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을 지켜 줘
정진호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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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나오는 그림책들을 탐색하는 눈이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니라서, 이 재밌는 그림책이 나온지 1년 넘도록 모르고 있었네. 오늘 막간의 시간에 책 반납하려 도서관 잠깐 들렀다가 정진호 작가님 그림책이 눈에 띄어 대충 후다닥 빌려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완전 마음에 들었다. 이런 그래픽노블 그림책도 참 좋아한다. 130여 쪽의 분량이라 제법 읽을 것도 있으면서 부담없이 술술 넘겨 읽을 수 있어서 잠시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에 딱 좋았다.^^

이 책의 서사는 주인공의 결정적인 오해를 바탕으로 한다. 푸른화살은하의 신입 탐사요원 새로는 블랙홀에 빠져서 어딘가에 불시착한다. 우주선은 박살나고 간신히 비상장치를 켜서 현재위치를 탐색하던 중 ‘지구’가 뜬다.(그 옆에 달도) 새로는 훈련소 시절 배웠던 지식 중 두가지를 기억해냈다.
- 지구에는 생명체가 사는데, 아주 난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구에는 달이라는 위성이 있는데, 밤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난다고 한다.

사실 새로는 달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까 화면에 스쳤던 ‘지구’가 뇌리에 박힌 새로는 여기가 지구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새로가 생각하는 ‘달’은 무엇일까? 달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별, 그건 바로 지구였다. 하지만 제목은 새로의 오해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리하여 제목이 『나의 달을 지켜 줘』

망망대해보다 더한 곳에 혼자 던져진 새로는 달(사실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감격했다. 너무 아름다워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새로는 급하게 우주선을 수리한다. 이 첨단 우주선은 입자변환기로 기억물질을 만들어 재생이 가능하다. 불시착한 곳의 광물로 재생 중.... 꽤 오래 걸리는 이 작업 중 새로는 아름다운 달(사실은 지구)을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랜다.

드디어 수리 완료! 새로는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달을 눈에 담으려는데,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난 게 아닌가! 새로의 오해는 이런 확신을 부른다.
- 지구인이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고 달로 건너갔구나. 이대로라면 달마저 파괴하겠다. 안돼~~!!
그리하여 새로의 우주선은 달로 향한다. 실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다.

‘나의 달을 지킬 거야.’ 라는 새로의 각오는 이루어졌을까? 새로는 자기의 은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구는 평화를 되찾고 유지할 수 있을까? 초반부터 재미 포인트가 많지만 결말에도 꽉꽉 들어차 있다. 그리고 이중으로 놓여진 또하나의 서사. 달토끼들과 또다른 어떤 존재의 사랑. 그 이야기는 결말을 어떻게 인도하게 될까?

외계인을 통해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우화 같은 느낌의 그래픽노블이었다. 『나의 달을 지켜 줘』라는 제목의 메시지는 사실은 ‘너네 지구를 잘 좀 지켜!’가 아니겠나. 달, 아니 지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외계인의 감성이 우리를 찡하게 만든다. ‘난폭하다’고 우주적으로 소문난 지구인들, 이제 어떡할 겁니까? 계속 그렇게 살 거예요? 네?

라가치상을 두 번이나 받으셨다는 정진호 작가님은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창조하는 능력도 대단하시다. 외계인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일이야? 마지막의 반전. 얘는 키로만 따져도 나보다 열 배는 크다. 하지만 뭐 크기야 상대적인 것이고 숫자일 뿐이지. 사랑스러움에는 조건이 없다. 귀여움에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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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 나무의말 그림책 7
이상은 지음, 오승민 그림 / 나무의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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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걸 보고 봐야지! 하고는 잊어버렸는데 동네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했다. 읽어보고 너무 좋아서 검색을 해보고 감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모르는(몰랐던) 세계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상은이라는 분이 아티스트인걸 나는 몰랐구나. 심지어 동시대인인데도.

그분과 나는 학번도 같다. 88년 대학 1학년일때 강변가요제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데뷔했다. 그때 살았던 사람이면 안들어봤을 수가 없는 담다디. 이건 여담인데 88년은 서울올림픽의 해이기도 하지만 정말 걸출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해였다. 대학가요제에서는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등장했다. 아 어느새 오래된 추억이다.

