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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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역사과학자(지질학자)로 수십억 년 우주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 광대한 우주 역사를 다루는 것을 빅 히스토리라고 한다. 저자는 빅 히스토리를 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모든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렇나 전반적 관점을 '빅 히스토리'라고 부른다. 나는 빅 히스토리를 우주, 지구, 생명, 그리고 인류라는 네 영역의 결합이라 여긴다... 인류사는 가장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여정(A Most Improbable Journey)이었고 이 책은 그 주제를 다룬다." 

지구 역사 중 대멸종이라 불리는 상황이 여섯 차례 있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멸종은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 경계를 구분한다. 이 대멸종은 운석 충돌이 원인이었고 저자는 동료와 함께 멕시코에서 증거가 되는 크레이터를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은하는 약 100,000,000,000(1,000억) 개의 별이 있는, 약 100,000,000,000(역시 1,000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이다. 즉, 우리 태양이 약 10,000,000,000,000,000,000,000개의 별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라는 행성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리고 우주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고 지구는 45억 년이다. 기록된 인류사는 5,000년 정도로 지구 역사는 인류사보다 100만 배 더 길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우주의 탄생은 빅뱅으로 설명한다. 우주배경복사와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두 원소 수소와 헬륨의 비율이 빅뱅 이론의 증거들이라고 설명한다.  

달은 지구의 회전을 안정화시키고 조수를 유발한다. 어둠으로부터 밤을 지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달을 단 하나만 가진 행성은 흔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지구만 하나의 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달이 없거나 두 개였거나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돌았으면 인간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태양계 대부분은 수수와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는 어떻게 암석을 구성하는 원소들(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월등히 많은지 질문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수많은 원소를 포함한 광물 입자들만이 태양이 방출하는 입자들의 압력을 이기고 지구가 만들어진 안쪽 태양계에 버티고 있을 수 있었다. 광물 입자들은 주로 규소, 산소, 마그네슘, 철, 이 네 개의 원소들로 구성되었다." 

이 네 가지 원소 중에서 지구가 가장 선호하는 원소는 규소라고 설명한다. 규소는 네 개의 원자와 결합이 가능해서 무수한 원자 네트워크를 만든다. 규소는 응축되어 있어 인류가 사용하기 좋은 상태로 지구에 존재한다. 석기, 유리, 컴퓨터 칩 등이 규소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석영 모래 퇴적을 생성하기 위해 수십억 년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대륙 충돌에 의해 만들어진 화강암은 약 75퍼센트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한다. 이 화강암은 표면 아래에 갇혀 있다. 산이 다 깎이고 나야 화강암이 드러난다.  그다음, 풍화작용으로 석영만 남고 나머지는 다 휩쓸러 간다. 남은 석영 입자는 퇴적되어 사암으로 굳힌다.  

책에는 산맥의 의미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먼저, 산맥은 지질학적으로 대륙의 큰 충돌로 만들어진다. 책에는 대표적으로 알프스산맥과 애팔래치아산맥을 이야기한다. 애팔래치아산맥은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충돌로 만들어졌다. 산맥은 역사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어와 종교를 분리하고 무역 경로, 군대, 순례자들의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한다. 산맥에 있는 다양한 암석을 통하여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석회암이나 사암과 같은 퇴적암은 산호초나 강바닥, 사막의 모래언덕, 빙하에 의한 빙퇴석과 같이 퇴적이 일어난 환경을 기억하고 지질학자들은 그 환경을 아주 자세하게 알아낼 수 있다." 

물론, 이런 산맥들도 시간이 지나면 침식이 계속되어 점점 낮아져 편평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수천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판구조론과 관련해 세 가지 순환 유형이 있는데, 지질학적 순환과 윌슨 순환, 초대륙 순환이다. 윌슨 순환은 초대륙 순환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결국, 순환을 통하여 대륙 조각들이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이는 것이다. 특히, 가장 최근 존재한 초대륙을 판게아라고 부른다. 이런 초대륙 순환은 지구 내부의 열에 의해 진행된다. 

세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세포가 살아 있으려면 세포벽, 물질대사, 에너지대사, 복제가 필요하다. 심해 열수공에는 지금도 생명체가 가득하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생태계인데 뜨거운 물에 녹은 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저자는 세포의 시작이 바로 심해 열수공이 아닐까 이야기한다.  

