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구판절판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26쪽

어느새 나는 그렇게 돼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어느새' 그렇게 돼 있었다. 이런 '어느새'에는 어떤 값싼 자기도취가 있고 그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달콤한 유혹이 있다.-27쪽

'어느새' 나는 이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모텔에서 그날의 일정을 가늠하며 눈을 뜨는, 노트북과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걱정하는, 서울의 은행에서 빠져나갈 자동이체 공과금들을 생각하는 그런사람.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것일까?-28쪽

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물건, 약정, 계약, 자동이체, 그리고 이런저런 의무사항들을 털어내면서 나는 이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이지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읽지 않는 책들, 보지 않은 DVD들, 듣지 않는 CD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습관적으로 사들인 책들이 왜 자기를 읽어주지 않느냐고 일제히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후회의 순간을 미래로 이월해버린다. 나중에는 보겠지. 언젠가 들을 날이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런 날은 여간해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물건들이 계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없는 일 아니냐.-33쪽

그들에게 있어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곡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그 '힘'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33-34쪽

설거지를 마치면 이내 졸음이 쏟아지고 우리는 잠자리에 든다.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은 평온한 하루. 걱정은 종일토록 잠복해 있다가 밤을 틈타 우리를 내습한다. 서울에 남겨놓고 온 것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꿈을 빌려 나의 밤을 괴롭힌다.-76쪽

뜨거운 태양,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네무진 건물들,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두가 다른 모두를 아는 도시에서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 그리고 바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지중해는 그들에게 희망과 열정 대신 막막한 고립감을 부여한다. 한낮의 어떤 순간, 리파리에는 갑자기 소개 명령이라도 내린 듯한 뜨거운 고요와 정적이 찾아온다.-95쪽

나는 미美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거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미는 끝내 정의되지 않은 채 천상의 도시 깊은 곳에서 풍문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183-184쪽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282쪽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291쪽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말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Memory Lost.-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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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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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야만 했다."라는 말 아래 외부의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예 잊어버리고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건 자긍심을 갖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 한 인간으로 기쁘게 사는 것과 가장 멀어지는 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져 버립니다.-51-52쪽

능력은 천부적 자질이나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옵니다.-52쪽

어떤 분야에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가 하는 점입니다. 넘쳐 나는 재능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때문에 계속합니다. 들라크루아라는 화가는 천재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놓지 않는 생각, 즉 지금까지 말해진 것이 아직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59쪽

진짜 잠재력은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116쪽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두가 괴로움에 다 같이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만 된다면" 구원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우리 영혼을 통해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책은 누군가 미래를 위해, 다가올 세대를 위해, 한마디 남겨 놓은 흔적들입니다.-123쪽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에겐 뭔가 남과 진정으로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린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건 상대방이 달라도 그냥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달라 보여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142쪽

우린 죽음이란 운명을 의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명히 새로운 명예를 얻었어요. 그것은 동료 인간에게 보여 준 관용에서 나온 겁니다. 동료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동정심에서 나온 거에요.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운명과 더불어 인간의 성장 가능성, 거기서 비롯되는 위대함을 보여줬어요. 우린 죽기 때문에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죽음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이나 용기도 우리가 죽기 때문에 나옵니다. 죽을 수밖에 없아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일이에요.-176-177쪽

<인간의 대지>에서 '나'는 길을 잃기 전날 밤새도록 지도를 탐독합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면 지도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종교 시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든 기호들 위로 몸을 숙여 들여다봅니다. 제겐 아마 책 읽기도 비슷할 겁니다. 책이 당장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할 수 있어도 그래도 인간의 흔적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192쪽

조르바의 세계에선 푸짐한 밥상, 오렌지 꽃향기, 따뜻한 화덕 같은 사소한 육신의 즐거움이 엄청난 정신의 즐거움으로 변합니다. 조르바는 여자, 먹을 것, 마시는 것,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서 결코 관심을 끊은 적이 없습니다. 책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216쪽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쿠빌라이 칸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칸은 폴로에게 유토피아, 태양의 땅 같은 약속의 땅에 대해 묻습니다. 폴로는 그러한 항구들로 가는 길을 지도 위에 그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칸은 최후의 상륙지가 야후의 나라, 바빌로니아 같은 지옥의 도시들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여행이란 부질없는 게 아니냐고 말합니다. -232쪽

여기서 폴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32-233쪽

우리 앞길에도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입니다. 쉬운 길은 다수가 택하는 것을 다수가 택한다는 이유만으로 택해 그 사회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나중엔 그것이 지옥 같은 것이란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선택하기 훨씬 쉽습니다. 어려운 길은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마치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들이 살도록 자리를 넓혀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주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걸 지키기 위해선 나도 지옥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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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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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아픔이 불안함에서 온다면, 어른의 아픔은 흔들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13쪽

이 책을 쓰면서 어른이란 인간발달의 특정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흔들림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엉망으로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요.-15쪽

