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트로츠키
타리크 알리 지음, 정연복 옮김, 필 에반스 그림 / 책벌레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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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자주 들르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서>를 보다가 혹시 그의 다른 저작이 있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컴퓨터 검색기가 바로 <만화로 보는 트로츠키>란 책을 토해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책이었는데, 역시 만화여서 그런지 금세 다 읽었다.

 

어쩌면 만화라는 장르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사실 기대한 그림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많았음에도 부담 없이 대할 수가 있었다. 만화의 주인공 트로츠키 최대 정적이었던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격하운동으로 영구혁명론을 주창한 트로츠키주의는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기피대상 1호였던 모양이다. 마오 쩌둥과 흐루시초프 모두 서로를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비난했던 걸 떠올리면 말이다.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레온 트로츠키의 본명) 짜르 체제가 막바지로 치닫던 19세기 끝자락에 당시 개발붐이 일던 우크라이나 지방의 부유한 유대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재력을 바탕으로 고등교육을 받으며 비교적 유복한 삶을 산 모양이다. 훗날 뛰어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로 활동하기 전인 이 시절만 해도 사회주의와는 담을 쌓고 산 모양이다. 오히려 다른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처럼 농노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비참한 현실 속에 살던 러시아 노동자 농민의 현실에 주목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 대한 자각이 그를 불세출의 혁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트로츠키는 당시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에 눈뜬 다른 지식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짜르의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트로츠키는 시베리아에서 4년간의 유형생활을 경험한다. 시베리아에서 탈출한 그는 1902,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이던 레닌과 만나 비로소 자신의 특별한 재능인 선전술을 개발하여 본격적인 엘리트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타리크 알리는 러일전쟁(피의 일요일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10월 혁명)의 과정에서 소비에트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을 통해 러시아 혁명가들이 앞으로 어떤 국가 체제를 수립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고증을 이 만화를 통해 보여준다. 다수의 혁명가들은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해서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짜르 전제정 하의 장군들을 포섭하는 방법도 고려했으나 트로츠키는 이에 반대하는 선견지명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르주아와의 합종 대신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된 혁명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는 고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면 이단시했을 역사 발전 법칙 대신 러시아 고유의 혁명론을 주창해 다른 볼셰키비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0월혁명과 연이은 백군과의 내전에서 군사인민위원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트로츠키는 혁명의 상징이었던 레닌에 버금가는 위상을 얻게 되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가 당면한 문제의 원인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반봉건제 폐지와 농민 해방, 공화국 건설 그리고 소수 민족의 자결권 등을 골자로 한 체제 개혁을 주창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된 혁명 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을 거쳐 사회주의 혁명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 같은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혁명의 완료를 희망할 수 없기에 국제적 사회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트로츠키 영구혁명론의 요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주창한 영구혁명론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사회주의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의 부상으로 소멸되면서 공동전선은 유명무실화되고 만다.

 

레닌 사후, 소비에트 권력을 한 손에 쥐게된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제거하면서 민중의 계급의식을 왜곡하고, 독재권력을 수립한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트로츠키는 당내 좌익 세력을 규합해서 스탈린에 대항해 보지만, 비밀경찰을 앞세운 스탈린은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 같은 유력 당인사들을 자신의 편으로 영입해서 최대 정적이자 혁명 영웅인 트로츠키 비방전에 나선다. 완벽하게 새로운 체제 하에서 관료시스템으로 정비한 스탈린의 공세 앞에 결국 트로츠키는 모든 권력을 박탈당하고, 망명길에 나서게 된다. 히틀러의 국가회주의(나치즘)와 맞수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본격적으로 맞붙기 1년 전인 1940년 트로츠키는 망명지 멕시코에서 암살자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다.

 

이 만화를 통해 피상적이나마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삶의 궤적을 쫓을 수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 혹은 러시아혁명에 대해 공부하거나 관련된 책을 읽어보지 못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략적이나마 훑어본 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 20세기 초의 활발했던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사회주의 운동이 전쟁이란 광기 속에서 소멸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적 유물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법칙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논쟁도 흥미를 끈다. 혁명의 대의를 위해 모든 분파주의는 배척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혁명가 그룹 내의 갈등 역시 인상적이었다.

