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바쁜 어제와 오늘을 보내면서 어쩌다 보니 오늘은 운동을 아예 빼먹었다. 역시 새벽을 이용하는 것이 (1) 시간의 배분에서, (2) 하루를 멋지게 시작하는 의미로, (3) 바쁜 일상에서, 그리고 (4) 오후가 되면 하기 싫어지거나 할 수 없게되는 경우가 많은 나에겐 최고인데. 아직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나의 새벽운동과 달리기는 그렇게 try하겠다는 각오면 현재진행중.


띄어쓰기를 비롯한 한글맞춤법은 계속 퇴행하는 것 같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맞춤법도 자꾸 바뀌니까 언젠가는 나의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는 옛날에 아주 일찍 한국을 떠난 내 친척어른들의 그것과 같아질 것이다. 














그야말로 술과 맛난 안주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트리오가 아니겠는가. 어제 '입고'된 (아무래도 일본어의 영향이 찐하게 느껴지는 이 표현은 사실 서점에나 어울리는 말이지만) 것들 중에서 자투리시간에 읽은 세 권이 다 술과 맛과 멋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별히 술을 가리지는 않지만 몸의 반응만 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와인이 가장 좋다. 어떤 술이든지 많이 마시면 다음 날엔 고통이지만 적절한 수준으로 취할 정도의 양이라면 다음 날이 편한 술은 와인이다. '신의 물방울'이나 '마리아주'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싼 것이라고 해도 소매가 50-70불대의 와인이고 조금 괜찮다 싶으면 100불, 아니 아예 구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서 여기서 소개된 와인을 마시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비해 '술 한잔, 인생 한입'이나 '심야식당'의 술과 안주는 아주 현실적이고 언제든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도락의 멋을 보여주니 가끔씩 들어오는 이들을 보면서 힐링을 받게 된다. 특히 어제나 오늘처럼, 아니 요즘처럼 일을 많이 하고, 많이 해야 하고, 많이 하려는, 이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은퇴에 가까워지고픈 시기에는 더더욱.


이 두 권 말고도 '서점'과 '책'을 테마로 한 멋진 녀석들이 네 권이나 더 '입고'됐다. 우선 읽은 이들에서 '서점'과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모아들인, 이제는 꽤나 자리가 잡혀버린 듯한 '이상북스'를 본 후, 2018년에 나온 '이후북스'의 생존분투기와도 같은 이야기를 보니 이런 대조가 또 없다. 필력이라고까지 하기엔 좀 뭐하지만 이야기를 펼치는 솜씨도 '이상북스'의 주인장은 보다 더 원숙한 모습이고 '이후북스'는 아직은 원더걸스의 데뷔시절이나 심지어 'No. 1'으로 뜨기 전, 1집시절의 보아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얘네 (책을 말함)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이고, 고작 어제와 오늘 읽은 책인데도 강하게 남는 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읽을 땐 언제고 느끼는, 책으로 둘러싸인 소박한 공간에 대한 로망과 요망의 흔적이다. 좀 얇은 책장으로, 책을 두 겹으로 꽂이 않고 벽마다 넓게 펼쳐진 높은 책장 가득히 책과 그간 살아온 흔적과도 같은 VHS, DVD, Blue-ray와 CD를 채우고 앉기 편한 자리를 여기저기에 만들어 놓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낮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해가 지면 영화를 감상하고, 달이 뜬 후 밤이 깊어감에 맞춰 딴 술 한 병과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삶을 정리해가는 날을 기다려보다가 그런 날이 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뭔가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한 마음으로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여기에 꾸준한 단련과 여행이 곁들여질 수 있는 여유의 연금생활자라면 그만큼 늙어버리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그 시간과 함께 다가올 주변과의 이별은 두렵다 못해 지금도 벌써 가슴이 아픈 것이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에도시대로 날아가 버린 것처럼 이 두권을, 순서로 보면 가장 먼저 정리했어야 할, 떠올리게 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위의 이야기가 나의 미래에 대한 끼적끼적이었다면 이건 누군가가 살았음직한 평행세계의 과거가 아니겠는가. 


