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홈페이지에서 ‘지면 보기’를 클릭하여 지면을 ‘화면 캡처’함.)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튀르키예 지진 같은 굵직한 사건만 큰 비극을 낳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의 병이 깊어져 슬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슈코른 영감은 장날에 장터로 가다가 조그만 노끈 오라기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소용이 될 만한 것이라면 주워 모아 두는 게 좋다고 여겨 그 하찮은 노끈을 주웠다. 노끈을 주운 이 행동이 남의 지갑을 주운 행동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누군가 500프랑의 돈과 서류가 들어 있는 가죽 지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도둑으로 몰린 오슈코른 영감은 결백을 주장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아 밤새도록 앓았다.



이튿날 오후 가죽 지갑의 도난 사건이 해결되었다.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는 사람이 주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서다. 그 소식이 곧 그 근방에 퍼졌고 오슈코른 영감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의기양양해져서 온종일 누명에서 벗어난 자기 얘기를 했다. 길 가는 이를 만나도 그 얘기였고 술집에서 술 마시는 이들과도 그 얘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납득한 것 같지 않았다. 공모자나 공범자를 시켜서 그 지갑을 되돌려주게 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의심이 너무나 부당한 것임을 깨닫고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온통 노끈 이야기에 사로잡혔고 몸이 축났다. 그는 섣달그믐께 앓아눕더니 정월 초순에 죽고 말았다. 이 소설의 제목은 '노끈 한 오라기'로 기 드 모파상이 썼다.



그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앓다가 죽었을까. 그가 앓은 병에는 먹는 약이 소용없다. 자기 말을 누군가가 믿어 주는 것만이 약이 될 뿐이다. 만약 그의 말에 공감해 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오슈코른 영감이 범인이라는 소문을 들은 뒤부터는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라도 한 듯, 지갑이 주인에게 돌아갔음에도 그의 말에 공감해 주지 않았다.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 필요한 열린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자연재해, 질병, 빈곤 등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간의 불행은 인간관계와 관련이 있다. 즉 노사 간, 세대 간, 가족 간, 친구 간, 이웃 간의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터다. 온갖 감정의 기저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깔려 있다. 오슈코른 영감 역시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숨졌다.



대체로 인간은 평소 가볍게 여기던 것이라도 본인의 일이 되고 보면 중대해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볍게 여겨질 일을 당시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다른 이에게는 매우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특정인을 겨냥한 악성 댓글이나 부당한 압력이 당사자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저런 오해로 인해 오슈코른 영감처럼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만약 오슈코른 영감과 똑같이 오해를 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자신도 남을 오해한 적이 있을 거라며 상쇄시켜 버리고 잊기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혹은 본인은 잘못한 게 없고 남들이 오해한 것이니 남들의 탓으로 돌리고 넘어가는 것이 지혜롭겠다. 훗날 진실은 꼭 밝혀질 거라는 믿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도 괜찮겠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여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걸 이기지 못하고 속을 끓이곤 한다. 마치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처럼.



인생이 넓은 정원이라면 인간은 정원사다. 그 정원에는 간혹 시든 나무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정원사는 시든 나무에 집착해서 다른 나무들마저 시들게 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시든 나무는 튼실하게 자란 나무들에 가려 잊혀지게 마련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정원 전체의 나무를 잘 가꾸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오슈코른 영감을 떠올리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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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22301000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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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영혼까지 끌어모아 쓴 글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 글쓰기의 어려움!




(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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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2-24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링크 눌렀습니다.

페크pek0501 2023-02-24 12:13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 님, 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은빛 2023-02-24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따뜻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라 정말 좋아요!
오늘은 본문에도 공감했지만, 특히 후기에 더 공감합니다. ^^
언제나 글쓰기는 영혼을 끌어모아야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이런저런 오해들을 많이 받았던 기억들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그런 일로 상처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하도 상처를 많이 받아서 이젠 마음에 딱지가 두껍게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많이 무뎌졌네요. 그런가보다 하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3-02-24 12:12   좋아요 0 | URL
글쓰기는 그야말로 영끌이죠...
오해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인간이란 제멋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지라...
상처를 받는 것도 경험이 필요합니다. 무뎌지는 장점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3-02-24 13: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는데요? 유난히. ㅎㅎ
역시 글은 영끌할 때만 빛이 나는가 봅니다.
계속 영끌하는 마음으로 써 주세요.^^
(이거 욕인지 축복인지. ㅋㅋㅋ
독자는 작가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산다잖아요.
작가는 그런 존잰 것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23-02-25 12:22   좋아요 2 | URL
댓글은 이달의 당선작을 안 주나요? 스텔라 님이 받을 뻔...ㅋㅋ
작가의 고혈을 빨아먹다니 독자들은 흡혈귀였군요.ㅋ
글쟁이들은 흡혈귀에게 빨아먹히고 싶어하는 존재들이겠네요.^^

