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는 책을 읽기만 하고 리뷰는 거의 남기지 못했다. 원래도 리뷰를 쓰기 싫어하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9월부터 서서히 조짐이 보이더니 10월엔 정말 '글쓰기 싫어병'이 또 도져서 노트북을 여는 것도 싫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리뷰는 자꾸 뒤로 밀리고 책은 이미 반납했고... 

그러다 보니 또 후회를 하는 일이 반복이 되었다. 시일이 지나고 다시 리뷰를 써보려고 하니 곧 벽에 부딪힌다. 책 없이 리뷰를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쩝!  간단하게나마 책을 읽고 난 느낌이라도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달에 총 18 권을 읽었는데 주구장창 소설만 들고 팠다. 난 원래 소설을 무지 좋아한다.

그래서 리뷰 남기기는 실패했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열심히 원 없이 읽었으니 후회는 없고, '글쓰기 싫어병' 도진거 말곤 아주 즐거운 독서 생활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18 권의 책을 모두 리뷰 남기는 건 진짜 죽기보다 싫고...  몇 권만 추려서 간단히...

아님 주인공 이름만이라도 내 손으로 남겨보자. 제발.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은 작품은 서보 머그더의 <도어>이고,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잭 런던의 <마틴 에덴 1>,<마틴 에덴 2>도 좋았다.


 이름도 생소한 작가 서보 머그더의 <도어>가 지난달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책을 읽고 나면 수긍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글을 쓰는 작가인 '나', 그리고 나와 남편을 보살피고 집안 일을 해주는 관리인이라고 할 '에메렌츠'라는 여인과의, 20 년 동안의 쌓인 시간과 사랑, 그리고 죽음까지도 모두 다루고 있다. 

가슴 속에 너무도 많은 말들이 소용돌이 치고 그 말을 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혹은 어떤 말을 먼저 해야할지 그 순서를 알 수 없을 때, 그리고 섣불리 말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정하기도 너무 어렵고, 돌이켜 생각하며 기억해내기도 괴로워서 차마 뱉어내지 못할 때, 누구에게  쏟아내야할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이 책의 '에메렌츠'도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감히 한마디 말로 정의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난과 시련의 시간들이었다. 그런 그 사람과 작가인 '나'는 처음 만남에서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결국엔 그 사람이 감추고자 하는 그녀의 집 '도어' 너머를 보는 단 한 사람이 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나'는 '에메렌츠'가 가장 '나'를 필요로 할 때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홀로 내버려두었고, 나의 빛나는 작가로서의 명성에 더할 트로피를 위하여 방송국으로 가버렸으며, '에메렌츠'가 그토록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도어' 안의 공간을 사람들의 시선 속에 방치해버렸다. 가장 사랑했던 '나'에게 배신을 당한 '에메렌츠'는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과 '나'를 버리는 결정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더 더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도 '에메렌츠'처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심정이 된 것일까? 무슨 말을 더 먼저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시작도 안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책은 그런 마력을 발휘하는 책이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처음 읽을 때 환상소설인가 의심할 정도로 유령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여느 흑인 노예를 다룬 소설들보다 더, 주변 상황이 변화할 때 마다 변화하는 그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독특한 전개에 금세 마음을 빼앗기며 몰입할 수 있었다.



잭 런던의 <마틴 에덴 1,2>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

마틴과 루스의 사랑이 진실하다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읽어 나갈수록 마틴과 루스는 절대 사랑의 결실을 맺어서도 안되고 맺어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추앙'으로 시작되었고 사랑이라 믿는 착각 속에 허우적대다 결국 붕괴하고 마는 마틴 에덴의 서사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마틴을 꼭 그렇게... 흑... 맺찢!!!



아차차... 지난달에 노벨 문학상의 여파로 욘 포세의 작품을 3 권이나 읽어 버렸다. 

