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사랑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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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나선 강시울이나, 그렇게 자신에게 다시 다가온 강시울을 위해 목숨까지 받쳐야했던 홍시진이나, 학창시절부터 애틋하게 사랑하다 드디어 그 사랑의 결실을 맺는 순간 강시울 때문에 결국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김다정이나,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들과 같은 사랑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홍시진과 같은 사랑은 하지 못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사랑>이라는 제목대로라면 홍시진에게도 오로지 하나의 사랑만이 있었다는 얘기이고, 결국 그 사랑은 강시울을 향한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다정과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자신을 사랑한 사람에 대한 예의나 연민으로 그녀와의 결혼을 약속했던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홍시진과 김다정이 결혼을 했다면, 그때도 홍시진은 자신을 다시 찾아온 강시울을 받아들였을까? 홍시진과 김다정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그때는 또 어땠을까? 글쎄다. 홍시진은 자신의 길을, 자신의 사랑을 찾아갔지만 나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강시울의 입장이나 홍시진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어쩔 수 없이 결혼으로 이어진 그 과정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고,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에 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야기의 전개가 시진과 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다정의 마음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시진과 시울이 사찰을 떠난 후 만 배를 시작한 다정의 모습을 그린 후 다정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영혼결혼식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데 그녀의 변화된 심경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강시울이나 홍시진과 같은 사랑을 할 것이다. 그들이 했던 그 단 한 번의 사랑, 나에게는 너무 머나먼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사랑이 생명보다 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랑이라면, 그 누가 그 사랑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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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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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땅콩이라고 검색하면 아마 2014125일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 땅콩 회항 사건에 관한 수많은 문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시한 사상 초유의 갑질 사건으로 기록될 이 사건을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재력,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태가 이미 그 도를 넘어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력, 권력을 잡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수없는 노력 끝에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인물이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한다. 이 속담의 의미가 한 때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간 원동력이었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개천을 떠나간 용은 결코 개천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제는 갑이 되어 살아가고, 개천에 남겨진 수많은 미꾸라지들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대한민국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먼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용이 개천을 벗어나는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학벌, 학력이다. 학벌이나 학력에 목매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가정의 아이가 자신이 속한 계층을 벗어나 소위 상류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고, 사시를 패스하거나 의사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부모들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아이를 다그치고, 사교육에 목을 매기도 한다. 어디 부모뿐이랴. 지방 자치단체들도 자기 지역의 학생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결코 지역의 이익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이들은 용들이 사는 세상인 서울을 위해서만, 어느새 갑이 된 자신을 위해서만 산다. 결국 개천은 예전보다 더욱 상황이 나빠지기만 하고, 그 속에서 사는 수많은 미꾸라지들은 한 마리의 용을 위해 수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개천에서 사는 미꾸라지들이 모두 용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이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꿈일 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결국 극소수를 위한 시스템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천을 용들이 사는 천상만큼 모든 이들이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예전에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캐나다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굳이 대학교에 가야할 필요성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이는 결국 저자의 말처럼 우리도 서로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을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런 삶의 태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지가 문제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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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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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 권진원의 살다보면 중에서

 

 

살다보면 말 그대로 힘든 일이 너무나 많다.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해지기도 하고, 진심으로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을 맛보기도 한다. 그 누구도 수많은 삶의 고통들에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낸 아픔,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자녀를 떠나보낸 아픔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렇기에 이런 고통을 가리켜 참척(慘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척은 너무나 처절하고 참담해 가늠조차 안 되는 슬픔을 가리킨다.

 

아들 재인과 함께 살던 해나에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여섯 살 재인이에게 일어난 돌연사. 해인은 아들 재인이 죽은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일 같이 재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폐쇄된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던 해인은 이렇게 사는 것이 결코 재인이 원하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어디인지도 모를 그곳으로 떠나기로, 아니 사라지기로 한다.