이제는 널리 알려졌듯이 광합성으로 인한 산소는 지구 생태계를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초기 미생물에게 산소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지금은 산소가 아주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고세균과 진정세균이 인간의 소화계에 살고 있다. 미생물들은 산소가 별로 없는 위와 장을 선호한다.  

"미생물을 포함한 우리 몸의 세포들은 생명 역사에서 길고 긴 명왕누대와 시생대 동안 일어난 위대한 사건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저자는 좌우대칭의 특징은 6억 년 전에 나타났다고 소개한다. 우리의 턱은 약 4억 6000만 년 전에 음식을 먹기 진화되었다. 턱은 100만 년 전에 말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이 속한 포유류의 특징은 알이 아닌 태반류라는 점이다. 체온을 약 36.5도 유지해주는 왕성한 신진대사와 다른 동물에는 없는 털도 특징이다. 포유류는 지구에서 가장 강하고 뛰어난 생명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도 영장류에 속한다. 저자는 영장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큰 머리뼈와 뇌는 일반적인 영장류의 특징이고, 거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앞을 향한 두 눈 역시 영장류의 특징이다. 코 역시 영장류의 유산이다. 대부분의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우리에게 후각은 시각보다 덜 중요한 감각이다... 인간은 건조한 코를 가진 영장류이다... 높이 솟은 코와 아래로 향한 콧구멍을 가진 영장류이다... 정교한 손가락, 나머지 손가락과 마주 보는 엄지손가락으로 물건을 잡고 다룰 수 있으며 날카로운 갈고리발톱 대신 섬세한 손톱을 가지고 있다." 

추가로, 분명하게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요인은 직립보행과 큰 뇌라고 설명한다. 뇌가 커진 것보다는 직립 보행이 먼저임이 화석 발견으로 확실해졌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만약, 좌우대칭이 나타나지 않았거나 턱이 움직이도록 진화하지 않았거나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질문한다. 이에 대해 "빅 히스토리의 다른 많은 경우와 함께 보면 우리 몸의 특징을 만든 것은 아주 특별하고 일어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태평양 중동부 폴리네시아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 섬들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떻게 인류는 이렇게 전 세계에 뻗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을 아프리카로 보고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것은 많은 화석의 발견과 DNA 유전자 기록이다. 저자는 현생인류의 가장 큰 유전 다양성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DNA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만 전달되고 변하지 않는다. 또 남자에게만 있는 Y 염색체 유전자를 이용하여 선조를 추적할 수 있다. 오래된 것이 최근의 것보다 더 넓게 퍼지는 원리로 순서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하여 인류가 어떻게 전 세계에 퍼져나갔는지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의 사용과 도구의 사용이다. 인간처럼 불을 능동적이고 계획적으로 다루는 동물은 없다. 구운 고기는 더 맛있고 소화가 잘 되고 생고기보다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불은 추위로부터 견디게 하고 어둠에서 빛과 온기를 얻으며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한다. 이러한 불의 사용은 끓는 물과 수증기, 터빈,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정리하면, 빅 히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규칙성이나 유형을 발견할 수 없다. 저자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바로 '다양한 시간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된 경향성과 순환성으로 이루어진 연속성이고 또 하나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만드는 드문 사건인 우연성'이다. 작은 우주인 인간의 삶도 이 연속성과 우연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상으로부터 올라가서 계산해보면 내가 태어날 확률은 엄청나게 낮다. 부모님 두 분, 조부모님 네 분 이런 식으로 올라갈 경우 30세대 위로 올라가면 약 10억 명의 조상이 존재한다. 이렇게 올라가지 않더라도 정자와 난자의 수,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인구 수를 고려할 때 나라는 존재가 태어난 확률은 매우 매우 낮다. 결국, 저자는 우리 모두가 '가장 엄혹한 확률 게임의 승자'라고 결론 내리며 '모두 엄청난 천문학적인 확률의 승자'라고 말한다. 로또 당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확률이다.  

