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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1984년, 홀로 남겨진 소년
2012년은 내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다. 큰 꿈을 안고 시작된 한 해였으나 그 어느때보다 잔인했으므로. 시작부터 호락호락 곁을 내어주지 않더니 급기야는 건강을 앗아가고 마비로 쓰러지게 만들고 병원신세를 지게 만들었다. 좀 호전되나 싶었는데 다시 쓰러지게 만들고 손가락을 썩어 문드러지는 것처럼 시커멓게 변형시켜버리거니 거식을 겪게 만들었다. 결국 갑자기 20kg이 빠지면서 세상은 어질어질 어지러워져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누군가의 말처럼 지나가더라. 시작은 잔인했으나 그래서 더 오기를 품게 만든 해가 내겐 2012년 이다.
소년에겐 잔혹했던 해는 1984년이었다. 전국민이 그를 "기적의 주인공"으로 여기며 소생을 기다렸던 그 해, 그는 아비를 잃었다. 어미없이 자란 그였기에 단 하나 남은 가족을 잃음 셈이었다. 그들이 탄 자동차가 시민들을 죽이고 달아나던 남한에서 "보일러 공"으로 일했다던 무장간첩의 차를 들이받았다는데, 사고경위를 알려준 권대령이라는 자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열다섯의 정훈이가 들어도 의문을 제기할 만큼 엉성했다. 하지만 그 스토리를 듣고 감동의 눈물바다가 될만큼 1984년의 국민들은 순진무구했다.
그리고 기적의 주인공인 그는 "원더보이"가 되었다.
보통 "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들과 달리 "보이"를 달게 된 그는 송년특집원더보이 대행진에 나갔다가 능력이 들통나 재능개발 연구소로 보내진다. 포레스트 검프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지만 역사적인 사건들의 중심을 스치고 지나며 달렸던 것처럼 고문실에서 고문당하는 사람까지 보며 시대적 아픔을 어린나이에 체감하게 된 그에게 좋은 일이란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p. 37 우리는 단 한번도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올림픽복권, 호돌이, 르망, 국민학생, 화염병...
로또와 초등학생만을 아는 세대에겐 낯선 이 단어들이 지나온 세대에겐 그리움이고 추억이고 낯익음의 단어다. 향수처럼 밀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겪어온 것들은 각기 다른 추억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단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이 주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에 소년은 방황하는 세상을 구경하는 관찰자로 살 수 밖에 없었다. 홀로 남겨진 열다섯 소년의 삶보다 그가 바라본 세상이 더 슬펐던 시기, 차라리 수많은 별들이 알알이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했을 그 시절,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더보이의 세대가 지나고...세상도 성장하고 소년도 성장해 나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소년도 열다섯에서 열 일곱으로 성장했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성장했다고해서 삶이 더 나아진 것일까. 나는 자신있게 "yes!"f라고 답할 수 없다. 다만 그때도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한구석에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만든다는 것만을 위로삼아 살아가고 있다고만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 속 원더보이는 한 때 국민들의 기적이요, 희망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외로움에도 끝이있고 방황에도 그 끝이 있다. 삶에도 끝이 있는 것처럼. 소년의 성장소설이 내게 알려준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 삶의 정답을 쥐고 위로받고 있다. 내 2012년의 잔인함에도 끝이 있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니 삶의 끈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어야겠다고......나는 치유되고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로 다가갔던 것처럼 작가 김연수의 [원더보이]가 지금의 내겐 위로와 위안을 안겨다 주었다. 소년은 지금 이 순간, 내게도 원더보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