 

<만화로 보는 트로츠키>를 저술한 타리크 알리는 책의 많은 부분을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삼부작에 빚지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필맥 출판사에서 출간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를 읽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리우스가 그린 만화들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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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러시아 고전산책 6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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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학시절에 선배형으로부터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데 무려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 책을 가지고 갔었는데,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어렵게 그렇게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각성하고 부조리한 세상의 불의에 맞서게 된다는 이야기였던가. 너무 오래 전이라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갑오년 청마의 해에 러시아의 문인이자 혁명가였던 막심 고리키의 단편 소설집과 만나게 됐다.

 

처음 맞는 표제작 <마부>는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설정으로 읽힌다. 하늘 아래 독창성을 지닌 작품은 없다고 했던가. 읽으면서 왠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바로 연상됐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마부의 꾐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고, 약탈한 부를 바탕으로 성공해서 시장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지만 결국 자신의 양심 때문에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는 주인공. 하지만, 알고 보니 이게 다 꿈이더라는 구조다. 반동적인 짜르 체제를 지지하던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의 속살을 짧은 단편에서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고리키의 비판적인 시선이 예리하게 다가왔다. 러시아 지배계급이 누리고 있는 재화의 축적이 과연 정당했느냐에 대한 작가의 지적은 시대를 넘어 고전이 갖는 보편성의 체화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아름다움>에서는 날선 혁명가의 감성과는 다른 탐미주의자의 그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연히 만나게 된 여인을 추종하게 된 절망의 시인은 화자까지 숭배에 끌어들인다. 밑도 끝도 없이 약속을 잡은 시인은 화자를 미로 같은 공간 속을 통해 어느 발코니로 인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그녀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예정된 대로 매료된다. 현대 작가들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의 창조를 위해 외계인까지 동원하지만, 19세기 러시아 작가에게 그만한 창조적 상상력을 기대하기엔 아마 무리였으리라. 무언가 좀 더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고리키는 돌멩이 세례로 화답하며 멋지게 마무리짓는다. 하긴 천상의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었지.

 

<아름다움>이 그런 여인이 가진 지고의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었다면, <푸른 눈의 여인>은 나락으로 떨어진 여인에 대한 기록이다. 남편을 여의고, 아이들을 봉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여인에게 경찰서 부서장 조심 키릴로비치는 조소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이 와 닿는 순간, 냉정한 남자의 마음은 경의로 뒤바뀐다. 고리키는 우리가 어떤 판단에 앞서 원인과 결과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걸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기엔 역시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쿨리나 할머니>와 맨 마지막에 실린 <이제르길 노파>의 이야기는 노년 세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면서 동시에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경계로 나뉜다. 전자에서 구걸로 바닥에 떨어진 인생들을 거두는 거리의 아쿨리나 할머니가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 아쿨리나 할머니가 보살피는 대상은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절망에 빠진 당대 러시아 민중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소설에서 아쿨리나 할머니는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느데, 그것은 어쩌면 짜르 압제에 맞서는 혁명 대의에 대한 고리키의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소설적 상상과 분석이야말로 시대 소설을 읽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런 의도로 썼건 그렇지 않던 간에 그것은 문학을 소비하는 주체의 자유이니 말이다.

 

<아쿨리나 할머니>의 이야기가 정말 현실주의에 입각한 이야기라면, <이제르길 노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에 가깝다. <이제르길 노파>는 첫 번 째 전설, 두 번째 자신의 삶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렁에 빠진 종족을 데리고 태양이 빛나는 스텝으로 인도하는 용감하고 당당한 단코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유대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 모세의 그것과도 비교되는 불타는 심장의 주인공 단코의 모습 역시 숱한 고난 가운데 러시아 민중을 혁명으로 이끈 혁명지도자의 소설적 현현으로 보인다.