"약 140억 년의 우주 역사, 40억 년이 넘는 지구와 생명의 역사, 수백만 년의 인류사, 이 모두는 자연의 지배를 받지만 무수한 우연성 때문에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게 작동했고, 그 역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현실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 세계와 이 현실을 물려받은 몇 안 되는 행운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아직 열리지 않은 빅 히스토리 여정의 다음 장에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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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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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미국은 빈곤이 심해지고 있고 범죄는 줄어들고 있으며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났다. 책은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각종 사례를 들며 파헤치고 있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단순하다.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가난한 이들을 수감하여 범죄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법은 전혀 공정하지 않고 부자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가난한 이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진 돈도 없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사람들은 돈과 정치적인 백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편에 선 경관들의 바로 턱밑에서 엄청난 죄를 짓고도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복지 급여를 신청하면 정부는 예비적 가택 수색을 시행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조사관의 행위는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옷장 속옷을 꺼내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사생활과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행위다.  

반면 기업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금융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의 고위 임원들 중 감옥에 수감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가난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꼬투리를 잡아 감옥에 처넣으면서 기업인들은 증거가 명백함에도 대마불사라는 명목하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냥 넘어간다. 

"믿기지 않겠지만, 분홍색 매직펜 하나 때문에 수감되는 사람이 있고, 말아 피우는 담배 때문에 혹은 신분증 없이 음료수를 사러 동네 가게에 갔다가 수감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폭력배나 테러리스트 계좌 개설을 도와준 은행 직원과 뉴욕 지하철에서 잠이 든 고등학교 중퇴자 중에서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미국에서는 후자가 더 큰 처벌을 받고 있다. 아니, 전자는 처벌도 안 받으니 사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법은 차별적이다. 그냥 차별적인 게 아니라 심각하게 차별적이다.  

"법치주의는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그 대신에 실패한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강한 자, 부유한 자, 성공한 자의 위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방향으로 설계된 특이하고 거대한 관료주의가 서서히 강화되어 왔다." 

저자는 첫 사례로 2008년 이후 미국 내에서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소송을 다룬다. 피고인은 골드먼삭스나 JP 모건 체이스 같은 기업들이 아니다. 피고인은 바로 차이나타운에 입주한 가족 소유의 작은 지방 은행인 아바쿠스 페더럴 저축 은행이었다. 이 작은 은행이 금융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 법정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바쿠스 은행은 금융 위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국 이민자들의 소득 신고 누락 관행과 관련된 사건을 금융 위기 주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들이 아바쿠스 기소로 무얼 얻고자 하는지 분명했다. 시 정부는 그 기소로 금융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소득을 얻었고, 언론은 사법부의 엄정함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인 방법으로 보도하는 소득을 얻었다." 

기업과 정부는 '부수적 결과'라는 용어로 법의 차별적 적용을 옹호한다. 부수적 결과는 바로 기업과 임원이 처벌받아 기업이 망하면 무고한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시스템 붕괴 등 예측할 수 없는 부수적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부분 기업들은 기소 유예 합의나 불기소 합의로 소송에서 벗어나고 범죄 행위를 시인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는 벌금이나 합의금은 그들이 1년에 벌어들이는 돈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들은 상황에 따른 관대한 처분이 경제를 살린다는 이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이하게도 마땅히 법리학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받아야 할 만큼 크고 중요한 존재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계산법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처분을 받기엔 적합하지 않을 만큼 작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누구인가를 계산해 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범법 행위를 저지른 초대형 은행, 대출업체, 신용 평가업체 가운데 어느 후보를 택해서 소송을 해야 강한 상징성을 지닌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누구를 피고인석에 세울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아바쿠스 지방 은행이었다. 

부수적 결과는 오로지 기업들을 위한 핑계였다. 개인들도 범죄 혐의로 기소되면 수많은 부수적 결과가 발생한다. 개인이 기소되면 이후에 대출, 취업, 정부 지원금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고한 가족까지도 복지 수급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개인의 부수적 결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기업의 형사 소추의 부수적 결과는 신중히 고려하는 것이다. 사실 부수적 결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금융 고위 임원 몇 명 체포해도 그 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째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임원들을 체포하는 것이 <죄 없는 희생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금리 조작에 가담한 UBS 직원들 몇십 명을, 자금 세탁의 범죄에 가담한 HSBC 직원들 몇 명을 법정에 세운다고 해서 그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기업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부수적 결과'를 고려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범법 행위를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노숙자 행색을 하고 걸어 다니다 경찰 눈에 띄면 몸수색을 당한다. 경찰은 할당량을 받게 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고한 주머니에서 대마초 반 토막이라도 발견되면 체포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석금 결정이 내려지는데 이를 지불한 돈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교소도에 수감될 수밖에 없다. 

