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밤에 나의 할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난 한 달동안 이승에서 남은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자버리더니 조용히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이 뜸해지며 잠자던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임종 직전엔 잠깐 정신이 돌아온다고도 하던데 할매는 그냥 조용히 떠났다. 할매의 죽음에 눈물이 났지만 내가 기대했던 종류의 눈물은 아니었다. 나는 죽음앞에서의 눈물이란 상대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슬픔의 눈물일줄로만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한 세기 가까운 할매의 인생이 떠올라 서러움의 눈물이 났던 것이다. 스물일곱 손녀가 아흔 넷 할매의 지난한 삶을 생각하며 울었다. 못된 자식이나 무심한 남편이나 무엇하나 딱히 인생의 즐거움이 될것이 없었고, 인생에서 먹고 사는 것 이상을 바라지도 않았던 우리 할매.
할매 인생의 화양연화는 할배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 밥 차려줄 걱정 없이 매일 경로당에 나가 화투를 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어린 내가 할매랑 같이 살았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경로당으로 달려가 할매가 화투치는 뒤에서 놀곤 했는데 화투 점수가 우수수 날 때면 신나서 점수를 외치던 할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할매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절에 내가 함께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하지만 그 시절도 오래가지 못하고 곧 병마가 찾아와 초라한 아기새처럼 쪼그라들어버린 할매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오랜 병상생활을 하며 이젠 흔적도 남지 않아버린 아주 옛날의 기억들. 할매의 틀니, 할매의 비녀, 할매의 동백기름, 할매의 몸빼바지, 할매의 220mm쓰레빠, 할매의 금목걸이, 할매의 광 쇳대, 할매의 신주단지, 할매의 마르셀 빨래 비누...
할매의 손과 발과 얼굴이 조금씩 식어갔지만 나는 계속 손을 쥐어보고 발을 주물렀다.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은 처음인데, 할매는 살아도 내 할매고 죽어도 내 할매란 생각에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피가 식어서가 아니라 추운 바깥에서 갓 들어와 차가운 것 같았고, 내가 손을 맞잡고 있으면 금새 온기가 돌아올것만 같았다. 눈물이 났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앗다. 내가 내 삶에서 느끼는 이 무수한 고통들을 생각한다면 구십네해를 살아낸 할매는 얼마나 피곤할까. 그러니 할매는 좋은데 가서 날아다니고 좋은 거 많이 보고 잘 지내는 것이 더 좋을거란 생각에 잘 된 일이란 생각이 들고, 그렇지만 다시 못 본다니 또 눈물이 나고 그런 것이었다. 오래 살고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할매가 숨을 쉬지 않는데도 영영 이별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매, 가서 조금만 기다려라. 내도 나중에 갈게.' 종교도 없고 천국을 믿는 것도 아니지만 할매랑 나는 언제고 다시 만날 것임에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
뒤의 장례절차를 다 기록해서 영화로 만들자면 홍상수 뺨치게 찌질하게 만들 수 있을거 같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죽음을 매개로 모인 자식들의 어색한 공기,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니가 한 말 다시 말해보라며 삿대질 하며 달려드는 싸움꾼, 일 안하고 뺀질거리는 며느리, 그 옆에서 고등학생 조카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작은아빠, 조의금을 엑셀로 정리하느라 목빠지고 허리빠지는 젊은 손주들, 그리고 그 조의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지리하고 민망한 형제간의 각축전, '삼촌!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당사자도 아니면서 한번 끼어보려고 나서는 먼 친척, 운구차 뒤에 붙은 알록달록 앙증맞은 '초보운전 5시간째 직진중' 안내판까지.
오늘이 출상날이었는데 비가 와서 장화가 진흙탕에 푹푹 빠져서 고생이었지만 묘터 앞 저수지를 끼고 있는 경치 하나만큼은 끝내주었다. 우리 할매가 이리 운치를 따지는 할매였나 싶었다. 할매를 땅에 묻고 돌아왔지만 지금도 할매가 병원에 누워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할매의 부재에 대한 경계는 이리도 희미하지만 할매의 장례식을 경계로 내가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것만 같다. 할매와 함께했던 유년기의 기억들과도 작별을 해야만 할 것 같고,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아서 할매에게 보여주겠다던 그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을 이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나이가 된 것만 같은 것이다. 손녀딸이 집에 내려오는 날을 기다려서 떠난 우리 할매, 마지막까지 고마운 할매. 할매 안녕. 할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