일본의 문화에서 어떤 '념'에 대한 개념은 아주 무겁고 깊게 다뤄지는 걸 종종 보는데 이 주술적인 면은 내가 좋아하는 일본문화의 한 부분이다. 짦은 단막극을 모아놓은 두 권의 책은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처럼 '미시마야'의 괴담자리와 함께 평행으로 흐른다. 요즘은 미미여사의 추리소설보다는 시대극이 더 즐겁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사회'는 이미 소설보다 더 복잡하고 난리법석이라서 굳이 '사회파'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적기 때문이다. 


'Band of Brothers'의 Dick Winters소령의 책에 이어서 Bill Guarnere와 Heffron이 함께 회상하는 Easy중대의 이야기. 같은 시간,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이렇게 교차해서 다른 관점에서 보는 건 거의 모든 리서치에 통용되는 방법인데 그런 복잡한 공부가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Band of Brothers' 시리즈는 정말 많이 봤지만 정작 지금 읽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근 8000여권의 책더미에 깔려 어딘가 숨어버린 탓에 찾지 못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집에 대충 1000권 정도가 있으니 7000권 정도의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체를 구성하는 piece를 두 권 읽었으니 'Band of Brothers'를 읽는 것으로 전체를 한번 조망하면 좋으련만 책을 다시 찾을 날까지는 어렵겠다. 드라마나 책이 나온지도 어언 시간이 꽤 흘러서 Winters소령도, 이 두 용사도, 심지어는 'Band of Brothers'의 Ambrose작가도 돌아가셨으니 2022년이란 시간만큼 달려온 2000년대, 2010년대를 넘어 2020년대라는 엄청난 distance를 느낀다. 시간의 개념을 넘어 지난 20여년의 시공간을 그대로 그려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다음 20년은, 그 다음은?


다시 현실의 문제로 돌아와서, 기후변화에 따른 대재앙급 시나리오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시장의 변화와 다양한 국제적요소로 인해 갑자기 급등한 정유회사의 주가를 보면서 gasoline이 에너지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해결책이 제기되지만 3D를 넘어 4D, 아니 5D급으로 입체적이고 동시적인 액션이 지구전체의 각성을 통해 취해지지 않으면 어럽겠다는 결론을 내린 바, 생각보다 불투명하고 우울한 미래를 본다.


여담이지만 빌 게이츠는 '지구'적인 문제에, 일론 머스크는 '지구'보다는 바깥의 일에 매진하는 것 같아서 가끔 둘을 비교하면 재밌다. 


매일 일정한 양의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미룰 틈이 없는 일상이라고해서 딱히 피곤한 건 없다. 어차피 직업으로서의 일이고 하는 만큼 버는 것이니까 바쁘면 그만큼 더 벌고 더 쌓아가면서 미래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니까. 그저 너무 미래에만 살지는 않고 조금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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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2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ransient님께서 빌 게이츠 몇 번(?) 올려주셔서 저도 이 책을 꼭 봐야겠다는 불끈!

[코로나 크래시] 재독 중인데 반쯤 진도 나갔어요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이랑 함께 보면 좋겠네요.

transient님처럼 운동 규칙적으로 삶 일부 만드신 분은 어쩌다 하루쯤 빼놓으셔도 당당하실듯!! 전 밤 죠깅 안한지 2달? 3달 넘었어요^^;;

transient-guest 2022-02-03 03:03   좋아요 1 | URL
넷플릭스에 다큐도 봤는데 흥미로운 관점이 있습니다. 과연 재앙을 피할 수 있을지 사실 읽고나서는 오히려 회의적으로 바뀐 면도 있어요. 너무 복잡한 것들이 다 얽혀있더라구요.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조금씩 다시 하셔도 좋겠어요. 밤에 달리는 그 맛이 좀 있잖아요.ㅎ

라로 2022-02-02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심야식당이 13권인가 14권인데,,, 님은 나오는 책 다 보시는 군요!! 아~~ 또 급 사고 싶게 만드는,,, 술도 땡기는,,, 술과 맛과 멋,,,, 캬 좋아요!!

