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나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일처리를 한 후, 운동을 하고 왔다.  IKEA에 갈 예정이라서 running이나 cycling은 빼고 - 가면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니까.  어제 맛없는 와인을 3/4병 정도 마시고 음식도 많이 먹고 잔 탓에 조금 무겁긴 했지만, 그런대로 패턴을 바꾼 운동은 할 만했다.  고작 오전 9시 15분인데, 벌써 하루의 여섯 시간 가까이를 보낸 셈이다.  오전에 페이퍼에 글도 술술 풀렸고, 힘을 받았던 덕분인지 잘 안 풀리던 drafting도 한 통 끝내고 나서 맘 편하게 하는 운동이어서 그랬을까.  아주 제대로 아침운동의 뽕발을 받은 느낌이다.  남은 하루도 이렇게 활기차가 지나갈 수 있을까?


아침은 IKEA에서 파는 것으로 먹을 예정인데, Swedish meatball이 맛있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훈제연어와 샐러드로 해결할 생각이다.  운동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도 몸상태가 확 좋아지지 않는 이유가 나의 경우 섭생의 문제와 상당부분 관련이 있다.  가끔 폭식하는 것, 특히 술과 함께 먹을 때에는 평소 끼니의 정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는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  운동이 중요하지만, 그 이상 중요한 것이 좋은 음식을 적절하게 때에 맞춰 먹는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나의 식생활도 고열량, 고당분, 고염식단을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가능하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하리라.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꾸준하고 열심한 주색잡기로 30대 중반부터 통풍에 시달리고 있는 형이 한 분 있다.  내가 남은 생을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좀 심하게 몸을 굴린 그 형은 한 3-4년 전에 살을 확 빼고 많이 건강해졌다 (물론 통풍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증상도 아니고, 식습관과 음주는 바꿨지만, 나머지는 그대로인 탓에 이번에 만나보니 여전히 간헐적인 통풍발작에 시달리고 있기는 하더만).  건강해진 몸으로 주와 잡기를 뺀 나머지에 집중하는 모습은 물론 내가 추구하는 삶은 아니지만,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못해도, 나 역시 좀더 건강한 식습관으로 보다 더 가벼운 몸으로 생활하고 싶기는 하다.  


게을러질 때마다 오늘 아침의 느낌을 기억하며 그렇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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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5-01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하 하 하 , 남은 생을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에서 빵 터집니다. 하 하 하 .. 사는 방식은 사람 수 만큼 가지각색인 듯요 , 운동은 대부분 좋아요 , 저는 오늘 줌바 했어요 할머니들과... 좋았어요

transient-guest 2016-05-02 00:20   좋아요 0 | URL
자기가 믿는 바에 따라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운동은 꾸준히 합니다. 주로 개인운동이요..ㅎ
 

너무 자주 하는 소리가 되어 쓰는 나도 매우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요즘 책읽기도, 일상도 무엇도 흥미를 잃은 나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  어디에선가 위로를 받고 싶기도 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다잡을 수 있었으면 하고 있던 어제 오후, 다시 장샤오위안 교수의 [고양이의 서재]를 꺼내어 들고 한 페이지씩 넘기기 시작했다.  아주 많이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책이 모이고 한 권씩 읽어지는 것에 대한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책 뿐 아니라 이분은 DVD도 3000장이나 모은 사람이라서 나의 수집벽과는 조금 통하는 점이 있어 더욱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이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나는 언제나 상상한다."


"누구도 세상의 책을 금하고 없앨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눈 내리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 것은 중국 문인들이 줄곳 사랑해 온 경지다.  수많은 책이 금지됐던 그 시절, 문을 닫고 갖가지 '봉자수'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의 독초를 읽는 것은 얼마나 자극적인 일이었는지!"


"이과 계열 학문을 하다가 문과 계열 학문을 하는 건 문제없다.  그러나 문과 계열 학문을 하다 이과 계열 학문을 하는 것은 내 여태 본 적이 없다"


"'수재는 군사를 논한다'라는 중국 문인의 전통적인 취미..."


