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와 유익,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느낌이다. 간혹 독서를 하다 이런 즐거움을 누리는데 <열두 발자국>이 바로 그런 책이다. 특히, 강의했던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서 몰입도가 더 높았다. 마치 교실 맨 앞자리에서 저자와 눈을 맞추며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책에는 12개의 강의가 들어 있는데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먼저 의사결정과 계획이다.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다.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기보다는 일단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며 계획을 수정하며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이를 '실행을 통해 배우기'라고 한다. 나아가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일단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하라고 조언한다.  

인센티브는 단기적으로는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들어 성취도를 떨어뜨린다. 인센티브를 줄 때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 것, 계획에 너무 매몰되지 말 것!" 

이직에 대한 의사결정은 매우 어려운데, 이에 대해서도 뇌과학 입장에서 조언한다. 바로, 지금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직하는 회사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지금 힘들고 싫은 회사에 다닌다면 무엇을 꿈꿔야 할지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으라고 덧붙인다. 

일단 인간은 기본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좋은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라고 조언한다. 특히,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유형이라면 의사결정을 바꾸더라도 리더십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이 필요한데 성공한 사람과 경험이 많을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늘 회의하고 의심하며 자기 객관화를 해야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미덕 중 하나가 '겸손함과 결단력'입니다. 내 의사결정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가 되면 의사결정을 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사람, 유치원생들처럼 끊임없이 실행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자는 길을 잃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길을 잃는 과정을 통해 도시 전체가 배우 듯, 방황을 통해 인생의 지도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줄 수도 없다. 내 인생의 지도는 내가 찾아야 한다. 

결정 장애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도 연결된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택할 때 지나치게 고민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잘하는 것, 실패하지 않는 길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실패 후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결정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스톱 같은 것을 통해 빠른 의사결정을 연습하라고 한다. 덧붙여 저자는 결정 장애와 우유부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유부단함은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결정을 지나치게 미루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공황상태에 빠지면 그 사람을 결정 장애라고 봐요." 

결핍은 건강한 성장의 발판이 된다. 결핍이 욕망을 만들고 무엇을 실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요즘에는 결핍을 느끼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부모가 알아서 무엇이 부족한지 판단해서 재빠르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하나 혹은 둘이라서 가능하다. 결국, 결핍을 모르는 아이들은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마감이 다가오면 효율이 늘어나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결핍의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락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물론, 지나친 결핍은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 

의사결정에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감정이 만들어낸 선호와 우선순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중요하지요."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순위를 두면 판단 기준이 생겨 의사결정이 단순해지고 빨라진다. 더불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떠올리면 무엇이 중요한 지 더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독서에 대한 저자의 경험은 자녀를 양육할 때 좋은 지침이 된다. 

"대학보다는 대학원 때, 대학원 때보다는 교수가 돼서 훨씬 더 많은 책들을 읽게 됐고, 많이 읽다 보니 난독증도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책에 대한 결핍이 늘 책을 가까이하는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스스로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놀이에 대한 저자의 충고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의사결정 과정을 익힌다. 놀이라고 해서 장난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난감 없이 창의적으로 장난감을 만들며 놀 때 뇌가 더 발달한다.  

습관은 에너지를 덜 쓰려는 생존 본능이다. 중국집에 가면 습관적으로 짜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50% 정도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뇌를 쓰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반대로 습관을 바꾸고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가진 사람을 불편하더라도 만나고 습관에 젖은 사고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후회에 대하여 저자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후회를 통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성찰을 통해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적절한 태도라고 본다. 후회를 통해 절박함을 만들고 새로운 환경을 추구할 수 있다. 삶에서 80~90퍼센트는 기존대로 살더라도 10~20퍼센트는 새로운 탐색을 통해 실패도 해보고 기쁨도 누리라고 조언한다. 

미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미신을 의지하기 보다 내가 원인을 파악하고 노력해서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미신을 제1종 오류(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는 오류, 없는데 있다고 판정)와 제2종 오류(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는 오류, 있는데 없다고 판정)로 설명한다. 미신 같은 제1종 오류는 제2종 오류에 비해 틀려도 치명적이지 않다.  

실험을 통해 행복에 대한 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고 말한다. 월급보다 지나가다 만 원 주을 때 더 기쁘고 군대에서 유격 훈련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다. 또한 저자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며 과학적인 사고, 이성적인 판단, 논리적인 추론이 일상에 더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의심과 열린 마음의 균형이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삶의 태도란 논리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보고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의 태도를 권해드립니다... 회의주의적인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려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때 뇌에서 어떤 신호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진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개념들이 연결되고 관점이 바뀔 때 창의적인 사고가 일어난다고 연구자들은 해석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쓸 때 DNA에 관한 글을 써야 하면 DNA 관련 책이 아니라 문학 서적 등을 뒤적거린다고 말한다.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도 창의적인 발상에 도움을 준다. 수면,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도 매우 중요하다. 

4차 혁명 및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코딩 교육은 중요하다. 다만, 코딩 교육은 빈칸 채워 넣기 같은 문제 풀기가 아니라 논리 교육이며 창의성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다 맞다는 전제하에 정보를 수집하고 결정을 내린다. 인간은 데이터가 공정하고 평등한지 등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감정을 읽는 능력과 공감 능력은 인공지능이 당장 구현할 수 없다. 저자는 '인간의 직업은 사회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나아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는 몸과 뇌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에 갇혀 있으면 뇌만 쓰게 된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뇌만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몸을 쓰는 것이다. 이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사고방식과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 사이의 균형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잘 관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최대한 정확히 계산하려고 한다. 다만, 그 계산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과학자, 시인, 작곡가, IT기업 창업자들을 조사해보니, 위대한 성취가 20-30대에 일어난 경우는 40퍼센트, 40대 이후가 60퍼센트나 된다는 점이다. 나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똑똑한 사람은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 모두 뛰어나다. 또한 다른 똑똑한 사람과 시너지를 만드는 집단 지성을 활용한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한 세대에 쏟아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기서 저자는 솔직한 소통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탐험'이겠지요. 그중에서 성취를 이룬 자들은 사려 깊게 준비한 탐험가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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