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특별한 교사의 언어 - 마음을 움직여 성장으로 이끄는 감정 대화법
김태승 지음 / 푸른칠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말은 참으로 그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말에 대한 책도 강연도 많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주 봇물터지듯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교사의 언어는 특별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이어서...는 아니고(입은 최종 출구일 뿐 교사는 말로만 하는 직업은 아니니까) 매우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며, 그때마다 최선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거의 모든 상황이 교육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교사의 언어를 다룬 책 중 천경호 선생님의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그 책도 좋았고 이 책은 이 책대로 참 좋다. 뭐라 비교하긴 힘든데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각자 참 좋다. 이제 퇴직을 몇년 앞두고 있는 나같은 경력교사도 읽으면서 쏙쏙 비어있는 구멍을 알차게 채운다. 경력이 적은 후배선생님들께는 뙤약가뭄에 시원한 비일 것 같다.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대체로 쉽게 술술 읽힌다. 특히 대화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부분은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며, 대화의 결말 부분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웃음도 나고 공감도 되고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도 되고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온다. 교사의 말은 색깔(초록색)로 구분되어 있어 더욱 가독성이 높다. 그러나 이 책의 성격이 단순 대화집인 것은 아니다. 상담심리 전공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시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시는 저자의 학식이 드러난 부분도 있다. 각장 후반부에 있는 [교육전문가를 위한 대화의 기술]이 그것이다. 대화 부분도 읽기 쉽다뿐이지 내공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두가지 성격이 잘 짜여 구성되어 있는 점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적어도 두 번 정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일단 쉽게 읽히는 곳부터 편하게 읽되, 정독도 꼭 한 번 하면 좋겠다.

1장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교사의 언어]이다. 친구 관계의 다양한 역동에서 충돌이 있었을 때 중재하는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나도 나름 오랜 경력이 주는 능구렁이력으로 중재를 어느정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야말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스리슬쩍 넘어가기에 급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초록색 부분, 즉 교사의 대사에는 괄호 안에 대화기술방법이 표기되어 있다. 확인, 질문, 수용, 공감, 탐색적 질문, 설명, 자기개방, 제안, 지지, 강조 등등이다.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한 이 책의 특징이면서 대화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을 키워주며 치우치지 않은 적절한 구성으로 교사의 언어를 정련하는 연습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겠다.

저자의 대화를 보니 기본적으로 침착하고 친절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단호하게 교사의 감정도 전달하고(자기개방) 냉정하게 객관적 상황을 알려주거나 교사의 의지를 천명하기도 한다. 이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최대한 학생 스스로 선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력하되, 그럴 의지나 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끌려가면 안된다. 위에 적은 다양한 대화방법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몸에 배기까지는 복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그때 이 책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대화 내용 중 내가 그동안 유의하지 못했구나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저자샘이 학생들에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고 지도하시는 부분이었다. 마침 오늘 중재할 일이 딱 생겨서 (사실 ‘마침’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매일 생기니까 뭐ㅎ) 나도 이렇게 지도해 보았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아니 그건 좀...” 하면서 몹시 어색해 하는 것이었다.
“왜요? 개똥이는 그게 잘 안돼요?”
“네, 제가 사실은 부끄러움이 많아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개똥이는 우리반에서 제일 나대는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개똥이도, 상대방도 다 웃었다.
“그럼 오늘은 선생님을 보면서 말하는 걸로 해요. 그래도 괜찮죠?”
상대방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개똥이는 처음에는 교사를 쳐다보더니 어느새 친구에게로 시선이 돌아가 있다. 화해는 잘 끝났다.^^ 생각해보니 나도 사람의 눈을 잘 보지 않는 것 같아서, 아이의 민망함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강요가 아닌 한, 눈을 바라보라는 조언은 필요한 것 같다. 수많은 팁이 있었지만 오늘 바로 적용해본 것은 이것이었다.

