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평점 :
문재인 대통령이 "내 청춘을 이끈 힘은 이덕무의 글이었다."라고 말한 것을 리뷰를 쓰는 지금 알았다. 최근, <오직 독서뿐>과 <책에 미친 바보>를 읽으며 이덕무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데, <문장의 온도>는 이덕무에 대한 세 번째 책이다. 문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좀 더 깊이 읽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붓은 마른 대나무와 죽은 토끼의 털이고, 먹은 묵은 아교와 까만 그을음이고, 종이는 떨어진 삼베와 헌 천 조각이고, 벼루는 오래된 기와와 무딘 쇳조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물건들이 어떻게 사람의 뜻과 생각과 더불어 기이한 변화와 신기한 조화를 부릴 수 있을까?"
이덕무의 글을 읽으면 탁월한 문장은 기본이고 사고의 기발함과 신선함, 주의 깊은 관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위의 글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없는 붓과 먹, 종이와 벼루로 사람은 생각을 드러낸다. 이 글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여러 사람을 옮겨 다니며 감정과 생명을 전파한다. 이것만큼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 있을까 싶다.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돌담은 내가 오줌을 누는 곳이다. 그 돌담에는 사향쥐 구멍이 있는데 사향 냄새가 밖까지 새어 나온다. 매번 오줌을 눌 때마다 쥐구멍을 파내 포육을 만들 생각이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생각을 바꿔 생물을 죽이는 마음을 경계했다. 날마다 이와 같이 경계하면서도 아직 그 생각을 통쾌하게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힘을 쓰니 지금은 그런 생각이 끊어져 살생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이와 같은 것은 별반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곳에 힘쓸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일상의 모든 것이 사고의 훈련이고 배움의 연장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인지하는 것은 배움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덕무는 이 부분이 탁월하다. 힘을 써 살생하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도 놀랍지만 나아가 이런 하찮은 일보다 더 중요하고 큰일에 힘써야겠다는 다짐은 도전이 된다. 나는 지금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쓸데없이 나의 시간과 정신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주변 모든 것을 세심히 관찰하며 배움을 얻고 사색을 한다. 풀, 해바라기, 금봉화, 눈, 서리, 나무 등 자연을 관찰하며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다.
"널리 알면서도 편찬하거나 저술하지 못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나 다름없다. 이미 떨어져 버린 꽃이 아니겠는가. 편찬하거나 저술하면서도 널리 알지 못하는 것은 근원이 없는 샘물이나 다름없다. 이미 말라 버린 샘물이 아니겠는가."
"천리마의 한 오라기 털이 하얗다고 해서 미리 그 천리마가 백마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온몸에 있는 천만 개의 털 중에서 누런 털도 있고 검은 털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이치로 보건대, 어찌 사람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겠는가."
언어의 마술사 같다. 어쩜 이렇게 그때마다 적절한 비유 대상을 찾아서 이야기하는지. 너무나 배우고 싶은 능력이고 노력이다. 사람을 한 가지 면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천리마에 비유하는 탁월함은 이덕무의 것이다. 다양한 사물과 개념을 하나로 연결하는 능력은 4차 혁명 시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도 필요하다. 이처럼 적절한 비유를 읽으면 개념이 머리에 쏙 들어오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이덕무는 관찰을 통하여 자연을 배우고 공부한다. 이를 박물학이라고 한다. 박쥐가 벌의 머리를 먹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쥐, 닭, 뱀, 지네, 거위, 오리, 전갈, 달팽이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닭은 두꺼비 새끼를 통째로 삼키기를 마치 물을 마시듯 한다. 거미 오줌이 닿으면 지네가 물이 되고, 달팽이 침이 묻으면 지네의 발이 다 떨어진다. 달팽이는 전갈도 제압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하나의 즐거움이자 배움인 것이다. 나도 4살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가면 하염없이 앉아서 개미가 움직이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경할 때가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자연을 관찰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이를 통해 좀 더 친숙해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덕무는 기존에 내려오던 지식을 직접 의심하고 확인한다. 소나무는 굳센 기운을 지녀서 매미가 깃들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내려왔는데 그는 직접 확인하며 그렇지 않다고, 자기가 소나무에서 매미가 우는 모습을 봤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그는 기존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확인하는 태도를 지녔다.
그는 포식이 좋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해 독서에 크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나도 배가 부를 때 독서하면 집중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덕무는 정말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인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신장-귀, 폐-코, 심장-혀, 비장과위장-입술, 간-눈이 형상이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
"신장 두 개는 마주 붙어 있는 형상이다. 바깥쪽은 원형으로 구불구불하고, 안쪽은 굽어 있고 오목하다. 이러한 까닭에 양쪽 귀는 마주 붙어 있고 바퀴 구멍 형상으로 되어 있다. 폐는 아래쪽으로 늘어져 있다. 이러한 까닭에 코의 자리는 아래로 꼿꼿하게 달려 드리워져 있다..."
웃음에 대해서도 뼈 있는 이야기를 한다.
"웃음에도 세 가지 품격이 있다. 기뻐서 웃는 것, 감개해서 웃는 것, 고상한 뜻이 서로 맞아 웃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무시해서 웃거나 아첨하느라 웃는 짓은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나쁜 소식은 몇 배가 되어 퍼져 나가는 반면 좋은 소문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언급한다. 이는 최근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진 일이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나쁜 소식에 더 많은 클릭을 한다. 여기까지는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이덕무는 '군자는 반대로 힘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현상과 문제에 대한 분석으로만 끝나면 안 되고 그다음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이 외에도 주옥같은 말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릴 때의 마음과 돈을 갚을 때의 마음은 다르다. 그러나 인덕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가 울고 웃는 것은 타고난 천성이다. 어찌 인위적으로 하 것이겠는가! 어른들은 기쁘고 노여운 감정을 거짓으로 꾸민다. 어린아이에게 부끄러워할 일이다."
"망상이 분주하게 일어날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자. 온갖 잡념이 일시에 사라질 것이다. 바로 정기가 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모공과 뼈마디는 모두 어른만 못하다. 그러나 유독 눈동자만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라. 바로 크게 기이한 조짐이다."
"원망과 비방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나는 까닭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진실로 즐겁다. 그러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 이것은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기회는 일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만나면 3시간, 4시간 금방 지나간다.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며 서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고민을 말하며 조언을 건넨다. 가끔은 서로 말하려고 세 명이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만나면 즐겁고 헤어질 때 아쉬운 관계이다. 이덕무의 말처럼 이런 관계의 즐거움은 너무나 크다.
"가난으로 반 꾸러미의 엽전도 모으지 못하는 처지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구하려 하고, 어리석고 둔해 단 한 권의 책도 다 통해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 모든 서책을 다 보려고 한다. 진실로 탁 트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어리석은 자라고 하겠다. 아아, 이덕무야! 이덕무야! 네가 바로 그렇지 않느냐."
"사군자가 한가롭게 거처하며 일도 하지 않고 독서조차 하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독서하지 않으면 작게는 정신이 혼미해져 잠이나 자고 노름이나 하게 된다. 더욱이 크게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색욕에 빠지게 된다. 오호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독서할 따름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정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다음은 습득해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넓고 깊게 아는 것이다."
"일을 처리할 때는 통용을 귀중하게 여긴다. 독서할 때는 활용을 귀중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