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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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에는 10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순이삼촌', '도령 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아버지'의 네 편이 모두 제주 4.3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 대해 쓰엿기 때문이다. 작가의 4.3 등단작인 '아버지'는 4.3 사건을 겪은 어린 소년의 개인적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을 아이들의 머리 역할을 하던 소년이 아버지가 산으로 올라간 후, 한없이 스스로 움츠러들어가는 심리와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4.3 사건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순이삼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인 1979년은 가해자였던 육지의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고 그 일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진 상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은 입밖에 내어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살아있는 권력들이 무서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 사건은 공식 역사에서 오랫동안 '공산폭동'으로 왜곡되었다.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고 긴 세월을 이어오던 섬 공동체를 일거에 파괴시킨 4.3사건의 진실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은폐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건 이후 제주도는 '붉은 섬'으로 낙인찍혀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4.3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떼죽음과 행방불명, 되새기고 싶지 않은 핍박과 소외, 그로부터 입게 된 크나큰 심리적 상처였다."(김영범'기억투쟁으로서의 4.3문화운동 서설).(임규찬, 해설 337면)


  아, 떼죽음 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 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 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순이삼촌, 85면)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 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순이삼촌,86면)


  현기영의 4.3 사건 관련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내게는 단순히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고, 어떤 기록물보다 더 설득력을 발휘하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4.3 사건의 피해자들은 무고하게 죽은 3 만여명의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의 기억 속에 지옥의 모습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이 피해자들 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역시 힘없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었다는 것에 더 분노한다. 특히 부녀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악행은 그들이 진정 짐승으로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짐승도 제 울타리에 들어온 동족들에게는 이런 행동을 일삼지 않는거 아니었나?

  표제작인 '순이삼촌'의 주인공인 순이삼촌은 산으로 피신한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 할머니에게 맡겨 놓은 오이리를 찾아 잠시 산에서 내려온 날 그 사단(소개작전)이 난 것이다. 그날 밤 소개(제주방언은 소까이,疏開)작전이 전개되면서 반동분자로 분류가 되었고 난리통에 오누이를 잃었으며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총살하기 전 먼저 기절하는 바람에 죽은 사람들 밑에 깔려있다 간신히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이후의 삶은 산 것이 아니었고 유복자 딸 때문에 산 세월이었으며 결벽증,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는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이였다. 


  그들은 또 여맹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女盟)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순이 삼촌도 그런 식으로 당했다.

지서에 붙들어다놓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닦달 끝에 옷을 벗겼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간밤에 남편이 왔다 갔는지 알아 본다는 핑계였는데, 남편이 왔다 갔으면 분명 그 짓을 했을 것이고, 아직 거기엔 분명 그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날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순이 삼촌이 남편의 행방을 안 댄다고 빼앗긴 도리깨로 머리가 깨어지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순이삼촌, 79면)


  도피자 가족들은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취조를 받고 닷새만에 풀려나왔는데 순이 삼촌도 그중에 끼여 있었다. 그 닷새 동안 할머니 심부름으로 길수 형과 내가 번갈아가며 차좁쌀 주멱밥을 매일 한 덩어리씩 차입해주었다. 마지막 날엔 내가 주먹밥을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풀려 나오는 순이 삼촌을 만났는데 그 몰골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비녀가 빠져나가 쪽이 풀리고 진흙으로 뒤발한 검정 몸빼에다 발은 맨발이었는데, 길가 돌담을 짚고 간신히 발짝을 떼며 허위허위 걸어오고 있었다.(순이삼촌,89면)


  소까이날에 피해 입은 것은 대부분 아녀자나 노인들이었는데 중호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정네는 미리 피하고 없었다. 단지 젊다는 이유 때문에 폭도로 몰려 공연히 죽기 쉬운 그들인지라 벌써 한 두달 전에 산과 들로 도망가 굴속에서 피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호 아버지도 소까이 보름 전 어느 날 마루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마당가의 수리대숲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면서 저편 고샅길로 올라오는 토벌군들 한떼가 보이자 기겁해 일어나 뒷담 넘어 도망쳤던 것이다.(해룡 이야기, 151면)


