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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그리 구매욕이 당기지 않는 파격적인 제목과 투박한 표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가 매우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강명이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읽은 책이다. 나보다 앞서 이 책을 읽고는 '이번 책은 꽤 괜찮다'고 평했던 지인의 추천도 한 몫을 했다. 책을 집자 묵직함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그 묵직함을 이겨내며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한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서사와 묘사가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장을 읽은 후에도 한동안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소설의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처럼 독특한 조합의 제목을 짓지는 않고, 1부, 2부, 3부로만 표기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남한과 북한의 정권이 지속적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실상은 통일이 아닌 전쟁을 바라며,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통일을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그리는 것이라고 추측을 했었지만, 책의 프롤로그를 읽는 중에 그 추측은 빚나가고 말았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남북의 통일을 가정하며 김씨 왕조가 붕괴된 이후의 북한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통일과도정부, 유엔 평화유지군, 엄청난 양의 마약을 수출하는 나라,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 나라, 아귀와 수라들의 축생도 등으로 묘사한다. 북한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일제강점기의 종지부를 찍은 후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다.
"정말 어이가 없었던 것은, 집단농장 간부는 이름을 바꾼 국가 소유의 농장 간부가 됐고, 국가안전보위부의 지도원들 역시 이름을 바꾼 새 공안조직의 직원으로 계속 일한다는 현실이었다. '김씨 왕조에 조금이라도 충성했던 사람을 다 잘라낸다면 새 정부에서 일할 사람이 누구겠느냐, 그 포악했던 시절에 김씨 왕조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다 수용소로 끌려가 죽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였나, 집집마다 원통한 사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걸 다 들춰내면 새 출발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라고도 말했다. (210, 211쪽)
남북의 개방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한 정부의 태도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갑작스러운 통일은 모두에게 재앙"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통일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통할 수 없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남조선에 가는 게 김씨 왕조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 뗏목을 타고 넘어오거나,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들어오는 루트 같은 것은 사라졌다. 그렇게 들어온들 곧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추방될 뿐이다. 민준은 남한의 해안 경비 예산이 김씨 왕조가 건재했던 시절보다 줄기는 커녕, 오히려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뉴스 보도를 본 적도 있었다." (98쪽)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세 명이 주연을 캐스팅하여 각자가 속한 북한의 상황을 그려나간다. 자신이 속했던 신천복수대라는 특수부대가 와해된 이유를 밝히는 것밖에는 자신의 본질을 찾을 수 없는 장리철, 절친한 지인들의 가족이 실종 사망한 이유를 밝히는데 도움을 주려는 은명화, 통일로 인해 군에 재입대한 불운을 탄식하며 군생활을 무탈하고 유연하게 넘기려는 강민준. 이들이 처한 상황과 목적은 각각 상이했지만,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통하여 이들 목적은 모두 눈호랑이라고 명명된 대단위 마약운반계획으로 집중된다. 이 계획의 내용을 밝히고 저지하려는 각각의 노력이 이리저리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그 재미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잠시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개성 넘치는 인물의 등장,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글을 읽는 동안 온전히 거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는 제목과 소설의 내용 사이의 괴리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이며, 그 '소원'이 '전쟁'이라는 것의 단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소설의 내용에는 남한이나 북한측 어디에서도 전쟁을 원한다는 구체적인 의도나 사건이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민준의 말을 통해 '이렇게 통일이 될 것이라면 전쟁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만이 드러날 뿐이다. 물론 전쟁으로 모든 것을 불살라버린 후 북한을 새롭게 재건한다는 가정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 없이 통일 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십쇼.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이러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벌였어야 했다'는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합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데서 '전쟁터에서는 앞에 있는 적만 살피면 되는데, 평화유지군에 가면 사방에 숨은 적을 신경 써야 한다'고 불평합니다. 전쟁을 했더라면 섬멸전이 벌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 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무력통일을 하든, 아니면 남한 입맛에 맞는 괴뢰정부를 세우든, 지금보다 나쁘지는 않았을 거에요. 통일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부패한 관료도 없고, 마약조직도 다 소탕할 수 있었을 거에요." (332쪽)
멍하게 앉아서 책의 내용을 반추하다가 들었던 질문이 있다: 우리에게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풀리지 않은 숙제일까, 아니면 풀고 싶지 않아 그때마다 미루어 두고 있는 어려운 문제일까. 통일에 대한 이런 강박적인 질문에 작가는 미셸 롱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꼭 통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레이시아는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를 억지로 분리시켰죠. 1965년에 싱가포르 주를 말리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냈어요. 싱가포르는 원치 않은 독립이었고, 분리 당시에도 심지어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그렇게 갈라선 결과는 말레이시아에도 싱가포르에도 좋았어요. 한 나라로 있었다면 인구의 대부분인 말레이계가 싱가포르 화교 자본에 종속된 채 중산층이 되지 못한채 살았어야 했을 거에요. 말레이계와 화교 사이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을 거거요. 두 나라로 떨어뜨려놓고 나니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대로 똘똘 뭉쳐서 선진국이 되었고,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 없이 자기 힘으로 선진국 문턱까지 왔어요." (333쪽)
개인적으로 남북한의 물리적 통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내적인 합일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스러웠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제안 중 '연방제통일안'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했었다. 서로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받으면서 전쟁의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같은 공존이 가능할까? 우리가 소원으로 전쟁을 바라지만 않는다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10분의 1도 읽거나 생각해보지 않은 나로써는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꾸준히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어느새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강박이 되어버린 통일이라는 소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를.
그는 미친 나라에서 태어났다. 미친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언제라도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가끔 그런 경쟁과 전투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어 보였다. 극한상황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한번 그렇게 황폐해진 내면에 어떤 덕성이 다시 깃들기란 매우 어렵다. 어린 리철에게 가치 기준을 제공하고 그를 도덕적으로 재무장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비록 그 가치와 도덕이 군대만의 질서, 군대만의 논리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리철은 규칙과 명령을 따랐고, 복종 속에서 편안해졌다. 그는 무리에 속해 있는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짖고, 뛰어 다녔다. - 79쪽
선을 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적절한 지점까지만 선을 넘는 게 어렵다. - 352쪽
민족이라든가 통일이라는 개념은 어떨까. 북한 주민을 향해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유용하지 않을까. 이웃 사람이 굶거나 부당한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때 내야 할 용기를 발휘하는 심리적 도구로써 말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 훨씬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제 옆에 있는 못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 아닌가. - 4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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