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흠모하기




이 책의 페이지를 앉은 자리에서 한 장씩 넘기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멈칫거리며 읽어보기론 고종석, 서경식, 알랭 드 보통, 데리다, 벤야민, 러셀, 아렌트...그야말로 그냥 내가 좀 아는 네이밍에 불과했다. 12년 5개월 29일... 218명이라... 이분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이분이 고인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늘 스쳐가는 서평가중 한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듯하다. 죽어야 겨우 전달되는 진심이라니. 나도 참 무심한 독자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대신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이 분의 노고와 열정에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그것이 뒤늦게나마 내가 할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이십년 동안 하루에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마리여사가 15분에 읽은 책을 저자는 2시간 넘게 잡고 있었다고 한다. (<분노하라> 정도는 가능하겠다) 나는 속독하는 편도 아니고 책에 따라 문장에 따라 책 읽는 시간이 틀린 경우다. 얼추 에세이를 제일 빨리 읽고 장편, 단편, 인문 순으로 속도가 느려터지는 것 같다. 책이 어렵다고 꼭 늦게 읽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문장의 배열이 내 머릿속 사고의 체계와 코드가 맞으면 아무래도 익숙하니까 빠른 걸까. 쉬워도 안 넘어가는 책은 있다. 예를 들면 번역한 유명인사의 에세이 같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을 주로 담는 여행 에세이도 잘 안 넘어간다. 문제는 잡념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예전보다 책 읽는 속도는 느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속독하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요즘 들어선 책 한권 덮는데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든다. 책을 읽는 건지 인생을 고민하는 건지 생각의 확장을 막을 길이 없다. 이 책은 전화부 두께를 자랑하는 일종의 사전이라 할 수 있는데 사전을 며칠 만에 다 읽을 순 없지 않은가. 마음의 여유를 머금고 잠시 소장의 기쁨을 만끽하며 읽는다는 즐거움보다는 가졌다는 소유감을 확실히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이 이번 달 평가단 미션이었다면 어땠을까.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심정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기쁜데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어쩌면 이 책은 서평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대신 사는 동안 곁에서 오래오래 아껴두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이 책을 펴내면서 소감을 밝히는 머리말이 에필로그처럼 수록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교수가 아니어도 독자들이 흠모하고 찬양할 만한 인물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사상가를 가이드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경지일까. 여행을 다 다녀보고 그곳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가이드를 떠올려본다. 살아 생전에 임한 그의 여정이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한다.

 

 

#2. 따라하기




무엇보다, 몸이 잘 안 깨어나는 날은, 이런 모습으로 원하는 곳을 향해 발짝 다가간다는 게 자신 없어져 그냥 집에 틀어박힌다.                                                                                             -81p


어쩜, 지금의 딱 내 심경이다.


 

 

 

우리집은 경기도 어느 멀쩡한 산자락을 깎아 만든 아파트인데 가끔 폭우가 쏟아지거나 천둥 번개가 심하게 몰아치는 날이면 인터넷도 불안하고 핸드폰 연결도 희미하다. DMB도 잘 안터지고 물론 와이파이는 안 잡힌다. 심지어는 케이블 TV도 지직거린다. 몇 번 통신사에 전화하여 단말기같은 걸 에어컨 상단에 부착하여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비오는 날은 소용이 없다. 이런 날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다들 집에 있는 건지 거리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집에서 피리를 부는지 빗소리에 실려 동요 몇 자락이 들려온다. 도시에서의 고립감은 무엇으로 오는걸까. 고독하다고 고립되는 건 아니지만 고립되면 고독하다. 맥락없는 커피 한잔에 이 책은 잘 곁들여진다. 사실 지난 일요일 다 덮으려 했는데 개인적으로 온라인 테러를 겪은지라 오늘에서야 신문 삼일치를 읽으며 기운을 차렸다. 뭐랄까. 집중하기 힘들때, 그러나 그냥 있기는 한심할 때, 그렇다고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는 않을 때, 이 책은 무의식의 동무가 되어준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 ‘생각하는 일요일’이 아니고 ‘생각의 일요일’도 아니고 <생각의 일요일들>인데 일요일에 생각하는 것의 부담감을 많이 줄여준다. 일요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힘겨움을 상쇄한다. 그 남은 하루라는 일요일의 절박함을 줄여준다.

소설가는 잡념도 푸념도 이런 식의 멜랑꼴리를 가지는구나, 싶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때 읽지 않고 출간후에 읽었다. 그런데 작가가 연재를 할때 후기처럼 남겨놓는 글은 가끔 읽었었다. 정제되지 않은 듯해 보이려는 솔직한 고민 같은 것을 엿본 느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것도 가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작품이 되는 것이었다. 여백을 메우기 위해 배치된 사진이나 진짜 여백은 휴가지와도 참 잘 어울리는 전략이다. 만약 이 책이 잘되면 그건 기획과 마케팅의 승리가 아닐까. 물론 은희경의 기본 네임 밸류는 당연한 전제이겠지만.

은희경의 문장들은 잘 정제된 보석같은 느낌이 들곤하는데 이 단정감, 단아함이 꼭 모범생 작가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작가는 트위터라는 공간이 예전에도 있었다면 고독을 견뎌내고 그랬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 자문한다.

   
 
아닐지도 모른다. 이곳에서의 고독은 해소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고독끼리 다정해져 고독한 채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준다. 너도 나처럼 고독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 고독의 본질이고, 나는 그것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했을 것 같다. 지금처럼.    -75p
 
   


트위터의 시공간이 고독을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고독끼리 다정해져 고독한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말씀이 참 과학적으로 들려왔다. 트위터가 참 묘하게도 세상에 떠드는 그들과 고독을 나누진 못하지만 그냥 나란히 배열된 고독을 구경할 수는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내 위에 이외수 작가가 떠드시고 내 아래 박범신 작가가 읊조리시는게 무릇 일개 독자인 나의 잡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만 시간순으로 배열된 타임라인은 동일한 고독체의 전시장같다는 말씀이다. 내가 아무리 고독해도 이외수 작가, 박범신 작가와 다정할 순 없지만 우리가 각각 위치시킨 고독들끼린 다정해질 수 있다니. 그럼으로써 그들 작가들도 고독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니. 심지어는 그 고독의 본질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을 거라니. 미치겠다. 가끔 은희경 작가는 이런 철학적인 성찰의 지존을 보여주시는데 이번 산문들의 선물은 무겁지 않은 척하는 가벼움으로 위장된 꽤 튼실한 사념의 조직체들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 아까운 시간이지, 아무리 고독하다 울고 있지만.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여지껏 서평쓰면서 생긴 일 중에 가장 폭풍같은 사건들이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과거의 많은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앞으로의 다짐들을 조직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뭔가 옷 잘 안 벗는 여배우가 화끈하게 대역없이 베드씬이라도 찍고 온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 벗은 내 몸뚱아리가 아니고 앞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할 지가 걱정 아니겠나. 글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쓰는 이 글들이 나의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글이 곧 나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로부터 발생한 나의 것임은 틀림없다. 나의 글이 나의 모두는 아니지만 나의 모두는 나의 글인 날을 기다린다.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모든 것이 지나갈 때 우린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슬픈건 나자신조차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기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소설가가 그 근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소설가가 여전히 지식인이나 스승이어야 한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사상가를 흠모할래. 철학자를 찬양할래. 평론가를 존경할래.

그리고


소설가를 따라할래. 
이렇게 비가 끝도없이 퍼붓는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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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 평가단 선정도서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다 리뷰들을 썼던 모양인데, 저도 그냥 소장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ㅠ

근데 저는 은희경씨를 아직까지는 탑에 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내보이기에 좋은 작가? 그 정도인듯 싶어요.
오히려 한사람님의 오늘 글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ㅋㅋ

한사람 2011-07-28 22:09   좋아요 0 | URL

상상력 사전 같은 책은 리뷰쓰기 남감하죠 ㅋ
하루 이틀에 읽을 책도 아니고
이 책은 일단 두께가 백과사전이고 정말로 사전식으로 편집을 하셨네요
서평쓰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필독서라는 생각도 들구요

은희경 작가는 뭐랄까..
문장속에서 쉬크한 고민이 다시 문장으로 피어난 것이 좋아요

제 글이 좋아요??? ㅋㅋ

cyrus 2011-07-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간 나면 <책만사> 읽고 있어요. 구입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특정 학자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쓴 책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직접 그 목록에
나열된 책들을 읽어보려고 해요. 사상가들이 워낙 많아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

윗쪽 지역은 물난리 때문에 정말 난리던데 침수 피해 없으시길 바라요.