 

   순이 삼촌뿐만 아니라  '도령마루의 까마귀'에서 귀리집, '해룡 이야기'에 등장하는 중호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서의 10살짜리 소년과 같은 사람들이 지금 제주도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무섭던 소까이(疏開). 온 섬을 뺑 돌아가며 중산간 부락이란 부락은 죄다 불태워 열흘이 넘도록 섬의 밤하늘을 훤히 밝혀놓던 소까이. 통틀어 이백도 안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삼만이 죽었다. 대부분 육지서 들어온 토벌군들의 혈기는 그렇게 철철 넘쳐 흘렀다. 특히 서북군은 섬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힐 만큼 혈기방장하였고 군화 뒤축으로 짓뭉개어 이 섬을 지도상에서 아주 없애버릴 만큼 냉혹했다.(해룡 이야기, 149면)


'순이삼촌'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제주 4.3사건은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제주사람들의 억눌린 울음으로만 구전되던 4.3사건을 기록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소설이 바로 <순이삼촌>이고,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공식화된 문헌으로서도 최초였다고 한다. 역사적 진실 복원의 첫 시발점이 된 <순이삼촌>은 실제 역사가 하지 못할 대체 역사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인 제주 '북촌 너븐숭이'는 4.3 유적지 가운데 모슬포 대정의 '백조일손지묘'와 함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가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음에도 작가가 굳이 북촌을 선택한 것은 한날 한시에 양민 사백여명이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집단 학살의 상징성 때문이다.(임규찬, 해설 340)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사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 뒤를 따랐다. 아, 한날 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가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순이삼촌,60면)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제주도에 가서 제대로 즐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

차를 타고 제주도 중산간을 가면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면서 저기 능선 어딘가에 있던 마을이 다 불타 없어지지 않았을까 동굴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죽음으로 남았을가,  대나무 숲이 있는 호젓한 마을을 보면 지금은 이리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 아래 어딘가에 총 맞아 죽은 시신이 묻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할 것이고, 오름에 오르면서는 읍내에 홀로 떨어진 아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 도령마루를 오르던 그 이름도 생소한 귀리집(귀리댁이 아닌)을 생각할 것이고, '노형, 서호, 대정, 북촌, 대정 모슬포, 일주도로' 라는 마을 이름이나 도로표지판을 보면 트라우마처럼 소설의 내용들이 오래오래 자동재생될 거 같아 몹시 힘들지도 모르겠단 그런 생각.

그래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한동안 다시 책을 펼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기사를 읽거나 지식 검색으로 제주 4.3 사건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그 동안 검색으로 알아왔던 지식으로 내가 제주 4.3 사건을 제대로 알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들린듯한 필력으로 제주 4.3사건의 작품을 줄줄이 써낸 현기영 작가에게 정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1970년대 말 필화사건으로 거의 일년 반 동안 펜대를 꺾은 채 술로 허송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나서 어서 일어나라고 무섭게 야단쳤던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바로 '순이삼촌', 그제야 작가의 분신으로서 그녀가 항상 내면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임규찬,해설 3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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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3-02-0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제주도 여행에서 많은 일정을 4.3사건 관련된 곳으로 다녀왔었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속에 35년을 관통한 아픔이..라는 문장이지 싶은데. 잊혀지지 않네요~!

