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명을 품은 바다 이야기 ㅣ 생각을 더하는 그림책
키아라 카르미나티 글, 루치아 스쿠데리 그림 / 책속물고기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바닷가에 나가 보거나, 배를 타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것도 잠시, 난 두려움에 젖어든다. 비가 많이 와 불어난 중랑천만 봐도 가슴이 탁 막혀올 만큼 물을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바다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곳.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정이 일차적으로 두려움이라면, 그 이후는 동경이다. 난 바다를 친숙하게 느낄 수는 없는 사람이라 좀 유감이지만, 그곳이 보금자리인 생명들에게는 얼마다 자유롭고 소중한 공간일지를 생각해본다. 제돌이가 잡혀와 수조 안에 갇혀서 인간이 요구하는 묘기를 부리며 살아야 했을 때 얼마나 불행했을지, 지금 자유로워진 제돌이는 그 바다의 품에서 얼마나 행복할지.
이 책을 정보그림책으로 분류하는 게 맞을지 좀 헷갈린다. 바다 속 생명들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정보그림책으로 손색이 없다. 바다수세미와 같은 해면동물들, 흩어지지 않는 멸치떼의 대열, 동물과 식물의 특징을 모두 가졌지만 동물로 구분되는 산호, 소라게들과 쌍으로 움직이는 말미잘, 모통에 비해 입이 작아 빠른 속도로 헤엄쳐야만 하는 참치 등....
그러나 매 장마다 저명한 작가들이 쓴 바다에 관한 구절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어 이 책은 단순한 정보그림책이라 하기엔 매우 문학적이고 감각적이다. 첫장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나오는 한 구절이 들어있다. 네모선장의 말이다.
"나는 바다를 사랑합니다.
바다는 지구의 10분의 7을 뒤덮고 있어요.
넓디넓은 사막 같지만 가까이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절대 혼자라고 느끼지 않아요.
바다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끝없는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네모 선장의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했었던 것 같다. 아로낙스 박사가 구조된 후, 행방과 생사를 알 수 없는 네모선장과 아틸러스호를 뒤로 한 채 책을 덮어야 했을 때의 가슴아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었던 바닷속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도.
더 나아가 이 책은 거북이 페이지에서 우리가 버린 비닐을 먹고 거북이가 죽기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나를 지켜야 해! 그것이 너희를 지키는 길이니까!" 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남기기도 한다.
그림도 색채도 아름답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바다에 대한 환상에 젖어보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그 환상과 내가 버리는 쓰레기 한 장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시원한 판형으로 바다에 대한 많은 느낌을 담은 이 책. 아이들이 많이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