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이별 큰 스푼
정지아 외 지음, 방현일 그림 / 스푼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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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라는 키워드로 다섯 작가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정지아, 안오일, 이선주, 강효미, 김기정 작가님이 참여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기도 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 누구나 인생에서 마주해야만 하는 경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다섯 작가가 말하는 이별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슬픔이 주로 나오는데(다섯 편 중 세 편), 그 슬픔을 매우 담담하게 담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피할 수 없는 길을 향해서 간다. 그래도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며 가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데, 이 책에 담긴 모습들은 어찌 보면 낯설다. 이렇게 이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 가능만 하다면 정말 바라는 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의 육신의 고통과 주변인들의 생활적 어려움이다. 어느덧 부모님들을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죽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 현대의 의료기술은 삶의 질보다는 목숨의 연명에 더 적합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통뿐인 삶을 그저 이어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게다가 엄청 겁도 많아서 솔직히 말해 육신의 고통이 가장 두렵다.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다면 이별에 초연한 모습쯤은 나도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부모님들이 오래 사시는 것보다도 편안히 눈감으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은행나무」(정지아)에선 할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주변을 정리하신다. 할아버지 나이와 같은 은행나무와,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된 감나무를 베고 집도 처분하신다. (책의 맥락과 관계없이 나무가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 하는 나...;;;)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으로 가족들을 다독이며 이별을 준비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격동하기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잘 저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정원에서」(안오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노인이 아니고 건우의 형 승우다. 3학년 때 소아암 판정을 받은 형은 아직 6학년인 초등학생이다. 아빠도 돌아가시고 암환자인 아들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엄마의 고생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본인은 느낄 수 있는 그 이별 예감에, 형은 이런저런 이별의 선물들을 준비한다. 셋 뿐인 가족의 서로를 위한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 첫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에도 이별의 순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을 먹먹하게 할 뿐.

「안녕, 거짓말」(강효미)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급속한 암의 진행으로 석달만에. 문제는 아흔 가까운 할머니. 줄초상을 염려한 가족 친지들은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외국 출장으로 둘러댄다. 어느날 할머니는 성치도 못한 몸으로 고집을 부려 집에 찾아오시고, 온갖 잔소리와 함께 대량의 음식, 특히 곰탕을 펄펄 끓여놓고 가신다. 사실 곰탕은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아니다. 할머니는 캐묻지도 알은 척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이 막내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듯하다. 그리고 손주와 며느리 든든히 먹고 잘 살아가라고 끓여주신 곰탕.ㅠㅠ

나머지 두 작품에는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절교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이선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친구 사이의 이별을 다룬다. 촌락의 소규모학교에 다니는 나리는 여학생이 혼자뿐인 교실에 지우가 전학을 오게 되어 무척 기뻐한다. 하지만 지우와의 친구관계는 쉽지 않았다. 금방 절친이 된 것 같았지만 금세 ‘절교’ 운운이 오가고, 지우는 또 전학을 가게 된다. 이별이 아프고, 이별 후의 잊혀짐은 더 아파서 미리 철벽을 치는 지우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기도 하다. 사랑할 땐 사랑하고, 잊혀지면 잊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거 주인공을 어른으로 바꾸고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소재 같은데?^^

마지막 「굿바이 피기」(김기정)는 어떤 이별인지 언뜻 보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타인과의 이별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의 이별은 내 안의 어떤 나, 나의 어떤 모습과의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이별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이별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탈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도 돌아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이별도 있었고, 미적거리느라 놓친 이별도 있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선 건강한 이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별이라는 주제를 감당하려면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분량은 가볍지만 중학생이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우리 인생에 닥치기 마련인 중요한 사건들은 성찰해볼수록 좋을 것이다. 그중 가장 어려운 사건, 이별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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