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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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어려서 읽은 헤딘 전기와 1980년대 제작된 NHK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30부작을 통해 시작됐다. 지금도 <실크로드>의 주제음악을 담당한 뉴에이지 음악가 기타로가 연주하는 오카리나의 신비롭고 영롱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이 나왔다는 소식에 보지도 묻지도 않고 일단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사들인 지 한 달 정도나 지나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역사소설 <둔황>에 몰입돼서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이노우에 야스시는 주로 산문시를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국내에는 이번에 소개된 <둔황>을 필두로 해서 푸른 이리’ <칭기즈칸><빙벽> 같은 소설이 소개되었다. 전후작가로 일본의 경제부흥이 본격적인 궤도로 접어들던 1950년대 말에 <누란>에 이어 발표된 <둔황>은 우리에게는 천불동 혹은 막고굴로 알려진 둔황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인 송나라 시대 고관대작을 꿈꾸며 요즘 고시에 해당하는 진사시험에 응시한 32살의 조행덕은 과거의 마지막 관문인 황제와의 전시를 앞두고 그만 잠이 들어 버린다. 그야말로 꿈이 되어 버린 출세의 희망을 접은 행덕은 송나라의 수도 개봉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서하 여인을 구해주고는 알 수 없는 서하 문자가 적힌 천 조각을 하나 받아든다. 이 천 조각의 서하 문자가 그의 운명을 서역으로 향하게 만든다.

 

태조 조광윤 이래 문인우대 정책을 펼쳐온 송나라는 북쪽으로는 거란족의 요나라와 그리고 서쪽으로 탕구트족(당항족)의 나라 서하와 대치하는 중이었다. 유목민족 국가인 요나라와 서하는 송나라의 변경을 끊임없이 침략했다. 역사에도 등장하는 서하의 지도자 이원호는 송나라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서하의 판도를 넓히는데 전력한다. 서하와 송나라의 대치국면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가운데, 주인공 행덕은 서하 문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월경하고 서하군의 포로가 되어 전장에 투입된다.

 

과거시험 공부를 하던 행덕은 전장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전사로 탈바꿈한다. 같은 한족 출신으로 서하군의 선봉장인 주왕례, 감주 공략전에서 구한 이름 모를 위구르 왕족 출신의 여인, 과주절도사 조연혜 그리고 우전왕국 출신의 상인 위지광과의 운명적 만남을 통한 행덕의 인생유전을 이노우에 야스시 선생은 소설 <둔황>을 통해 절절하게 그려낸다.

 

한 때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행덕은 한때 사랑한 위구르 여인의 억울한 죽음으로 불가에 귀의하게 된다. 조국 송나라를 그리워하면서도, 딱히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는 나그네로서의 운명에서 허무주의의 짙은 향기가 났다.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도 그는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도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주왕례의 이원호에 대한 반란으로 서하군의 침공이 임박한 사주(둔황)의 불교 경전을 보호하기 위해 위지광이 제안한 천불동으로의 피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던 걸까?

 

모두 11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둔황>은 조행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전쟁이 휘몰아치던 11세기 서역을 무대로 한다. 한나라 무제 이래, 하서지방의 서역경영은 중원제국의 숙원인 동시에 변방의 토번(티베트)이나 위구르 같은 소수민족에게도 동서교역로 장악이라는 차원에서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서하 왕국의 풍운아 이원호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군사행동을 일으켰고, 필연적으로 송나라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이런 당시의 국지적 분쟁을 바탕으로 해서 조행덕이라는 인텔리겐치아이면서 동시에 로맨티시스트인 가공의 주인공을 기용한 역사소설을 전개한다. 주왕례나 위지광 같은 조연들과의 갈등과 투쟁을 통해 주인공 조행덕은 위대한 인류문화 유산(천불동의 불교 경전)을 보호한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마지막의 11장에서는 20세기 초 실제로 천불동의 불교 경전 발견에 대한 사실을 다루면서, 시대를 앞선 팩션 장르를 선보이기도 한다.