무임승차도 당연히 단속 대상이다. 경찰은 집요하다. 무임승차하는 노숙자들을 잡으려고 사복 경관을 보낸다. 경찰은 일단 잡아들인 다음 협상을 시작한다.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5달러만 내라는 것이다. 증거가 없고 무죄임을 증명하는 것도 매우 번거롭고 많은 시일이 걸린다. 이러한 횡포는 주로 노숙자 같은 취약계층에만 발생한다. 따라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고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무차별적 단속과 체포는 계속 자행된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같은 미국에 사는 백인들도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이 과연 이렇게 무분별하게 체포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고 이는 세계가 두 개로 완전히 갈라진 반증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Divide>인 것이다. 

"아무튼 세계는 두 개로 갈라져 있고, 각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여기엔 <불공정>과 <불평등> 같은 흔한 정치적인 표현조차 쓸 수 없다. 그저 난장판 속에서 광기로 치닫는 미친 세상일뿐이다." 

경찰은 체포 건수를 늘리기 위하여 트집을 잡아 사람들을 검문하고 체포한다. 기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냥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체포이다. 그러나 체포당하는 사람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책에는 밤늦게 일하고 집 앞에 서 있다가 붙잡힌 사례도 나온다. 명목은 '보행자 통행 방해'였다. '보행자 통행 방해'로 잡혀가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물론, 백인이 사는 동네에는 '보행자 통행 방해'명목으로 체포하는 경관이 한 명도 없다.  

리먼브러더스의 중역들은 바클레이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 및 고용 제안을 받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자산 매각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이처럼, 마지막까지 리먼브러더스의 임원들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아닌, 사적인 이익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이들의 행위는 범죄이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려는 찰나에 이익을 얻기 위하여 물불 안 가리고 달려는 바클레이스의 탐욕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는 다른 은행들에게 리먼 같은 기업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경고하거나, 리먼 파산으로 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국고를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서민들은 언제나 봉이다. 사법 정의도, 구제 금융도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민자들의 수감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수감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사업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바로, 민간 교도소 운영 업체인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이다. 월스트리트도 이 기업의 잠재적 성장을 눈여겨보고 투자를 했다. 이민자들은 수감되고 나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이민자 가족들 중에는 일부가 수감된 후 추방되어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책에서 말한다. 

이민자들이 체포당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무면허 운전이다. 문제는 무자격 이민자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즉, 합법적인 비자가 없는 이들이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추방된다.   

책에는 공매도 한 다음에 멀쩡한 기업을 비난, 비방하여 이미지를 훼손하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들은 단순히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직접 전화하여 위협하기도 하고 회사 CEO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에게까지 편지를 쓰는 등 정상적이지도 않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방법을 동원한다. 공매도를 하면 주식 대여료를 지불해야 하고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갚아야 되는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그래서 이들은 생사를 걸고 그 회사를 망가뜨리려고 한다.  

책에는 캐나다 보험회사인 페어팩스의 사례를 소개한다. 페어팩스는 헤지펀드의 공격에 결국 소송을 걸게 된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8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헤지펀드는 쉽게 먹이를 놓지 않으며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기하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페어팩스가 소송을 제기하지만 헤지펀드의 범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아직까지 헤지펀드에 대한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페어팩스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대부분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너지고 만다. 즉, 헤지펀드는 공매도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다. 

"페어팩스의 소송 과정은 거꾸로 뒤집힌 <소모전에 의한 사법 정의>였다. 공격이 시작되고, 공격자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여러 해에 걸쳐서 진행되는 끝도 없는 서류 작업 속에 모든 것이 파묻혀 갔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혹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불평등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저자는 관료제가 사회적 불평등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거대 조직이라고 지적한다. 관료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갑부들에게 몰아주는 메커니즘이다. 관료제는 노골적으로 말해서 흑인을 특히 더 미워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스펙트럼의 한족 끝에 있는 사람에겐 과속 딱지 한 장이 떨어질 뿐이지만, 다른 한쪽 끝에서는 징역형이 떨어질 수 있다."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시행되어야 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을 보존하고 유지해야 하는 법이 오로지 부자들의 재산과 기득권만을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법은 가난한 이들을 처벌하는 데는 냉정하고 재빠르다. 반면, 부자들은 처벌하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노력한다. 결국 가난이 죄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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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0-2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단 미국만의 현실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러다 정말로 세상이 부자와 가난한 자, 법의 보호를 받는 자와 범법자로 둘로 딱 갈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

