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마르티알리스가 오늘 오후에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집에 온다면 그가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엘리베이터, 초인종, 라우터, 유리창, 냉장고, 전구, 전자레인지, 사진, 플러그, 환풍기, 보일러, 변기, 지퍼, 포크, 병따개를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압력솥의 쉭쉭거리는 소리에 놀라고 세탁기 소리에 몸을 움츠릴 것이다. 라디오 소리에 놀라 숨을 곳을 찾을지도 모른다. 자명종소리에 나처럼 짜증을 낼 것이다. - P400

테이프, 스프레이, 코르크 따개, 걸레, 헤어드라이어, 레몬 압착기, 레코드판, 면도기, 스테이플러, 립스틱, 선글라스, 유축기, 탐폰 등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책을 보면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는 책을 알아볼 것이다. 그는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길 것이며 집게손가락으로 글을 따라가며 안심할 것이다. 우리 세계에서 그들의 물건을 보게 될 것이다. - P401

그렇기에 나는 책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예언 앞에서도 이렇게말한다. 책을 존중하라. 우리에겐 고대 유물이 그리 많지 않다. 아직남아 있는 것들(바퀴, 의자, 숟가락, 가위, 잔, 망치, 책 등)은 제거하기 어려운 생존자로 판명됐다. 그 사물들이 지닌 디자인과 세련된 단순성은더 이상의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사물들은 재료나 구성 요소에있어 더 나은 것으로 대체되지 않은 채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실용주의적 영역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이 독서의 필수적 지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부터의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P401

더욱이 수 세기 동안 우리와 함께 장수한 사물들은 새로운 것을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고대의 책은 개인용 컴퓨터의 모델이 되었다. - P4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 채석장 시리즈
렘 콜하스.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임경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크스페이스 | 미래도시
정크스페이스의 의미를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정크스페이스에 대한 정의와 해석은 건축과 문화 사이에서, 도시라는 실제 물리적 공간과 이데올로기와 가치라는 추상적 공간 사이에서 난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98쪽, 해제 중에서)
해제까지 해도 백 여 페이지 남짓의 짧은 글이지만 렘 콜하스의 <정크스페이스>도 프레드릭 제임슨의 <미래도시>도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렇지만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나름의 기쁨은 있다. 다시 한번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이번 책 읽기는 성공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문학과 지성사의 인문시리즈가 ‘채석장‘이란 이름을 달고 발간이 되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 절묘하다. 마치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는 마음으로...
그렇게 읽었다. 다시 한 번 더 읽는다면 쓸만한 돌을 만들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보라 -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뒤바뀐 사랑의 운명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보라>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이 단편집을 읽고 나니 삶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참으로 알수가 없단게 ...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 표제작 ‘눈보라‘도 좋았고, 푸시킨이 자신의 죽음을 마치 예언하듯 보여주는 작품 ‘한발의 총성‘이 가슴에 새겨질 듯하다. 나머지 세 단편인 ‘장의사‘, 역참지기 아버지와 사랑을 따라 떠나간 딸의 애달픈 인생사에 가슴이 아픈 ‘역참지기‘, 그리고 코믹하고 귀여운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귀족 아가씨 농노아가씨‘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로써 녹색광선의 책은 9권 읽고 6권을 소장하게 되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과거의 기억들은 정말 모두가 사실일까? 나의 기억 속에서 각색되었을지도 모를, 그래도 기억해내고 만나면서 치유에 이르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 일기>
1985년 ~ 1992년까지. 일기형식이지만 내면일기라는 형식을 파괴한 글들. 전철 안에서, 거리에서, 혹은 이동하는 중에 보이는 군중 속의 한 개인들의 행위와 여과없이 들리는 대화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다. 이런 순간들의 기록인데
왜 소설인건지는 알 수가 없다. 아니 에르노가 아니었으면 한 두페이지 읽다 끝났을 것.
다만, 이 시기가 내 청춘의 한 시절을 관통하는 시기여서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해 주었고,
글 속의 개인들의 행위를 읽으며 새삼 기억나는 나만의 순간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4-01-0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 않았더라면 읽다 중단했을... 제게도 아쉬운 책....ㅋㅋㅋㅋㅋ😆

은하수 2024-01-05 20:52   좋아요 1 | URL
저두요^^
짧은데 그나마 아니 에르노라서.. ? ㅎㅎ
전 소설이래서 낚였잖아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