 

소설 <둔황>은 실증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개에 여백을 많이 남기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두 마리 토끼사냥에 나선다. 예를 들어, 이원호의 후처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구르 여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주왕례가 어떻게 해서 그녀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위지광이 왜 그렇게 그 목걸이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설명의 부재가 조금은 아쉬웠다. 조행덕의 사주공략전 이후의 모호한 행적도 마찬가지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평이하면서 간결한 문체 덕분에 소설 <둔황>을 통해 책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정말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중세 서하 왕국의 흥망을 통해, 둔황 막고굴의 비전된 경전의 유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래전에 고려원에서 나온 이노우에 야스시의 <누란>도 이참에 복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새로운 작가의 발견은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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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6
오오카 쇼헤이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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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카 쇼헤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어서 구글과 위키피디아의 도움으로 그의 행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명문 교토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 그중에서도 스탕달 전문가였던 그는 태평양 전쟁 막판에 강제 징병되어 필리핀 전선에 투입되었다. 패망해 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필리핀 전장에서 무기며 병참마저 없는 가운데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파죽지세로 밀려오던 미군과 맞서 싸우다 결국 포로가 된 과정을 작가는 전쟁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포로기>를 통해 펼쳐낸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해서 재구성된 <포로기>는 우선 어떻게 해서 오오카 쇼헤이가 포로로 잡혔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 말기, 심각한 병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 군부는 궁여지책으로 징병연한을 넘긴 삼십 대 장정들까지 징병하기에 이른다. 36세에 그렇게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한 작가는 3달의 교육을 마치고, 필리핀 전선 민도로 섬에 배치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초기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호주로 도망갔던 맥아더는 복수를 벼르면서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워 레이테 섬과 민도로 섬에 차례로 상륙전을 감행한다. 사실 필리핀의 주도인 루손 섬에서 결전을 치르겠다는 일본 군부로서는 그 수많은 필리핀 군도의 섬들을 방어할 여력이 없었다. 한편, 작가가 주둔했던 민도로 섬의 일본군은 빈약한 장비와 보급물자의 부족 그리고 말라리아라는 무서운 질병이 만연한 가운데,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미군은 궁지에 몰린 일본군들을 토끼몰이하듯이 그렇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오카 쇼헤이 역시 말라리아에 걸려 도저히 미군을 상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속해 있던 니시야 중대를 따라, 필리핀의 정글을 떠돌지만, 빈번한 게릴라의 습격과 기아에 시달리던 중에 결국 미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초반에 작가는 투항과 포로로 잡힌 것에 대한 명백한 구별을 시도한다. 일본 군부에서는 포로로 잡힌 일본군은 모두 처형이 된다는 날조를 서슴지 않았고, 또 포로가 되는 것은 치욕이라는 세뇌교육에 전념했다. 그 결과, 일본군들은 투항하느니 차라리 자결을 강요받았다. 이런 상황들은 이미 타라와, 사이판 그리고 이오지마에서 수없이 연출됐었다.

 

역시 인텔리 출신답게, 오오카 쇼헤이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개인을 말살하려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로서 일본 군부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을 유감없이 표명하기도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대상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으로서의 공포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역시 일본 제국군의 일원으로 투항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되었다는 수동형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초반에 등장한 인물들을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면서, 포로가 된 사실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혼네[本音]’를 드러내기도 한다.

 