한사람 2011-07-28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
목록... 저자와 그의 작품을 한눈에 정리, 확인할수 있다. 그것도 일인데 잘 모아주셨죠

제가 사는 쪽은 이번에 큰 타격은 안입었네요
늘 경기북부 지역이 피해를 입잖아요
이번에 강남이 참 예외지만요..
덕분에 이쪽에서 강남으로 출근하시는 분들 완전 생고생이었어요 ~

마녀고양이 2011-07-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온라인 테러라니.. 무슨 일 있으셨나요?
가끔 페이퍼에서 그런 글귀들이 보이던데. 온라인 세상도 오프라인 세상과 많이 흡사해요, 그죠?

인간은 모두 혼자이고 소외된 존재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그것이 사실이기에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립되었기에 함께할 수 있는 묘한 역설... 저는 그게 즐겁답니다, 물론 이렇게 비가 와서야 진정 즐겁기는 어렵지만요.

한사람 2011-07-28 22:14   좋아요 0 | URL

좀 연루된 일이 있었어요 ㅠ.ㅠ
직접적인 가해자, 피해자 그런성질이 아니라 그냥 단순언급되는 건데도
저는 몹시 견디기 힘들더라구요..

고립되었기에 함께 할수 있는 역설, 이 말 참 멋지네요
그렇담 같이 있는다고 같이 함께 하는게 아니라는 뜻과도 상통할까요..
물리적인 형태의 동행이 꼭 동반자의 조건은 아닐지도 모르죠..

여긴 좀 비가 덜한데..그쪽은 어떤까요?

가연 2011-08-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이 진짜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는 있지만.. 한사람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요. 리뷰쓰기가 참..ㅎㅎ 개인적으로는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어서 노출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ㅠㅠ 저도 구입하고는 찬찬히 읽고 있어요ㅎ

한사람 2011-08-02 18:11   좋아요 0 | URL

얼마나 좋았을까요?
리뷰쓰기 전까진요 ㅋㅋ

선물하기도 좋고 그냥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책이던데...

안타깝네요..
 

 


#1. 고만고만하게

   이번 주는 이렇게 더위는 시작되는 거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하루건너 빨래 돌리고 널고 걷었더니 또 주말이다. 주부들에겐 반갑지 않은 아이들 방학도 시작되었다. 지난주부터 여기저기 캠프를 알아보고 방학특강 소식에 귀를 쫑긋거렸다. 언제부턴가 캠프도 다양해져서 영어, 체험학습, 역사탐방은 진부해진지 오래고 요즘은 멘토들과 함께하는 자기주도 학습이나 리더쉽, 선행학습, 논술캠프 같은 애매모호한 자아성취형 캠프가 유행이다. 들어가는 돈만해도 두세 밤 잤다하면 기본이 오십이고 일주일 넘겼다 하면 칠팔십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고 학원을 다니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학원방학인 7월말에서 8월초가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물놀이라도 한번 다녀올 것 같으면 또 그때를 넘기면 시간에 좇긴다.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들 같은 시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전국의 고속도로가 미친듯이 막히는 것이다. 그 기간엔 유치원도 방학을 한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영화관, 동네 은행마저도 엄마를 대동한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물론, 사는 게 고만고만한 우리들 이야기다.

   돈 좀 있는 집은 당연히 해외로 애들을 빼돌리고(?) 자기들은 휴가를 가거나 아니면 아이들과 럭셔리한 리조트형 여름휴가를 떠난다. 우린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시간이 맞으면 동네가 멀고 동네가 근처면 시간이 안되고 다 되면 너무 비싸고, 돈도 적당하면 과목이 맘에 안들고...이런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다니던 영어학원외엔 암것도 하지 않기로. 그대신 집 앞에(정확히는 집 뒤에)있는 도서관에 출근하기로. 별스런 대안이 아니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선 큰 결정이었다.

   도서관에 가선 보고 싶은 책을 읽고, 일정시간 선행학습을 하기로 했다.

   몇 가지 확인할 책도 있고 아이 문제집도 사줄겸 서점엘 갔다. 방학 때 풀겠다고 두 권이나 샀는데 다 풀 수 있을까. 그래도 문제집 살땐 기분이 좋다. 서점에 가면 온라인 서점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눈에 띄는 건 한 달 사이 김제동의 책이 많이 팔린 모양인지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 휴가철 권장도서코너에 황석영, 박범신, 최인호의 소설이 나란히 전시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2. 편안편안하게

    어제 박범신 작가님이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내 리뷰를 읽어주셨다. 트윗에 끙끙거리며 힘들게 리뷰올렸다고 앙탈(?)을 부렸더니 확인 차 그렇게 해주신 것이다. 내가 무거운 소설, 힘겨운 소설을 홀로 저항하듯 읽는다고 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상처받고 떠나와 있는 내 심정을 들킨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혼자서 한잔 해야겠다는 넋두리도 ㅠ.ㅠ) 소설 읽고 리뷰를 많이 써왔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내 리뷰를 읽고 직접 답을 해준 건 처음이었다.(읽어주실 줄 알았으면 더 공을 들일 껄 그랬나 싶기도 했다 ㅋ) 누가 쓰라고 해서 누가 보겠다고 해서 혹은 어떤 마감이 있어서 쓴 리뷰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은 이런 소설을 잘 읽을 것 같지 않아서 오기부리듯 작성한 리뷰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내 글을 읽고서 답을 해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더랬다. 시인은 자기 시를 외우는 독자가 평생 한명이라도 행복하다더니 어젯밤은 내가 리뷰로 얻어낸 그 어떤 성과보다 기쁘고 가슴이 벅찼다. 바보같이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웃겨 보일 것 같아서 꾹 참고 있다가 결국 이렇게 여기서 떠들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이런 책이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서점가면 제값내고 꼭 한두권 씩 책을 사게 되는데 오늘은 이 책이 걸렸다.


 1.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박진, 김남혁, 장성규 / 자음과 모음


이 책에는 문학이 문화산업의 일부가 되고 독서에 미치는 마케팅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에 대한 걱정과 비판도 담겨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떤 소설을 선택해야 하는지, 바로 지금 좋은 소설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매번 다시 묻고 고민해야만 했다. 문학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들은 이렇듯 별로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 소설이 이끌어 내는 다양한 생각들과 진지한 고민들이 여전히 우리에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그래도’와 ‘그래서’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처음이 1Q84에 대한 토론인데 평론가들은 이런 평가를 내리는구나를 엿보면서 선채로 열페이지 정도 빠져들었다. 대놓고 문학동네의 상업주의 마케팅을 거론해서 흥미로왔다. 그러니까 평론가들끼리의 좀 자유로운 방식의 수다(그러나 기록을 전제로한)로 느껴졌다. 다른 소설을 말하는 방식도 솔깃하다. 주말을 견디는 확실한 준비 하나.  

    이웃분 중 한분이 내게 서평쓸 때 평론가의 글을 많이 읽으시냐 물어보았다. 난 평론가의 글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도통 내가 뭔 말하는지 모르기만 하라는 식의 현학적인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세계)의 차별화된 특권이거나 공부많이 한 자 특유의 습관인 것 같다. (그렇게 배워왔고 써왔으니) 하지만 독자로서 가장 맘에 안드는 건 빈번한 수동태형 문장과 이중 삼중 부정형의 문장들이다. 조지 오웰이 (같은 서평자로서) 대놓고 아주 잘못된 글쓰기 방식이라고 지적한 방법들에 속한다. 특히 평론가로서 등단한지 얼마 안되는 분들의 글이 더욱 그렇다. 가끔 계간지에도 그런 평론이 많은데 무슨 자기들 박사논문 읽는 기분이 들어서 사정없이 덮어버린다. 대신 좀 오래된 평론가의 글들은 자기문체가 확립되어 있어 산문으로서도 유려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되어 부러 외면하지는 않는다.(물론 부러 택하지도 않지만 ㅋ) 지난주에 평론가 김주연의 <문학, 영상을 만나다>라는 책을 우연히 접했는데 이분 글이 쉬우면서 현학적인 내공을 편안하게 전달하는 것 같아 맘에 들었던 문장을 옮겨본다.