1장의 끝에 나오는 ‘교육전문가를 위한 대화의 기술’ 페이지에서는 “학생의 저항과 주저를 잘 다뤄 주세요”와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메타인지를 활용하세요” 등의 전문적 조언이 나와있다. 이 부분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마음이 여린 편이고 표면적으로는 친절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팩폭의 욕구가 상당히 강해서 나도 모르게 그걸 내뱉을 때가 있다. 다행히 그게 약이 된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상처가 된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 표현을 비꼼이나 비난으로 했을 경우에는 더! 이 부분을 매우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저자는 직면이 문제해결의 필요조건이지만 잘못 접근하면 비난으로 인식되어 방어와 부정으로 돌아설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아이 입장에서 직면은 무거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저항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사가 지지하고 공감하는 만큼만 직면해 주어야 그것이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157쪽)
「대화 속에서의 직면은 행동이나 말, 행위에 대해서만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불일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 그 마음을 느끼고 이를 공감적인 반영을 통해 직면하는 것이 가장 성장에 가까운 교육이 된다.」 (159쪽)
숙제를 하나 받았다. 수준 높은 직면. 이제 해오던 대로 대충 하다가 퇴직하고 싶은데 숙제라니. 하지만 왠지 기분은 나쁘지 않다.^^

2장은 [마음의 성장을 돕는 교사의 언어]이다. 교실에는 언제나 표현이 서툴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감정처리를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들, 나아가 행동수정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 내용 중 "괜찮아" 라는 말도 남용해선 안된다는 언급에 매우 동의했다. 좋은 말도 모든 상황에 좋을 순 없다. 학생의 감정의 물결을 존중하는 건 때로 기다려주는 일이다. 위로든 충고든 그 후에 해줘야 효과가 있다. 그리고 "너는 그 말에 동의하는 거야?", "네 생각이 궁금하다." 등의 말로 아이를 주체로 세우고 교사의 동의나 응원, 충고를 더해주는 방법이 정말 고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교사도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심리가 있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교사는 불쾌해지고, 학생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기 쉽다. 이때 그 너머의 심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 다양한 사례가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뭔지 모르게 눈에 거슬려진 아이와의 대화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핑계만 많고 행동수정이 안되는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도 배울점이 많았다.

3장은 [진정한 만남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교사의 언어]이다. 이 장은 교사의 내면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급 안에서 교사는 때로 인간적으로 편안하게 솔직해도 되고,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때도 있다. 학급 구성원에 따라 처신이 다르게 되지만 기본적 원칙은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전문가 수준이라 해도 마음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드물지만 있을 수 있으며, 그럴때도 끝까지 노오오오오력하라는 부질없는 채찍질보다는 과제의 분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교직은 운이 조금은 작용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상황을 운에 핑계대어서는 안되지만.

교사가 가장 행복한 해의 교실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장이다.
"선생님이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가르치고 지도하는 대로 잘 따라주어 성장하는 학생도 있고, 똑같이 지도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학생도 있거든. 선생님과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고 그 이야기들을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한 건 순수하게 너희들의 선택이고 너희들의 실천 덕분이야. 선생님은 단지 그 기회를 보고 말해주었을 뿐이야." (306쪽)

이 책의 수많은 대화를 읽으면서 결국 깨닫게 되었다. 열쇠가 누구한테 있는지를. 안타깝게도 나한테 없었다. 이런.ㅋㅋㅋㅋ 하지만 그 열쇠의 주인공들이 결국 문을 열도록 최선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은 나의 것이다. 최종 선택은 열쇠의 주인에게 있지만.

이 책이 열쇠의 주인들에게 다가가는 지혜를 끌어올려 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많은 선생님들께 자신있게 권하며, 우리의 교실들의 성장과 평안과 행복을 빈다. 부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나요? 작은 곰자리 76
시드니 스미스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는 소년의 얼굴이 하나가득 그려져있고 기억나요? 라는 제목만 적혀있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소년의 얼굴은 어린시절 같기도 하지만 꽤 자라 과거를 회상하는 얼굴 같기도 하다. 알라딘 메인에 떠 있고 추천으로도 자주 노출되어서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어떤 매력의 책일까?