근데 나는 신해철에 비해서 이상은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상은=담다디' 공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담다디는 썩 내맘에 드는 노래는 아니었고 겅중거리는 그이의 춤도 소비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뿐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 나의 취향과는 반대로 그 노래는 엄청 히트를 쳤다. 하지만 가수에게 굴레를 씌우는 곡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 그의 음악 작업은 담다디를 지우는 작업이었을 수도.

그런데 나는 담다디 그 이후를 몰랐다는 게 오늘의 아쉬움이다. '언젠가는'을 좋은 노래로 기억하고 있는 정도. 거기에 오늘 그림책으로 '삶은 여행'이 추가되었고, 탈피에 가까운 그의 수많은 도전들과 함께 많은 명반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예술적 욕구는 있으나 표현기능을 갖고 있지 못한 나는 아티스트인 이상은 씨가 부럽다. 특히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사를 잘 쓰는 사람들 보면 감탄한다. 요즘 가수로는 이승윤이나 이찬혁 같은... 이상은 님도 그런 부류였구나. 그림책의 본문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넘치게 좋은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종합예술인.

그림작가 오승민 님에게도 감탄한다. 노래가사는 보통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이다. (아 지나치게 구체적인 가사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걸 그림으로 구체화해야 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새로운 창작이되, 조건이 많이 따르는 어려운 창작일 것 같다. 이 책에선 그 창작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글과 그림이 모두 아름다운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다.

'삶은 여행' 이라는 제목 속에 작가의 인생관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삶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발걸음이 늘 혼자인 것은 아니다. 내 발로 디뎌야 하지만 내 옆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

삶의 많은 부분이 슬픔과 아픔이기에, 아픔을 노래한 가사들도 마음에 절절히 와닿는다.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이 대목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생은 여행이기에, 떠날 때는 다 놓고 떠나는 것이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작가소개에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다친 이에게 힘이 되는 노래였음 했었어요.
기도로 만든 노래이므로 누군가에게 삶을 향한 긍정의 기도로 다가가기 바랍니다."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의미로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노래가사도 예술(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꿈틀.... 하지만 나는 구구절절 쪽이고 함축과는 거리가 멀어서 불가능하다.^^;;;; 세상에 있는, 있을 수많은 가사들 중 이렇게 문학성이 높은 가사들은 종종 그림책으로 제작되면 좋겠다. 얼마나 좋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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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나카마 치호 지음, 지석연 옮김 / 케렌시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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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치료에 대해서 들어본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잘 알지는 못한다. 역자서문에서 학교지원 경험으로 언급한 선생님과 내가 친한 사이여서, 그분이 마련한 연수자리에 나가본 적이 있다. 그때 역자 강의를 한번 들었는데, 이 분야가 무척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이며 이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막막한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상적 학급운영에도 바쁘다보니 1년,2년,그리고 몇년이 쏜살같이 지나버렸고 난 그때의 생각을 거의 잊고 지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특수학급 2개반의 정원이 넘칠 정도로 대상자가 많은 곳이다. 나도 해마다 도움반 학생을 한명씩 맡았다. 어떤 학생은 비교적 무난했고 어떤 학생은 무척 힘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나의 대처방법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시도한 방법들이 효과가 없는데 그게 방법의 오류인지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닐 뿐이라서 지속적으로 밀고나가야 하는건지 끊임없이 고민이 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은 도움반 학생들 외에도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유는 분석해보지 못했지만 체감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이제는 이런 학생들 지도에 팀플레이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무척 유연하고도 세심하며 전문적인 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나라는 뭐든 도입되면 형태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마음으로 이 일본의 사례들을 읽어나갔다. 전문가의 분석은 문제의 지점을 찾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한 한걸음을 실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보통은 학교교육과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치료를 받는데, 교육현장에서 병행하면 훨씬더 효과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치료는 보편적이라기보다 상황적이라 공적 시스템으로 만들기에는 유연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고, 현장의 협업은 꼭 필요하니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다.