 2. <문학, 영상을 만나다>, 김주연/ 돌베게


로고스 중심주의란 로고스를 진리로 삼는 태도인데, 언어,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를 중시하는 하이데거의 담론에 데리다가 근접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데리다는 이의를 나타냄으로써 경계의 초월/위반문제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 견해란 우리가 보통 ‘지금’이라고 부르는 ‘현존’presence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우리의 ‘앎’, 곧 지식의 기반을 흔듦으로써 실증주의의 견고함은 물론, 현상학의 섬세함에 모두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언어라는 질서는 극도로 불안해지며, 언어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의 문체가 지닌 고유성도 흔들린다. 의미와 문체가 모두 동요한다. 언어의 역할과 기능에 관심을 가진 데리다였으니 결과적으로 언어의 내부를 교란시킨 것이다.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서술을 통해 서술할수 없는 것을 암시한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그것과 바로 상통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그 연원으로서 계몽주의를 극복한다는 역사적 당위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이성의 맞은 편에 그 와해 이외의 뚜렷한 표상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파악한다.

  
   데리다의 ‘해체적 글쓰기’를 비평한 글인데, 한숨을 쉬며 궁극적으로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지난달 평가단 미션이 <데리다 평전>이었는데 이 글을 보고 이와 어렴풋하게 비스무리한 생각을 하긴 했으나 이상한 방향으로 결론을 낸 내 자신이 퍽이나 한심스러웠다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득을 한다는 것.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야 가능한.

   그런가하면 중견 평론가들 중에 편안한(하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는 남진우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같은 수준(?)이면 소설가의 산문읽듯 부담안가지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이 책이 나를 이끄는 이유는 결론을 내는 방식인데 대부분 객관적인 이론이나 철학자, 혹은 누구의 무엇을 잣대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렇게 하기까지 물론 엄청난 공부를 했을 터이지만.



3.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남진우 / 문학동네


우파가 됐든 좌파가 됐든 이 나라에선 사적인 것을 희생하고 공적인 대의를 위해 이바지 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왔고 소속원들에게 그것을 강요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 대중이 행진하는 방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고종석의 소설은 우리에게 길들어진 사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사물이나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느슨하고 평이한 듯하면서도 읽어나가다 보면 묵직한 감동과 함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고종석의 이번 소설집은 최근 우리 문학이 거둔 중요한 수확이라 말한다.


고종석의 <제망매>에 대한 결론을 내는 방식이다. 역시 어려운 단어, 이해 안가는 합성어, 부담스런 수동태는 찾아 볼수가 없다. 고종석 작가는 현재 연재소설을 쓰고 있는데 가끔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늘 그래왔듯이) 올려주신다. 그걸 '발상의 전환'이라고 정의내린 남진우 평론가도 근사하고.

 


#3. 시원시원하게



 

 

 

 

 

 

 

 

 

 

 <퀵> - 출연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고창석 / 감독  조범구

    별 생각없이 별 기대없이 본 영화가 역시 대박이다.  

   화끈, 시원, 쾌속, 폭발 !!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입을 벌린 채로 영화를 보고 나왔다. 두 명의 주연배우들을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해운대>의 바캉스 커플이었다. 강예원은 <하모니>의 슬픈 역보다 코미디가 몸에 맞는 배우같았고 형사로 분한 고창석은 날로 비중이 높아지는 듯하다. 거의 주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인권도 매번 웃겨서 죽을뻔 하는 배우중 한명이다. 두어 번 박장대소를 책임져 준다.

 




 

 

 

 

 

 

 

 

 

 

    난 책의 경우엔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데 영화는 대충 넘어간다. 재밌게 봤으면 몇군데 의아해도 그러려니 한다. 연기력, 연출력, 시나리오 등등 분석해가며 별점 주는 건 내 몫은 아닌 것 같다.(그럴 실력도 안되고 ㅋ) 이 영화도 흠잡고 싶지 않다. 이 정도면 대만족 케이스에 속한다. 왕추천 이올시다, 라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돈 만원도 안들이고 두어 시간 이처럼 스트레스 날려버릴 꺼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해리포터 안보길 정말 잘했고 딸아이와 하이파이브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예전엔 자주색 세피아같은 한물간 자동차만 폭파하더니 우리도 사정이 많이 좋아졌는지 불타는 자동차 종류도 다양해졌다. 스턴트맨들 고생이 많았겠다. 예고편으로 7광구를 보여주던데 분위기가 괴물분위기였다. 8월이 기다려진다(너무 기대하면 실망인데 ㅋ)  

 

이번 주말도 꽤 알찬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야 휴가를 가건 캠프를 보내건 우리는 이렇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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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22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어디다 올리면 박범신님이 직접 보실 수 있나요?
부럽삼. 근데 소설 읽기의 자세는 또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왠지 끌리는군요.
퀵이 그렇게 재밌다구요? 나두 그런 빨려들어갈 듯한 영화 한편 보고 싶군요.
주말 잘 보내요.^^

한사람 2011-07-22 20:06   좋아요 0 | URL

트윗에 떠들었는데 박범신 작가님이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물어봐주셨어요..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면서요 흐흐흑...
(황송하게도 저를 팔로 해주셨거든요)
그렇더라도 뭐 저 같이 널리고 널린 독자중 한 사람에게까지 답해주실까 싶었죠..

사이트 갈켜드리면서 이 잡문들을 어떻게 하나..얼굴이 확 달아올랐어요
(그리곤 벌받는 심정으로 회신을 기다렸어요)

<그래서,,,> 이 책 재미나요. 솔직하고 새롭고..

<퀵>은 진짜 대박 !!!!!
전 요즘 이런 영화가 좋아요. 보고나서 생각나는건 별로 없지만
한여름에 딱인 영화여요^^

스텔라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무릎도 관리 잘하시구요~

stella.K 2011-07-22 20:12   좋아요 0 | URL
방금 문발리 그 동네에서 왔어요.
축하해요.
저는 잘 못 썼는데 그런 줄 알면 그쪽에 올리지 말걸 괜히 올렸다는 생각이 들어요.ㅠ
모처에서 백가흠 서평 이벤트도 미끄러지고, 기타 등등...
이래저래 이번 주말은 별로일 것 같아요. 흐흑~

2011-07-22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7-2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댁은 해리 포터에 빠져있는 집은 아니신가봐요.
저는 해리 포터 전권을 두번 읽고, 해리 포터 dvd를 몽땅 가지고 있으면서 딸아이와 세번 이상 보고
이번 마지막 편 보기 전에, 전체를 한번 더 훑었더랍니다. 거기다 해리 포터 마지막 편 출판되었을 때
스네이프 교수로 인해 울고, 끝이 났다는 사실에 또 울고. 이번에 해리포터 영화 마지막 편을 보고나서
딸아이와 10년간 같이했던 무엇이 끝났다는 아쉬움에 또다시 서운해하고..... ^^, 아주 오버에 오버죠? ㅎㅎ

하지만 아무리 외국 것이라도, 저희와 오랜 세월을 했던 추억이 남아 서운해요.. 아주~ ㅠㅠ
한사람님 댁은 따님과 '퀵'을 즐겁게 보셨다니, 그것도 좋긴 하네요. ^^

한사람 2011-07-22 21:18   좋아요 0 | URL

추억이 깃든 소중한 영화네요..
영화이상의 인생이구요^^

저는 아이따라서 본 해리포터 영화중 두어편은 기억조차 나지가 않아요 ㅠ.ㅠ
참.. 그럴 수도 있더라구요

<퀵>은 기대를 안하고 시간때우기용으로 본 것이었는데
진짜 시간을 알차게 잘 때웠답니다.
집에서 예능보듯이 너무 크게 웃어버려서 창피했어요 ㅋㅋ


루쉰P 2011-07-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축하드려요. ㅋㅋ 박범신 작가님이 직접 댓글도 남겨주시다니 말이죠. 작가가 리뷰에 글을 달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일까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데요. 작품을 쓰는 필자도 머리가 부서져라 쓰겠지만 제가 볼 때는 한사람님의 리뷰도 그에 필적한 노력을 하며 쓰시는 거라 느껴져, 거기에 대한 댓가(?)를 받으신 듯해 무척이나 흡족하네요.