"나는 대개 조용히 경청만 했지만 듣는 내내 상쾌한 봄바람을 맞는 듯 선생의 말씀에 깊이 감화되었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역사서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한쪽에는 연표, 다른 한쪽에는 역사 지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싶다면 이 점은 필요 불가결하다...시간 개념은 공간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난 외국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바다에 놀러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편안히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난 이런 충동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더욱 귀하게 느껴져서 이런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소중히 하려고 한다. 젊을 때는 지식욕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걸 모른다...어떤 일에 흥미가 생기고 그 분야에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할 때는 관련된 책을 읽는 편이 좋다"


"지금까지 독서는 나의 낙이었다.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였다.  나는 독서를 통해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했다.  독서는 나 자신이 진실로 꽉 차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허황되지 않았다."


"책을 모아서 가장 직접적으로 좋은 점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는 편이다.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탓이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을 빌려 가고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굴리다가 책을 잃어버리면 없어졌나 하고 만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책장을 보는 일이 무척 즐거울 것이다.  하루 종일 나가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낼 것이다"


"독서에서 가장 좋은 경지는 놀이 삼아 읽다가 역사 자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열심히 재미있는 글을 쓰면 누군가 책을 내자고 찾아오는 날이 온다"


"좋은 서평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책을 소개한다.  이 점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둘째, 책을 평가한다.  책을 적절한 배경에 놓고 평가하는 일인데 일부 사람은 해내지 못한다. 서평가는 해당 책과 비슷한 책이나 관련된 주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데 서평가의 취향에 달렸다.  책에서 재미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독자와 공유하는 작업이다."


"서평을 잘 쓰려면 해당 책의 분야에 익숙해야 한다"


"현대 문명의 빠른 발달에 따라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고 이 두 문화는 갈수록 분리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시간은 생기기 마련이며, 문과와 이과늘 두루 익히겠다는 목표는 평생을 들여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게는 몇 차례 다듬어 정리된 '삼불 정책'이 있다. '욕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


"요즘 공부하는 젊은이는 달달 들볶이거나 경비가 없어 학술회의조차 참가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양각색의 비교 평가를 하지 않으면 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다.  이런 경쟁 분위기는 지금의 관리자들이 바라는 것이다"


"베이징대학교의 리링 교수는 대학을 양계장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이나 이과의 기초 이론 연구나 인문학 연구는 건축이 아니다"


"대체로 좋은 학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성과는 언젠가 나오게 되어 있다"


"어떤 상식 (혹은 진리)이라도 적용 범위라는 게 있고, 이 범위를 넘어서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인생의 고수는 사람을 볼 때 대체로 작은 데에서 큰 것을 아는 법이다"


책 있으면 부자, 일 없으면 신선 


책의 맺음말의 제목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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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2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헌책 사들이는 충동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 몸이 둔해지고, 시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쪼그려 앉기가 어렵고, 책 제목이 보이지 않을 거예요. ^^

transient-guest 2016-04-30 00:55   좋아요 0 | URL
눈 건강을 지키는 건 독서인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안경을 쓰고 난 후에는 계속 시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지금부터라도 당근주스와 결명자차를 매일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충동이라면 그저 책이나 미디어를 구해서 모아들이는 건데, 그런 흥미라도 갖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ㅎ

몬스터 2016-04-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양이 서재 ) , 예전에 리뷰 쓰신거 보고 , ebook 다운 받아 뒀는데 , 아직 안 읽고 있어요. 곧 읽고 신고하겠습니다. ㅎㅎ

관심이 있으면 시간이 생긴다는 말 , 맞는 것 같아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일들을 보면 , 내게 흥미를 주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니까요

제 코코는 언제나 똥꼬발랄해서 긁고 , 물고 , 잡아 당기고 , 부산히 돌아다니고 있어요. 언젠가는 게을러질까요 ㅎㅎㅎ. ( 아직 애기라서 그런 듯 )