데굴데굴 2018-10-29 15:26   좋아요 1 | URL
네 무서운 세상이 도래할가봐 두렵네요. 특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또 어떠할지 걱정도 앞서고요. 부자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법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네요ㅜ

뒷북소녀 2018-11-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나혼자 고고하게 착하게 살고 있어도 어딘가 휘말리고, 뒷통수를 가격 당하는 일이 빈번하니 말이죠. ㅠ

데굴데굴 2018-11-02 13:08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임플란트 전쟁> 책만 봐도 공정하고 착하게 살려고 하면 아예 망하게 하려고 휘두르니깐요.
점점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 같네요ㅠㅠ
 
논어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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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한 권씩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논어>를 읽게 되었다.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온 <논어>는 원문과 독음, 그리고 중간중간 해설과 제자들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들어가 있다. 한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전이라면 원문이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현대지성의 <논어>는 내가 원했던 3박자(원문, 독음, 해설)를 갖춘 책이다. 

<논어> 내용 자체가 방대하고 격언 형식이 많아 요약보다는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위주로 정리하려고 한다. 일단은 공자가 배움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즐거운 배움이 당연 최고라고 말한다. 

"총명한 자는 총명하지 못하나 학문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학문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자만 못하다." 

<논어>를 읽기 전에는 공자는 인자하고 부드러우며 진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일단 공자는 단호박 스타일이었다. 저자는 가르침에 있어서 들을 만한 사람을 가르치라고 여러 번 이야기한다. 더불어 벗을 사귐에 있어서도 말이 통하는 벗을 사귀라고 조언한다.  

"자기와 길이 같지 않은 사람과 교류하지 말며, 과오가 있으면 용기 있게 고쳐야 한다."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격했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았으며, 장중하면서도 편안한 모습이었다." 

공자는 아닌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한 제자가 자신이 다른 제자보다 못한 것 같다고 물으니 공자는 단번에 "니 말이 맞다"라고 답변한다. 

공자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말한다. 보통은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공자는 사고의 전환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공자가 외쳤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하며 오늘을 힘겹게 살아간다. 

공자는 실행을 강조한다. 아는 것에 그치면 안 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행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것도 경계한다. 어쩜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본능을 꿰뚫어 보고 짧은 문장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넣었을까 신기하다. 공자는 자신의 이런 지혜가 태어날 때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배우고 익힌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지만, 실행에는 성실하게 노력한다." 

"군자는  자신의 말이 자신의 실행을 넘어서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열 가구 정도 되는 조그만 동네에도 반드시 나 정도의 충신한 사람은 있을 것이지만, 나 정도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곧 만사를 안 것이 아니고, 옛것을 좋아하여 성실하게 노력하여 그것을 구한 자이다." 

공자는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생각을 주고받는다. 공자는 자신의 권위로 절대 제자를 억누르지 않는다. 대화하다가 제자가 맞으면 쿨하게 제자가 맞다고 이야기한다. 중궁이라는 제자와 대화하다가 공자는 "너의 말이 옳다."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공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었다. 주관적인 의심이 없었고,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마음이 없었으며, 자기 고집만 주장하지 않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점잖을 것 같은 공자는 의외로 음악을 즐겼다. <논어>를 읽다 보면 음악을 사랑한 공자의 모습을 적잖게 만날 수 있다. 

"공자는 제나라에 있을 때에 소악을 듣고,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몰랐으며 "음악을 만든 것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다른 사람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그 사람이 노래를 잘하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하고 그 뒤에 그와 함께 노래를 하였다." 

공자는 촌철살인의 달인이다. 마지막으로 <논어>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이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으면, 이야말로 가장 큰 허물이다." 

"어떤 사람이든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유익한 교류에 세 종류 벗이 있고, 해로운 교류에 세 종류 벗이 있다. 정직한 벗, 성실하고 신의가 있는 벗 그리고 견문이 넓은 벗이 유익하고, 편벽한 벗, 앞에서는 잘 하지만 뒤에서 비방하는 벗 그리고 아첨하는 벗은 해롭다." 