은하수 2023-02-09 15:53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그러셨군요 저도 벌써 저만의 4.3추모 여행이랄까 계획을 하고 있어요
이 책은 읽고 제주에 간다면 그렇게 될거 같아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리커버)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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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지하철도)라는 제목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처음 이 책에 끌린 것은 언뜻 보면 화사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놓은 표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아름다움은 액자에 끼워 집 벽을 장식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면-책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전 지식조차도 없이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 이 책의 표지는 그냥 흑인 노예들의 비참하고 비참하고 비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하철도'는 사실은 진짜 철도가 아니다.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 이전 남부의 도망 노예들을 북부의 자유주나 캐나다로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던 일종의 점 조직으로 이루어진 지하 단체의 이름이다. 지하 철도가 진짜 철도인 것으로 상상하고 있었다가 점 조직을 비유해서 한 말임을 알고 화가 났다는 작가가 2000년 봄 진짜 지하 철도가 땅 속을 다니는 기차라는 설정의 작품을 구상하였고, 2016년 드디어 작품으로 출간이 된 것이다.


** 주인공 '코라'가 지하철도에 올라타고 남부의 조지아 주를 넘어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를 지나고 테네시를 지나 북부의 인디애나까지의 여정은 차마 머리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참혹하고 잔인한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것이 진정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인지... 자꾸 되묻고 싶어지고 끓어 오르는 화와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중간에 그만 두고 싶었지만... 이런 악인들에게 맞서 자유를 갈망하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 '코라'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인간으로 입은 상처는 인간만이 치유할 수 있기에... 마지막에 서쪽으로 가는 짐마차를 얻어 타고 가는 장면으로 '코라'의 여정은 다시 시작되지만 그것은 희망의 여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서두!)


**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이 15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백인과 흑인의 지위가 여전히 법에서 명시하는 '평등'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늘날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흑인 노예들의 희생이  절대적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대표적인 인종차별 국가 중의 하나가 미국이라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인간 사회에서 차별이 없는 세상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책을 읽고 나서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더 막막해진다. 변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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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스토리가 연결되는 듯해서 좀 읽기가 좋아졌다. 빙빙 에둘러 돌아왔으니 술술 읽어봐야지~~

그러니까 여태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 세 도시를 날아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여행을 간다고 하더니.. 결국 여행 가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거네.

그토록 고대하던 이탈리아 여행은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샹젤리제에서 첫사랑의 그녀를 다시 만난다. ‘질베르트 스완‘. 그렇다. 스완과 오데트의 딸!

막다른 골목인줄 알았는데 또 다른 샛길이 열린 것일까...

**19세기에 샹젤리제는 파리지앵들이 즐겨찾던 산책로였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믿어 왔던 것이 "인도양의 암초와도 흡사한 자수정 바위" 사이로 스며 들어가는 듯 느껴졌다. 내 힘을 넘어서는 최상의 운동이, 나를 둘러싼 방의 공기를 내용물 없이 텅 빈 껍질마냥 벗겨 버리면서 나는 그곳을 베네치아의 공기로, 내 상상력이 베네치아라는 이름 안에 가두어 놓았던 꿈의 분위기처럼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바다의 분위기로 채워 놓았고, 그러자 나는 내 영혼이 기적적으로 육체에서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 P350

 이 느낌은 목이 심하게 아플 때 느끼는토하고 싶은 막연한 욕구와 겹쳐졌고, 그래서 난 침대로 옮겨져야 했는데, 그래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의사는 지금은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떠나는 것을 단념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적어도 앞으로 일 년 동안은 여행 계획이나 흥분의 원인이 되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 P351

그리고 슬프게도 의사는 내가 라 베르마를 들으러 극장에 가는 것도 단호히 금지했다. 베르고트가 천재라고 한 그 뛰어난 여배우가 피렌체와 베네치아, 발베크에 가지 못하는 나에게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일깨워 줘, 그곳에 가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 줄 수도 있었으련만, 부모님께서는 매일 나를 샹젤리제에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고, 게다가 내가 피곤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사람을 딸려 보냈는데, 그사람이 바로 레오니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 일을 하러 오게 된 프랑수아즈였다.  - P351