내용 중 학생의 문제행동에 집중하기보다 '도달하고 싶은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고 뜨끔하게 다가왔다. 보통 학급에서 도움이 절실할 때는 '문제행동'이 표출될 때다. 그래서 그 문제행동의 축소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저자를 보니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학생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 뒤 구체적 과제를 단계별로 해결해 나갔다. 이 내용을 담임교사, 특수교사, 학부모, 보조인력 등이 모두 공유하고 협력했다. 은연중에 학급의 친구들까지 협력하게 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협력이 없는 상황이라 해도 교사로서 참고해야겠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해주는 복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17쪽) 라는 의견이다. 복지대상이 많은 학교에 근무해보니 우리나라는 복지의 불모지가 아니다. 다만 그 효율성에는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래선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확 다가왔다. 사실 해주는 게 훨씬 더 쉽다. 하지만 진정한 복지는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있다. 연관하여 '졸업이 있는 복지'라는 의견도 현장전문가답다고 생각되었다.

이어서 목표 설정이나 작업수행 단계를 정하는 등의 과정을 간단히라도 보니 상당히 공부가 필요한 전문적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치료 영역과 교육의 영역은 상당부분 겹치고, 그래서 함께할 때 시너지를 낼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스템적인 부분은 내가 잘 모르지만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가 협력의 경험이 많은 분이라 자신의 실패경험을 토대로 사려깊고 현명한 협력의 태도를 말씀하시는 부분이 구석구석 보여서 그 점도 신뢰가 갔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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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이별 큰 스푼
정지아 외 지음, 방현일 그림 / 스푼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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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라는 키워드로 다섯 작가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정지아, 안오일, 이선주, 강효미, 김기정 작가님이 참여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기도 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 누구나 인생에서 마주해야만 하는 경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다섯 작가가 말하는 이별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슬픔이 주로 나오는데(다섯 편 중 세 편), 그 슬픔을 매우 담담하게 담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피할 수 없는 길을 향해서 간다. 그래도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며 가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데, 이 책에 담긴 모습들은 어찌 보면 낯설다. 이렇게 이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 가능만 하다면 정말 바라는 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의 육신의 고통과 주변인들의 생활적 어려움이다. 어느덧 부모님들을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죽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 현대의 의료기술은 삶의 질보다는 목숨의 연명에 더 적합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통뿐인 삶을 그저 이어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게다가 엄청 겁도 많아서 솔직히 말해 육신의 고통이 가장 두렵다.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다면 이별에 초연한 모습쯤은 나도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부모님들이 오래 사시는 것보다도 편안히 눈감으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은행나무」(정지아)에선 할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주변을 정리하신다. 할아버지 나이와 같은 은행나무와,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된 감나무를 베고 집도 처분하신다. (책의 맥락과 관계없이 나무가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 하는 나...;;;)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으로 가족들을 다독이며 이별을 준비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격동하기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잘 저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정원에서」(안오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노인이 아니고 건우의 형 승우다. 3학년 때 소아암 판정을 받은 형은 아직 6학년인 초등학생이다. 아빠도 돌아가시고 암환자인 아들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엄마의 고생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본인은 느낄 수 있는 그 이별 예감에, 형은 이런저런 이별의 선물들을 준비한다. 셋 뿐인 가족의 서로를 위한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 첫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에도 이별의 순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을 먹먹하게 할 뿐.

「안녕, 거짓말」(강효미)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급속한 암의 진행으로 석달만에. 문제는 아흔 가까운 할머니. 줄초상을 염려한 가족 친지들은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외국 출장으로 둘러댄다. 어느날 할머니는 성치도 못한 몸으로 고집을 부려 집에 찾아오시고, 온갖 잔소리와 함께 대량의 음식, 특히 곰탕을 펄펄 끓여놓고 가신다. 사실 곰탕은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아니다. 할머니는 캐묻지도 알은 척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이 막내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듯하다. 그리고 손주와 며느리 든든히 먹고 잘 살아가라고 끓여주신 곰탕.ㅠㅠ

