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아이우통 크레나키 지음, 박이대승.박수경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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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브라질)의 원주민 운동가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발표문 3개를 기본으로 엮은 책이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 문명의 500년 침략에 저항해온 원주민의 역사에 기반하여 ‘인류’, ‘세계’, ‘종말’의 의미를 재구성한다. 서방, 자본주의, 근대와 현대, 제국주의가 규정하는 개념 및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과 도전으로, 이러한 ‘문명적 인식’을 최근 학계에서는 “역-인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인식에서는 “문명인이 곧 세계의 종말”이다.
최근 기후 재앙, ‘신냉전’ 등의 여파 속에서 ‘세계의 종말’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 저자 역시 그러한 문제들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위치에서 인류, 세계, 종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규정된다. ⓵ 서방의 문명화된 ‘인류’ 개념은 사실상 패권으로의 동화와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의 일체화를 의미할 뿐이며 ⓶ 분리할 수 없는 대지와 인간을 대상화된 ‘자연’으로 나눠서 착취한 세계 인식은 근본에서 틀렸으며 ⓷ 이미 500년 전부터 무수한 ‘종말’과 ‘추락’이 발생했고(‘이미 무수한 세계의 문이 닫혀버렸다’)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문명인’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위협이 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곳곳의 저항은 그러한 ‘종말’을 지연하고 있다. ⓷은, 이 책의 제목이 종말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늦추기 위한” 것이 되는 첫 번째 이유다. 주체를 전환하여 바라보면, 이미 세상은 500년 전부터 계속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냉정한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다 죽자’, ‘어차피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밀림의 시민성”을 말한다. 이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것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패권주의와 자본주의(특히 상품화, 물신화)를 부정하고 다양한 민족, 종족, 공동체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더 잘 추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은 “잠재된 다른 세계를 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이 “더 잘 추락”하는 것이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인식을 특히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이 주장은 ‘극복’으로 ‘영생’을 꿈꾸는 것, 모순을 끌어안지 못하고 자기 존재 중심으로 죽음과 소멸을 거부하고 생에 집착하는 것 그 자체가 현대-서방의 세계관이라는 그의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내게는 보였다. 그는 “잠재된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은 현세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어쩌면 소멸될 수도 있는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없어질지라도 지속될 대지와 우주의 역사를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죽음과 소멸에 대해서는 초연해져야 한다는 것(이 책 제목의 두 번째 이유). 죽음과 소멸(또는 부재와 상실)에 대해, 수많은 종족, 민족의 투쟁과 저항,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살펴온 그는 ‘자본주의 문명’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통상적인 ‘말’, ‘글’, ‘책’으로 그의 사상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책이 종종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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