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 
입에서 똥구멍까지의
길 

비좁고,
컴컴하고,
뜨겁고,
진절머리나며, 
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 

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
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
속이 타야한다 

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저 빈집의 굴뚝을 들여다보면
매캐한 슬픔이 타는 아궁이가 있을 것 같고, 아궁이 앞에 사타구니 벌리고 앉아 불을 지피는 여자가 있을 것 같고,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눈가의 주름을 핥을 것 같고, 아이들은 대여섯이나 바글바글 마루 끝에서 새처럼 울 것 같고, 여자는 아이들 입에 뜨신 밥알 들어가는 것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 같고, 

 

그러나 지금 굴뚝의 비애는
무너지지 않고 제 자지를 세우고 있다는 거 
 

쌀 안치는 소리,
끝없는 잉걸불의 열정,
환한 가난의 역사도
뱉고 토해낸 지 오래된
 

저 굴뚝은 사실 무너지기 위해
가까스로 서 있다 
삶에 그을린 병든 사내들이 
쿵, 하고 바닥에 누워
이 세상의 뒤쪽에서 술상 차리듯이
 

  

지난 며칠 내 속도 저 아궁이에서 굴뚝까지의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삶의 구들장 어딘가로 매캐한 연기가 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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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어릴 적 친구 시골집에 놀러갔다가 본 아궁이 생각이 나네요. 아궁이 냄새도 떠오르구요. 아궁이 안을 두려운 마음으로 들여다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음, 별일 없으시죠?

반딧불이 2011-03-11 12:12   좋아요 0 | URL
저는 거기 들여다보면 불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라구요. 갑자기 고구마 구워먹고 싶다는 생각이...
저 잘 지내고 있어요. 후와님 글을 자주 읽을 수 있으면 더 잘 지낼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