주말 푹 쉬시고 나시면 기분 조금 나아지실 거예요.

transient-guest 2016-04-30 0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데, 요즘은 burn-out된 느낌을 받아요...그냥 재미도 없고,..고양이는 예전에 키워봤는데 개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ㅎ

yamoo 2016-05-0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있으면 부자...근데, 어느 정도를 넘기면,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ㅜㅜ

transient-guest 2016-05-02 00:22   좋아요 0 | URL
너무 많으면 적자로군요..ㅎ
 

내내 신경을 쓰고 있는 일들 중 하나가 잘 해결되었다.  오늘 새벽에 바로 업데이트가 왔는데, 참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일들에 대한 좋은 전조로 해석하기로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온갖 감정과 개인적인 감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윤리와 법에 입각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지배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면, 각각의 고객이나 케이스에 대하여 완전히 emotion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적인 변호사로서의 책임소재의 문제는 아니지만, 케이스가 잘 풀리는 것은 어떤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의 삶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거나 골치아픈 일을 해결하는 의미 또는 그 이상 커다란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더디게 진전이 되는 경우 나 또한 굉장한 정신적인 피곤함을 느끼곤 한다.  


최악의 경우 당연히 변호사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일을 추진하지도 않고, 계약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의 경우 책임은 없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최대한 대안을 마련하여 궁극적으로는 일을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고객을 위하는 마음 뿐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결과적으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 이상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더욱, 성격상 일이 안 풀려 좋지 못한 결과로 관계가 끝나면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인데, 이래저래 좀 cool~하다면 cool하게, 아니면 아주 냉정한 계산으로 털어버리지 못하는 천품의 결함이 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on-going한 업무를 진행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고, 여기에 사무실이 잘 굴러가기 시작한 이래 지난 2년동안 쌓인 관리업무의 양도 무시할 수 없기에 이렇게 늘 계획대로 스케줄이 전개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하루를 빼앗기곤 한다.  그렇게 밀린 업무는 고스란히 주말이 저녁 시간대로 옮겨지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주중에, 설사 매일 늦은 퇴근이라도, 일을 정리하여 주말에는 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말에 자꾸 해결하다 보니까, 주중에도 주말에도 쉬는 건지, 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할 땐 일, 놀 땐 놀아야 한다.


그간 작은 성공에 살짝 교만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방만하게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의 어려움은 그런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리려는 좋은 nudging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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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5-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쿡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법조 시스템은 정말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양산하는 거 같습니다. 전관 예우로 사람들을 연줄로 선별하여 법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사건에 법을 짜맞추어 입맞대로 양형을 하는게 정말 기도 안 찹니다. 학문적 체계만 그럴듯하지 법을 운용하고 법을 해석하는 게 너무 기득권 위주로 이루어지는 거 같아 되게 씁쓸합니다~

transient-guest 2016-05-02 00:23   좋아요 0 | URL
미국도 문제가 많지만, 한국만큼 말도 안되는 경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체적인 시스템의 운용도 그렇고, 법철학이나 사회적인 인식도 그래요. 저는 한국의 문제는 단지 법조계에 그치지 않고 시민의식 전반에 걸친 거라고 봅니다.
 

지난 번에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고 쓰다 말다 하면서 오늘까지 보관했던 글을 정리했습니다.


어제 사이러스님의 글을 읽고나서, 밤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오늘까지도 '헌책방'과 '중고책방'에 대하여,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파는 것 외에도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복합문화공간을 꾀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지금의 중소규모서점들이 지향하게 된 모습에 대한 고찰...까지는 아니고.  그냥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서점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같은 서점에 대한 것들고 꽤 많이 있기에 주로는 긍정적인 눈으로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내지는 업종다양화를 바라본 것 같다. 


그런데, 실상 좀더 행간을 짚어보면 이와 같은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서점의 '탈서점'화나 복합문화공간지향성은 훨씬 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으면 몇 가지로 이들이 압축되는데 다음의 내용으로 정리해보았다.