야전병원 그리고 포로수용소로 전전하면서, 작가는 군부에 의해 세뇌받은 수치와 치욕 대신 살기 위한 인간의 본능 선택한 이로써 동족들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공범자의 수치심에 대해 적확한 묘사를 한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캐릭터의 심리묘사에 달인이었던 스탕달 전문가다운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으로 전쟁포로 아닌 수인의 신분으로 갇혀 있던 포로들의 심리적 변화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자신도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거대한 폭력 앞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겠노라는 선언을 한다.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한 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라는 격언으로 싸우던 적의 손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천황의 <군인칙유><전진훈>으로 태평양 전선을 누비던 일본 제국군들이 포로가 되는 순간, 그들은 군인의 마음가짐을 잃어 버렸다고 작가는 냉정하게 꼬집고 있다.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잃어 버린 그들에게는 오로지 생존과 먹을 것에 대한 탐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미군을 쏘지 않았노라는 작가의 변명이나 휴머니티, 신의 존재감에 대한 인텔리의 고백은 그저 관념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민도로 섬의 야전병원에서 레이테 섬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면서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 체험기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영어 통역병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아무런 기술이 없는 일반 병사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과 수용소 내 포로간의 권력관계를 조근조근하게 분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통역으로 미군에게 아첨하거나 구걸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작은 목소리로 내기도 한다. 그가 레이테로 이송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으로 동포들이 미군기의 폭격과 기아에 떨고 있을 때, 대조적으로 남국의 아늑한 포로수용소에서(물론 자유가 박탈되었지만) 무위도식하는 자신들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도 노름이나 음주 같은 무의미한 행동으로 충만한 포로생활을 질책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통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외부 작업에서 빠져 영내 생활을 하며 영문 잡지나 탐정소설을 탐하면서 얼치기 프로이디즘에 입각한 미국인들에 대해 분석을 하기도 한다. 흑인은 여전히 백인의 노예다라는 그의 글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한 일제의 허구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인텔리 지식인 역시 전체주의 국가의 세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또는 전쟁에 모자라는 자질을 가진 교활하고 나태한 중년 병사들을 모습을 서술한다. 전범들이 가진 생물학적 생존 본능에 대한 지적 또한 일품이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냉철하면서도 균형감 있게 기술한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는 전쟁 문학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원흉이었던 일본 국가의 책임회피였다. 그들이 태평양 전쟁 당시 외쳤던 <대동아공영>은 그들의 새로운 식민 질서를 위한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그 어느 나라도 기존의 식민 지배자를 대신한 그들의 침략을 원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에서의 공영이 아니라 아시아 제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갈수록 현지인들과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보다도 특히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현지인 학대와 잔혹 행위는 필리핀 민중의 원한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오카 쇼헤이는 일부 병사들의 잔학 행위로 애써 축소하려고 했지만, 마닐라와 바탕가스 그리고 필리핀 전역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만행은 씻을 수가 없는 전쟁 범죄였다. 자신들이 저지른 조직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피해자라는 주장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침략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미국도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우수한 전쟁 문학을 만났다는 반가움과 또 한편으로는 반성 없는 지식인의 변명을 들었다는 불편함이 내 가운데서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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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번지는 곳 스페인 In the Blue 10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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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나를 따라 다닌 질문 하나가 있다. ‘책 제목이 분명 열정이 번지는 곳 스페인이라는데 바르셀로나 말고 다른 스페인은 언제 나오는 거지?’ 이런 나의 질문은 한국이 서울로 등치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승선 작가에게 바르셀로나는 그 정도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도시라는 사실이다.

 

백승선 작가의 아홉 번 째 번짐 시리즈 <열정이 번지는 곳 스페인>은 지중해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천재 아티스트 안토니오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대한 작가만의 헌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모름지기 여행책이 글 읽는 이로 하여금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 요량이라면 작가의 의도는 120% 그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바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앞으로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도시는 바르셀로나가 되어 버렸으니까.

 

백승선 작가는 여행의 방점을 그 곳이 아니라 그 곳에서 만나는 그 사람에 찍는다. 그가 최소한 3일은 둘러봐야 한다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타악기를 돌 벽에 기댄 채 연주하는 거리의 이름 모를 연주자로부터 시작해서, 대뜸 동양에서 온 이방인과 사진을 찍겠다는 소녀들과의 에피소드는 찰나의 미학을 담아낸 멋진 사진과 감수성 넘치는 에세이 스타일의 글 그리고 재창조된 수채화풍 일러스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다.

