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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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책 한 번 써봅시다'를 읽고 이 책을 읽어서 그럴까. 책 한 번 써봅시다는 글쓰기를 독려하는 내용으로 온화한 장강명의 목소리를 담은 순한맛인데 이 책은 경쾌해보이는 표지와 달리 장강명의 날카롭고 독한 면(?)이 가감없이 실려있다. 대상이 신혼여행이나 글쓰기 수업이 아닌 책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장강명은 책에 진심이야. 그래서 이 책은 매운맛이다. 기대 없이 약간은 타임킬링용으로 집어 들었던 지라 부분적으로 비장하기까지 한 장강명의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나는 문화 산업 전체, 아니 소비재 산업 전체가 지금 팬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대중음악이 아이돌 산업이 되었고, 뮤지컬이 스타 배우의 팬들에게 의존하게 됐고, 이제는 휴대전화도 그렇다. 사실 출판사들도 이미 그런 기운을 느끼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인데. 내게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인데. 


느껴지는가. 장강명의 책에 대한 애정이. 나 역시 장강명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기에(책 리뷰로 찬양리뷰 1개쓰면 까기리뷰 9개 정도 쓰는ㅋㅋ) 공감하며 읽었는데 이런 태도가 요즘의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하게 읽힐지는 사실 의문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장강명은 열심히 읽고, 우울증에 걸릴만큼 높은 기준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하며, 책을 굿즈로 소비하는 요즘의 세태에 냉소하지 않고 일단 쓴다. 


책, 이게 뭐라고는 장강명 작가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하는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이보다 적절한 제목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책 따위 '교양 있는 나'의 이미지 치장용 악세사리로 쓰는 시대에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사랑하고 책에 연연하는가. 책,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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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별 생각없이 잠시 가볍게 읽으려고 들었다가 생각보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기분좋게 읽고 있어요. ^^

LAYLA 2021-07-08 12:13   좋아요 0 | URL
앗 바람돌이님 ^^ 수많은 책 중에 우연히 같은 책 읽고 있다니 신기하고 반갑네요 ㅎㅎㅎ 근래에 보기드문 ‘치열한‘ 에세이가 아닌가 했습니다. 장강명 작가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깊어졌어요^^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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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ㅊ낳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엇는 일이 다른 시공가넹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란의 상당수는 예의와 윤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 P55

그렇다면 왜 읽는가? 왜 쓰는가? 개인적인 답변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자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수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깨어 있으면 졸려서 버틸 수가 없다. 아무리 즐거운 나날이 이어져도 글을 읽거나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나는 허무해진다. 그런 허무함은 짧은 몇 문장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읽고 쓰는 글은 단행본 한 권 길이는 되어야 한다. - P156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는 강박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신선한 피라면 환장는 드라큘라가 아니기에, 그 지점에서 자세한 해설을 원한다. 새로운 얼굴은 새로운 얼굴일 따름이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나타난다. - P181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에세이 작업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세계에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흘러간다는 느낌이다. 긴 장편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때 비로소 세계와 싸운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정신이 훌륭한 문학에 꼭 필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어느 쪽으로도 확답은 못하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다 이런 기상을 담고 있고, 내가 추구하는 문학도 그러하다. - P193

한때는 스티븐 스핖버그처럼 여름에는 대중적인 작품을 발표하고 겨울에는 진지한 작품을 내놓다는 식의 야무진 꿈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커리어는 스필버그쯤 되는 천재나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중성과 진중함 중에 내가 어느 걸 더 원하는지 깨닫는다. - P248

세계문학전집에 뽑힌 책이라고 해서 꼭 좋아하고 존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명단은 주기율표처럼 확정된 것이 전혀 아다. 수많은 문학적 견해가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최근 어디서 타협했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 P266

나는 문화 산업 전체, 아니 소비재 산업 전체가 지금 팬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대중음악이 이돌 산업이 되었고, 뮤지컬이 스타 배우의 팬들에게 의존하게 됐고, 이제는 휴대전화도 그렇다. 사실 출판사들도 이미 그런 기운을 느끼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인데. 내게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인데. - P273

소설을 쓸 때마다 내 글 솜씨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함께 느꼈다. 집중력과 체력은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머지않아 흐트러질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다 더해져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게 될 거다. 그게 언제일까?

세계문학전집을 읽을 때면 작가 연표를 유심히 살피게 됐다. 거장들이 의미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쓴 것은 언제일까?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 게 53세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59세에 썼다. 스타인벡이 불만의 겨울을 쓴 것도 59세였다.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 괴테나 피카소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창조적인 80대를 보낸 예술가도 있기는 하지만...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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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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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도 귀를 자르나?"

