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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  

 


 
 

   

  바다와 인간 

김기림의 시에 등장하는 ' 흰 나비 ' 는 바다의 무서움을 모른채 바다에 다가가는 순진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자신이 꿈꾸던 ' 청 무우밭' 인줄 알고 다가가지만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은 채 그냥 돌아오고 만다.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바다의 깊은 수심을 경험하고 그 차가운 현실 앞에서 좌절된 꿈을 안고돌아온 지친 ' 나비 ' 의 슬픈 비행은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에 맨 몸으로 뛰어든 인간의 모습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 바다 ' 는 광대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항해를 한 마젤란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유럽인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게 되면 언젠가는 지구의 끝으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세이렌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여 잡아먹는 인어(人魚),  거대한 몸집과 수많은 긴 다리로 커다란 배를 습격하여 침몰시키는 크라켄의 전설은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숙명적인 공포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바다에 대한 공포감에 지배를 당한 인간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기와 조롱 섞인 말 뒤에는 항해가들의 업적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항해에 성공한 콜럼버스를 시기했던 당대 사람들처럼 말이다.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차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펭귄 한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면 또 다른 펭귄 무리들도 역시 바다에 같이 뛰어드는 것처럼  바다의 세계를 경험한 모험가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인간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직접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황금과 보석을 가득한 대륙을 찾기 위해서는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다리를 건너가야만 하였다. 수많은 항해가들이 모험에 대한 로망을 품은 채 바다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지만, 깊은 수심에 빠지지 않은 채 살아 돌아온 이는 미지수였다. 바다 위에는 그들이 무서워하던 인어와 크라켄은 없었지만, 무시무시한 파도와 전염병은 많은 항해가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목숨을 건 이 미지수의 항해가들이 남긴 바다의 흔적들은 서양문명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고 광대한 상업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제, 바다는 무시무시한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문명 근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 푸른 길' 이었다. 

    

 

  모네의 점묘법처럼 묘사한 미슐레의 바다  

마음만 먹으면 배를 타고 수만 km나 떨어진 곳으로 갈 수 있게 된 인류는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바다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근대화로 진입할수록 유럽인들은 바다의 세계 역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고도의 지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만은 달랐다. 그는 직접 바다를 거닐면서 바다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바다의 새로운 면모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슐레는 단순히 '바다' 를 전체적인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바다에 대한 그의 관찰은 현미경을 살펴보듯이 세밀하며 집요하기까지 하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붓으로 캔버스에 하나씩하나씩 점을 찍어 하나의 형상을 그려내듯이, 미슐레가 바라보고 묘사하는 바다는 바다에서 가장 작은 생물인 해조류부터 제일 큰 고래에 대한 기록을 통해 ' 바다 ' 라는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미슐레에게 바다는 해류(海流), 물고기, 조개, 해파리, 산호, 고래 라는 개성 있는 생물의 원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자연의 집합체인 것이다.

  

 

  자연보호법의 표본을 제시하다 

이런 야만 상태를 대신할 문명 상태를 위해 여러 나라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인간이 심사숙고하여 자원을 더는 낭비하지 않도록,  그렇게 스스로를 해치지 않도록 말이다. 프랑스, 영국,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게 ' 바다의 권리 ' 신장 운동에 동참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 <바다> 쥘 미슐레, p 297 -  

미슐레는 바다 덕분에 인류의 발전과 종족 보존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가 인류에게 번영의 풍족감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바다를 천시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비판하기도 한다.  바다를 천시하는 인간의 경향은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무분별하게 잡아들이는 채집 행위로 이어졌다.  미슐레가 살았던 그 당시 근대 유럽이나 지금이나 바다의 생물들을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자원' 으로 잡아들이고 있다. 철갑상어의 알이 값비싼 요리재료로 사용하다보니 철갑상어가 멸종 위기를 처하게 되었으며 국제 단체에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름을 얻기 위해서 여전히 고래들를 포획하고 있다.      