제일 먼저 노벨 문학상 발표 하자마자 득달같이 아침 댓바람부터 도서관 달려가 제일 먼저 빌려와 읽었던 <아침 그리고 저녁>, 또 잽싸게 바로 대출 신청해서 받아 읽었던 <보트 하우스> - 이 책을 끝으로 올해 바로 대출이 마감됐대서 어찌나 아쉽던지...! 그리고 다시 상호 대출로 받아 <3부작>까지 굳이 굳이 다 읽어버렸다. ㅎㅎㅎ

굳이 이 3 권을 다 읽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노벨 문학상네는, 그리고 유럽은 좋아하는지 몰라도 내는 절대 아니다. 안 좋아한다. 난 이런 식의 문체 아주 싫어한다(그런데 왜 3 권씩이나 한 달에 몰아서 이러고 읽은 거죠?!!! 나 안 싫어하는 건가..ㅎㅎㅎ).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저 위에 있는 작품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난 유려한 만연체의 문장에 스토리 전개가 매끄럽고 비교적 술술 읽히면서 문장에 빨려들 듯 몰입감을 선사하는 그런 좋은 작품을 선호한다.

어쩌다 보니 3 권이나 읽었지만 그래도 이 작가가 원래 유명한 희곡 작가래서 읽어볼까 했는데 성애?를 묘사한 문장들이 많다는 풍월을 들은지라 그냥 그냥 이제 그만 읽기로 했다. 난 원래도 희곡 싫어하니까 ... 참 취향이 한결 같아.




















그리고 며칠 전에 읽었지만 반납일이 다가오므로 얼른 간단한 리뷰를 남겨봐야겠다.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을 지난 달에 처음 접했다. 단편이 더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장편인 

<펠리시아의 여정>부터 시작했다.

음... 읽으면서 생각했다. 명성에 비해서는 좀 ...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련 없이 별 다섯 개는 아니고 네 개 반 정도?

그래서 이번엔 단편집이면서 작가의 사후 출판 작품인 <마지막 이야기들> 을 읽어 보았다.

역시~~~!!! 윌리엄 트레버는 단편의 명수구나! 단박에 알겠더라~~~ 안톤 체호프, 기 드 모파상,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를 잇는 단편 소설의 거장이 맞았어!

이 작품에는 모두 10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어느 단편 하나 뒤지거나 더 넘치지도 않게 좋았지만 난 이상하게 '겨울의 목가'가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메리 벨라 그녀의 이름도 잊고 싶지가 않았다. "메리 벨라의 사랑은 느린 죽음을 맞이하거나 평범해지지 않는 영원하고 고귀한 것이기에 현실의 고통을 견뎌낼 비범한 용기를 준다(옭긴이의 해설에서 발췌)." 메리 벨라의 사랑의 상대인 '앤서니'는 메리 벨라의 고귀한 사랑의 상대로는 많이 부족하지만(사실은 불륜이잖아. 이혼도 안하고 예전 공부를 가르친 적 있는 학생이었는데, 그런 메리 벨라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에 빠지고 그러고서는 줄행랑!!!),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사랑은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수긍하기로) 그가 떠나고 메리 벨라에게 남은 사랑은 그녀의 삶에서 그녀가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트레버가 그리는 작품의 주인공들은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삶의 고통들을 담담하면서도 초연하게 이겨내고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 나만 이런 생각을 한게 아니었어. 역자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단 걸 알았다. 정말이지 추운 겨울 날, 따뜻한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 지나간 사랑의 고통을 되새기면서 가만히 장작불을 바라보며 고통을 삭이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글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모습이 연상되는 정서가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책은 앞으로도 계속 읽어볼 생각이다. 도서관 가니 그의 책이 꽤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11월의 독서는 소설에서 일단 좀 탈피해보자. 읽다 중단하고 있는 인문,교양 분야 책들이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우.. 이노무 반납일... 미쳐... 이번 달은 도서관 당분간 발을 끊어야지 했는데 오늘 괜히 나갔다 또 빌려 오고야 말았다. 반납일에 쫓겨 사놓고 시작도 못하고 있는 책들이 꽤 많다.

이레네 바예호의 <갈대 속의 영원>은 그리스와 로마 중 그리스 거의 다 읽어가고 있고 , ㅈㅈㄴ 님이 좋다 하셨던 

유디트 샬란스키의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겨우 두 단락 읽고 중단한 상태다. <여성, 인종, 계급>도 90 여 쪽 정도... D.H.로렌스의 <유럽사 이야기>는 150쪽이나 읽었다. 와우~~~ 그리고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1>은 정말 콜럼버스가 위대한 발견자로서가 아닌 약탈자로서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디는, 그리고 그 곳을 서인도 제도라고 생각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 원주민 몇 명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기록을 남긴 그 몇 페이지만 겨우 읽었다. 너무 궁금은 했는데 벽돌책(책 크기도 크고 글씨도 진짜 빽빽하다!)을 대하니 기가 꺾인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읽을 거다! 