1.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지향성:


헌책방이란 말 대시 중고서점이란 말을 쓰는 것으 politically correct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몇 번인가 책이나 블로그에서 접하고 호의적으로 반응을 했었다.   헌책방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낡고 오래된 듯한, 아니 무엇보다 '헌책'이라는 표현보다는 같은 말이라도 '중고'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은 것이라는 의견이 골자인데, 일견 말이 되는 듯 했다.  사실, 깊이 생각해보았다기 보다는 그저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책과 이를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가장 기본적인 단어의 취사선택에서라도 개선한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보면 '헌책방'이라는 표현이 그리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중고'나 '헌'책이나 결국은 비슷한 의미인데, 굳이 '중고서점'이라는 표현을 좀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인정해야만 할 논리적인 스탠다드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일종의 말장난에 다름 아닌 것이난 생각도 든다.  굳이 헌책방이 중고서점으로 바뀌어 불려야 하는가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헌 책 보다는 중고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소규모 영세업자의 영역의 헌책방을 중고서점으로 바꾸어 부름에 따라 보다 대형화되고 조직화된 자본의 시장침투가 용이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2.  '중고서점'이 쓰고 있는 '헌책방'의 탈:


앞서 말했지만, 헌책방에서 오는 어감도 그렇고, 아무래도 헌책방은 소상공인의 영역이고, 보다 더 가벼운 주머니의 사람들이 좀더 좋은 가격에 책을 구하기 위해 second hand로 거래되는 책, 남이 보다 넘긴 책들을 찾는 공간이다.  규모에 있어서나 고객층에 있어서나 전통적으로 헌책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낮은 곳에 위치만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frequented되는 공간이라고 생각되고 마켓 자체도 그런 태생적 feature가 있다고 보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것이 차별이나 다른 형태로 헌책방 업계를 얕잡아 볼 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실상이 그렇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출판과 유통이 모두 변한 책 마켓의 특성상 좀더 다른 의미, 다른 구조, 또는 다른 사용자들과 업계와 섞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일종의 틈새마켓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서점업계와 유통구조가 인터넷을 만나고, 이후 다시 책읽는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시대가 되어 전체적인 책시장 자체의 규모가 줄어들고, 마진의 pie가 줄어든 지금 슬그머니 이 영세시장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자본세력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중고서점'이라는 말로 '헌책방' 마켓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역시 별 생각이 없이 그냥 깨끗한 헌책방이 생겨서 좋다는 정도로만 봤는데, 실상을 놓고 보면 이들이 파는 건 '헌책'이 아닌 말 그대로 '중고'새책인 듯 싶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깨끗한 책을 덜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헌책방에서 유통되는 건 이런 새 '중고'책보다는 새책시장과는 다른 별개의 마켓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들이고 이를 되파는 등 보다 더 산발적이고 비조직화된, 서점마다 각각의 캐릭터와 주력분야 및 주인의 전문성을 갖춘 헌책방과 중고서점과는 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헌책방의 경우, 특히 오래 영업해온 서점은 주인의 전문성이나 종류의 특화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아가서 기업형 편의점의 잠식도 모자라서 포화상태에 이른 소상공마켓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서점운영은 한 가정이 중산층 수준의 삶, 설사 그보다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손 벌리고 기본임금과 격무에 시달리지 않고서도 도시근교의 삶을 보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중고서점'의 경우, 오너는 모두 회사로, 구성원은 모두 시급알바로 기본적인 책의 전문성보다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사의 재고를 recycle하는 수준 (조금 비약이 심하지만)이 아닌가 싶다.  책의 종류도 무엇도 모두 구조화되어 회사의 필요와 상품성에 의해 결정되는, 하지만 '헌책방'의 추억과 보다 더 현대적으로 자본적인 예쁜 장식이 이 현실을 포장하여, 우리 모두를 둔감하게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이라면 어느 정도의 깨인 마음과 머리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이들까지도 이런 facade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3. 탈서점화, 또는 복합공간화