평론가의 글들을 싫어하신다는 말에 저도 대공감합니다. 조지오웰의 말처럼 자신들만의 특권의식을 위해 쓰는 듯한 진짜 뭔소리인지도 모를 소리를 지저분하게 늘어놓는 평론가들의 책은 정말 저는 싫어요. 물론 저보고 이해를 못하는 지식이 짧은 사람이라고 욕을 평론가들이 해도 뭐! 내가 이해 못해서 기분 나쁜 건데요. ㅋㅋ

하여튼 저는 한사람님의 리뷰가 참 좋은 것이 누가 봐도 그리고 배우지 못해도 이해를 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아요. ^^ 전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말이죠. 나중에 한사람님이 책을 내시면 제가 리뷰를 쓰고 작가가 되신 한사람님이 제 리뷰를 보고 칭찬을 해 줄지 일도 있지 않을까요? 희망은 사람이 살아갈 힘인 것 같아요. 화이팅! 한사람 작가님!!

한사람 2011-07-22 23:49   좋아요 0 | URL

가끔 제가 작가가 아니더라도 작가가 된듯한, 작가만큼 기쁜글을 남겨주시는 루쉰님^^

'그에 필적한 노력'이라는 부분에서 울컥증이 도지네요..
머리터져라 쓰신 작품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나름 머리터지면서 쓴 글..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누가 알아주니 더 좋은 것이네요

루쉰님은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어요
희망이라는 것도 결국 절망의 허상이지 싶다가도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고마운 마음으로 잘 간직할께요^^

cyrus 2011-07-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작가분께서 직접 서평을 읽으셨다니, 대단하세요 ^^
저는 이상하게 평론을 잘 안 읽혀지더라고요. 평소에도 안 읽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요 ^^;;
아직 평론의 묘미를 알기에는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요? ㅎㅎ

한사람 2011-07-23 22: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우연이 운좋게 진행되었어요

평론가들의 글이 대체로 어렵긴 하죠^^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들긴해요.
철학자의 글은 어려워도 기분나쁘지 않은데 평론가의 글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어떤 작품을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고요
평가를 하려면 그렇게 될수 밖에 없지 않을까..싶기도 하구요

그래도 제가 위에 언급한 분들은
베베 꼬지 않고 그래도 페이지 넘어가게는 할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
 

 

 

형.

내일이면 이십년이네요.
세월의 힘은 이런 걸까요.
언제나 숫자를 말하고 나면 갑자기,
웃으면서 눈물이 나죠.
그제서야 시간의 단위를 통과해 무언가 쌓아왔음을, 아니
무언갈 버려왔음을 깨닫는 순간이니까요.

 

기억나나요.
1991년 7월 19일.

휴가를 먼저 다녀오는 편이 좋겠다고 한건 형이었어요.
형이 내 사수였으니 쫄병도 휴가를 보내라 한 것도 형이였죠.
그때 나는 남아서 형의 자릴 지키려했습니다.
형이 쓴 육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형이 앉던 자리에 엉덩이를 겹쳐가며
형의 의자에 내 등을 슬며시 기대고 싶었었죠. 

나는 형이 쉬러간다는 면도날을 그 시간으로 막아보려 했습니다.
그게,

옳은 것이잖아요?

우린 옳지 않았었고 그래서
연대할 수 있었어요.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어린 나도
그쯤은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어요.

내가 몰랐던 건
살면서 그런 기억은 그 사람의 일생을 평생 못 견디게 하는 시간이거나
혹은
그걸 견디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는 거여요.

인생이, 그렇잖아요?
못 견딘다 죽겠다 하면서 실은 그 때문에 산다는거.

그때 나는,
형이 사는 동안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아마도 형은,
그 믿음 때문에 나를 떠날 수, 아니
떠나지 않고도 헤어질 수, 아니
헤어지지도 않고도 안 만날 수, 아니
안 만나고도 잊지 않을 수...
어쩌면 이렇게 같이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 우린,
지난 이십 년간 한 번도 헤어진 적은 없는거지요.
그렇게 믿고들 사는 것이죠.
그래서 연락도,
만남도 필요없는 것이죠.

그러나 가끔은 나도
형이 한 남자의 육체로서,
회색빛 감성의 실체로서
오늘을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름이고 휴가가 시작되는 오늘 같은 날. 
 

그때 우리가 2호선 무슨 역에서 헤어졌었나요.
다음 내리실 역이 오른쪽이었나요, 왼쪽이었나요.
 


아,

우린 아무 역에서도 못내리고 
그래서 아무 역에서나 내릴려고 했던가요.

너한테 오늘이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런 말을
혹시 그날이 너에게 상처가 되었니? 그런 질문을 내게 한 것은 기억하지 말아요.
그 순간 이후의 형과의 모든 일들이 내 상처가 되란 법은 없잖아요, 안그래요?

그래서 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말아요 이런말을 하지 않아요.
그건 이를테면 상대가 이미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확인사살과 마찬가지니까요.

만약 내가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휴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훗.
그런 유치한 가정법을 이십 년동안 해왔다 말하진 않을께요. 나도,
콧대는 좀 높았잖아요?

아니죠. 나도
모질고 독한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 형은.
아닙니다. 이건 아니에요. 이런 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죠. 그렇죠?

그러니 우리 사는 동안은 절대로
만나지 말아요. 누가 알아요?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늘 그래왔듯이 반대로 이루어질지요.

그때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니 우린 꼭 이렇게 되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누가? 
 

 

형이 그래줘요.
그땐 그렇게 말해줘요.
그런 말은,
내 몫이 아니야.
내 몫은 처음부터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다 돌아서는 것이었어. 

우린 옳지 않았으니까.


, 형이
늘 떠나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나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린 올해도 휴가는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오늘을 나 말고 떠올려줄 단 한사람.
그게 형이라는 걸
그걸 알고 있어서 나는 오늘도 내일을 견딜 수 있다는거 

알리고 싶었어요

다행이죠.


그렇죠?






이십년후 여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한 형에게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를 기억하는 형에게

형을 가장 오래 기억할 한사람이.






아침에 삼십대 후반의 미혼여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그들 중 반은 1인 가정으로 남게 되며, 그렇게 혼자 살다가 죽을 확률이 많다는 결론이었어요. 뭐, 인생의 목표가 결혼이 아니라고 하면서 마치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서 자식을 낳는 것이 여성의 표준행복이다 말하는 것 같아 화가 나더라구요. 결혼해봤죠. (다른 것도 해봤지만 ㅋ) 아이도 낳아봤구요.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았으면서 결혼하지 말고 애 낳지 말고 능력있으면 혼자 편하게 살아라, 이렇게 떠들어도 봤죠. 그게 실은 능력이 없어서 능력이 안될 것 같아서, 계속 능력을 알아 줄 것 같지는 않아서 결혼한 거 맞거든요.

남은 생(?)을 누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해봤어요(?)

은희경 작가는 소설쓰기 전에 꼭 손톱을 깍는다고 해요. 손톱이 길면 자판을 잘 못친다구요. 습관 하나 같다는 게 이렇게 반가울수가 있나요? (실은 습작강의 노트 준다고 해서, 적립금 3천원이라고 해서 예판구매했지만 ㅋ)  책이 달려오는게 꼭 그걸 쓴 작가라도 달려오는 것 마냥 설레잖아요

 

이거이거 예판중독 아닐까요??
암튼, 저는 이 책이 달려온다는 문자를 손꼽아 기다려요.

이번주 일욜은 이 책으로 생각좀 할겁니다.
다른 생각을 할까봐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랍니다.  