transient-guest 2022-02-03 03:04   좋아요 1 | URL
가능하면 좋아하는 시리즈는 이렇게 꾸준히 모으려고 합니다. 한꺼번에 사는 건 너무 힘들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주말이니 뭘 마시고 안주로 먹을지 기대가 됩니다.ㅎ
 







읽은 책이 많이 없어서 우선 정리하기로 했다. 아직 한창 전개가 되고 있는 이야기. 여러 가지 얽힌 실타레가 던져진 상태. 아무래도 나이를 먹고 판타지를 읽으니 외국의 판타지와 많은 차이를 느낀다. 일단 독자층을 더 넓힐 수 있는 수준의 필력과 언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어린 언어유희는 작품이 깊어지는 걸 방해하는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아직은 판타지가 그 옛날의 '드래곤 라쟈'에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것에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에피 브리스트'를 교재로 읽은 것이 대학교 때였으니 대충 생각하면 25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역사교재로 읽었기 때문에 작가나 작품의 소설적인 의미를 분석하지는 않았고 작품에서 드러난 시대상을 주로 이야기했었다. 같은 작가의 '얽힘 설킴'을 읽으면서 사실적인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자의 글을 보니 '극사실주의'라고 한다. 그 명칭에 걸맞게 이 소설에는 환상이나 happy ending은 없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비록 남자는 좀더 환상을 갖지만)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여 미래의 행복을 그리지 않고 현실의 사랑을 한다. 귀족남자는 당시의 귀족남자답게 능력도 없는 주제에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하며 이를 지속시켜줄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여자는 그 추억을 간직하다가 다시 현실적인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 속에 담겨진 사회나 미래의 상징성은 차치하고라도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문학'이란 타이틀이 붙는 작품인데 어떤 의미로는 이런 '문학'을 소설로 쉽게 접근하고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이라는 베일로 둘둘 감싸고 소설을 접근하여 이를 신성시하고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식의 독서론을 벗어난지 오래인 이유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개소리에 놀아나는 건 한때의 바보짓으로 족한 것이다. 깊이 없는 지식인들의 얕은 말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면서 내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role model을 찾은 기분. Band of Brothers 시리즈를 보면서 항상 멋진 군인을 넘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Dick Winters의 관점에서 보는 101공수부대-506연대-Easy중대의 활약에서 부대원들의 용기와 희생, 단결과 형제애를 다시 한번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여기에 더 중요한 건 Dick Winters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끝에 그가 말하는 Leadership에 대한 열 가지 계명을 복사해서 한쪽에 붙여두고 매일 읽고 머릿속에 새겨 삶의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전쟁은 사람을 늙게 한다. 고작 이십 대의 청년이 몇 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사선을 넘어가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for better or worse, 그 끝에 얻은 평생의 lesson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낸 Dick Winters는 나라, 인종, 이념, 종교, 시대를 넘어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운동을 하면서, 일을 하다가 게을러지거나 대충 하고 싶을 때마다 그의 말을 되새겨보게 된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견뎌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철같은 단련으로 육체와 정신을 단단히 무장할 필요가 있다. 똥파리가 난무하고 가짜 스승과 가짜 지도자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믿을 건 자기자신과 자신을 아껴주는 주변의 소수밖에 없다. 뉴스와 책, 강연도 참고의 대상일 뿐, 성찰과 분석을 통한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깨인 머리와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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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0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자계서나 성공학서적을 쓰는 인간들의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에서 얻어진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사례와 남들의 말을 가위질해서 적당히 가져다 뚝딱 한 권을 만드는 세상이니까 더더욱. 책은 잘 안 버리지만 늦깍이로 시작한 사회생활의 첫 몇 년간 그렇게 쓸데없이 구해 읽는 책은 다 버렸다. 근처 도서관에 갖다주면 한국책 section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세상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 Strive to be a leader of character, competence, and courage


2. Lead from the front. Say, "Follow me!" and then lead the way


3. Stay in top physical shape - physical stamina is the root of mental toughness


4. Develop your team. If you know your people, are fair in setting realistic goals and expectations, and lead by example, you will develop teamwork


5. Delegate responsibilities to your subordinates and let them to their jobs. You can't do a good job if you don't have a chance to use your imagination or your creativity


6. Anticipate problems and prepare to overcome obstacles. Don't wait until you get to the top of the ridge and them make up your mind.