 잔디밭 저쪽 끝에는 분수가 있었고, 조각상 하나가 분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분수 수반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붉은 머리 소녀에게, 또 다른 소녀가 외투를 걸치고 라켓을 집어 들며 가로수 길에서 빠른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 질베르트 나갈게. 오늘 저녁 식사 후에 우리가 너희 집으로 가는 거 잊지 마!" 질베르트라는이름이 내 곁을 지나갔다. 그곳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해 직접 불러,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의 존재를 그만큼 더 환기하면서 지나갔다. 그 이름은 그렇게내 곁을 활동 중인 상태로, 말하자면 내곁을 따라 던져진 이름의 곡선을 따라 이름의 표적인 질베르트의 귀에 가까워지면서 힘이 더 커진 상태로 지나갔다.  - P352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가, 질베르트와 내가 다시 만나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고, 말하자면 그때까지 우리 사랑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셈이었다.

 내가 그녀를 보고 싶어서 그렇게 초조해하는 여러 이유들도 틀림없이 성숙한 인간에게는 그토록 절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훗날 쾌락을 가꾸는 일에 좀 더 능숙해지면, 내가 질베르트를 생각하듯,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이 실제에 부응하는지 어떤지 알려고 초조해하지 않고, 그 여인을 생각하는 기쁨만으로, 또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확인할 필요 없이 그 여인을사랑하는 기쁨만으로 만족하리라.  - P362

 나는 질베르트의 모습이 여자 가정교사를 따라 조각상 뒤에서 나타날 순간만을 기다렸다. 조각상은 팔에 안은 아이를 앞으로 내밀고 있는 듯했고, 태양의 축복을 받아 빛으로 넘쳐났다.

 《데바>> 애독자인 노부인은 늘 앉던 안락의자에서 정다운 손짓으로 관리인을 부르며 소리쳤다. "정말 좋은 날씨군요!" 그리고 "의자를 빌려 주는 여자"가 안락의자 값을 받으러 오자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자신이 구하고 있는 것이 마치 꽃다발이기라도 한 듯 장갑 아래 트인 부분에 10상팀짜리 표를 끼워 넣었다. 표를 준 사람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넣어서 주고 싶었던 것이다. 

**새로운 직업의 발견^^
샹젤리제의 공원에 의자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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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편의 중, 단편 중에서 제주 4.3사건과 관련 있는 작품으로는 ‘순이삼촌‘, ‘도령마루의 까마귀‘, 그리고 ‘해룡 이야기‘ 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을 보고
읽어보자 싶었던 우리 역사 관련 문학작품인데, 문학이지만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와서 처음 ‘순이삼촌‘ 읽고 나서는 한동안 다시 책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무서운 사실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이 되고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결국 잊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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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의 제목은 <스완네 집 쪽으로>이고 우리나라에선 2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다시 1권의 1부는 ‘콩브레‘, 2권은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이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어제 2권의 2부 지리멸렬하게 펼쳐졌다가 갑자기 스러진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닌 ‘스완의 사랑‘을 다 읽고 오늘은 3부‘고장의 이름-이름‘을 읽고 있다.

발베크와 피렌체라는 고장의 이름에서 연상하게 되는 여러가지 느낌들이 뒤섞이고, 다시 알지 못할 은유와 끝없는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만연체의 문장들 속을 헤매고 있으며 진도는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
같은 부분을 읽다 다시 다시 다시.,
하나의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끝나지 않는 문장 탓에 다시 한페이지 가까이 돌아가서 읽고 또 읽어야 이해가 가는거다.
어렵다!!!





3부 첫문장

잠이 오지 않는 밤,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방들 중에서 발베크의 ‘해변가 그랜드 호텔방만큼이나 콩브레의 오톨도톨하고 꽃가루를 뿌린 것처럼 먹음직스럽고 경건한 분위기가감도는 방과 닮지 않은 방도 없었는데, 리폴린을 칠한 벽에는마치 물이 파랗게 보이는 수영장의 윤기 나는 내벽처럼 하늘색 소금기 어린 맑은 공기가 스며 있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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