(아 오늘이 월욜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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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어도 목요일 날 오지 않을까요?
전 와도 당장은 못 읽을 것 같기도 해요.
결혼은 남들이 다 할 때 못하고, 안해서 비슷한 말들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
꼭 남들할 때 따라서 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기에 늦은 나이는 결코 없는 거죠.
아, 혼자 살다가 죽은 거 정말 끔찍할 것 같아요.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지.ㅜ

한사람 2011-07-19 08:4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았는데,
사람들은 남들 할때 무얼 해놓고, 남들처럼, 남들과 같이 비슷하게 살았기 때문에
남들도 싫어하고 그런 자신도 싫어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남들처럼 살아온 인생은 특색없고
내세울게 없는 것 같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장 남들이야기를 많이 하고
남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결혼이나 육아, 아이들 교육은 나 혼자 하는게 아니다 보니
바로 그런 남들의 영향에 가장 치명적인 지배력을 갖게 한 것이구요.
그런데 여성들이 육아에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인구가 줄어드는 이 시점에 보수언론은 여성들이 결혼해야 한다며 종용하는 것이죠
권력은 남성의 기득권에 맞춰져있으니까요

흐름은 대충,
일본에 독거노인 증가 - 고독사 증가 - 한국도 고독사 증가 - 출산율 감소 -
여성의 결혼기피 - 골드미스가 평생미스된다 - 혼자죽기 싫으면 결혼권장-

이런식인 것이죠 ~

니들이 애를 낳아야 인구가 느는데 늙어서 혼자 죽기 싫으면 지금 결혼하시오,
이런 결론이라는 말이죠.

대부분의 직장맘들이 아이가 초등생이 되면 포기 하고 마는데
그걸 두눈 뜨고 확인한 동생들이 미쳤다고 결혼을 하겠냐구요 ~

이 나라는 여성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다 잘되는 길이라는 정서를 아직 못버린 나랍니다
(아침부터 흥분 ^^)

stella.K 2011-07-19 10:2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아침부터 흥분하지 말아요.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을 떠나서
난 본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언젠가 한번쯤 해 보고 싶고,
아이도 낳아봤으면 어땠을까 이제와 하게 되는데
그걸 못해봤다는 게 아쉽기도 하거든요.
지난 거 후회하고 아쉬워 해봤자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겠죠.
독신 좋다 이거죠. 만족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꼭 독신이 고독하고 불행하다. 이것도 편견 아니겠습니까?^^

2011-07-19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9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5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바보같이.


비가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울한 핑계를 완벽하게 댈 수 있으니까.

지난 주말 이 년 만에 귀국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고 전화너머 잡음도 꽤 들려왔다. 이년 전, 떠나기 전에 꼭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우리는 여의치 않았고 그냥 서로 약속만 덩그러니 버리고 말았다. 만나지 못했어도 그때 헤어지기 직전의 그리움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자주 만나온 것도 아닌데 그땐 그 헤어짐이 많이도 안타까왔다. 아마도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우린 그때 어떻게 되어있지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슬픔이었던 것일까.

나는 지난 이 년 동안 모든 게 좋지 않았고 그 친구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 이년 동안 나는 그 전에 내가 쌓아 놓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그 친구는 같은 기간에 나와 반대인 것 같았다. 그건 그냥 아주 오래된 친구끼리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서로간의 기대치, 그것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별 볼일 없어졌으므로 괜한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친구의 목소리를 정말 다시 듣게 될까봐 나는 두려웠다.

혹시나 비가 그치면 그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할지도 몰라 나는 쇼핑을 했다.

여름 샌들을 사고 원피스를 사고 목걸이를 샀다. 친구가 근처로 온다하면 나는 늘 그렇게 입고 다녔던 것처럼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갈 것이고 친구는 아마 여전하구나, 이렇게 웃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제발 전화를 하지 말기를, 아니 한번은 전화해주기를, 번갈아가며 선택했다. 바보같이. 트윗에선 모르는 한분이 이런 내 심정을 위로해주었고 나는 특별히 고맙다 답하지 않았다.



#2.  부질없이

오늘같이 감정을 많이 소모한 날엔 내 자신을 미워한다. 이곳이 좋아지려 하는 것에 대체 무엇이 좋은 건지,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거울아, 거울아. 너는 무엇이 좋아. 여기가 왜 좋아. 부질없이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걸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운 것일까.

누군가 내 글에 답을 해주는 것이 기쁜 것일까.

남들이 메기는 나의 가치는 그 사람들의 가치인 것이지 내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는 좀 진부하면서도 논리에 안맞아 보이는 메일을 한통 받았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티셔츠를 사려고 했으나 자세히 보니 사서 입을 것 같지는 않길래 마음을 접은 내 자신에게 한껏 욕을 해주었다. 자신을 자학하면서 그것으로 윤리성을 회복하려는 위선에 총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모두 비 때문이라고, 비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슬픔이 아니라 우기면서 나는 아직 남은 저녁을 계획한다.



#3. 진부하게

답이 좀 뻔 하다 생각되는 에세이집을 붙들고 이런 위로야 말로 늘 가던 떡볶이집처럼 정겨운 것이다 생각했다. 새로운 위로란 무엇인가. 누구든 뻔한 그 대답을 듣고 싶어 위로를 바라는 것 아닌가. 속담처럼 격언처럼 나는 진부한 위로를 기다리고 그것을 사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상은 진부했고 거의 모든 사람 또한 그 일상을 못 넘었다. 간혹 넘은 사람도 진부함을 지나왔다. 
 


꿈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을 품고, 생각하면 즐거워야 한다. -15p

결국은 그 어떤 것에 시간을 얼마나 바치느냐에 달려 있고,
시간을 바치는 그 시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17p


나는 주도면밀한 잔머리를 잡아 낼 수 있다. 상투적인 위선을 재빨리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보다 내가 그렇게 해보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세계에서 어울려 살아가려면 적당한 잔머리와 위선은 어쩌면 훌륭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 나 좋다고 나 알고 싶다고 러브콜 보내던 처자가 예전에 내가 했던 잔머리와 위선을 똑같이 복제하여 사랑을 받으려 한다. 아니 사랑받았다. 좋을 것이다. 나는 그것의 끄트머리도 대충 짐작이 가는데, 그래서 아팠고 슬펐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4. 정면에서

나가수의 약발이 떨어질지 알았고 1박 2일과의 정면도전에서 패배할 줄 알았다. 잔머리였다. 정면승부는 잔머리의 승부와는 달라야 한다. 나 역시 잔머리의 승부는 하고 싶지 않다. 좀 알아준다고 조금 알려졌다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줬다고 순간의 성취에 들뜨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누군가 어떤 이유로든 나를 공격하거나 돌려서 비난하거나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든 안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일일 연재, <해피패밀리> 6회 中  http://cafe.naver.com/mhdn/27657 

 
   


오늘 아침 나를 울린 문장. 그러나 나는,

어짜피 위선자인거 크게 되는 위선자로 살고 싶다.
위선도 커지고 커지면 예술이 되는 거 아닐까. 창조의 환희로 거듭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다시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288p


 

 

 

글 안 쓰는 위선자보다 글 쓰는 위선자로 살 것이다.
그래야 내 위선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하게, 진부하지 않게, 진지하게, 진심으로, 잔머리 쓰지 않고.  

나만을 위해.

 

이제 좀 친구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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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7-1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위선이라 하시든 아니든 간에 저는 한사람님의 페이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인데요.
아마...... 중간에 인용하신 데미안의 문구처럼 '제 자신 안에도 비슷한 것이 들어앉아' 있어서
같이 괴로와하고 있나 봅니다. 개인 심리학에서 아들러가 인간의 삶의 목표는 '우월의 추구'라고 하더군요.
목표를 삼고 노력하고 발전하는 것도, 모두 열등 의식 때문이라고.

어쩌면 말이죠, 위선이라고 괴로와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 비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려볼까요...

한사람 2011-07-13 08:28   좋아요 0 | URL

그래요..?
생각의 가공을 거치지 않아서 그럴까요? ㅋ
사실 이런 글들을 이곳에 써오진 않았어요
(이곳은 오로지 리뷰만 올렸었죠 ㅋ)

'우월의 추구'는 몹시 공감가는 개념이네요
그 바탕이 열등이라는 것도요

사람이 글보다 더 예쁜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사람이 글만 못하다는 말이죠
대개 글 잘쓰는 사람을 직접 겪어보면 그의 글만 못하다고 하네요
글과 사람이 똑같기가 참 힘들죠

그말이 참 슬프면서 나라고 별 수 없지, 싶어서 쓴 글입니다^^
(헉, 스스로 글좀 쓴다는 이야기?? ㅍ.ㅍ)

달사르 2011-07-1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소설의 주인공이 저런 생각을 한다는건 고종석도 저런 생각을 한다는 의미인데..그럼에도 고종석은 글을 쓰는구나..저런 고민 속에서도 글을 쓰는구나..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사람님도, 고종석도, 모두 글을 쓰는 위선자라도 하고픈건.. 그만큼 글이 좋고,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생각해요.