7. Remain humble. Don't worry about who receives the credit. Never let power or authority go to you head


8. Take a moment of self-reflection. Look at yourself in the mirror every night and ask yourself if you did your best.


9. True satisfaction comes from getting the job done. The key to a successful leader is to earn respect - not because of rank or position, but because you are a leader of character


10. Hang Tough! - Never, 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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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고 있는 책은 많지만 한번에 여러 권을 조금씩 읽다보니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일주일 내내 그런 상태라서 겨우 지난 주였던 연초의 새해계획이 벌써 흔들리고 있다. 지난 12월의 게으름을 떨치기 위해 조금씩 다시 일근육을 늘려가는 것처럼 독서도 그리 되어야 할텐데.


추리소설은 판타지, SF와 함께 머리를 맑게 해주고 다른 세상을 구경하게 해주는 고마운 장르다. 개인적으로 '장르'문학으로 치부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좋은 작품의 문학성은 '순수'한 '문학'작품 못지 않거나 종종 그 이상의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너무도 유명한 사회파작가인데 최근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기담을 더 많이 읽은 것 같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는 스타일이라서 '모방범'에서 봤듯이 세팅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품이 있어 이야기가 명확해지는 지점까지 가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 작품 또한 세 권으로 되어있고 지금까지 읽은 부분까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장치와 구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정도. 예전의 집중력과 시간이라면 금방 세 권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천천히 몇 페이지씩 읽어나가니 진도를 내기 어렵다.



이름은 예전에 들어봤고 아마도 대학 때 유럽지성사를 공부하면서 접했던 작가로 기억하지만 제대로 뭔가를 읽어보는 건 한글로는 처음인 것 같다. 공부는 그저 struggle한 기억이 더 많고 당시 짧은 영어로는 특히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고 묘미를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었기에 딱히 기억이 나는 건 없다. 지금의 눈으로 볼 땐 일차사료 내지는 이차사료처럼 이 시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1/4 정도까지 왔으니 이 또한 진도가 느린 탓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빚이 많은 귀족남자는 시골아가씨를 사랑하지만 하는 일이 없이 수입보다 많은 돈을 쓰는 탓에 생활을 이어가려면 지참금을 많이 들고 올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고 주변에서 바라고 기대하는 것도 그런 상황. 아가씨는 지금의 사랑을 믿지만 결국엔 헤어질 것을 알고 있는 듯하나 철딱서니가 없는 귀족놈은 깡깡이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여기까지.


SF역사에 있어 이 작가를 빼놓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할만큼 기념비적인 유명한 작가. 처음 읽는 그의 작품은 나에겐 생소하고 난해하기만 하다. SF 또한 애정하는 바, 보통 상당히 intuitive하게 이해도 빠르고 진도가 잘 나아가는 편인데 이 책은 그렇지 못하다. 책으로는 반 조금 못 미치고 '미래학 학회'라는 작품은 거의 다 왔는데 워낙 긴 호흡으로 조금씩 읽었기에 스토리는 아주 띄엄띄엄 기억하고 있다. 세 권에서 네 권 정도는 동시에 읽어도 괜찮은데 그 이상이 되면 너무 중구난방이 되는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SF작가들 중 하나로 그 이름은 무려 아서 클라크, 필립 딕 등과 함께 거론되는 20세기의 거장이라고 하는데 비영어권 작가라서 덜 익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문번역으로 위쳐시리즈를 읽을 때 느꼈지만 몽땅 한꺼번에 서구권, 서양작가라고 하기엔 유럽 각국, 거기서 북유럽이나 동유럽으로 가면 그 정서가 익숙한 '미영프'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걸 느낀다. 