어두운 밤 한 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온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 기억나니?
- 기억나요?
하며 그들의 공통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 기억들은 대체로 다 환하고, 아름답고 즐거웠다고, 그들은 회상하고 있다.

들판으로 나들이 나간 날, 산딸기를 한웅큼 따 엄마 아빠한테 달려갔던 기억.
생일날, 부모님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다 건초더미 위에 넘어져 웃음을 터뜨리던 기억,
폭풍우 치고 정전이 되었던 날의 기억도 나쁘지만은 않다. 할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석유등 냄새.

그리고... 짐을 싸서 트럭에 싣고 살던 집을 떠나던 날의 기억. 무슨 일인지 아빠랑 이별하고 엄마가 운전대를 잡은 채 고속도로를 달려 둘만 이 낯선 도시로 들어섰다. 한참을 헤매다 지금 누워있는 이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스름 새벽빛에 아직 풀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이사 첫날, 낯선 곳에서의 첫 밤인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살며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이제부터 열릴 새 생활의 터전이 눈에 보인다. 그건 어떤 장면이며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길 건너 빵집에선 빵 굽는 냄새가 올라왔고요.
도시 위로 해가 떠오르는데
마치 마법 같았어요.』

도시는 아직 어둡고, 저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하는 주황빛이 보인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아이는 곤히 잠든 엄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품에 들어가 눕는다. 아까 아이는 미래의 기억을 예언했다.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어요.
우린 잘 지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 믿음으로 잠시 후, 가족은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고되고 힘들 수 있겠지만.

굉장히 튼튼한 마음이 이 이야기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나보다 낫네. 쓸데없이 예민한 마음이 싫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을 하며 걱정거리를 생산해 낸다. 그리고 결국에는 걱정에 파묻히고 불행해 한다. 현대의 많은 이들의 패턴이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이 가족은 어려움에 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보다 좋지 않은 곳으로 옮겨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관하는 느낌은 없다. 낯선 집 창문에서 본 새벽 어스름의 빛에서 약간의 벅참과 설렘을 느낄 정도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엄마랑 나랑. 그리고 상황은 점점 좋아질 거야.

마음이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 엄마들 또한. 그럴만한 상황은 다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모자가 ‘기억나요?’ 라는 말로 추억을 소환한 것은 과거에 연연하며 청승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쌓아온 사랑의 시간들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그 힘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른 힘이 또 생겨나 있을 것이다.

나또한 무너지기 쉽고 불안에 취약한 심리를 갖고 있는데, 내 생에 슬프고 힘겨웠던 순간에는 오히려 침착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그게 참 신기했다. 그순간 하나님이 나에게 마취제를 놓아주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난 진통 중에 있는 아이 한 명과 대화로, 어머니와는 톡으로 상담을 했는데.... 누구도 자신의 상황을 다 드러내 말하진 않는다. 내가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저 그들이 조금은 둔감하길, 서로에 대한 애정이 서로를 옭아매고 할퀴기보다 서로를 든든히 받쳐주는 기둥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삿짐도 채 풀지 못한 낯설고 거친 방에 스며들던 새벽빛의 느낌. 그걸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희망은 다 갖춰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알바 텍스트T 9
김태호 지음, 이예빛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태호 작가님의 신간. 이번에는 청소년소설이고, 단편집이다. '제후의 선택' 같은 작가님의 고학년 단편에서 느끼던 몰입감과 다양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만화같은 그림체의 표지 느낌부터가 어린이용이 아니고, 이야기의 느낌도 대체로 다 서늘하다. 하지만 무거운 현실을 그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제를 담는데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학년 동화들만 해도 "와 슬프다. 참혹하다. 근데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어쩌라고?"를 채우려고 작가가 무척 고민했다는 느낌이다. 실제 그러셨는지는 모른다.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는 뜻.^^;;;

그러다보니 작품들은 모두 지향점을 갖는다. 일차적으로 그 지향점은 "살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나의 삶을 살아내자.