 

19세기 작가가 그린 시대상에서 여전히 바뀌지 않는 여러 부분들을 소설집 <마부>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무지한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지식인 엘리트의 편견이 내비치는 장면도 있었지만, 혁명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예상할 수 없었던 시대의 르포르타주 가치만으로도 <마부>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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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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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글과 이제야 만났다. 이미 책은 작년 창비 문학팟캐스트 황금시대의 책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고, 차일피일 미루던 독서는 갑오년 새해에 드디어 마칠 수가 있었다. 이미 <인생>, <허삼관 매혈기> 같은 전작의 명성으로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위화 작가에 대한 풍문은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읽어 보니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소설 <7>은 작년에 내한한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소설이 아무리 황당해도 중국 현실을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말처럼 온갖 황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죽었으나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양페이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플래시백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양페이의 전언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보다는 상부 계층으로 대학교육을 마치고, 어엿한 회사의 중견 사원으로 양페이는 삶의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잘 나가는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버지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 아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가출을 하면서 원하지 않던 질곡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자주 들르던 탄가네 식당에서 화재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엔딩을 의미하지만, 위화 선생의 <7>에서 영원한 이별 같은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재화의 많고 적음으로 평등이 나뉘는 사바세계로 가면 누구나 평등할 줄 알았지만, 저승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한다는 역설을 위화 작가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사후 돌봐줄 이 하나 없이 죽은 이들에게 수의, 상장 그리고 묘자리 등은 철저하게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심지어 빈의관(화장터)에서조차 생전의 지위, 계급 혹은 부의 많고 적음에 따라 플라스틱 의자에 구비된 일반석으로 가거나 아니면 가죽 소파가 놓은 VIP석으로 안내받게 마련이다. 누구나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라고 선전하는 중국의 이면을 작가는 저승세계에 빗대 일갈한다.

 

지금까지가 소설의 워밍업이었다면 이제 카론의 도움으로 스틱스를 건너기 전, 양페이가 만나게 되는 삶의 진실은 소설 <7>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막장소설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은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화는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기차에서 태어난 양페이가 어떻게 21살난 젊은 선로 전환공 양진뱌오의 아들이 되었는지 그리고 젊은 아버지는 어떻게 양페이를 훌륭하게 키웠는지 위화 작가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유려하게 전개한다.

 

양페이의 연애이야기 또한 압권이다. 누구나 눈독들이던 아내 리칭을 얻게 된 과정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순간들과 이별이 이어진다. 양페이의 이웃 셋집에 살다가 남자친구가 진품 아이폰 대신 짝퉁 아이폰을 사주었다고 홧김에 죽은 슈메이와 그런 슈메이의 묘자리를 구해 주기 위해 장기밀매를 했다가 역시 같은 신세가 된 우차오의 희극반 비극반의 이야기들이 소설 <7>을 수놓는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산아제한으로 유기된 영아들을 의료 쓰레기라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아기들을 저승에서 사랑으로 보살피는 리웨전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양페이가 재회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빈의관에서 아버지와의 재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이웃한 우리나라도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개발 같은 이슈가 근현대사를 장식하고 있듯 이웃도 만만치 않은 역사의 궤적을 지니고 있다. 외세의 침략, 제국시대의 종말,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은 문인들에게 화수분 같은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 동시에 쉽게 접근하기 쉽지 않은 그야말로 계륵 같은 존재다. 수천 년 검열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예전 같은 무조건적인 판금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느낌이다. 오히려 작가들을 전업작가로 채용해서 국가의 녹을 받은 시스템에 편입시켜 작가의 사회비판을 순치하는 고단수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였을까? 중국 지도부가 풀어야할 미래의 난제인 개혁 개방의 파고에 기인한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위화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사바세계에서 카론의 시간이 지배하는 저승으로 옮겼다. 그리고 중국 내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위화 작가가 짜깁기했다는 비판도 있다고 하는데, 소설보다 황당한 현실이 판치는 중국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위화 작가가 시전한 신의 한수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한 죽음조차 빈부의 격차에 따라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소설의 설정은 위화 작가가 <7>에서 보여주는 희비극의 정수다. 어쩌면 진흙탕 같은 사바세계에서 도피하기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삶의 진실이 당면한 속수무책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그것조차 어쩔 수 없겠지. 그래서 소설의 결말이 모두가 평등한 안식의 세계로 향하는 적당한 타협에서 마무리된 점이 조금 불만스럽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만하다.

