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 자화상에서 내 마음 치유하기
김선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니가 미술치료 강의를 하고 있어도, 그림을 좋아해서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에 대해 대학에서 교양삼아 한학기 강의를 듣긴 했어도 내게 그림은 그저 그림이었다. 귀를 잘라냈던 화가의 자화상에는 팍팍한 삶이 전해 준 고난의 흔적이 역력해 마주보고 있기 힘들었고, 잘생긴 화가의 자화상엔 예술의 혼이 결핍된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들의 배경이나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사회상을 알아내는 일은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화가의 얼굴까지 알아서 무얼할까 싶어 될 수 있으면 자화상 보기는 회피하곤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는 뭉크,뒤러, 앤디워홀 등의 자화상이 80여점이나 실린 책이었다.

 

미술치료,음악치료,문학치료에 이르기까지 예전엔 심리나 정신과의 영역이었던 치유의 영역들이 예술의 영역으로 확대된대는 분명 그 까닭이 있을터.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정신없이 책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앤디워홀은 참 감각적이고 멋진 화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실제의 그는 너무나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못생기고 초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양반은 자신에 대한 외모컴플렉스를 멋진 자화상으로 변신 시켰고 오늘날에도 앤디워홀 하면 그 그림들이 먼저 떠오를 정도이니 이정도면 이미지 쇄신에 천재가 아닐까.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그는 헐리웃 스타들처럼 그린 [6개의 자화상]을 통해서도 스타일리시한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반면 과거로 가보면 프랑스 왕궁은 참 재미난 곳이었다. 루이 15세의 아내 마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인 폴란드에서 시집와 왕과의 금슬이 좋았으나 정치적으로 배제되었고 그녀의 딸 아델라이드 공주는 엄마와 달리 용감하게 권력을 장 속으로 발을 들이 밀었으나 결국 뒷방 늙은 이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주어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 며느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 이슬로 사라졌으니, 2대의 왕을 거치는 사이 왕궁 여인들의 삶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이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이다. 참 재미난 곳이다. 프랑스 왕궁은.

 

이런 세 여인의 자화상을 9장에 걸쳐 구경할 수 있고 그림 사이사이 융과 같은 학자가 주장했던 학설들도 쉽게 그림을 보아가며 이해할 수 있으니 자화상 구경이 딱히 해롭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

 

누군가의 얼굴을 안다는 것. 익명에 부쳐지지 않는다는 것. 공인이건 아니건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이전에도 그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긴 했으나, 과연 모드 이 그림처럼 생겼던 것일까. 리터치는 그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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