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아티클 소개.   



2001년도에 나온 <Keyframes:Popular cinema & Cultural Studies>란 책이 있습니다. 대중영화와 문화연구의 관계를 모색하고, 실제 분석 사례를 다양한 저자들의 참여로 엮어낸 책입니다. 영화를 흥미롭게 연구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유익한 해외원서가 되리라 싶습니다.(아직 번역되어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눈을 끄는 아티클은 Ina Rae Hark가 쓴 "Daddy, where's the FBI warning?"입니다. 80년대부터 활발하게 보급된 VCR을 통한 영화소비문화를 다룬 이 글에서, 저자는 영화 <나홀로 집에(1990)>를 흥미롭게 분석합니다. 저자는 이 영화가 당시 미국에서 비디오 문화가 어떤 식으로 소비되었고, 이 소비가 미국의 사회문화 현상, 또 정치적 현상과도 관계가 있음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비디오'는 중심적인 문화 소재가 됩니다.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하고, 매컬리 컬킨이 애띤 소년 케빈으로 나온 이 영화를 아마 거의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큰 히트를 쳤고, 미국이야 말할 것 없구요. 저자는 이 영화를 설명하기 전에 80년대 헐리우드 영화 문화에서,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에 대한 해석을 시작합니다. 뭐, 우리가 아는 <E.T>, <백 투 더 퓨처>같은 영화들이 있겠지요.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런 영화들의 히트작 중, 가족의 배경은, (좀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표현이지만)'정상가족'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흔히 우리 사회가 간주하는, 이성애적 관계에서 비롯된 부부, 아빠,엄마, 그리고 귀여운 아들과,딸. 그 관계에서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어머니가 없는 형편. 그 안에서 아들 혹은 딸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모험의 과정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지요. Hark는, <나홀로 집에>를 보면서, 케빈의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보라고 합니다. 아마 가정 내 역할이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정책을 좀 되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미디어학자 제니스 팩의 <오프라윈프리의 시대>라는 문화비평서에 잘 나와 있지만,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에서 가장 강하게 정부쪽으로부터 확산된 담론은, 내 가정 지키기였습니다. 고로 가정 안과 밖의 경계는 분명해졌지요. 단란하고 소박하며, 행복한 가정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들은 그래서 더 심한 낙인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위협의 대상이었고, 가족 내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이상적인 '홈'을 지키기 위해, 방어막들, 특히 정신적 측면에서 잘 준비해야 했지요. 집에 대한 '순수의 이미지'가 확보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 밖의 이미지는 '불결'한 것이어야 했죠. 그래서 타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에 대한 경계선이 강하게 작동했습니다. 

저자는 <나홀로 집에>의 정치성을 위의 맥락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정상가족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년은 '아버지의 자리'를 위임받게 됩니다. 실수로 자신을 두고 크리스마스여행을 떠난 가족들, 그리고 텅 빈 저택. 누군가 이  저택을 노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케빈은 이 저택을 지켜야 합니다. 그에게 혼자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건 잠시입니다. 그 즐거움과 가까이 한 가정에 대한 보호의 의무가 부과된 것이지요. 특히, 저자의 말처럼, 케빈이 다니엘 스턴과 조 페시라는 두 도둑(앞 이름들은 배우 이름입니다.)으로부터 큰 저택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가정 테크놀로지였죠. 케빈은 집 안에 있는 친밀한 사물들을 이용해, 도둑들을 무찌릅니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케빈이라는 젊은 소년이, 자신의 집 안에 있는 사물의 유용성을 익히고, 그 메뉴얼을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집을 지키는 어른의 위치에 있게 된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 안에, VCR(비디오)가 있습니다. 저자의 해석으론, 80년대 VCR의 대표적인 문화 기능 중 하나는 위험한 타자가 존재하는 가정 외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VCR이 갖는 방어막이라는 상징성입니다. 즉, 아이들이 위험한 곳에서 난처해지지 않도록, 집 안에서 그들의 오락을 보장해줬던 것이지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VCR은 아이들에게 오락이 되었고, 또 교육이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VCR은 집 안에 유약한 아이가 있다는 걸 감추어주는 역할을 하죠. 케빈은 이 VCR을 마음껏 조종하면서, 피자 배달원이 자신을 얕보지 않도록 하고, 두 도둑에게 이 집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 표시하는 기능도 합니다. 