"유익한 즐거움이 세 가지 있고, 해로운 즐거움이 세 가지 있다. 예악을 자신의 취미로 삼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기를 즐거워하며, 현명한 벗이 많음을 즐거워하면 유익하고, 교만함을 좋아하고, 편안함만을 좋아하며, 먹고 마시는 것만을 좋아하면 해롭다." 

"군자에게 세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젊을 때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여색을 조심해야 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므로 싸움을 조심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쇠하므로 소유욕을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사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다면, 그 인생은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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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사 - 오늘까지만 출근하겠습니다
박정선 지음 / 브.레드(b.read)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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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든다. 8년의 직장생활 동안 한 번 이직을 했다. 당시, 팀장님께 이직한다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심장이 쿵쾅쿵쾅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막상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후련하고 새로운 직장에 대한 기대로 설레기도 했다.  

저자는 이직 고수다. 13년 동안 사표만 5개를 냈다고 한다. 첫 직장 8년 다니고 그 이후로는 1년을 못 채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저자가 금수저는 아니다. 여전히 전셋집 전전하며 사는 보통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함께 공감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회사'라는 녀석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책에서 풀어 놓는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데 희망적이지 않은 것이 있다. '희망퇴직', 회사 사정으로 나가는 것인데 이름만 희망이다. 하지만 개인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희망퇴사'는 그런 의미다. 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논리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퇴사, 그런 토끼 구멍." 

저자의 첫 직장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다. 매거진 발행사의 기자로 언제나 마감에 시달렸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밤새운 후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업무 강도다. 나 같으면 1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퇴사한다고 할 때 괜히 회사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아예 안 붙잡으면 내가 회사에서 이런 존재였나 싶어서 허탈해지고 너무 붙잡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특히, 붙잡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더더욱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자도 비슷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퇴사 이벤트를 준비한다. 기발한 것을 넘어서 용감하고 멋있다. 직장 동료, 청소 아주머니, 경비업체 직원 등의 명단을 만들어 회사 1층 카페에 명단을 붙인다. 엘리베이터에 퇴사 포스터를 만들어 커피 한 잔씩 드시라고 적어 놓았다.  

"한 분 한 분 인사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대신, 카페에 커피 한 잔씩 맡겨두었으니 추운 날 한 잔씩 드세요~!" 

저자는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고 처음에 소개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첫 직장에 6년 다녔는데 작은 회사라 돌아가며 인사만 하고 조용히 나왔다. 회사 다닐 때는 그렇게 얄미워 보이던 사람도 막상 볼일 없다고 생각하니 그다지 밉지 않았다. 저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직장을 옮겨 다니며 저자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고 엄청 공부를 했다고 고백한다. 웹 기획, THML, CSS책 등 업무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파고들었다. 저자의 이런 모습은 도전과 성장에 너무나 부합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를 꾀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도전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과정이 쉬운 과정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동료가 1차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엑셀 파일 하나를 만들어도 현업이 두 번 일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부터 신경 썼다고 한다. 나는 엑셀 파일을 만들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고 다른 부서에서 자료를 받으면 항상 손을 대야 하는 상황에 서글퍼진다. 

저자가 이직 한 회사 중 하나는 첫 직장에서 알고 지낸 분들과 후배들이 함께 시작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 회사에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체계적이지 않은 시스템이 걱정됐지만 구성원 간에 끈끈한 정을 나누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같은 회사 출신이 모였지만 스타트업이고 나 또한 관리자로 참여하니 단점은 적절히 조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체계와 정은 없었고 끈끈함은 지나쳐 곤죽이 되어 버렸다." 

스타트업은 처음에는 절차나 체계가 없을 수 있다. 문제는 저자가 지적하듯이 절차나 체계가 필요하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회사는 조직을 단단하게 유지할 수 없다. 위에 사람들이 업무 프로세스나 회사 조직에 신경 쓰지 않으면 밑에 사람들은 불만이 쌓이게 된다. 독재 체제로 가기 쉬우며 결국 바른말 하는 사람들은 입을 닫게 된다. 여기다 업무 프로세스 문제로 야근이 잦아지면 업무 효율성과 의욕은 더 떨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블랙 기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런 특징이 있다면 이직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 직원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열정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 효율적이지 않다 

내 삶이 유지가 안 될 정도로 야근이 많다면 이직을 고려해봐야 한다. 특히, 자발적 야근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강압적 야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문화라면 이것도 하나의 위험 징조이다.  