거리의화가 2023-02-24 16: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혼까지 끌어쓰셨으니 당연히 좋을 글! 링크 꾹 눌렀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슬픔이나 좌절은 결국 신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불신이 들면 나중에 이게 고쳐져도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오보라는 게 밝혀져도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지요. 그냥 그 오보인 기사는 진짜처럼 인식되어버리는...
페크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칼럼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3-02-25 12:26   좋아요 1 | URL
링크 꾹,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알라딘 출신인데 오피니언 지면에서 조회 수로 꼴찌는 면해야 될 것 같아서요...ㅋ
신뢰의 문제, 그렇겠네요. 오보가 있어서 정정을 해도 나쁜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벗겨지지 않다고 하네요.
나쁜 논란의 중심이 서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흠집을 낸 셈이 되는 거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칼럼, 극찬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3-02-24 2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면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말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된다면 하지 않은 일을 해명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좋지 않네요. 그럼에도 그런 일들은 가끔씩 생길 수 있어요. 조심스럽습니다.
글쓰기는 잘 되는 날보다 잘 되지 않는 날이 더 많다고 해요. 그래도 하나를 잘 끝내면 다음에도 잘 되실 거예요.
잘읽었습니다. 페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3-02-25 12:28   좋아요 2 | URL
오해를 하거나 받거나 우리네 인생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오해를 받는 쪽에서는 답답한 노릇이에요.
남을 위해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말이죠.
오늘 공기 맑은 토요일이에요. 어제는 쌀쌀해서 어머니와 걷기 운동하다가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어제였어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3-02-25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이런 일 많겠습니다 실제 일어난 일과 다른 기사 날 때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그거 보고 다 믿기도 하겠네요 다 진짜는 아니기도 하다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오해하면 마음이 정말 안 좋겠습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좀 나을 텐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오해하는 건 그냥 둬야겠지요 풀려고 하면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요 시간이 가면 다르게 볼지도 모르겠네요

페크 님 주말은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3-02-25 12:31   좋아요 1 | URL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겠지요. 사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에겐 오해받는 일이 치명적일 수 있어요.
열린 마음이 필요한데 워낙 인간이란 고정관념과 선입견의 노예들이어서 쉽지 않을 때가 많을 듯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3-02-25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감님을 믿어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이드네요 ㅜㅜ
역시 모파상은 이야기꾼인거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3-02-25 13:07   좋아요 2 | URL
모파상 같은 옛날 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던 거죠. 그런 일로 인간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안 거죠.
지금이야 뉴스를 통해 이런저런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지만 티브이와 인터넷 없는 시대에 소설을 썼던 작가들의
능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천재들이에요. 그것도 타자기도 아니고 장편도 펜으로 썼을 테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3-02-25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오해를 받으면 대범하게 넘기지 못할듯요. 다들 오슈코른 영감처럼 괴로워할 것 같아요. 살면서 저런 일이 없는게 좋겠지만 혹시 저런 일이 생기면 페크님 글을 생각하면서 용기낼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23-02-25 14:34   좋아요 1 | URL
알라딘 메인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구경하며 장바구니에 마구 넣다가 그만 노트북 꺼야겠다, 하는데
바람돌이 님의 댓글이 보였어요. 사고 싶은 책은 왜 이리 많은 걸까요?ㅋㅋ
오해받다가 혈압 오르면 큰일납니다. 느긋해질 필요가 있어요. 저도 그런 일 생기면 오슈코른 영감을 생각해야겠어요. 화병 나면 본인만 손해, 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23-02-27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페크님 칼럼도 쓰시고 책도 내셨네요. 많이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책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b

책 구입하러 출발하겠습니다ㅎㅎ

2023-02-27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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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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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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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1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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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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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02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휴일 잘 보내셨나요.
이제 3월이 되어서인지, 서재 분위기도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요.
오늘은 조금 기온이 낮았지만, 그래도 많이 따뜻해졌어요.
3월에도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세요.^^

페크pek0501 2023-03-03 15:37   좋아요 1 | URL
3.1절을 말하는 군요. 으음... 그저께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후하하~~ 제가 이래요. 기억력 저하 현상..
어제의 일은 기억이 납니다. 엄청 추웠는데 두 시간을 걸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퇴근 후 뭘 사오면 좋겠냐고 문자를 보내서 귤을 사 오라고 답장했더니 잘못 알아 굴을 사 왔어요. 저녁에 초고추장을 만들어 생굴을 맛있게 먹었는데 속이 안 좋았어요. 토할 것처럼 울렁거렸어요. 다행히 설사하고 나니 괜찮았어요. 토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음. 생굴 조심합시당~~ㅋㅋ

서니데이 2023-03-03 15:41   좋아요 1 | URL
페크님, 그런 일이 있었네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겨울에 굴이나 해산물을 익히지 않고 생물로 먹을 수는 있지만, 겨울에도 노로바이러스 등 식중독 가능성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해요.
많이 고생하셨네요.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3-03 15:54   좋아요 1 | URL
예.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나았어요. 안 그래도 식중독 같아 며칠간 고생할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아서
다행이었어요. 아침에 발레 하러 갔다온 걸요.
굴을 끊기로 할까 봐요.ㅋㅋ 다음부턴 굴전으로 전을 부쳐 먹어야겠어요. 안전하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3-03-03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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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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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2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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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5: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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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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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3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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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7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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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7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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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7 0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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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7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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