세번째 작품 [지박령 열차]에서 그려내는 지하철 순환선의 풍경은 어둡고 섬뜩하다. 삶을 버리려 할 만큼 아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고, 그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클까. 순환선에서 '지박령'이 되어 돌고도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결국 "살아"가 아니겠나.
"널 까맣게 태워버린 사람보다 널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71쪽)

네번째 작품 [선녀 콤플렉스]는 여러 느낌이 혼재되어 가끔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선녀가 날개옷을 잃고 지상세계에 붙잡힌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수시로 나오는데, 그게 다정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지극히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아, 위험한 게 맞았어....ㅠㅠ 하지만 "엄마, 나 살고 싶어!"라고 간절히 말하는 해라. 작가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 모두의 귀에 가 들리기를 바란다.

일차적이고 가장 긴박한 외침이 '살아!" 라면 그 다음은 "똑바로 살아" 내지는 "당당히 살아" 혹은 "충만히 살아"가 될 것 같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 [신의 알바]에서 과거 자기 무리의 밥이었던 영지를 다시 만나 같은 방식으로 거리낌없이 셔틀을 시키던 수민은 단단히 덫에 걸려버린다. 그러게, 왜 그렇게 살았니. 비행에 대한 댓가는 누구나 치러야 한다. 스스로가 갚는다면 그나마 견딜 만할 것이요, 강제로 갚음을 당한다면 그건 지옥일 터이다. 난 세상이 이렇게 표나게 공평하고 잘못에 대한 응징이 눈에 보였으면 하는 욕구가 있나보다. 이런 생각에도 위험요소는 있고, 자력구제는 지양되어야 한다. 더글로리 드라마를 내가 좋아하지 않듯이. 하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은 말한다. "그니까, 똑바로 살아!"

두번째 작품 [유학생 고준하]가 이 책에선 가장 덜 서늘하고 말랑하고 밝다. 어른(엄마)의 등장이 이렇게 다행스럽고 바람직하기 있음? 유혹과 본능을 거슬러 유예기간과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꼭 필요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기 위해서다. "섣부르게 살지 마" 라고 할까.