저자는 회사가 중요시하는 로직대로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고객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옵션과 대안, 실패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큰 부담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회사가 세운 '대의'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회사 업무에 있어 로직이 필요하면서도 이런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논리를 따질수록 애초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 일을 하기로 했는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 흐름을 놓치는 순간 논리는 아주 쉽게 왜곡된다. 집단 내 이해관계가 논리를 앞서는 순간 혹은 일이 잘 되게 하기보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기에 급급해지는 순간 논리는 쉽게 변질되어버린다." 

저자는 꼰대 상사 특징을 몇 가지 말하는데 너무 공감이 되어 뒤로 넘어갈 뻔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지난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이거랑 저거랑, 막 이렇게 저렇게...", "협업해 잘 메이드 하겠습니다." 등등. 숟가락 올리려고 하거나 자기도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는 상사, 내용은 이야기 안 하고 대명사만 나열하는 상사, 쓸데없이 맥락에 안 맞는 영어 쓰는 상사 등이다. 물론, 내가 이런 상사가 안 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꼰대의 핵심은 '비겁함'이라고 꼬집는다. 책임 전가의 달인을 조심해야 한다. 

주인 의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회사에 대한 주인 의식보다는 자기 업무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 업무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지려면 일에 대한 자신의 권한과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사는 실무자에게 어느 정도 자율권을 주되 끝까지 줘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나올 때까지 질질 끌고 가면 안 된다. 처음부터 방향 설정을 명확히 해서 실무자가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하도록 도와야 한다.  

자신의 역량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하라고 말한다. 트렌드 파악 능력은 시장 분석, 취재 능력은 자료 조사 및 취합 능력, 글 쓰는 능력은 보고서 작성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고 자신의 역량으로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이 힘들지 않고 야근도 별로 없는데 이 회사에 다니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경우도 있다. 이때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을 준비할지, 아니면 그냥 편하게 다닐지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막상 찾아보면 이런 회사도 드물다고 말한다.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회사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한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노동시간과 노동력이라고 말하며 효율적인 업무 구조(업무 프로세스, 물적 인프라 등)가 뒷받침되어야 성과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개인의 의지만을 강조하는 회사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덧붙인다.  

분명한 것은 회사의 성과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 성과를 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조직에서는 힘을 아끼는 것도 배워야 한다. 특히, 저자는 자존감을 잘 지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완주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회사가 너무 힘들면 포기할 수 있고 그만둘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답답한 상황에 숨통이 된다. 저자는 힘들면 조금 쉬어도 괜찮다고 수많은 직장인을 위로한다.  

"때로는 그렇게 사표를 던져도 괜찮다. 일이 너무 힘드니까, 야근이 너무 많아서 내 인생이 사라진 것 같으니까, 상사가 너무 이상하니까. 그 모든 것은 회사를 그만두기에 충분한 이유다. 그런 순간의 퇴사나 포기는 어쩌면 우리의 무리함에 대한 브레이크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라면 브레이크를 밟아 줄 필요도 있다." 

나는 워라벨을 매우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다.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야근 여부이다. 그런데 저자는 좀 더 큰 그림에서 워라벨을 보라고 조언하는데 설득력이 있다. 일할 수 있는 전성기는 길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워라벨에 집착하다 보면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루나 일주일 단위의 워라벨이 아닌 인생 전체를 보고 고민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알려준다. 

직장인들은 탈출 버튼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힘을 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최종 병기, 사표'라고 말한다. 회사에 속하기 이전에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직장인들은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힘을 내서 출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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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4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굴데굴 2018-10-24 14:27   좋아요 1 | URL
헉.. 그런 시절이 계셨군요ㅠ
마음에 사표를 품고 다닌게 아니라 실물을 호주머니에 넣고..
저는 소심해서 마음에만 품고 다니고 있습니다 ㅠㅠ

뒷북소녀 2018-11-0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엄청 마음에 드네요.^^
정말...저는... 너무 힘들어서 이직했는데...
야근 없고 칼퇴할 수 있는 회사에 다녀도 그렇게 부지런해지지가 않아서 걱정입니다.
바쁠 때나 여유 있을 때나 늘 방에서 책을 껴안고 뒹굴뒹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ㅠㅠ