한사람 2011-07-16 00:31   좋아요 0 | URL

전 제가 위선자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ㅠ.ㅠ
그래서 남의 위선을 귀신같이 포착해요
내가 가진거니까..

특히..
저 사람은 내게 호감가졌던 게 아니고..
나를 진심으로 대했던 게 아니라는 느낌은 거의 백프로여요 ㅠ.ㅠ
 

 

#1. 셀렙과 표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더욱 유명해진 김난도 교수는 소비자학과 교수이다. 현재 주요 일간지에 트렌드 노트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8/2011070800979.html


그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1’에도 언급된 바 있지만 유명인, 연예인을 뜻하는 셀렙(celebrity의 준말)은 단순한 추종에서 지나 어엿한 우리 욕망의 아바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로 발생한 경제효과가 곧 우리사회의 소비자 트렌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현빈 운동화, 고소영 백, 지드래곤 귀걸이, 김연아 망토등 그들이 착용하고 노출된 상품은 그대로 완판되거나 세간에 회자가 되곤한다. 셀렙이 소비행위의 표준이 된 시대인 것이다.

최고인 그들이 선택하는 제품은 최고일 것이라는 믿음이 먼저이고 그렇다면 나도 그것으로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의 이미지는 얻을 수 있겠다가 그 다음이다. 광고주는 이 트렌드를 제일 빨리 파악했기 때문에 미니시리즈엔 PPL광고가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앞서 ‘이 드라마는 PPL광고를 포함하고 있다’는 자막을 확인했다손 치더라도 한번쯤은 주인공이 마신 음료수를 충동구매할 확률이 많아진다.

<트렌드 코리아 2011>의 'Tell me, celeb' 편에서는 셀렙을 닮고 싶어하며 셀렙을 따라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그들의 결정이 내가하는 의사결정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처럼 최고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의미한다.

패션에만  해당될까 싶었는데 그 분야도 다양해졌다. 현빈이 잠시 들고 있던 소설, 현빈 서재에 꽂혀 있던 시집들은 그대로 셀렙의 최신트렌드가 되면서 출판사들을 잠시나마 기쁘게 한 적도 있다.  현빈이 진짜 그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예로 유명작가가 어떤 책을 추천하는 경우보다 마케팅 파워는 막강했음이다. 운동화야 신으면 그만이지만 이 참에 나는 그 책들을 산 시청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 <천재토끼 차상문>은 재미가 있으셨는지.


#2.  파워북로거도 셀렙일까


유명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얼마전 네이*의 파워 블로거의 거대 수수료가 논란이 되면서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파워 블로거들을 향한 비난과 질타, 대안마련이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이 불똥이 서평을 쓰는 파워 북로거에게 까지 튀어 오늘 아침 내가 아는 블로거의 닉네임 두어 개를 신문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성석제 작가는 젊은 작가상 심사를 맡으며 ‘누가 누구를 누구 마음대로 젊고 늙은 작가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음의 기준을 생산의 힘으로 본다면 수긍할 만하다’고 한 바 있는데 누가 누구를 누구 마음대로 파워 북로거라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워의 기준을 수익의 힘으로 본다면 절대 수긍하기 힘들다가 내가 빗대고 싶은 말이다.

일간지의 한 논설위원은 말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10/2011071001260.html

   
 

작년 1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물만두'라는 필명을 가진 서평(書評) 전문 블로거의 부음을 전했다. 2000년 3월부터 인터넷에 쓰기 시작한 리뷰가 무려 1838편. 그의 전공은 추리물·SF 같은 장르소설이었다. 이 분야 마니아 중에 '물만두'의 리뷰를 한 번쯤 읽지 않은 독자는 없다고 할 정도다. 그는 리뷰를 하고는 별 표로 점수를 매겼다. '물만두'가 별 다섯을 주면 출판사는 마치 큰 훈장을 받은 듯 신문의 책 광고에서도 이 사실을 빼놓지 않고 자랑했다.

 
   


논설위원은 처음에 알라딘의 물만두 님을 언급하며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을 비유하는 내용으로 글을 시작한다.


   
  한 출판사는 얼마 전 중국계 미국 소설가 이윤 리의 장편소설 두 편을 동시에 출간했다. 하나는 이미 나왔다가 절판된 구작(舊作)을 새로 찍은 것이고 하나는 신작을 번역해 낸 것이었다. 처음엔 신작 쪽이 훨씬 많이 팔리더니 언제부턴가 구작이 더 팔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나중에야 젊은이들한테 인기있는 여성 소설가가 트위터에서 구작에 대해 "너무 감동적이어서 밤을 새워 읽었다"고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 역시 이외수 작가가 강력추천한다는 말씀 하나만 믿고 생판 모르는 작가의 책을 주문한 적이 있다. 내가 팔로잉 하는 작가가 추천한다고 하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어볼 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책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도 책에 한한한 셀렙을 그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경우이다.


   
  온라인 공간에 쓴 서평을 통해 출판시장의 독자들을 몰고 다니는 필자를 '파워 북로거'라고 한다. 북(책)과 블로거 합성어다. '폭주 기관차' '파란 여우' 같은 필명으로 50~60명의 고수가 활동하고 있다. 소장 학자나 대학원생, 문인에서 평범한 회사원, 자영업자, 약사, 통역사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웃긴 건 인터넷 신문에는 ‘폭주기관차’인데 종이신문에는 ‘바람구두’로 바뀌어 있다. 간밤에 무슨 이유로 닉이 바뀌었는가. 혹 해당 논설위원도 닉네임의 노출로 인한 영향력을 미리 확보한 것은 아닌가. 한눈에 거슬리는 문구는 독자들을 '몰고 다니는'식의 표현인데 누가 누구를 어디로 몰고 간다는 것인지.


   
  '로자'라는 유명 북로거는 인문학 분야가 주전공이다. 그의 서평 블로그에는 하루 1000여명이 방문한다. (그가 쓴 리뷰는 당연히 해당분야 책 판매 부수에 무시못할 영향을 준다) 다음의 북카페 '비평 고원'처럼 인터넷 서평꾼들이 커뮤니티를 이뤄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 카페는 개설 11년 만에 회원수 1만2183명이 됐다. (이 카페는 개설 이후 11년 동안 40여만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파워 북로거들의 초기 평가와 입소문은 자기들이 낸 책이 베스트셀러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가 될 수 있다.  
   


괄호 안에 쓴 내용은 오늘 아침 추가된 글이다. 마지막 문장은 삭제되면서 ‘무시못할 영향’으로 대체되었다. 로쟈님의 서재는 나도 자주 가는 편인데 이 글이 그의 영향력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한 출판 잡지가 파워 북로거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출판사에서 대가성 서평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2명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가를 받고 원하는 대로 서평을 썼다"는 응답자도 4명 있었다. 인터넷 북로거들의 서평이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그들이 이해(利害) 관계를 떠나 객관적인 리뷰를 한다고 독자들이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깨지면 출판시장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걸 출판사들은 알아야 한다. 파워 북로거들도 자기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  
   


로쟈님에 덧붙여 결정적으로 거슬리는 건 이 짧은 논평의 결론이다. 같이 실린 그림에서도 상징되듯이 뒷돈 챙기면서 아이패드로 추천을 작성하는 북로거의 뒷모습이 결론인 것이다. ‘파워 북로거들도 자기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는 충고의 말씀도 맞는 말이긴 하나 썩 기분좋은 뉘앙스는 아니다. 이 글을 접한 일반 독자분들은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순수성 하나만 믿고 그 사람의 추천을 신뢰해왔는데 일개 서평자들도 (수수료 챙겨온 파워블로거처럼)‘출판사의 대가성 청탁’의 상업적 영역에 위치해 있음을 사실상의 결론으로 단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파워북로거의 파워는 무엇을 의미하나


당신은 서평자인가? 독자인가?

1. 독자라면 평소 서평을 훑어보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책을 주문한 적이 있는가?

2. 서평자라면 혹 출판사의 부탁을 통해 적정한 대가를 받고 서평을 작성한 적이 있는가?