일단은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부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11-0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은 역시 10월에도 알차게 읽으셨네요 😮😮😮 저도 재밌게 읽은 마틴에덴이 눈에 들어오고요! 욘포세도 벌써 세권이나...!!
페이드포 정말 좋습니다. 🥹 얜 책 크기는 작은데 겁나 빽빽.... 그래도 저자가 글을 잘써서 술술 읽힙니다요

은하수 2023-11-09 11:46   좋아요 0 | URL
마틴에덴은 아마 한 권으로 나왔다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중간쯤 지루하더라구요. 두 권으로 만들어 내놓으신 그분 정말 칭찬합니다~~^^
페이드포... 정말 좋다고 하는게 어폐가 있는 말일지 모르지만 글을 쓴 작가의 의도대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거라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읽히고 싶네요! 성매매를 하지 않는 남성들도 읽었으면 싶어요.
올바른 부부관계 정립에도 도움이 되고 아내를 존중하게 될거란 확신이 드네요^^
 

<페이드 포> 1. 첫 번째 질문

이 책은 전통적인 회고록처럼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읽히게끔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매매라는 주제는 나보다 크고, 그 속에 위치한 나의 자리보다도 크기 때문에 오로지 내 자신의 경험에만 초점을 맞춰 이 글을 쓰지는 않았다. 7년간 내가 겪은 성매매는 그것이 순전히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집합적 경험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과 보편 사이를 교차하며 기술하는 방식으로이 책을 쓰고 있다. 우리 여성들은 성구매자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비밀들을 넘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공유한 일련의 경험들이 너무도 공통적이었기에 성매매 경험의기본적인 모양새를 규정짓는 특정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끔찍이도 추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 P27

성매매 경험 당사자나 성매매 여성들에게 항상 물어오는 첫 질문이 있다. 언제나 같은 질문이다.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 사람들은 알고 싶어한다. 인간이란 단선적 사고의 편안함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에 이 물음이첫 질문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선적인 궤도로만 살지 않기 때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 P27

이 책의 목적은 악함을 선함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여기서 ‘선함‘ 이란, 알고 싶지만 그들 스스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해보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성매매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도에는 선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성매매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드러냄에는 선함이 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밝혀 나타나는 광명이다. 있는 그대로 진실의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 필수적인 솔직함이다.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분> 삶의 불가항력적인 선택에 대해서...

1950년대 초 미국의 뉴저지주 뉴어크의 유대인 동네에서 코셔 정육점(유대인의 율법에 맞는 정결한 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 태어난 마커스 매스너의 파란만장한 대학시절과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한 젊은이의 인생인데 이런 한문장으로도 설명이 된다는 것이 무색할만큼, 그리고 ‘울분‘을 토해내듯 쓰여진 문장들은 그저 술술 막힘없이 읽힌다.


필립 로스의 작품으로 가장 먼저 읽었던 소설로는 <에브리맨>,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작품이다. <에브리맨>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보여지듯 누구나 겪을 수 있을 삶의 보편적인 단면을 보고 온 듯 이어지는 문장들이 한편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는데 난 그런 점이 이상하게 더 와닿았고 그래서 그것이 시대가 지났다해도 낯설게 다가오지 않은 것은 그것이 필립 로스만의 문체 덕분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이 책 <울분>을 번역한 정영목 교수의 (<에브리맨>도 정영목 교수의 번역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1950년대 초의 청년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서 2010년대의 청년 또는 그 밖의 연령층에 속한 사람에게 낡고 낯설게 느껴진다면, 필립 로스가 현재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립 로스 식‘이라는 말로 대체한 그의 혜안에 감탄. 그래서 나 역시 이 작품을 ˝그냥 읽어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들이 각자 그 나름으로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들이 합쳐져 최악의 결과를 빚어내는 일이 어디 1950년대에만 있었겠는가. <에브리맨>에서도 그랬지만, 이렇게 인간의 선악을 넘어서버리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 검당할 수 없어 갖다 붙인 모든 인공물을 벗겨낸 자연의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깜깜한 밤에 번갯불에 드러나는 풍경을 보는 듯한 그 서늘한 순간이면, 왠지 그전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로스의 부릅뜬 눈도 함께 보이는 듯하다.˝