이건 조금 어렵다.  대형서점까지도 사라져가는 시대에 작은 개인서점이나 헌책방을 꾸려가려면 정말 많은 꼼수와 차별화가 필요한 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마치 헌책방이나 개인서점이 가야할 미래의 길이라고만 보는 건, 그 칭찬일색의 평가만큼이나 불편하고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각종 안전망이나 시스템 수준의 보호가 사라진 현대의 헬조선에서 무엇이 과연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것, 특히 먹고사는 문제를 기본으로 놓고 이야기 하는 경우,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정답은 없다고 결론이 나오면서도, 무엇인가 불편하고,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의견이 전부도 아니고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아니 사실 이 글을 쓰던 그 날부터의 결심이지만, 나는 오늘부터 중고서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용어에서 오는 negative한 또는 positive한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이 말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 부르는 건 내 자유이거니와, 이게 지금의 나에겐 최선의 저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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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헌책방` 대신에 `책방`으로 쓴 적이 있었어요. `헌책방` 용어에 사람의 손때가 묻은 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거든요. 그러다가 다시 예전 용어를 쓰고 있어요. 그러면 저는 `알라딘 중고서점`을 `알라딘 서점`으로 써야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4-13 00:5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때 쓰신 글을 보고 마구 쓰다가, 도통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어제 다행스럽게도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꼭 헌책방과 알라딘 중고를 구분지어 쓸 것입니다.
 

바쁜 것도 있고, 책을 읽는 속도도 좀 떨어지고, 무엇보다 그냥 서재활동의 재미가 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글도 쓰고, 다른 분들의 서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개인만 놓고 보았을 때, 이것은 북플이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분명 북플을 런칭하여 좀더 넓은 서재활동의 지평을 여는 등, 마케팅 차원에서는 알라딘의 저변확대가 꽤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슬슬 북플 자체의 기능도 그렇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알람도 그렇고, 서재에 가봐도 별 내용이 없는, 북플을 통해 맺어진 '친구'관계도 그렇고, 모두 심드렁한 것이다.  봄이 와서 몸과 마음이 늘어진 것 같지는 않고 (사실 그럴 여유도 없다), 내가 좀 지친 탓은 있지만, 어쨌든, 나에게 있어 북플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venue가 아닌가 한다.  


일단 전화기에서 북플 앱을 지웠다.  나는 가능하면 PC를 통해 서재에 들어와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행여나 댓글이 달렸을까 하며 설레어하는 맘을 다시 느끼고자 한다.  


같은 취지에서, 원래 서재친구를 맺고, 관심을 갖고 방문하여 교류하던 분들의 서재를 즐겨찾는 서재에 제대로 리스팅 될 수 있도록 북플을 정리할 생각이다.  혹시라도 나의 이런 결정 때문에 조금은 서운한 분들이 생긴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서재는, 그리고 서재를 통해 맺은 관계와 내 글쓰기는 '북플'이라는 마케팅 플랫폼보다 나에겐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일년에 알라딘을 통해 사들이는 책을 생각할 때, 난 알라딘이 나에게 '북플'을 통해 얻은 마케팅 효과를 훨씬 상회하는 이득을 주었기 때문에, '북플 따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게으름이나 의욕저하를 '북플'에 blame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두고 보면 알겠지...

어쨌든 난 '북플'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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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4-06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ㅡ일까요...활기가 쏙 빠져 저역시 이전 같지 않아요...뭔가 크게 잃은 기분 이랄까 ㅡㅎㅎㅎ 저의 의욕저하를 북플에 blame 하는 걸까요?^^;;

transient-guest 2016-04-06 11:53   좋아요 1 | URL
뭔가 거품이 빠지고 있는 느낌도 나네요. 여전히 북플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냥 재미가 좀 없네요...일종의 불감증 같아요.

