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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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ㅊ낳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엇는 일이 다른 시공가넹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매우 어렵다.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윤리에 대해서는 보편 규칙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온갖 암초 같은 딜레마를 넘어 우리가 어떤 법칙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의는 끝까지 그런 법칙과는 관련이 없는, 문화와 주관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란의 상당수는 예의와 윤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 P55

그렇다면 왜 읽는가? 왜 쓰는가? 개인적인 답변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자는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수면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깨어 있으면 졸려서 버틸 수가 없다. 아무리 즐거운 나날이 이어져도 글을 읽거나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나는 허무해진다. 그런 허무함은 짧은 몇 문장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읽고 쓰는 글은 단행본 한 권 길이는 되어야 한다. - P156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는 강박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신선한 피라면 환장는 드라큘라가 아니기에, 그 지점에서 자세한 해설을 원한다. 새로운 얼굴은 새로운 얼굴일 따름이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나타난다. - P181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에세이 작업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세계에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흘러간다는 느낌이다. 긴 장편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때 비로소 세계와 싸운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정신이 훌륭한 문학에 꼭 필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어느 쪽으로도 확답은 못하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다 이런 기상을 담고 있고, 내가 추구하는 문학도 그러하다. - P193

한때는 스티븐 스핖버그처럼 여름에는 대중적인 작품을 발표하고 겨울에는 진지한 작품을 내놓다는 식의 야무진 꿈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커리어는 스필버그쯤 되는 천재나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중성과 진중함 중에 내가 어느 걸 더 원하는지 깨닫는다. - P248

세계문학전집에 뽑힌 책이라고 해서 꼭 좋아하고 존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명단은 주기율표처럼 확정된 것이 전혀 아다. 수많은 문학적 견해가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최근 어디서 타협했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 P266

나는 문화 산업 전체, 아니 소비재 산업 전체가 지금 팬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먼저 대중음악이 이돌 산업이 되었고, 뮤지컬이 스타 배우의 팬들에게 의존하게 됐고, 이제는 휴대전화도 그렇다. 사실 출판사들도 이미 그런 기운을 느끼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무조건적인 지지, 열광, 숭배의 정반대에 있는 행위인데. 내게 책이란 비판, 숙고, 성찰의 도구인데. - P273

소설을 쓸 때마다 내 글 솜씨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함께 느꼈다. 집중력과 체력은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머지않아 흐트러질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다 더해져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게 될 거다. 그게 언제일까?

세계문학전집을 읽을 때면 작가 연표를 유심히 살피게 됐다. 거장들이 의미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쓴 것은 언제일까?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 게 53세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59세에 썼다. 스타인벡이 불만의 겨울을 쓴 것도 59세였다.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 괴테나 피카소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창조적인 80대를 보낸 예술가도 있기는 하지만...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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