나머지 두 작품에는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절교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이선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친구 사이의 이별을 다룬다. 촌락의 소규모학교에 다니는 나리는 여학생이 혼자뿐인 교실에 지우가 전학을 오게 되어 무척 기뻐한다. 하지만 지우와의 친구관계는 쉽지 않았다. 금방 절친이 된 것 같았지만 금세 ‘절교’ 운운이 오가고, 지우는 또 전학을 가게 된다. 이별이 아프고, 이별 후의 잊혀짐은 더 아파서 미리 철벽을 치는 지우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기도 하다. 사랑할 땐 사랑하고, 잊혀지면 잊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거 주인공을 어른으로 바꾸고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소재 같은데?^^

마지막 「굿바이 피기」(김기정)는 어떤 이별인지 언뜻 보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타인과의 이별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의 이별은 내 안의 어떤 나, 나의 어떤 모습과의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이별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이별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탈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도 돌아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이별도 있었고, 미적거리느라 놓친 이별도 있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선 건강한 이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별이라는 주제를 감당하려면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분량은 가볍지만 중학생이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우리 인생에 닥치기 마련인 중요한 사건들은 성찰해볼수록 좋을 것이다. 그중 가장 어려운 사건, 이별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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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 1 - 수상한 공부방과 돈 나무 너랑 나랑 2
윤슬 지음, 코끼리씨 그림 / 프롬아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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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어린이실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인기있는 시리즈가 또 나왔나보네' 생각하며 일단 1권을 빌려와봤다. 검색해보니 작가님도 출판사도 다 낯선데 책은 판매지수가 높았다. 인기비결이 있겠지? 생각하며 읽어보았다.

일단 시리즈물은 기본 설정을 잘해두면 이후는 좀 쉽게 굴러가는 장점이 있다. 1권은 그 골조를 세우는 권이라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각 권에는 문제나 아픔을 가진 어린이 주인공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 아이들에겐 조력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기본 골조는 바로 그 조력자다. 그 골조 안에 각 권마다 다른 사정의 아이들을 만들어 넣으면 되니 시리즈는 꽤 길게 이어갈 수 있겠다. (그렇다고 창작이 쉬울 리는 없지. 이 점은 분명히 해둠.)

그 조력자가 바로 제목의 '도깨비 언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친근하고 다정하기까지 한 언니. 이 언니는 어떤 사연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어린이들을 찾아가게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보통 도깨비 하면 남성 이미지에,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어딘가 좀 부족하고 허당인 캐릭터가 일반적인데, 요즘은 그런 고정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도도언니라고 불리는 이 언니도 그렇다. 도도언니의 과거 서사는 무척이나 애절하다. 원래는 사람이었던 언니. 부모님을 다 잃고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어린시절. 해녀였던 할머니마저도 물질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남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서툰 물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석이'의 존재가 언니의 외로운 삶에 한줄기 웃음을 주는데... 석이는 도깨비였고, 유일한 사랑이자 위로였던 석이를 떠나보내고 본인이 도깨비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어린이들에게 꽤 매혹적일 것 같다. 어린이들도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 이 애절한 사연을 가진 도도 언니는 슬픔으로 더 깊어지고 단련된 성품을 가지고 어린이들 앞에 사려깊게 나타난다.

1권에 나오는 아이는 현아다. 자기 의견을 당차게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현아는 전학간 학교에서 좋은 친구 예림이가 다가와 행복했다. 드디어 절친을 만났구나 기뻐했지만 커다란 오해가 아이들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 오해의 사연에는 부쩍 힘들어진 현아네 가정 사정도 있었고.... 그런 현아 앞에 도도언니가 나타났고 '도깨비 공부방'으로 현아를 이끈다. 이곳은 아마 다음 권들에서도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겠다.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간절한 소원은 도도언니를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낼 테고 어린이 독자들은 이야기 속 친구들을 응원하겠지.

어른 독자로서 딱 내 취향에 맞거나 손꼽게 재밌는 책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독서력을 불문하고 흡인력과 접근성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체도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이어지는 다음 권들에서 다양한 상황의 어린이 주인공들이 나와 어린이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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