그래서 꿈을 말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어. 그 꿈이라는 놈이 실은 치열한 생활을 방해하는 훼방꾼은 아닌지, 고단한 자네의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핑게는 아닌지.-22쪽

잔인하지만 이 말부터 먼저 해둬야겠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하는 건 맞지만, 조직이란 본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는 아니야. 본질적으로 개인과 조직은 충돌하게 되어 있지.-23쪽

여기서 열쇳말은 자네가 '성장'한다는 것이야. 인생이 펼쳐지는 터전의 절반인 직장에서 자네가 차츰 역량 있고 성숙한 존재로 자라난다는 사실, 이게 핵심이야. 진실로 자네를 행복하게 해주고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돈이나 승진, 인정이 아니라 자네의 성장이란 말이야. 성장은 중요한 단어야, 존재와 동의어일 만큼.-25쪽

회사는 견디기 힘들 때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의 비전이 사라질 때 그만두는 거야.-25쪽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기회란 '준비'의 동의어입니다. 준비 없는 상태로 맞은 기회는 허망하게 날려버리기 십상이고, 찾아왔는지도 모른 채 그냥 흘려보내기 마련입니다. 차근차근 준비를 마쳤을 때에만 작은 기회를 잡아 크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32쪽

지금까지 쌓아온 내 인생의 어쭙잖은 기득권들을 전부 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결의가 따라준다면, 우리 인생은 리셋이 가능하다.-41쪽

우리는 인생을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다. 손에 쥔 것들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모두 잃는다'는 두려움에 리셋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다.-45쪽

포기는 두려움을 없애주지만, 희망도 함께 지운다.-45쪽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59쪽

자기 삶의 짐을 가장 정확한 무게로 받아내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59쪽

위기가 깊을수록 반전은 짜릿하다.-104쪽

인생이 바둑보다 멋진 것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고 생각한 실패 이후에 이어지는 삶의 궤적이 그 당시엔 나름 성공으로 보였던 궤적보다 전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105-106쪽

사람들은 항상 '이번 실패로 내 꿈이 무산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꿈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가는 건 항상 당신 자신이다. 왜냐면 실패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실패로 인해 무엇을 배웠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패에 한 번의 아픔이 있고, 한 번의 아픔으로부터 한 번의 성장이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이 우리를 꿈에 더 가까이 데려다준다.-106쪽

"사랑하지 않을 것이면 떠나고, 떠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라."-121쪽

'100-1=0', 100에서 1을 빼면 99가 아니라 0이라는 것이다. 큰일을 망치는 것은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 아주 작은 흠집이다. 같은 논리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것은 필생의 '한 방'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의 총합이다.-140쪽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를 향한 그 모순된 애증의 감정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202쪽

우리는 서로에게 달 같은 존재다. 계속 같은 반구만 보여준다. 가장 밝은 면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어두운 뒷면은 볼 수가 없다. 내 어둠을 아는 것은 나뿐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면서 자세히 볼 수 있는 '어두운 이면'이란 자기 자신의 것뿐이기에. '남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필연적으로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게 되고 자기 인생은 가까이서 보게 되니, 남의 인생은 즐거워 보이고 나의 인생은 슬퍼 보이는 것이다.-235쪽

남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거기에 맞추려고 혼자 그렇게 안달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그 '남의 눈'에서 조금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248쪽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자기만의 확고한 주관과 철학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249쪽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해서 좀더 너그러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278쪽

어른이 된다는 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자.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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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몽구, 사람을 향하다 - 소통과 공감으로 읽는 우리 시대
미디어몽구(김정환) 지음, 이건범 인터뷰 / 상상너머 / 2012년 8월
품절


모든 것을 알고 가야 한다, 혹은 기사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야전 교범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에 미디어몽구는 자기 나름의 원칙을 매우 동물적으로 발견해낸 것 같다. 그는 사건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한다. 미디어몽구의 기사는 보는 이가 마치 현장에 가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며 탐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기사가 주는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선의 일치'에서 온다. 그리고 시선의 일치를 공감으로 바꾸어내는 힘은 그의 취재원칙에서 비롯한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부탁하고 그렇게 글을 쓴다는 그의 취재원칙은 기성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종의 민주주의 정신다. '초등학생 눈높이'야말로 미디어 몽구의 가장 커다란 취재원칙이자, 그를 하나의 대안적 미디어로 키운 힘 같다.-48쪽

현장에 있을 때 미디어몽구의 가슴은 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찍은 것만을 기사로 만들어내는 그의 취재원칙은 속보 경쟁에 시달리며 한 줄짜리 기사나 낚시성 제목을 남발하는 기성 언론의 기자들에게는 확실히 부러운 원칙일 수도 있다. 누구는 미디어몽구의 이런 취재원칙을 매우 원시적이라고 비아냥거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원시성이 미디어몽구의 기사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건강함의 원천이 아닐까?-85쪽

