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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자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아는 후배네 가서 새해를 맞았다. 후배의 서가에서 한 책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방콕여행자>의 저자 박준 씨의 베스트셀러 였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서 방콕, 그중에서도 카오산 로드라는 특별한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을까?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방콕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새로 나온 <방콕여행자>로 방콕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보고자 한다.
역시나 책쟁이답게 <방콕여행자>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먼저 책/서점에 대한 이야기 두 꼭지에 눈이 갔다. 카오산 로드 부근에서 서점을 하며 여행을 꿈꾸는, 한 때 잘 나가는 세계은행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서점 주인장이 된 눔 씨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끝없는 경제불황의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출판업계와 서점업계가 위기라고 하는데, 슬로 시티 방콕에서 삶이 여유를 가지고 사는 눔 씨가 마냥 부러웠다. 거의 맨 끝에 실린 캉디드 서점에도 방콕에 가게 되면 꼭 한 번 들러 보고 싶다. 하긴, 여행지에서의 분주함 때문에 그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방콕여행자>에는 유난히 카페 혹은 커피 하우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명실상부한 국제도시 방콕의 이모저모를 가장 두드러지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커피 마시는 장소라는 뜻일까. 사람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커피 가게의 향연이 즐겁다. 그가 소개하는 카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느 카페는 왕실에서 운영하는가 하면, 정말 이런 소품들로 장식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제나 통일성이 결여된 아이템으로 가득한 카페가 있다. 이상야릇한 이름으로 동양적 엑조티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발소는 또 어떤가. 물론 이름만 보고 속지(?)말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 친절한지고.
이 책을 통해 내게 다가온 방콕은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양가적 감정의 도시다. 도시의 한편에는 공중부양하고 있는 붓다가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매매춘이 벌어지기도 한다. 30만원 남짓한 월세집이 있는가 하면, 최소 11억 원에서 시작하는 콘도도 있다. 미국이나 유럽 스타일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하이쏘들의 세계는 단돈 몇 바트의 쌀국수로 끼니를 해결하는 빈민들의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박준 작가는 우리가 사는 공간에 갇힌 시선이 아닌 글로벌한 시선으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오랜 여행과 타지에서의 생활로 거의 현지인이 된 작가로 체화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순간에는 물위에 뜬 기름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so what? 그래서 어쩌란 말이지?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근본적 질문은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다.
나로 하여금 방콕, 그 중에서도 카오산 로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에 비해 작가의 내공은 더 깊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방콕여행자>는 그 정도 아우라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박준 작가의 방콕 체류기는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그나저나 나중에 방콕에 가게 되면 그가 소개해준 그 많은 카페, 커피 하우스에 들러볼 수 있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