책을 읽고나면 드는 일말의 감동으로, 한바탕 잔뜩 로스에게 휘둘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듯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읽고나면 분명 로스에게 빠지게 된다.^^
그러니 그냥 읽어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 메두사의 시선 3
엘리자베스 쇼버 지음, 강경아 옮김, 정희진 기획 / 나무연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우리의 혈맹 또는 우방으로 불렸던 주한 미군을 둘러싼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담론을 풀어내고 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의 기지촌, 이태원, 홍대라는 공간의 역사적 배경부터 시작하여, 민족주의,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가부장제 등이 교차하면서 변화해온 각각의 양상들을 우리가 아닌 외국인의 시선으로 분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한 미군만이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 그리고 그들과 경쟁하는 한국 이성애자 남성들, 퀴어 및 트랜스젠더, 홍대 펑크족뿐만 아니라 필리핀, 러시아 출신 기지촌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까지 골고루 담아내려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이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성토의 대상이 되고 희생양이 되었으면서 매번 사건이 있을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읽어나갈 때,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의 자리를 메우고 빈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한국이라는 타지에 들어와 미군과 만나고 성 노동을 하면서 이른바 '주시 걸'이라는 이름으로 불합리한 조항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필리핀 - 러시아 여성들이 합법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사실을 읽어 나갈 때에도 드는 생각은 우리 여성들은 민족으로부터도 국가로부터도 그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것인지였다.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을 그 자리로 내몬 불가피한 상황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 당하고 제도권의 폭력을 견디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편협한 민족주의, 군사주의, 가부장 주의에 저항하고 그들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틴 에덴은 호기심에 끌려 평생을 살아왔다. 알고 싶었다. 그를 세상 곳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 한 것도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을, 그리고 배를 타고 영원히 떠돈다 한들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임을 스펜서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그는 그저 사물의 표면을 스쳐 지나면서 동떨어진 현상을 관찰하였고, 사실의 단편들을 축적하고, 피상적이고 하찮게 일반화해왔다. 
변덕과 우연뿐인 세상에서 모든 것들은 일관성도 질서도 없이 서로 무관해 보였다. 그는 날아다니는 새를 봐 왔고 그 비행 방식을 추론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새들이 유기적 비행기구로 발전하게된 과정을 설명해 보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못했다. 새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다. 새들은 언제나 있었고, 그냥 생겨난 것이었으니까. - P150

"말도 안 돼, 너도 알잖아." 올니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마틴은 교양이 아니라 직업을 원해요. 그의 경우에 그 직업을 위해 교양이 필요할 뿐이죠. 그가 화학자가 되려 한다면 교양은 필요 없겠죠. 마틴은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해요. 하지만, 당신이 틀렸다는 게 드러날까 봐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마틴은 왜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할까요?" 그는 계속했다. 
"빈둥댈 만큼 재산이 없기 때문이죠. 당신은 왜 당신 머리를 색슨어와 일반교양으로 채울까요? 당신은 먹고살 길을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당신 아버지가 알아서 마련해 주시겠죠. 당신한테 옷과 다른 모든 걸 사 주시잖아요. 우리가 받은 교육, 당신과 나와 아서와 노먼이 받은 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죠? 우리는 일반교양에 푹 절어 있지만, 오늘 아버지들이 파산하신다면 내일 우리는 전락해서 교원 자격시험을 봐야 하겠죠. 그렇게 되면 루스,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일자리는, 시골 학교 선생이나 여자 기숙학교의 음악 선생일 거예요." - P158

그날이 왔다. 골목에 나갔으나 치즈 페이스는 없었다. 그는 아예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가 치즈 페이스를 이겼다고 축하했다. 하지만 마틴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치즈 페이스를 이기지 않았으며 치즈 페이스도 그를 이기지 않았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바로 그날, 치즈 페이스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음을, 그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