3. 내 추천이나 리뷰를 읽고 책을 구매한 사람이 'thanks to'하여 적립금을 받아 본적이 있는가?


서평자와 독자 모두에 해당하는 내 경우 1번은 예스. 2번은 노. 3번은 예스

나는 파워북로거는 아니지만(물론 내 기준에서) 출판사로부터 서평을 부탁드린다는 명목으로 받은 책은 딱 두권이다. 내가 유명하거나 구매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연히 내 (자사 책의)서평을 읽은 편집자분이 예고도 없이 책을 보내왔거나 출간된 신간이 있는데 감사의 뜻으로 보낸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분들은 나의 서평을 담보로 책을 보냈다기 보다는 사실 감사의 성격이 더 많았고 나는 서평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보내주신 책들이 모두 퀄리티가 있는 작품들이었고 서평을 쓸 때도 그들의 청탁(?) 때문에 안좋은 점을 말 안하거나 좋은 점을 부풀리거나 할 성격의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좋은 말하기가 민망한 작품이었다면? 기껏 책 한권 받으면서 내 양심을 팔아야 하나를 생각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마음을 가라 앉혔을 듯하다. 그리곤 덜커덕 받아버린 내 책 욕심에 후회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작년에 타 온라인 서점의 파워블로거 한분이 나에게 신간으로 출간예정인 ** 출판사의 책에 대한 서평 의뢰를 당신도 받았냐고 물어왔다. 나는 파워블로거도 아니었고 그런 관행이 있는지도 몰랐다. (파워블로거들끼린 자신이 출판사로와 해당서점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느냐의 여부도 자존심에 관련된 사안이더라) 그 블로거는 자신은 그 책이 별로 호감이 가지 않지만 그쪽 온라인 서점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으니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한 블로거로서 거절하기 난감하다는 말을 했다. 출판사는 일단 노출수가 많고 서평을 많이 작성하는 파워블로거에게 가제본인 상태의 책을 보내고 그들로부터 초기 화제성을 유발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물론 가제본이지만 나중에 출간되면 정식 책을 보내준다고 하며 서평을 쓸 사람을 신청받는 경우는 꼭 파워블로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신청한 것이니 문제가 될건 없다.

문제는 한 번의 노출로 판매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급의 블로거를 콕콕 찍어서 그들을 리스트업한 후 그들에게 책을 안기는 출판사가 아닐까. 서평자 입장에선 책 준다는데 까짓 서평이야 쓰면되지 식의 단순한 생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 이렇게 해서 누이 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서평을 써드리고 우연히도 그 서평을 읽은 독자들이 그것을 백프로 믿고 그 책을 구매한 후 그 블로거에게 적립금을 안겨 드렸다고 치자. 그런데 노출되는 빈도수가 많다보니 적립금의 금액이 가랑비에 옷젖듯 쏠쏠찮다고 치자. 우린 누가 누구를 무슨 명목으로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서평을 오래 써온 분들은 느끼는 것이겠지만 의무적인 서평과 자발적인 서평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어떻든 서평쓴다는 수고는 책받은 자로서 감내해야 할 시간임은 틀림없다. 서평자로 활동한 적 있는 조지 오웰은 본질적으로 모든 서평은 사기이며 서평자는 한 편의 (직업적으로)서평을 쓸 때마타 한 파인트의 양심을 하수구로 흘려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한 바 있다.

 

 

 

 

 

 

 

 

지난 달에 내가 쓴 리뷰중에 추천을 무려 오십 개나 받은 글이 있다. 글이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그 책의 리뷰를 처음 썼기 때문에 알라딘과 출판사에서 내 글을 노출시킨 덕일 것이다. 그 결과 내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한 사람은 열 명이 넘은 것 같다. 한 권에 60원씩 떨어지는(저급하구나) 셈이니 나는 600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그 책 말고도 지난 달에 이것 저것 내게 적립금이 십원, 백원씩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옆 동네는 3프로이므로 책 한권에 몇 백원이더라) 놀라웠던건 별 유명하지도 않은 시집과 내가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인데 누군가는 그 추천을 통해 책을 샀다는 사실이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나는 이 적립금의 무게가 커질수록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파워북로거의 명예와 자존심을 마지막 결론으로 내린 저런 글을 볼 땐 더욱 그렇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고 누구도 책임지라한 적 없지만 일개 동네 서평자인 내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매일 아침 자기선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어쩜 나는 이렇게 글을 써대면서 속물이 되지 말자, 젠 체 하지 말자, 과장하지 말자, 솔직하게 쓰자, 그런 말들을 몸과 마음에 열심히 타이핑 해본다.



이건 아니다. 아니올씨다, 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아는 파워북로거님들은
적립금이나 떡밥으로 받은 돈 역시
다시 책사는데 활용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 구력때문에
오늘 아침은 이 그림이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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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월요일이네요.
이 글 잼났어요. 저는 알라딘 서재 처음하면서 참 신기했거든요. 이제 겨우 1년 반밖에 안 되었구요.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거죠,
서평단도 있고, 출판사에서 선물로 책도 받기도 하고, 읽지않은 책 추천 페이퍼도 있다는 것을. ^^
이후 저도 읽지 않은 책을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어요, 이래도 되나 하면서.
그리고 나중에 몽땅 읽은 후, 이 책 형편없네 하고 팔아버린 적도.

저는 서평이든 리뷰든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서평단은 엄두도 못 내죠.
저처럼 말이죠, 글이나 인문 등등과 관계없이 IT와 2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참 신기한 세계예요, 여기는~
(그리고 가끔 환상이 깨지는 세계이기도 해요... 아하하)

한사람 2011-07-11 12:26   좋아요 0 | URL

IT업계 20년이라니 놀라워요~
남겨주신 글들은 서정적,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 ㅋ

저는 책을 그리 빨리 속독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있어도 일정상 서평신청을 하지 못하는 쪽에 속해요~
어쩌다가 정말 읽고 싶은 책만 하는 편이구요
추천페이퍼도 제가 작성하면서 ..책도 안들쳐보고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이래도 되는건가(물론, 평가단 책을 선정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싶은 생각을 아주 최근에야 하게되었어요..
뭘 알고나 추천을 한다는 건지, 그래서 전공자나 로쟈님 같이 알려진 분의 추천에 도움을 받는 편인데
점점 추천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요


글샘 2011-07-1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해서 책을 얼마나 사 볼는지요. ㅎㅎ
물론 제 블로그에서도 몇 분은 제가 올리는 족족 사들이다가 파산하신다고 엄살피우던 분들도 계셨지만...
돈받고 서평쓰는 걸 조지 오웰이 쓰레기 시궁창이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신문사 같은데 주례사 비평을 기고할 때 이야기구요.
인터넷 블로그처럼 자율적으로 써나갈 땐,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느낌표>같은 프로는 획일성의 비판도 받지만, 암튼 그런 책이라도 읽게 만들잖아요.
물론, 돈받고 서평쓸 정도로 수준높은 서평가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든 책을 사보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무슨 수라도 쓰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한사람 2011-07-11 1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무척 반가워요^^

제가 저 기사에 언짢았던건 그래도 '백' 안사고 '책'사는 쪽의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그래도 다른게 아니고 책을 추천하는 집단에 속한다는 스스로의 탈속물적(?)인식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글 같아서 발끈했던거 같아요 ㅋ

그래도 여기 알라딘은 이런 이야기와 생각을 나눌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쁘네요~

그렇게해서라도 책을 좀 많이 보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백사드는 풍토보다는 낫다는데 동의합니다^^

반딧불이 2011-07-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책을 꼼꼼이 읽고 공들여 쓴 리뷰에 대해서는 늘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늘 읽지 않고 쓰는 리뷰, 낚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 너무 많고 문제도 항상 이런데서 생기는군요. 이런 기사 때문에 정작 제대로된 글을 쓰시는 분들이 상처받거나 동급으로 쓸려가는것 같아 안타깝네요.