 

작가에게 어쩌면 바르셀로나 체류는 가우디를 추적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이 여행기는 가우디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여전히 공사 중이라는, 그리고 작가가 완벽한 미완성이라고 명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위용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도시의 어디서 봐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어쩌면 카탈루냐의 한 꼭지를 차지하는 바르셀로나의 상징과도 같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그 외에도 수많은 카사들의 행렬을 실물로 보고 카메라에 담고, 글로 형상화해낸 그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에스파냐에 가게 되면 꼭 보고 싶었던 게 투우였는데 동물보호론자들의 격렬한 반대로 앞으로는 투우의 본고장 에스파냐에 가도 투우는 볼 수가 없단다. 해묵은 보신탕 논쟁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지만, 누구에게는 스포츠로 여겨질 수 있는 투우가 또 다른 이들에게는 잔인한 동물학대로 비춰지는 현실계를 살아간다는 것이 역시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에스파냐 사람들의 투우에 대한 생각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래전 파리의 지하철에서 만난 일단의 사람들이 15일짜리 유레일패스를 들고 전 유럽을 돌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논의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유자적한 여행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유구한 역사의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하지만 그 나라 극장에 가서 그 나라 영화도 한 번 보고 싶고, 시장통에 나가 하몽이나 츄러스 같은 군것질 거리도 해보고 싶고, 엄청난 규모의 뮤지엄을 찾다 길을 잃어 보기도 하는 평소의 일상에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해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계속해서 여행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면 이 책이 나의 친근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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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야매요리 1 역전! 야매요리 1
정다정 글 그림 / 재미주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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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십 수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청소, 빨래는 문제가 없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밥해 먹는 것이 일이다. 그러던 차에 <역전, 야매요리>라는 책이 나왔다길래 옳다구나 싶었다. 나 같은 템퍼러리 자취인을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니 그보다도 책 표지를 보는 순간 나의 판단이 그릇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만드는 건 쉽다! 다만 먹기가 어려울 뿐!” 그말 그대로다. 하긴 나에게는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1991년생 초보만화 작가는 거침없이 요리세계에 하이킥을 날린다. 아마 연배로 보아 마덜과 함께 사는 모양인데 고 또래 친구처럼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하기 위해 동생 북북의 등딱지를 수시로 빌리곤 한다. 리뷰를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다정 씨는 왜 이런 기상천외한 야매요리책을 웹툰으로 만들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즐기는 모바일 소셜게임인 <아이 러브 커피>에 웹툰작가가 나와 소금을 소금소금 뿌리고, 후추를 후추후추 뿌리라는 말이 나오던데 이 야매요리책을 보는 순간 그 모델이 바로 누군지 알 수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 웹툰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본 웹툰이 바로 조석 씨의 <마음의 소리>였다. 그림체가 누구처럼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토리가 멋진 것도 아닌 웹툰이 사람들의 이목을 이렇게 끌다니. 그렇게 따지자면 <역전, 야매요리>도 마찬가지다. 그냥 되는 대로 적당한 식재료에, 있는 재료들을 끌어다가 만든 그야말로 야매요리의 정수라고나 할까.

 

어쩌면 우리가 먹는 요리에 대한 기본적 발상에 하이킥을 날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맛은 물론이고, 요리의 비주얼이 훌륭해야 하며 후각적으로 시식대상을 자극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보여 주는 요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가장 먼저 등장한 랍새우 요리를 보라. 말이 랍새우(로브스터+새우?)지 실상은 새우 요리가 아니던가. 자신이 만든 요리에 자부심을 느끼기는커녕 한껏 조롱하고 풍자화하는데 충실하다. 바로 이거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만들긴 쉽지만, 먹는 것이 문제다란 처절한 이슈에 봉착한다.

 

가령 예를 들어 9,000칼로리에 육박하는 비바 발렌타인 초콜렛 브라우니는 어쩔 것이냐. 물론 뭐 먹으면서 칼로리 타령하는 사람을 타박하는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소진했지만 작가가 나서서 내장을 디스트로이할 법한 엄청난 양의 칼로리 양을 직접 계산해 주는데 어찌 나 몰라라할 것인가 말이다.

