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류했다. 특히, 박지원은 이덕무와 30년 동안 우정을 쌓았다. 박지원에 따르면 이덕무는 늘 남에게 책을 빌려 보았는데 남들 또한 아무리 귀한 책이라도 기꺼이 빌려줄 정도로 이덕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그는 벼슬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재물에도 욕심이 없었다. 실제로 적성현감에 임명되었을 때 녹봉을 털어 청사를 새롭게 수리하기도 했다. 

이덕무가 평생 읽은 책은 이만 권이 넘고 베낀 책만도 수백 권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라고 불렀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스스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스스로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말한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르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네 가지를 비록 죽을 때까지 잘 하지 못한다 하여도 해가 되는 것은 없다. 만약 자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나는 당연히 먼저 이 네 가지를 하지 않도록 그들을 이끌 것이다." 

그의 벗 이형상이 10만 관(10만 관은 10냥이 1관으로 1냥을 5만 원이라고 보면 500억에 해당한다)의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묻는데 그 답변이 기가 막히게 멋있다. 절반으로 밭을 사고 나머지는 친척 중 가난하고 굶주린 자에게 나눠주고 수만 권의 책을 사서 똑똑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자들에게 빌려준다고 한다. 절반으로 밭을 사는 것은 재물 늘리는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덕무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 답변을 보면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보통 돈이 생기면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어떻게 다시 투자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평생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다면 다들 펑펑 쓸 생각만 한다.  

그는 책을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이덕무는 시간을 정해 책을 읽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어 책을 읽었다. 밤에는 자정을 넘기지 않았고 독서하다 글의 맛이 없으면 천천히 산보를 했다. 또한 한 권의 책을 다 보기 전에는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은 일단 충분히 외우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하며 의심나는 것을 적고 그릇된 것을 버리되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한다. 

그는 삶과 문장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바로 효에서 시작한다. 효를 다하면 행실이 갖추어지고 이 행실이 문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화평한 기운을 띠며 읽는 사람에게도 선한 마음이 자라게 한다. 그러나 행실이 없는 문장은 아무리 뛰어나고 아름답고 논리정연해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결국, 저자의 인격과 품행이 먼저인 것이다. 

이덕무가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정한 벗을 나비에 비유하는 다음 글에 그의 그리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담겨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다정한 벗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는 마음은 꽃가루를 묻힌 나비를 맞는 꽃과 같다. 나비가 오면 너무 늦게 온 듯 여기지만 조금 머무르면 소홀히 대하고, 그러다 날아가 버리면 다시 나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벗과의 대화는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나의 고민과 걱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 그 친구를 당장 만날 수 있는가? 그런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이덕무는 그런 친구가 없다면 책, 자연과 노닐면 된다고 말하기는 한다. 

지금은 중고서점에서 책을 팔 수 있는데 당시에도 책이 귀해서였는지 중고책을 사고팔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덕무는 오랜 굶주림에 <맹자>를 돈 2백 전에 팔았다고 말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돈 2백 전에 팔아 버렸소.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했다오. 그런데 영재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나에게 술을 사주더군. 이는 맹자가 직접 나에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나에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고.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 

그는 열두서널 살 때부터 세월의 빠름을 깨달았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계속 흘러가며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일찍이 뜻을 정하여 학문에 힘쓴다. 나는 서른 중반이 되니 겨우 알듯 말듯한데, 일찍이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시간을 버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이덕무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하 자수잠을 남겼는데 하루를 시작할 때 큰 소리로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데 좋을 것 같다. 

"분한 마음 생길까 경계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을 막아라. 
허물을 고쳐서 착한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미 잘못을 뉘우쳤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이미 욕심을 막았으면 그 마음 변치 말며 
이미 나쁜 버릇을 고쳤으면 다시는 하지 말고 
이미 착한 행동으로 옮겼다면 변하지 말라. 
이것으로 스스로 수양할 수 있을 것이니 
죽도록 변치 말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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