미슐레는 그 당시, 채집꾼들 사이에서 불 붙기 시작하였던 바다 생물 포획을 '야만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바다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바다의 권리' 확립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서구적 근대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슐레의 '바다' 

하지만, 미슐레의 '바다 예찬'을 환경운동과 자연중심주의를 주창한 ' 해양계 ' 의 H.D. 소로우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주지는 못할 거 같다.  미슐레의 ' 바다의 권리 ' 는 자연보호 목적보다는 인류 문명의 긍정적인 미래를 위한 일시적인 방편으로 주장하고 있다. 

   

야만적, 맹목적 어획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더는 잡히지 않을 만큼 죽이고 있다. 어린놈까지 무익하게 살육하고 있다. 1년 뒤면 훌륭한 식량이 될 텐데, 그 한 마리의 죽음으로 수많은 놈을 죽이는 남획의 결과를 초래한다.  

  - p 297 -   

  

어떤 종도 번식의 과잉으로 위협받는 적은 없다. 종교적으로 그 순간을 존중해야 한다. 나중에 죽더라도 얼마나 좋은 순간인가!  그들을 잡아야 한다. 잡자! 하지만 우선은 살려두어야 한다.  

  - p 299 -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남성 중심주의적 입장이 살짝 비춰지기도 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대한 공을 남성들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회사 저작 시리즈인 <여성의 역사>와 <여성의 삶>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남자는 그 자신이 예술품이요, 인간적 예술이다.  (중략)   세계를 위해 땀 흘리고 봉사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힘을 하느님의 거대한 수영장에서 다시 취하는, 발명가, 창작가, 제조가인 이 남자들을, 이 지상의 엘리트를 과연 보게 될까!  모든 인류가 그 혜택을 누린다.  인류는 남자들의 어마어마한 수고로 꽃을 피운다.  인류는 남자들에게 그 모든 기쁨과 아름다움과 이성을 빚지고 있다. 

  - p 363~ 364 - 

 

자본주의적 근대화로 가고 있었던 유럽 사회에 살았던 미슐레 역시 인류의 진보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진보와 문명을 강조하는 근대적인 사회 속에서도 가려질뻔한 자연환경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근대성이라는 넓은 모래밭 속에서 미슐레는 '바다' 라는 아무도 찾지 못했던, 작고 고귀한 진주를 혼자서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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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1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의 이름이 저랑 똑같네요 ㅋ

다이조부 2010-12-1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은 근데 트위터 안해요? ㅎ

cyrus 2010-12-13 12:25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꾸랑님 성함과 비슷하네요ㅎㅎ

처음에 군 제대하고나서 관심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아직 구입하지 못했고, 관리하기가 여건상 안될꺼 같아서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게 된다면 트윗질 좀 해보려고요^^


다이조부 2010-12-1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입은 작년에 하고, 활동은 시작한지 얼마 안됬는데 저는 so so 에요~

보통 트위터에 관한 평이 극단적으로 호응과 야유로 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딱히 의미부여하게 되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해요 ㅋ

꽃도둑 2010-12-2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겨우 읽기를 마쳤는데 아주 살짝 실망했어요...
기대를 너무 했어나봐요, 사이러스님 서평 읽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서평이 종합선물세트 같아요. 저는 그 책 내용에만 집중하는 편인데(종합적으로 폭 넓게 쓰려면 자료 조사에서부터 전에 읽었던 관련 도서 뒤지기 등등 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 정말 대단해요. 암튼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오랜만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도 반가웠구요...

cyrus 2010-12-22 18: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왜 도덕인가?>가 진도가 안 나가서 애먹고 있습니다.
기한 내에게 글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도 <바다>를
읽고나서 실망했었답니다. 바다에 대한 작가의 묘사나 초반에 수록된
바다 그림은 좋았는데,, 후반부에 바다 문명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살짝 김이 빠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