다섯번째 작품 [콩]에는 짧은 단편임에도 복합적인 이슈들이 담겨있다. 한국계 베트남인 '콩'의 고난, 딸을 사고로 잃은 엄마의 허전함과 아픔, 신체적로는 우세해지는데도 치국의 폭행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호의 심리, 그리고 콩과 수호의 짧은 우정(사랑?)과 이별 등... 단편 대가의 작품이라 할 만했다. 왠지 영상으로도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잘 만들고 연기를 잘한다면 영상미가 훌륭하고 심리묘사도 탁월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마지막 작품 [비의 경계선]에서 인물들이 거친 빗속을 헤매다니는 장면은 꼭 언젠가 꾸었던 꿈속 장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 이르러 나오는 '경계선' 이라는 키워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니 작가의 계산이 참 치밀하고 정교하다는 생각도 든다. 뒷표지에 보면 "삶의 어느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통을 오롯이 겪어내고 끝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라는 말이 쓰여있다. 공감하면서, 이중 어떤 작품은 성장통이라는 말도 사치일 만큼 극한에 몰려있는 인물들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태호 작가님 문장의 흡인력은 대단해서, 다음장을 저절로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작품은 막 성큼성큼 건너뛰어지기도 했다. 눈이 막 앞서가서....^^;;; 그러다 다시 돌아와 읽었다.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건 엄청난 힘인 것 같다. 청소년소설은 솔직히 나랑 접점이 별로 없어서 굳이 찾아읽으려 애쓰진 않는데, 이 책은 궁금해서 덥썩 읽어보았다. 흥미롭고 의미있는 독서였고, 주변에 청소년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단 도움 연구소 - 가짜 편지와 사라진 돈뭉치 보름달문고 88
주미경 지음, 홍선주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학기 독서주간에 우리 학년은 주미경 작가님과의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 <와우의 첫 책>을 온작품읽기로 읽고 있으니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작가님의 책을 더 찾아 읽어본다. [무단도움연구소]라는 고학년 동화가 작년에 나왔는데 못읽어봤구나. 읽어보니 지금 우리반(4학년) 아이들한테는 조금 수준이 높고, 5,6학년 정도에 적당해 보인다. 올해 활용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에게 즐거운 독서였고 언젠가 누구에겐가 권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더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제목인 '무단 도움 연구소'는 무돈이가 돈이 절박해서 하는 알바다. 심부름 알바라고 할까? 소꿉친구 단지가 함께 하며, 둘의 이름 첫글자를 따서 '무단'이라 이름을 붙였다. '연구소'라기엔 '푼돈이라도 주신다면 아무 심부름이나 해드릴게요' 수준이지만 무돈이는 디자인에 꽤 소질이 있어서 인스 같은걸 만들어 팔기도 한다. 어찌어찌 겨우 명맥을 이어갈 정도는 일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무돈이는 왜 이런 알바를 하는걸까? 가난해서....? 맞다. 디자인할 때 필요한 펜태블릿을 사고싶은데 부모는 그걸 사줄 형편이 안된다. 차라리 내힘으로 벌어서 사자... 이런 생각을 하는 무돈이는 요즘 아이들 중에선 드문 캐릭터다. 그 이유는
1. 일단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빠는 간호사로 고생하시는데 엄마는 돈이 거의 안되는 댄서고, 거기다 돈사고도 두번이나 쳤다. 그럭저럭 살던 무돈이네가 좁은 빌라로 이사가고 자식들이 돈얘기 꺼내기 눈치보이는 상황이 된 건 다 엄마탓이다. 무돈이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진 않지만 이미 벌어진 일 탓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는 애다.
2. 독립적이다. 부모한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해결을 도모한다. 물론 그 과정이 순조롭진 않지만...
3. 자기성찰을 한다. 일이 꼬일 때 거기에 매몰되어 될대로 되라 자포자기하거나 분노폭발을 하지 않고 지나온 길을 복기한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엄청 비현실적인 캐릭터 같네. 읽어보면 그렇진 않다. 실수도 많고 잘못된 판단도 하며 때로는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우리 자신의 모습인듯 이렇게 친근한 캐릭터이면서 위에 적은 반듯함도 갖추고 있으니 나는 엄마미소를 짓는거고, 어린이 독자들은 신뢰할 책속 친구를 한 명 갖게되는 것 아닐까.

소꿉친구지만 요즘 부쩍 무돈이에게 마음이 쏠리는 단지, 북튜버인 단지 엄마, 마음 따뜻한 동네 고물상 물선자원 아줌마, 약간 의문의 인물인 집배원 아저씨, 오지랖 좀 있으신 아파트 경비원 디디 아저씨 등의 조연들이 이야기에 훈훈함과 미소를 더해준다.

반면 심술 가득한 동네 불량청소년 빠마 형은 악역을 담당하고 (그래봤자 쎄진 않음) 무돈이네 집이 망할 때 반대로 대박나 좋은 아파트로 이사간 기록이와는 계속 신경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결말은...

등장인물이 꽤 많지만 서사가 산만하지 않고, 상황은 막막하지만 경쾌한 문장이나 대사가 다가올 희망을 알려주는 듯하다. 내 잘못된 생각과 선택 때문에 사건들이 꼬이고 관계까지 어긋나 버렸을 때, 완전히 망가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책임있는 태도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보여주어 고마웠다. 사람은 혼자서 성장할 수 없고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깨달음까지. 나도 이왕이면 괜찮은 모습으로 어딘가에 위치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이렇게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보다 우리가 걱정이야! - 옥이샘 기후환경툰
옥이샘 지음 / 지식프레임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옥이샘의 '○○툰' 책이 또 나왔다. 감정툰, 진로툰 책을 잘 활용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눈이 번쩍 떠졌는데! 우와 이번엔 무려 환경툰이야!