 

그 다음으로 나의 시선을 끌어 잡은 요리는 바로 주인공이자 요리사인 야매토끼를 그대로 재현한 귀여운 토끼 모양 카츄동이다. 왜 갑자기 여기서 문득 거지 중에 가장 무서운 거지, 설거지가 떠오르는 걸까. 가까운 지인 중에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뒷설거지는 모두 타인에게 떠맡기는 테러리스트 쿡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뭐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무슨 음식을 만들 때마다 바로 바로 사용한 그릇을 씻지 않으면 안되는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요리를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역전, 야매요리>를 읽으면서 그녀의 친절한 레시피 대로 나도 한 번 맹글어 볼까 하는 생각을 약 5초가량 했다. 그리고 바로 포기했다. 그녀도 식재료가 완비되어 있지 않지만 그보다 더 열악한 나로서는 도저히 그 재료들을 준비할 자신이 없더라. 그리고 오늘 점심도 귀차니즘에 시달리면서 라면으로 때웠는데 무슨 놈의 요리를. 그저 난 야매토끼의 요리 이야기나 보고 즐기련다. 그래도 아침에 스크램블 에그를 한 번 해보려다가, 귀찮아서 계란 프라이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 멘탈붕괴 오므라이스, 흑룡롤 그리고 용용이 떡국 같은 요리 제목 하난 끝내준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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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자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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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아는 후배네 가서 새해를 맞았다. 후배의 서가에서 한 책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방콕여행자>의 저자 박준 씨의 베스트셀러 였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서 방콕, 그중에서도 카오산 로드라는 특별한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을까?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방콕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새로 나온 <방콕여행자>로 방콕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보고자 한다.

 

역시나 책쟁이답게 <방콕여행자>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먼저 책/서점에 대한 이야기 두 꼭지에 눈이 갔다. 카오산 로드 부근에서 서점을 하며 여행을 꿈꾸는, 한 때 잘 나가는 세계은행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서점 주인장이 된 눔 씨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끝없는 경제불황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출판업계와 서점업계가 위기라고 하는데, 슬로 시티 방콕에서 삶이 여유를 가지고 사는 눔 씨가 마냥 부러웠다. 거의 맨 끝에 실린 캉디드 서점에도 방콕에 가게 되면 꼭 한 번 들러 보고 싶다. 하긴, 여행지에서의 분주함 때문에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방콕여행자>에는 유난히 카페 혹은 커피 하우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명실상부한 국제도시 방콕의 이모저모를 가장 두드러지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커피 마시는 장소라는 뜻일까. 사람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커피 가게의 향연이 즐겁다. 그가 소개하는 카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느 카페는 왕실에서 운영하는가 하면, 정말 이런 소품들로 장식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제나 통일성이 결여된 아이템으로 가득한 카페가 있다. 이상야릇한 이름으로 동양적 엑조티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발소는 또 어떤가. 물론 이름만 보고 속지(?)말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 친절한지고.

 

이 책을 통해 내게 다가온 방콕은 성()과 속()이 공존하는 양가적 감정의 도시다. 도시의 한편에는 공중부양하고 있는 붓다가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매매춘이 벌어지기도 한다. 30만원 남짓한 월세집이 있는가 하면, 최소 11억 원에서 시작하는 콘도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 스타일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하이쏘들의 세계는 단돈 몇 바트의 쌀국수로 끼니를 해결하는 빈민들의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박준 작가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 갇힌 시선이 아닌 글로벌한 시선으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오랜 여행과 타지에서의 생활로 거의 현지인이 된 작가로 체화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순간에는 물위에 뜬 기름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so what? 그래서 어쩌란 말이지?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근본적 질문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다.

 

나로 하여금 방콕, 그 중에서도 카오산 로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에 비해 작가의 내공은 더 깊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방콕여행자>는 그 정도 아우라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박준 작가의 방콕 체류기는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그나저나 나중에 방콕에 가게 되면 그가 소개해준 그 많은 카페, 커피 하우스에 들러볼 수 있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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