한사람 2011-07-11 13: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님.
보면 늘 소수의 윤리가 다수를 먹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정적인 건 더 영향력이 크고 또 빠르니까요
이렇게 생각있는 블로거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힘이 실리는 듯한 느낌이어요^^
고맙습니다~

마늘빵 2011-07-1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깨끄미 사건과 북로거를 연결지으면서 글 하나를 썼었는데, 조선일보가 언급한 저 출판잡지를 직접 보고 후속 글을 쓰려던 참에 이 글을 보네요. 해당 잡지와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대가'의 영역, 맥락을 어떻게 잡느냐가 궁금한데, 만약 서평단에 속해 책을 받는 것조차도 대가로 본다면 이건 아니다 싶고. 대가청 청탁 운운하면서 서평단에 속해 책 받고 글 쓰는 사람들까지도 매도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해당 잡지를 열어봐야겠어요.

한사람 2011-07-11 13: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프락사스님!
저도 그때 올려주신 글 읽고 슬며시 누르고 왔어요 ㅋ
그 파워블로거가 제 이웃인 파워블로거와도 아는 분이고
그쪽 계통에선 정말 유명하신 분이더군요~
그 파워블로거 때문에 며칠 맘고생이 심한 것 같았어요
(많이 알려진 블로거에게 기업에서 먼저 연락해서 이벤트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잡지가 궁금한데
아프락사스님께서 이렇게 글까지 남겨주셔서
두눈에 힘이 불끈 들어가네요^^
진상을(?) 조사하셔서 또 날카롭고 유익한 말씀 기다리겠습니다^^

stella.K 2011-07-1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작년에 출판사에서 책 보내 줄 테니 읽어보고 서평 쓰겠냐고 청탁 받아 본적은 있어요.
그렇게 무조건 안기는 건 아니고, 의사를 물어보죠.
하나는 좋다고 했고, 한 출판사는 거절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좋다고 했던 건, 책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출판사가 평판이 좋아 받아들인 거지만,
역시나 책은 실망을 해서 서평을 그다지 좋게 써 주지는 못했어요.
나 하나 혹평 썼다고 해서 그 책이 망하는 건 아닐테니 전 그냥 솔직히 써요.
물론 마음은 편치 않죠.
제가 얼마 전에도 김애란 소설을 혹평했지만,
이만한 글에 좋은 평을 내리면 작가들이 글을 게으르게 쓸 것 같아서 말이죠.
작품의 하양평준화. 그럼 정말 그 한 줄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ㅠㅠ
하여간 돈이라는 게 그래요. 쩝.
그래도 아시겠지만, 떡밥이라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공들여 써봤자 받는 건 얼마 안되고, 그래도 출판사가 이윤을 챙기는 건 그의 몇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책값만 생각하지, 쓰는 공력, 읽는 공력, 시간등은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때로 그게 책값을 훨씬 상회할 수도 있거든요.
물론 서평 하나 쓰는 데 거의 한나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전 아무책이나 서평 써 주겠다고 하지 않아요.
사실 제가 더 기분 나쁜 건 알라딘 한 달에 한번씩 주는 이달의 당선작이 더 기분 나빠요.
그놈의 알사탕은 받아도 기분 나쁘고, 못 받을 땐 더 기분 나쁜 거 있죠?
언제나 그렇지만, 상업주의와 관련된 모든 건 처음엔 단데 나중엔 쓴 것 같아요.

한사람 2011-07-1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니다 싶은 책은 정말 서평쓰기가 곤란해요
작년에 서평단 할때 무작위로 선정된 소설중에 그런 책들이 몇개 있었어요 ㅠ.ㅠ

저는 감동적이었다고 뻥치는 분들도 웃기지만
사실 뚜렷한 논리를 대지 않은채 그냥 자기 맘에 안드니까 혹평하는 분들에 반발심이 생겨 그 책을 읽어보고 그 정도는 아니라는 평을 쓴적도 있었네요 ㅋ(한가했다는 ㅋㅋ)

그리고 떡밥 말씀하셨지만 서평써서 떼돈벌었다는 사람은 못봤습니다.
당선축하금이나 적립금, 혹은 상금들도 알고보면 (파워북로거의 경우)
시간과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로 이득챙기면 얼마나 챙기겠어요..
다시 책을 사거나 언젠가 책 사려고 모아들 두시지 않나요?

이달의 당선작은 운좋게도 잘 선정되는 덕에 (받아먹는 입장에서)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것도 받자마자 책값으로 다 나가게 되던걸요.
결국 그 적립금으로 책 사서 또 서평쓰고 또 적립금타서 책사고~ 하는 것의
반복이더라구요..


pjy 2011-07-1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한가봐요, 첨에는 카더라통신에 현혹되더라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다들 어느정도 판단을 내리게 되는거 같아요~
작정하고 남다른 파워?를 목적있게 행동 하시는 분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단 꽤 많은 돈을 챙기신다고 듣긴 들었는데....결국은 곪았던 상황이 터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되어도 진행과정상 오해의 소지가 생기고 일이 꼬이고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데..첨부터 수상한 의도로 시작한다면 결과가 아무래도 아주 좋을수는 없겠죠~뭐, 티가 나게 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객관적 판단이 어려워서 저 혼자 느낌이지만 친하게 생각하면 쫌 많이 용서해주고, 안 친하게 생각되면 덜 용서하고 이래요-_-;

한사람 2011-07-11 18:13   좋아요 0 | URL

주변에 파워블로거들을 보면 처음엔 의도없이 순수함을 가지고 작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츰 변화하는 것 같아요~
누가 어떤 식으로 이익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거나
우연한 기회에 돈이되는 방법을 알았다거나 ㅋ

제 경험상(?) 심사위원이나 독자 혹은 지인이라도
서평으로 쓴 글의 진위여부, 감동여부는 절대 구분, 확인할수 없다고 봐요
글은 그만큼 진심없이도 재주만으로 감정을 창조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심을 다해 거짓말치면 속는 수밖에요 ㅠ.ㅠ
물론 어느정도 의심이 되는 글들, 노골적인 홍보, 틀에박힌 칭찬들을 눈치챌수 있다고 해도
작정하고 속이면 속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언제나 저를 슬프게 하죠..

cyrus 2011-07-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네요. 파워블로거 사태가 책블로거들에게도 문제의 여파로 다가오게 되다니
정작 책과 글쓰기가 좋아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게 되네요.
제가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은 책 읽고 글 쓰게 좋아서 한 것도 있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을 사기 위해서 적립금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리뷰대회에도 관심을 가졌고 지금도 그래요. ^^;;
간혹 순수한 의도로 한 블로그 운영이 적립금 때문에 변화될까봐 스스로도 자중하고 있으면서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글 한 번 쓰는데 나름 정성들여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비록 얼마 안 된 적립금이지만 정성들여 쓴 글을 통해서 땡스투받게 되면 뿌듯하거든요. ^^


한사람 2011-07-11 2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사고 싶고 보고 싶은 책은 많고
욕심대로 다 샀다간 거덜나기 십상이죠
시루스님은 도서관도 부지런히 다니시는 학생이지만
저는 사고 싶은 책은 꼭 사고야 마는 편이라 ㅋ
적립금이 사라져갈땐 마음 한켠이 영 허전해 지죠 ㅋㅋ

하지만 대충쓰고 떡밥을 받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
스스로도 정성을 다하게 되는게 아마 시루스님 같은 서평자들일거여요
저 글을 쓰면서 저만 깨끗한 척 한거 같아
부끄러운데 어떤 분은 아예 떡밥이 걸려있지 않으면 리뷰를 올리지 않는다고 한 분도 있어요
바꿔 말하면 뭐라도 주는 곳에만 리뷰를 게시하는 것이죠
(웃긴건 떡밥이 안걸리면 바로 자삭 들어가죠^^)
어찌보면 계산적인 것 같아도
뭐라 할수 없는 개인적인 부분이죠~
자기글 자기가 지키겠다는데 관리의 영역까지 윤리의 잣대를 들이댈수는 없어보여요
다만 대놓고 속물적인 태도가 거슬리지만

까놓고 얘기해서 여지껏 나는 적립금 같은 건 한푼도 바라지 않고
서평을 써왔노라 말할 사람 누구일까요
문제는 바라는 욕심이 아니고 바라기 전에 진실한 자세로 글을 써야하는
스스로의 자기검열 같은데요..



가연 2011-07-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추천을 누를 수 밖에 없는 글이네요ㅎㅎ 다른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가장 마지막 문단 완전 공감됩니다, 파워북로거가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한사람 2011-07-17 15:14   좋아요 0 | URL

예, 파워의 기준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