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구판절판


난 한국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 경향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조차 자주 비난하는 그의 '가벼움'과 '막 말하는 버릇'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취임 초 평검사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어느 싸가지 없는 검사의 질문에 "이젠 막 가자는 거지요?"하면서 응수하던 그의 말에 난 정말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그렸다. 책에서만 가르치고 현실에서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도덕률을 기껏 말버릇에서만 챙기려 드는 권위주의의 탈을 그는 애초부터 벗어던진 이다. 그러나 그의 가벼움에는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서 모든 의원이 절절매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을 맹렬히 추궁하며 흘리던 눈물이나,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던 결기가 묻어 있음을 나는 안다.-55쪽

소수자의 인권 상황이야말로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재는 척도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복장도착자 등의 성 소수자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성적 유전자와 성적 정체성을 지난 사람들일 뿐이다. 그 다름을 단죄하려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차별을 승인해야 한다. 재산의 차이나 학벌과 지능, 출신 지역, 종교, 외모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에 맞설 근거를 잃는 셈이다.-147쪽

사람의 속내를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자발적 사상 전향이야말로 한 인간의 일생에서 보자면 슬픈 일인 것 같다. 이는 생각의 점진적 변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어느 일순간 '팩 돌아서는' 행위다. 점진적 변화는 추억과 흔적이 살아 있어 언제나 생각의 혼란을 일으키는 건강함으로 남는다. 과거와 현재가 꼭 합리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전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눈높이와 시야의 변화고, 성숙이나 성장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151쪽

그러나 전향은 다르다. 거기엔 비교적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직전까지 사상적 적이었던 자들이 박수를 칠 만한 충분한 명분이 붙는다. 즉, 과거를 부정하되 그 과거가 상황적 이유로 불가피했음을 강조하는 합리화 조치가 따라나선다. 이런 행위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과거의 삶에서 누렸던 행복의 힘을 빼앗고, 오로지 고통의 기억만을 떠올리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불행이다. 그들에겐 생의 어느 시기가 비어버리는 것이다.-151쪽

예나 지금이나 소설의 위대함은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는 것이리라. 특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압권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나느 그제서야 '사람은 서로 다르다'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운동을 떠난 이들을 미워하던 마음, 꼭지가 우리를 '기만에 살찌는 무리'로 규정하던 분노, 되도록 꼭지와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배제의 정서 등이 모두 '너도 나와 같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212쪽

한국의 '반공 자유주의'는 사실상 자주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오히려 국가의 이름으로 공적 폭력에 대한 공포와 편 가르기식 집단주의를 만연시켰다.
그 결과로 '무책임한 개인'이 탄생하고 규칙이 마비되며, 사회 질서가 개인에게 자유와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주체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자기 자신이 자기 운명의 별임을 아는 자율적인 개인이야말로 자존감에 기초한 평등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자기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모든 상처 받은 인간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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