데굴데굴 2018-11-02 13:10   좋아요 0 | URL
ㅎㅎ 제목만 들어도 약간 힐링 된다는 ㅎㅎ
ㅠㅠ 그래도 이직 잘 하셨네요!
야근 없고 칼퇴할 수 있는 회사에 충분히 감사하고 즐기시면 될 것 같아요!!ㅎㅎ
시간 날 때마다 책 읽으시는거 보면 엄청 부지런하신거 같은데요!!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 미국이 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벗기다
노엄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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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2011년까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이다. 배경지식을 몰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촘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폭력과 경제제재를 통하여 세계를 지배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외교 문제에 있어서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이에 따르면 타국을 침략하여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반대로 다른 나라는 그 권리가 없다. 미국은 세계 경찰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모두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국가론을 지지할 때 이스라엘은 이 합의를 줄기차게 거부했고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협력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이스라엘 첨단 기업에 투자했다. 군수산업에서도 둘은 긴밀하다. 이스라엘은 개발 및 제조 시설들을 미국으로 이전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이스라엘이 인도적 지원을 위해 가자 지구로 향하던 자유의 선단을 공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건 명백히 범죄이고 규탄 받아야 할 행위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이스라엘의 행위를 용납하기 때문에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 국제법이 존재하나 강대국에게 국제법을 강요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미국은 소말리아에도 개입한다. 소말리아 민병대가 독재 정권을 전복시키자 미국은 구조대를 파병한다. 이 구조대는 많은 사람을 구한 반면 그에 버금갈 만큼 낳은 사람을 살상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덧붙여 미국은 에티오피아 침략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군인은 이라크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무기한으로 이라크에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외국 투자, 특히 미국 기업의 투자를 권장하며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라크에도 미국의 손길이 뻗어 있다. 이라크 침략이 이라크 석유를 지배하려는 노력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로서는 이라크를 고분고분한 위성국가로 삼아, 주요한 석유 매장지 한복판에 거대한 미군 기지들을 세우고 최대한 미국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원칙 선언에는 이라크의 석유 자원을 마음대로 착취하겠다는 후안무치한 선언도 담겨 있다. 이라크 경제, 즉 이라크 석유 자원을 외국 투자, 특히 '미국 기업의 투자'에 개방해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촘스키는 오바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오바마도 여러 발언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오바마는 "팔레스타인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이익이다"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이는 너무나 두리뭉실하고 추상적이며 듣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다.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안전과 권리는 약속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위협에 맞서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오바마의 애매한 발언은 그가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뜨겁게 토해내면서도 팔레스타인의 관심사는 무시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오바마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도 의외라고 언급한다. 앞으로는 좀 더 세계 평화에 힘써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부시가 시작한 전쟁을 확대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전망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횡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만, 중국이 부상으로 입지가 조금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트럼프 정권 이후, 다시 한 번 세계를 지배하려고 중국과 무역 전쟁을 불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 위기는 주택 거품의 붕괴에 있었지만, 더 깊은 근원에는 금융 자유화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금융 자유화가 내포하는 구조적 위험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금융기관의 위험은 기관 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금융 위기를 부른 막대한 책임이 있으면서도 국민 돈으로 파산에서 구제된 은행들이 이제는 기록적인 이익을 거두고 엄청난 보너스 잔치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이다." 

금융기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바마 진영이 받은 기부금은 주로 금융기관과 법무법인에서 나왔다고 촘스키는 설명한다. 당연히 이렇게 당선된 대통령은 친금융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오바마 경제팀의 핵심 인물인 루빈과 서머스는 금융 위기의 주요 요인인 규제완화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특히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시키는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지하려고 애썼다. 

"부의 집중은 정치력으로 이어졌고, 정치력은 조세정책, 규제 완화, 기업 지배 구조와 관련된 법 등 초부유층의 특권을 더욱 강화하는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과 함께 선거비용도 급격히 증가했다. 따라서 양대 정당은 기업계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책에는 제주도 강정마을 이야기도 나온다. 촘스키는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이라 생각하는 곳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려 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해군기지 건설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중국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고, 중국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전방에 작전 부대를 배치하는 데 있다." 

"강정 마을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 잘 알고 있다. 이미 충분한 고통을 겪은 조그마한 섬에 한국과 외국의 군인들, 첨단 무기,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물밀듯이 밀려들 것이다. 얄궂게도 향후 초강대국들이 벌일 갈등의 씨앗이 생태보존지역인 평화의 섬에 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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