조작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내용을 단순하게 전달하려 하지 않고 사람들 마음을 기사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언론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이라는 말에 비춰볼 때 미디어몽구의 카메라 앵글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을 향해 찍고 현장과 사람을 이어주려 한다는 그의 말은 확실히 중립성이나 객관성이라는 말보다 더 멋있게 느껴지지만, 난해하기도 하다. 제3자적 입장에서 취재하는 태도는 넘어선 것 같다. 그의 이런 태도가 기성 언론인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126쪽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이란 말은 저와는 거리가 멀었고, 관심조차 없었고, 당해본 적도 없고, 관광지에 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항상 펼쳐지니까. 뉴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도 그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했죠.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지 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킬리만자로에 직접 가보니까 정말 기후변화가 심각했어요. 옛날엔 만년설에 덮여 있었던 산이 마치 검은 바위에 하얀 점이 찍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눈이 거의 다 녹았더라구요. 책 표지 같은 데서 봤던 킬리만자로가 아니었어요. 병에 걸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환자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킬리만자로 정산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스티커를 붙여놓고 낙서를 해놓아서 더 난리라고 하더군요.
이제껏 현실로 문제가 닥쳐와야 그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대비했잖아요. 4대강도 그렇고, 강정도 그렇고, 우리 땅이라고 마음대로 파고 부수는 건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285-286쪽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은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 하고, 밑바닥을 뒹구는 삶에도 희망의 빛은 있어야 하며, 약속한 것은 누가 되었던 지켜야 하고, 사람과 생명의 소중함은 지위 고하가 없으며, 서로에게 내미는 작은 손길은 언제나 따뜻하지 않을까? 그의 이런 믿음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을 삶의 준칙으로 여기며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우리는 상식이 마비된 사회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며 무덤덤하게 살고 있다. 몽구의 평범함은 이 맹목의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는 거대담론을 내세우지 않으며 정교한 논리로 승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상식이 짓밟히는 인생들의 애잔한 눈물과 이를 마뜩찮게 짓누르는 힘을 고발한다. 그제서야 우리는 불쑥불쑥 상식이라는 눈으로 돌아가 분노하고 곧 부끄러워한다.-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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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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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경향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자주 비난하는 그의 '가벼움'과 '막 말하는 버릇'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취임 초 평검사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어느 싸가지 없는 검사의 질문에 "이젠 막 가자는 거지요?"하면서 응수하던 그의 말에 난 정말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그렸다. 책에서만 가르치고 현실에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도덕률을 기껏 말버릇에서만 챙기려 드는 권위주의의 탈을 그는 애초부터 벗어던진 이다. 그러나 그의 가벼움에는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모든 의원이 절절매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을 맹렬히 추궁하며 흘리던 눈물이나,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던 결기가 묻어 있음을 나는 안다.-55쪽

소수자의 인권 상황이야말로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재는 척도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복장도착자 등의 성 소수자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성적 유전자와 성적 정체성을 지난 사람들일 뿐이다. 그 다름을 단죄하려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차별을 승인해야 한다. 재산의 차이나 학벌과 지능, 출신 지역, 종교, 외모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에 맞설 근거를 잃는 셈이다.-147쪽

사람의 속내를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자발적 사상 전향이야말로 한 인간의 일생에서 보자면 슬픈 일인 것 같다. 이는 생각의 점진적 변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어느 일순간 '팩 돌아서는' 행위다. 점진적 변화는 추억과 흔적이 살아 있어 언제나 생각의 혼란을 일으키는 건강함으로 남는다. 과거와 현재가 꼭 합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전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눈높이와 시야의 변화고, 성숙이나 성장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151쪽

그러나 전향은 다르다. 거기엔 비교적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직전까지 사상적 적이었던 자들이 박수를 칠 만한 충분한 명분이 붙는다. 즉, 과거를 부정하되 그 과거가 상황적 이유로 불가피했음을 강조하는 합리화 조치가 따라나선다. 이런 행위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과거의 삶에서 누렸던 행복의 힘을 빼앗고, 오로지 고통의 기억만을 떠올리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불행이다. 그들에겐 생의 어느 시기가 비어버리는 것이다.-151쪽

예나 지금이나 소설의 위대함은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는 것이리라. 특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압권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나느 그제서야 '사람은 서로 다르다'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운동을 떠난 이들을 미워하던 마음, 꼭지가 우리를 '기만에 살찌는 무리'로 규정하던 분노, 되도록 꼭지와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배제의 정서 등이 모두 '너도 나와 같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212쪽

한국의 '반공 자유주의'는 사실상 자주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오히려 국가의 이름으로 공적 폭력에 대한 공포와 편 가르기식 집단주의를 만연시켰다.
그 결과로 '무책임한 개인'이 탄생하고 규칙이 마비되며, 사회 질서가 개인에게 자유와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주체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의 별임을 아는 자율적인 개인이야말로 자존감에 기초한 평등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자기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모든 상처 받은 인간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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