남자는 보일 듯 말 듯 입술을 씰그러뜨린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어. 귀는 두 개 있어."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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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감 -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분투기 작가 시리즈 1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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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대여섯 살까지만 해도 기후나 날씨 때문에 기분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날씨가 몸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끼친다. 날씨는 서른 살을 넘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9

어떤 사람은 ‘뭐든지 좋으니까‘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굳이 날씨까지 살펴 가며 쓰지 않아도 될 테지만, 이쪽으로서는 젊은 주제에 어떤 것이든 그대로 뽑아낸다는 오만함이 생기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에 무심코 두 개의 접속어가 들어가기만 해도 작가라면 누구나 나중에 살이 에이는 아픔을 느끼는 법이다.

-요코미쓰 리이치 - P40

나도 벌써 십몇 년이나 문필가로 살아온 터라 특별히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 다. 다만 어떠한 경우든 표현상의 문제는 일단 단념할지라도 그 장르의 형식을 빌리지 않는 한, 더 없이 명료한 하나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한 결코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마키노 신이치 - P45

지금껏 주로 소재는 옜것에서 가져왔다. 그 탓에 나를 골동품 수집하는 노인처럼 별난 만 찾아다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케케묵은 교육 덕분에 예전부터 현대와 거리가 먼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소재는 그 속에서 발견될 뿐이지, 일부러 찾으려고 읽는 게 아니다.

소재가 있더라도 자신이 그 소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소재와 자신의 마음이 오롯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소설은 써지지 않는다. 억지로 쓰면 지리멸렬한 글이 된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몇 번이나 그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P87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린 문학 애송이도 여기까지 성장하고 보 인간은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것, 뭐든지 마음껏 배워두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글러먹은 인간을 못쓰겠다고 내동댕이치더라도 그가 혼자서 걸어가는 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어째 됐든 간에 그 녀석도 어딘가에 다다른다. 좋든 나쁘든 목적지는 당사자에게 맡겨야 한다.

- 무로 사이세이 - P91

요사이 도쿄 말이 점점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야. 보통선거니 노동문제... 연설만이 아니야. 문학도 마찬가지야. 기분이니 감정이니,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새롭게 들리지 않으니까.

-나가이 가후 - P107

나는 마침내 소설이 써질 것 같으면 평소 사람 만나기를 귀찮아하는 편인데도 갑자기 만날 약속을 잡거나 뭔가 볼일을 만들어 시내에 나가고 싶어진다. 왠지 소설에 인생의 공기를 불어넣는 느낌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 호리 다쓰오 - P128

담배는 하루에 골든배트를 네다섯 대 피운다. 옛날에 좋아하던 사람이 담배를 싫어해서 안 피웠는데, 지은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아니기에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운다. 자포자기는 꽤 기분이 좋다. 옜날에는 자포자기에 빠지면 속을 끓였건만 요즘은 양지에서 햇볕을 쬐는 듯하다.

-히야시 후미코 - P162

‘맑은 물처럼 아무 맛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 내 글은 손짓이나 거짓말이나 꾸밈새가 도드라진다. 괴롭다. 힘이 모자라는지도 모른다.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툇마루에서 햇볕을 쬐는 듯한 생활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야시 후미코 - P170

시간의 경과란 그때그때의 감정이다.

-이즈미 교카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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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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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엘리자베스의 수많은 노동계급 주민을 끌어들이고, 또 이 항구도시에서 교회에 다니는 수만 명의 기독교인이 이질감을 느끼거나 그의 유대인 이름에 겁을 먹고 물러나지 않도록 아낌없이 외상을 주었다. 다만 물건 값의 30 내지 40 퍼센트만큼은 미리 내도록 했다. 그는 절대 외상을 확인하지 않았다. 자신이 들인 비용만 처리가 되면, 외상을 한 손님이 나중에 일주일에 몇 달러씩 갚든, 심지어 전혀 갚지 않든 진짜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외상 때문에 파산한 적은 없었다. 외려 그의 유연한 태도 덕분에 생겨난 주민의 호의는 그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 P62

유연장을 작성하는 것. 그것은 나이가 드는 것, 심지어는 아마도 죽어가는 것에서 가장 좋은 부분일 것이다. - P68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전신 마취를 원하는지 아니면 국부 마취를 원하는지 물었다. 꼭 웨이터가 레드 와인을 원하는지 아니면 화이트 와인을 원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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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7-0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브리맨 옛날 알라딘 정말 열심히 할 때 읽은 책인데,,,그때가 새삼스럽네요. ^^;;;

LAYLA 2021-07-02 00:34   좋아요 0 | URL
읽을 때 작중 화자의 자기연민에 화가 났는데 읽고 나서 며칠 간 자꾸 생각이 나네요. 역시 유명한 작가는 유명한 이유가 있나 봐요^^;;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