요즘 미국의 정치를 보면서 2차대전 직전 프랑스 3공화국의 혼란을 본다. 작가의 책을 여럿 읽었는데 그가 겪고 살아낸 1차대전의 종전부터 2차대전까지의 유럽을 보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긴 평화, 그로 인한 정체, 여기서 파생된 부의 불균형에서 온 분노와 좌절이 불러온 파시즘과 전체주의, 이를 대항하지 못하는 분열된 온건우파와 좌파를 비롯한 3세력의 무능까지 트럼프가 등장한 이래 보여준 미국의 무력한 모습이 오버랩 된다. 강력한 국가를 표방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파시스트 정권이 벌이는 도발에서 야금야금 유럽을 좀먹어가던 나치독일의 도발을 본다. 이 책은 그 현상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 density가 워낙 대단하여 진도를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아주 조금씩 읽어가고 있다. 이걸 붙잡은 것이 일년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한 1/4 정도 읽었나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230페지 정도 읽었으니. 


많은 책을 끼고 있으면서 또다시 시작한 이 바보스러운 버릇으로 가장 최근에 보기 시작한 책. 우리 시대 거인들 중 하나인 빌 게이츠가 기후변화와 이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 및 그가 생각하는 효율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넷플릭스로 본 다큐에서 그가 말하는 스타일을 처음 접했는데 이 책을 보면 그의 말투가 글에 그대로 드러나 구술한 것을 다른 이가 썼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 시간이면 책 한 권을 읽고 90%이상을 기억하는 천재적인 두뇌는 계속된 지의 고련과 명사/전문가들을 직접 만나서 전달받는 고급정보를 해석하고 분석해가며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똑똑했던, 혹은 시험을 잘 본 댓가로 30-40대 이후 정체해버린 대가리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가. 잦은 업무출장마다 책을 싸들고 다니며 읽는 모습은 독서인으로서 희망적이고 고무적이다. 한 1/5 정도 읽었다.


이런 책은 한 권씩 양서만 읽어나간다. 내가 생각하고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그리고 문학과 소설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 동안 속은 것이 분했을 정도로 쓰레기같은 자계서를 수 백권 읽은 과거가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2020년부터 답답한 상황에서 뭔가를 찾기 위해서 그리했던 것이다. 잠시 주춤했으나 좋은 책을 보면 확실히 내가 몰랐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얻게 되니까 양서라면 얼마든지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은 하루에 20-30페이지로 나눠서 읽었는데 멈춘지 좀 된 것 같다. 재미있는 미래분석과 시장예측을 하고 있지만 빨리 읽지 않으면 커즈와일의 책처럼 유효기간이 지나가버릴 것이다.



우연히 YouTube알고리즘으로 건너간 저자의 방송을 몇 개 봤는데 아직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하루에 딱 한 페이만 읽는 책으로 다 읽으면 2022년이 끝난다. 


이렇게 하루에 한 귀절씩 성찰을 위한 경구를 읽으면 잠깐이지만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읽고 잠시 기도를 하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하고 있는데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정리해봤다. 어쩌면 다 읽은 후의 기록보다 더 나을 수도 있을만큼 아직은 fresh한 기억을 바탕으로 글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새해의 주말이 하나 또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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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얽힘설킴 모르는 책이었는데 올려주신 글을 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읽어봐야 겠어요.