적도 근처의 어느 나라에 도착한 해인은 그곳에서 구두를 닦는 안젤로를 만나 아무런 정보나 단서도 없이 블루라군이라는 장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해나는 여행을 시작한 후 마리, 레오, 이디와 라울, 마디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고통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를 낳은 고통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지금은 아이가 주는 기쁨만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참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재인을 잃은 해나의 마음도, 작가가 말하듯이 2014년 수많은 해나가 된 사람들의 마음이.

 

하지만 이 책은 참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었다. 세상 곳곳에서 살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들과 맺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삶은 아픔과 고통이 아니라 또 다른 축복으로 변한다. 이런 변화에는 바로 작가에게 쌓인 사람 여행의 내공이 담겨있다. 세상 곳곳을 누비며 순수하게 사람들을 만난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집이란, 관계의 온기가 흐를 때에만 생명을 갖는 완벽하게 정서적인 공간이다.(p.291)

 

어디 집만 그럴까? 우리네 삶에 관계의 온기가 흐르는 그 순간, 그 공간, 그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축복이 될 것이다. 해나가 있던 그 자리에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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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반양장) - 변함없는 8가지 핵심 자질
존 R. 스토트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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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존 스토트 목사님은 급진적 제자로서 살아가야 할 8가지 핵심 자질에 대해 설명한다.

 

<제자도>는 존 스토트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긴 고별사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이 제자도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면서 책을 구입해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또한 교회에서 8번에 걸친 설교를 들으면서 진정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제자의 핵심 자질로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을 들고 있다. 언뜻 보면 제자도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질도 있지만 책을 읽고 나면 존 스토트 목사님이 8가지 자질을 꼽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160페이지 분량의 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 깊어 한 번만 읽고 이 책을 덮을 수는 없다. 혼탁한 시대에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자질 8가지를 끝없이 묵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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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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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클래식의 5번째 작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꿈결 클래식을 상징하는 일러스트, 작품 해제로 구성된 이 작품도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번역, 일러스트, 작품 해제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작품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먼저 번역부분. 다른 출판사의 작품들도 몇 종류 읽어보았지만 꿈결 클래식의 <변신>은 내가 읽어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번역이 아닌가 싶다. 부업으로 번역 일을 하기에 책을 읽을 때 번역이 어색한 책을 보면 계속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번역은 정말 자연스럽다. 작품을 읽는 내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세심하게 고려한 옮긴이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일러스트.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작품에 일러스트를 넣는 것을 선호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일러스트를 넣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일러스트가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 삽화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어떤 경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카프카의 <변신>에서도 일러스트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 번째 작품 해제. 50페이지 정도의 해제는 작품의 이해를 돕는 또 다른 조력자이다. 카프카의 삶과 작품 세계, <변신>과 이 책에 실린 그 밖의 단편들에 대한 설명으로 수수께끼 같으면서 섬뜩하고 위협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카프카스러운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 잠깐 언급해볼까 한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에도, 이번에 다시 작품을 읽었을 때에도 책을 읽는 첫 느낌은 기묘함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를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그 또한 상당히 기묘한 일일 것이다. 이런 기묘함은 바로 궁금증으로 연결된다. 도대체 그레고르는 왜 벌레로 변할 것일까? 그레고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독자는 작품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품 해제에서도 설명하지만 <변신>은 신학적 시각, 정신 분석적 시각, 사회학적 시각, 작가 전기적 시각 등 독자마다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번에 책을 읽을 때에는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변신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소설 첫 문장에서 그레고르가 육체적으로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니 실제로 변신한 이들은 그레고르가 아니라 그레고르를 둘러싼 가족들, 즉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르는 육체적인 면에서, 또한 행동적인 면에서 점차 벌레로 사는 것에 익숙해지지만 그의 본질, 즉 자신이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반면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여전히 아들이자 오빠로 대하던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은 어느 순간 그를 벌레로, 저것으로, 결국 그가 죽었을 때 새로운 꿈과 멋진 계획들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르의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일어난 이런 변화가 결국 카프카가 말하고 싶었던 변신은 아닐까?

 

다음번에 카프카의 <변신>은 또 어떻게 변신해서 나에게 다가올까? 끝없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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