[그장소] 2016-04-06 12:00   좋아요 0 | URL
불감증이란 얘기 공감가요 ㅡ그럴수도있겠다는 ㅡ^^;

무해한모리군 2016-04-06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신저나 북플 모두 알람기능을 꺼두고 사용합니다. 밖에서 글쓸때만 씁니다 ㅎ 안스마트한 인간이라

transient-guest 2016-04-06 11:53   좋아요 1 | URL
저는 폰으로 문자하는 걸 싫어해서 거의 쓰는 기능이 없긴 해요..ㅎ 그저 알람이 뜨면 그러려니 했는데, 일단 북플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락방 2016-04-06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여전히 피씨로 서재에 들어와서 글을 써요. 위에 휘모리님처럼, 밖에서 혹여 갑자기 글을 쓸 일이 있을 때는 북플을 사용하고, 알람기능은 죄다 꺼두었지요. 저도 한 때 북플을 지웠었어요. 아하하하. 이 글 읽고나니 다시 지울까 싶기도 한데, 밖에서 글을 쓸 땐 유용하기도 하거든요. 음.. 밖에서 글 쓸 일이 얼마 없긴 하지만....

북플이 생기고나서 확실히 글 읽는 재미가 좀 떨어지긴 한 것 같아요. 북플 생기기 전에는 최신 서재글 올라온 거 다 봤는데, 이젠 다 못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피씨로 들어와서 늘 가던 분들에게만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음, 저는 제가 SNS 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transient-guest 2016-04-06 11:55   좋아요 1 | URL
저도 페북이나 트위터 안 해요..ㅎㅎ 너무 까발기는 느낌이고, 실시간으로 뭐 하는거 다 보여주는 것도 귀찮고 해서요.. 북플이 유용하긴 한데, 뭔가 좀더 소중한 걸 빼앗기는 느낌입니다. 쓸데없는 것도 너무 많아요..글이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 읽고 있다, 읽고 싶어한다, 평가했다..별 몇 점...이런 거 은근히 피곤하네요..

[그장소] 2016-04-06 12:04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이나 이전 서재를 계속하시던 분들은 아무래도 그 루트가 익숙할 걸테죠..저는 서재나..북플이나 하나인줄 알았는데 ㅡ나눠어져있어서 한참 해멨고...지금은 둘다 벅찬게 사실 ㅡ서재만 있을때도 교류는 잘 못했거든요 ㅡ북플 최장점은 즉흥적으로 쓸수있다는거...단점은 역시 교류적 문제 같단 생각 ㅡ이쪽도 잘 안뵈긴 같은 ㅡ의미로 ..쌍방향 같은데 아니기도한 ...서재와 통합되는게 좋을것도 같고 ㅡ어려울것도 같고...ㅎㅎ

알케 2016-04-06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북플 이후로..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할까 싶네요

transient-guest 2016-04-06 14:33   좋아요 0 | URL
정말로 러다이트 운동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ㅎ 좀 무리하게 확장한 경향이 없지는 않지요...

cyrus 2016-04-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guest님이 북플을 지운다고 해서 이웃들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t-guest님이 북플 시스템이 지겨워서 지우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니까요. 그 행동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죠. 이웃이 내가 쓴 글을 보는지 안 보는지, 북플에서 뭐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어떤 이웃의 글이 정말 좋아서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신청하는 분이 많지만, 친구 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지속적으로 교류 관계를 이어하기가 힘든 이웃이 있으면 친구 관계를 해제합니다. 도배 글을 올리거나 ‘책을 읽고 싶어합니다.’, ‘책을 읽었습니다’만 많이 올리는 이웃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회원이 친구 신청하면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 분들 때문에 정작 좋은 글을 볼 수가 없으니까요.

transient-guest 2016-04-08 02:16   좋아요 0 | URL
그래서 북플로 맺어진 관계를 조금 정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원래의 관계가 다 밀려나고 쓸데없는 관계만 늘어가는 것 같아서요. 일단 조금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