transient-guest 2022-01-09 10:47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고 있어요 ㅎ 아직 전체적인 맥락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평 올리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새해의 첫 운동을 한 일요일. 새벽에 잠이 깨는 바람에 자칫하면 오전에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추스리고 일어나 gym에서 운동을 하고 마트에 다녀와서 다시 동네를 걸었다. 걷기 또한 미루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새해'라는 상징성을 적절히 심리적으로 활용한 결과 근 5마일 가까이를 걸을 수 있었다. 근데 health app 기준으로 보면 (독보적을 해보다가 알게 됨) 11992보 걸은 것으로 나온다. 내가 알기로 대략 6마일 정도를 걸으면 2만보가 나오는데 좀 이상하다만, 뭐 기록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 정확성엔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어제 새해라고 친척집에 갔다고 올때 누나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나서 갑자기 근처 exit으로 나가 차를 세워보니 왠 한인대형교회의 주차장. 타이어를 가는 건 귀찮긴 하지만 어려운 일도 하니고 예전에 종종 길에서 갈아본 경험도 있어서 어차피 나사 같은게 박혀 언젠가는 터졌을 것이 내가 있을 때 터져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거의 집 근처의 exit이었고 마침 넓은 공간이어서 타이어를 가는 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지나가던 사람의 친절. 어떤 사람 (교회사람 아님, 한국사람 아님)이 타이어가 펑크난 걸 보고 스패어가 없으면 자기가 마침 하나 차에 싣고 있으니 필요하냐고 지나가면서 물어본 것. 그리고 그 늦은 시간, 교회에서 나오던 몇 대의 차 (그 시간엔 일반 신자가 올 시간이 아니니 조심스럽게 추정하건게 교회일을 보는 목사, 전도사, 혹은 장로가 아니었을까)는 어린 조카와 누나가 밖에서 떨면서 내가 타이어를 가는 걸 보고 있는 그 장면 바로 옆으로 차를 운전해서 가버리더라는 것 (멀리도 아니고 내가 그 몇 명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뭐 도움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지만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 나의 덕이 부족한 탓이겠지?


코로나 3년차의 이곳에서 이젠 감기나 콧물은 그래도 용인이 되는 듯. 작년 이맘 땐 감기에 걸리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기에 무척 조심했었는데 이번엔 flu shot + 3차까지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춥다보니 콧물을 달고 산다. 


술을 많이 마신 12월. 1월의 반은 비슷할 수도. 하지만 이런 저런 모임, 특히 가족/친지들의 모임에서 나처럼 술을 권하는 jester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의 크리스마스와 새해엔 내가 준비한 와인이 꽤 인기가 있었으니 역시 나이를 먹으면 다음 날이 편한 좋은 술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나저나 와인은 두고 먹으면 되지만 Costco에서 너무 싸게 나와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지른 버드라잇과 사포로 어쩔껴? 술을 좋아하시는 서친들 몇 분이 근처에 계셨다면 한번은 좋은 술로, 다른 한번은 창고대방출로 맥주파티를 했을텐데. 사포로 24캔이 20불, 버드라잇도 그 정도면 너무 싸다. 와인도 Costco의 경우 가성비가 좋은데 특히 25-35불 사이의 가격대의 와인을 주기적으로 10불 정도 세일을 하고 회전이 좋아서 술을 마시기에 좋은 환경이다. 한국처럼 술 권하는 사회는 아니되, 술 마시기엔 훨씬 좋은 환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소주나 막걸리는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싸지만 여기 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걔네들이 보통 3불 정도면 한 병을 사니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새해엔 좀 적게 마시되 좋은 걸 마시는 걸 지향하는데 일단 1월 중순까지 창고정리를 마친 후 apply할 policy라고 본다. 그러고 보니 문어모양으로 가볍게 볶아 먹는 비엔나를 안 먹은지 너무 오래된 듯. 주중에 한국장에 가면 사와야지. 


뭐든 열심히 하며 살다보면 아주 금새 내년 이 자리에 앉아 같을 소릴 반복하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렇게 새해의 둘쨰 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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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새해에 항상 같은 결심을 반복하는게 인간이죠. 그래도 뭔가 하나쯤 결심하고 나면 뻔한 결심도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게 결국 새맛이잖아요. 리셋의 힘같은게 느껴진달까? ^^
새해에도 운동 열심히 하셔서 더 건강해지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
그나저나 저 술들의 가격은 정말 부러울따름입니다. ^^

transient-guest 2022-01-03 11:17   좋아요 0 | URL
그런 걸 보면 이렇게 매년 시작과 끝이 있는게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술은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저렴합니다 ㅎ 처음에 이민오거나 유학을 오면 흔히 한동안 고기와 술에 지출을 많이 한다고 하네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