장면을 하나 하나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족들이 떠나고, 집에 홀로 남은 케빈이 첫 날 한 일은, 부모님이 보지 말라고 했을 폭력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Angels with Filthy Souls>란 작품인데요. 



케빈이 재생한 이 작품은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바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1939년도 작품 <Angels With Dirty Faces>를 패러디한 것인데요. 



저자는 케빈이  첫 날 한 일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실제 미국 가족 문화 안에서, 부모님과 아이들의 문화적 실천의 문제를 고민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음화'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진 비디오라는 기기를 통해, 아이들이 폭력물과 야한 영화를 보지 않도록 부모들의 '오바스러운'태도가 존재했지요. 케빈은 바로 그 해방을 만끽하고 싶었던 겁니다. 케빈은 혼자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먹지 말라고 했던 아이스크림, 과자들, 식품을 먹으면서, '규제'의 시선에서 벗어났음을 스스로에게 선언합니다. 



케빈은 그러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자, 이내 무서움에 치를 떱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무서움을 극복하고, 그리고 적응하여, 이 vcr을 비롯한 다양한 가정 테크놀로지 /문화 테크놀로지를 통해, 자신의 집을 지키게 되지요. 케빈이 피자를 시킬 때, 그가 그림 속에 보이는 리모콘을 가지고 패스트포워드(FF)로, 화면을 이리저리 건너띄면서, 집 안에 어른이 있음을 가장하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단순한 기발함을 넘습니다. 집 안에 있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케빈은 임시 가장 역할을 하게 되고, 그는 기술에 대한 번뜩이는 임시적 애호가 / 요령있는 '남자'가 되지요. 저자는 이러한 케빈에게 Em-powered boy-child라는 호칭을 붙여줍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폭력적인 영화가 가정에 주는 '유해'의 이미지는 케빈의 지혜로운 기술 소비를 통해, 케빈과 케빈의 가정에 대한 '존재론적 안전'을 책임지게 되는 것으로 변환되지요.

# FBI의 경고는,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죠. (이는 미국 문화에 해당하지만)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이 표시는. "극장 안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으로 변해 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사례에서, 딸은 묻죠. 아빠, 왜 영화 시작하기 전에, FBI의 경고가 안 떠? 이는 곧 저자가 비디오 문화와 극장 문화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 요약한 인용 사례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당시 VCR에 친숙했다는 증거이겠죠. 제가 바로 이 세대군요.^^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잼있어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2 10: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5-1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 세대군요 ㅎㅎㅎ

얼그레이효과 2010-05-12 10:08   좋아요 0 | URL
아하!^^

비로그인 2010-05-1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세대' ㅎㅎㅎㅎ

얼그레이효과 2010-05-12 15:33   좋아요 0 | URL
아이구, 반갑습니다.^^

비로그인 2010-05-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님의 서재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어려운 공부를 하시는 분이군요.
가끔 들르면 제 특기인 '남의 어깨 너머로 하는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건강하세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2 15:33   좋아요 0 | URL
아구, 어려운 공부가 아닌데, 제가 늘 어렵다고 블로그에 징징대지요. ㅡ.ㅜ 후와님의 리뷰 읽고, 저도 시간 있을 때, 소설 탐독을.^^

빵가게재습격 2010-05-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 님도 슬슬 알라딘에 중독되어 가시는 군요......반갑습니다.
(조심하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의존증으로 변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13 02:20   좋아요 0 | URL
요즘 하는 일 때문에, 생활 리듬으로 인하여 우연치 않게 글을 업뎃 많이 하게 되었네요. 하하. 이러다가 또 잠수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