 

역순으로 돌아가 <허삼관 매혈기><인생>를 읽어보고 싶다. 순화되었다는 평을 듣는 <7>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작년에 <7>을 읽었다면, 내가 읽은 2013년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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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1
드니 디드로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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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디드로라는 인물은 아주 오래 전 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백과사전파였다는 정보 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 흐릿한 기억 속의 전설 같은 인물이 쓴 소설이 바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다. 저명한 계몽철학자가 계몽시대를 인도한 백과사전 뿐만 아니라 이런 악당 소설(roman picareque)까지 썼을 줄이야.

 

중세를 주름 잡은 기사도 문학에 대한 반발로 파생된 악당 소설의 시초는 그 유명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6세기 스페인을 풍미한 악당 소설의 양식을 바탕으로, 백과사전파의 태두답게 디드로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서 운명론자 자크라는 멋진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마치 자신이 가진 지식과 혜안을 좀 더 독자에게 들려주지 못해 안달난 창작가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수다쟁이 자크의 입을 빌려 18세기 프랑스의 다양한 시대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요즘으로 치면 로드무비에 해당할 상황이 자크와 그의 주인의 여정으로 시작된다. 물론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디드로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운명이 우리를 인도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벌이는 모험과 연애담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 버디무비 스타일의 소설은 악당 소설의 원전이 되어버린 세르반테스의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그리고 그의 시종 산초 판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전지적 작가인 디드로의 너무 잦은 개입을 이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꼽을 수 있겠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독자는 역설적으로 소설의 전개와 서사 구조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만 상실한다. 자크의 주인은 자크가 들려주는 자기 하인의 러브 스토리를 끝까지 듣고 싶어하지만,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들려주는 또다른 소설 속의 소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크의 러브 스토리는 뒤로 밀린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 호기심은 저 멀리 밀려나 버리고, 전지적 작가 디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자크의 러브 스토리에 개입된 두 가지 이야기인 포므레 부인의 치정 복수극과 아르시 후작의 위드송 신부 이야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18세기 프랑스 계급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읽힌다. 전자는 사회의 규범이 되기는커녕 타락한 귀족사회의 부정한 일면을 드러내 주고, 후자는 고귀한 성직을 맡은 성직자 역시 그들과 별 다를 게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포므레 부인의 에피소드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원작이었던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연상시킨다. 이 정도되는 이야기라면 요즘 트렌드라는 막장 드라마의 원조격이지 않을까 싶다.

 

자크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하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또 동시에 주인의 권위를 유머스럽게 무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 점은 수다쟁이면서도 때로는 권총이나 무력에 호소하는 법도 아는 영악한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는 점에서 하인 자크는 단선적인 캐릭터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물론 자크에게 허용되는 하한선은 그의 주인이 설정해 놓은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공고한 신분제 사회가 타파되기 위해선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역사의 큰 흐름을 위한 반세기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테니까.

 

마지막으로 독자를 위해 전지적 작가 디드로가 준비한 이야기는 바로 주인의 사랑 이야기다. 협잡과 사기결혼 그리고 배신의 드라마가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이 이야기야말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의 하이라이트다. 그 와중에도 디드로는 어떻게든 자크의 러브 스토리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사실 그쯤되면 독자는 이야기가 어디로 가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게 되어 있다. 워낙에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삼천포행을 수도 없이 한지라 마침내 도달한 자크의 연애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

 

사실 처음으로 소설의 뒤편에 실린 두툼한 해설 부분을 보고 이 정도로 필요한가 싶었으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다 보니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됐다. 곳곳에 달린 각주는 당대 문학가와 백과사전파의 태두 디드로가 시전하는 다양한 문학적 유희와 지식의 스펙트럼을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개인적으로 온전한 소설 감상을 위해 타인의 해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전지적 작가 디드로와 함께 한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하게 사랑받는 고전여행으로 올 한 해 독서를 마무리하게 되어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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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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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의 책을 꼬박 꼬박 읽어 오고 있다. 심지어 읽지는 못해도 모두 샀다. 이제 끝판왕이 나왔다. 2013년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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