환경이라는 주제는 전문적이라는 면과 일반적이라는 양면을 가진다. 예외없는 모든 이들의 문제라는 점에서 일반적이지만,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전문적이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쓴 책들도 서로 견해가 다르기도 하다. 그러니 일반인이 다루기엔 다소 버거운 주제라 할 수 있다. 나도 여러 권의 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관련 주제의 수업을 할 때 내 입에서 설명이 줄줄줄 나오진 않는다. 이 책을 쭉 읽어가며 저자샘이 관련 책들을 많이, 깊이 읽고 공부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발한 활동 중에 이렇게 여러 영역을 다루시는 쌤들을 보면 참 대단하시다.

저자의 '툰' 시리즈의 장점은 가볍지도 쉽지도 않은 내용을 아주 잘 요리하여 아이들이 먹을만한 맛있고 소화도 잘 되는 형태로 재탄생시킨다는 점이다. 그런 점은 나이든 나에게도 똑같은 장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전의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다시 떠오르고 아, 이렇게 접근(또는 설명)하면 되겠구나 하는 정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이용이면서 교사 혹은 관심있는 부모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 책을 한반치 갖추고 함께 보면서 수업하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기존의 어린이 환경도서들도 그림책들부터 시작하여 고학년~청소년 수준의 책들까지 알차고 좋은 게 많다. 이 책은 딱 그 중간 정도의 수준이면서 전반적 내용이 고루 들어있다. "딱 1권만 골라야 돼!" 한다면 이 책을 고를 것 같은 무난한 수준+종합적 내용+접근성(재미)을 고루 갖춘 책이라고 하겠다. 총 20개의 장으로 되어있고 각장당 3~5쪽 정도의 만화+비슷한 분량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이 살짝 의외지만 의미심장하다.
"지구보다 우리가 걱정이야!"
첫장의 만화에서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요!" 라는 아이들의 말에 푸하하핫 웃는 지구 캐릭터가 충격적이다. 맞는 말이다. 지구는 그 긴 역사동안 여러번의 멸종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는 위기는 인간이 단기간 안에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고 그건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니 걱정이나 해! 지금 니가 다른 걱정하고 있게 생겼어?" 이게 딱 우리 인간의 상황이다.

총 20장의 소주제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아무래도 기후위기와 탄소발자국에 대한 내용이 많고, 미세먼지, 쓰레기, 플라스틱 문제 등을 고루 다루며 동물복지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나는 이런 책에서 관건은 실천과 대안 쪽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심각하다! 이제 우린 끝장이다! 끝!" 이건 책읽는 의미가 없지 않나. (그게 사실일지는 몰라도...ㅠㅠ) 절망은 포기를 가져오고 포기는 상황을 더 빨리 악화시킬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안을 매우 희망적으로 다루었는데, 내가 식견이 짧아서 이런 부분은 현재 진행과 가능성이 몇퍼센트쯤 되는걸까 궁금해진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 혹자는 이게 효율이 떨어지고, 아무데서나 가능한 것도 아니고, 비용이 많이 들고,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면이 있다고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하던데... 하지만 살 길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온 지혜를 모아 이 길로 가야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전망이 꽤 밝은 듯도 하여 어린이들이 희망을 가질 만하다.

분리수거나 1회용품 줄이기 등의 개인적 실천에도 부정적 견해가 있다. 너무 미미해서 별 의미가 없다는... 범람하는 텀블러나 에코백이 더 문제라는... 이부분은 일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는데, 개인적 실천을 부정하기보다는 효율성을 고민하여 공유하고, 기업과 국가의 실천이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도 그런 시각이 담겨있다.

사실, 소비를 추구하고 그 소비를 동력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줄이거나 멈추는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회의가 드는 것이 솔직한 사견이긴 하다. 하지만 나의 회의가 틀린 것이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희망이 담긴 공부와 고민을 제시하고 싶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일단 내용적인 면을 충실하고 재미나게 담아두었기에 재구성의 고민을 훨씬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활용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