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소녀 사계절 아동문고 86
송미경 지음, 김세진 그림 / 사계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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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읽고 '구원'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진정한 구원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이 구원을 받는가? 구원에서 멀리 비껴 가 있는 사람들, 즉 구원을 스스로 걷어차는 이들은 누구인가? 나는 구원을 바라는가? 어떤 자세로 바라는가?


작가가 쓴 의도는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동화를 통해 그 어떤 책에서보다도 강렬하게 그것을 생각했다. 이렇게 만드는 작가의 역량에 또한번 감탄한다. '늘 안갯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지만 기도하며 한걸음씩 내딛는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도 그가 더듬거리며 찾는 것들이 진실된 것이기를 함께 바란다.


이 책에서 포악한 이들에게 상처받은 존재들을 구원해 주는 이는 <바느질 소녀>다. 옛이야기에서 흔히 마법을 가진 존재로 나오는 나이 많은 노파도 아니고 힘도 세지 않고 아름다움이나 신비로움과도 거리가 먼 거지소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허름한 공원 구석에 앉아 남이 버린 음식들로 연명하는 거지소녀. 잘 보면 가끔 그 아이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의 행위다. 그 바느질로 소녀는 수지네 강아지 구름이를 치료해준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 엄마는 쉬쉬하며 수지에게 입단속을 시키지만 수지와 준하는 공원을 찾아가 자신들의 먹을 것을 나눠주며 거지소녀와 친구가 된다. 거지소녀는 구름이 말고도 꼬리 잘린 길고양이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고 정태 형제네 돌격이에게 물어뜯긴 해피도 치료해주었다. 동물들 뿐만이 아니었다. 발달장애로 늘 엄마가 쫒아다니며 말썽을 수습해주어야 하는 재호도, 며느리의 구박 때문에 보행보조기를 끌고 하루종일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 은비 할머니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존재들-수목떡집 아저씨, 정태 한태 형제와 그 부모들, 은비엄마 등은 그 구원을 부정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거지소녀를 그대로 두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주워 읽은 내용이 생각난다. 어린 아이들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옛이야기들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하지 않다고. 선과 악이 명확히 대비되며 힘겨운 과정을 통해 선한 존재가 마침내 승리한다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심리적 구원을 경험한다고.

물론 그 이야기가 심하게 작위적이거나 대놓고 교훈을 늘어놓거나 빈약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연약한 존재가 승리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을. 비록 이들이 강한자들을 칼로 챙챙 물리치고 그 목에 칼끝을 겨누지는 못했을지라도, 마지막에 거지소녀가 공원을 떠나 숲속으로 홀연히 들어가 버렸을지라도, 아이들은 느낄 것이다. 선하고 겸손하고 남의 것을 빼앗을 수 없는 존재가 끝내는 승리했다는 사실을.


이렇듯 옛이야기적인 주제를 가진(내가 주제를 잘못 짚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작품은 요즘의 작가들이 즐겨 쓰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서늘한 현대의 문제를 짚어내는 문제작들을 여러 편 읽어보았다. 그 막막한 현실에 가슴만 아파지는.... 이 책도 현실의 문제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놀라운 상상력으로 판타지를 결합시켜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누군가 "현실을 둘러보라, 구원이 어디 있냐? 너는 구원을 보았냐?" 라고 묻는다면 딱히 해줄 말이 없을 것 같다. 수목이 아빠도, 정태나 한태도, 은비 엄마도 우리 주변에 있으며 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구름이의, 재호의, 은비할머니의 고통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난 작가의 시선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그 편에 서겠다고, 선을 비웃거나 부정하는 자로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작은 그릇과 게으름으로 얼만큼 살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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