떻게 다시 투자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평생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다면 다들 펑펑 쓸 생각만 한다.  

그는 책을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이덕무는 시간을 정해 책을 읽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어 책을 읽었다. 밤에는 자정을 넘기지 않았고 독서하다 글의 맛이 없으면 천천히 산보를 했다. 또한 한 권의 책을 다 보기 전에는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은 일단 충분히 외우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하며 의심나는 것을 적고 그릇된 것을 버리되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한다. 

그는 삶과 문장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바로 효에서 시작한다. 효를 다하면 행실이 갖추어지고 이 행실이 문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화평한 기운을 띠며 읽는 사람에게도 선한 마음이 자라게 한다. 그러나 행실이 없는 문장은 아무리 뛰어나고 아름답고 논리정연해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결국, 저자의 인격과 품행이 먼저인 것이다. 

이덕무가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정한 벗을 나비에 비유하는 다음 글에 그의 그리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담겨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다정한 벗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는 마음은 꽃가루를 묻힌 나비를 맞는 꽃과 같다. 나비가 오면 너무 늦게 온 듯 여기지만 조금 머무르면 소홀히 대하고, 그러다 날아가 버리면 다시 나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벗과의 대화는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나의 고민과 걱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 그 친구를 당장 만날 수 있는가? 그런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이덕무는 그런 친구가 없다면 책, 자연과 노닐면 된다고 말하기는 한다. 

지금은 중고서점에서 책을 팔 수 있는데 당시에도 책이 귀해서였는지 중고책을 사고팔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덕무는 오랜 굶주림에 <맹자>를 돈 2백 전에 팔았다고 말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돈 2백 전에 팔아 버렸소.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했다오. 그런데 영재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나에게 술을 사주더군. 이는 맹자가 직접 나에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나에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고.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 

그는 열두서널 살 때부터 세월의 빠름을 깨달았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계속 흘러가며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일찍이 뜻을 정하여 학문에 힘쓴다. 나는 서른 중반이 되니 겨우 알듯 말듯한데, 일찍이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시간을 버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이덕무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하 자수잠을 남겼는데 하루를 시작할 때 큰 소리로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데 좋을 것 같다. 

"분한 마음 생길까 경계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을 막아라. 
허물을 고쳐서 착한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미 잘못을 뉘우쳤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이미 욕심을 막았으면 그 마음 변치 말며 
이미 나쁜 버릇을 고쳤으면 다시는 하지 말고 
이미 착한 행동으로 옮겼다면 변하지 말라. 
이것으로 스스로 수양할 수 있을 것이니 
죽도록 변치 말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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