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대장간 - 청소년의 사고력을 벼리는 유쾌한 철학 토크
이브 미쇼 지음, 박창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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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세계 최고의 문화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청소년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이는 곧 학생 개개인에게 인식 능력과 비판 능력을 근본적으로 길러준다는 것을 말한다. (옮긴이 후기에서)--

책 마지막에 있었던 옮긴이 후기의 한 귀절이 머리에 깊이 박힌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논술바람이 불어닥칠 때, 평가의 절대성 확보와 교육여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작용도 있었으나, 아이들이 생각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신문 열독이나 독서 등 다방면으로 애쓰면서 사지선다형 찍기 세대에서 벗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조금 더 시일을 두고 계속 해나갔더라면 우리도 프랑스처럼 비판 능력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바로 말할 줄 아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논술은 시험과 상관없이 세상을 바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므로, 학교에서 중요시하지 않더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과목이다. 또한, 논술을 함에 있어서 철학하는 능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그동안 청소년용 철학 책만 보이면 기웃거렸던 것도 아이의 사고능력과 비판능력을 길러주고 싶어서였다. 

이 책은 아이 수준에 적당하고 접근 방법도 쉬워 안성맞춤인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많이 하면 뭐가 좋을까?', '인종차별이란 무엇일까?', '내가 보는 것이 진짜일까?' 등 16개의 질문을 통한 대화와 설명으로 아이들이 말초적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진지한 내면의 세계에서 사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먼저 각 주제에 대해 책의 저자인 이브 미쇼와 프랑스의 청소년들의 대화가 펼쳐진다. 사교육 논술 프로그램 중에서 소수 토론제 학습은 선생님의 지도 하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기 생각을 이끌어내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사고 과정이 발달한다고 얘기한다. 물론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꾸준한 훈련이 뒤따라야만 한다. 책에서는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브 미쇼 선생님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고 프랑스 친구들의 얘기에 맞장구, 또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즐겁게 책을 읽어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흐뭇해진다. 이어서 질문에 대해 좀더 깊이 파고 드는 해설이 나오는데,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되면 이 해설에 대해 반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챕터마다 노트 형식의 장이 한쪽씩 있으므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면 훌륭한 공부가 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명언과 철학자 소개와 같이 부가적으로 참고가 될만한 사항들이 있어 전체적 구성이 깔끔하다.

 철학을 인물 중심으로 어렵게 접근하지도 않았고, 또한 가볍게 접근하다 재미 위주가 되어버리지도 않은 책이다. 당장 겨울방학 때 아이에게 권할 생각이다. 이 책이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을 이끌어줄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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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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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 소식이 한참 신문지상을 달궜을 때 지구 한편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쟁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어 있을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방관했던 기억이 부끄러울 만큼, 사라예보의 그 시절은 암울한 잿빛이었다. 세상의 어느 전쟁이 참흑하지 않겠냐마는, 자국민의 손에 의해 인종 청소를 당하는 어이없는 현실에 일상적인 생활이 먼 추억이 되고 말았을 때, 또한 그러한 상황이 4년이나 이어진다면 그 시기를 온전한 정신으로 잘 살아낼 사람들이 과연 있기나 할까.

언덕 위의 사람들(세르비아계)은 게임을 즐기듯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 총을 겨눴다. 옆집의 이웃이 물을 길러 가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빵을 사러 늘어선 긴 줄에 폭탄이 떨어져 참사가 빚어지기도 하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그저 하루를 연명해 나갔을 뿐이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이렇듯 메말라가는 감정으로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어버릴 뻔했던 감성을 깨우쳐 주었다. 1992년 당시 실제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이 박격포탄에 쓰러져 22명이 사망했을 때,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그 자리에서 22일간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탄생한 소설에서는 첼리스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저격수 애로와 가족들을 위해 나흘에 한 번씩 물을 길으러 목숨을 내놓은 위험의 길을 오가야 하는 케난, 가족을 피신시키고 누이의 집에 얹혀 살며 빵공장에 다니고 있는 드라간의 얘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소설의 흐름은 느리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가 아니라, 일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상태이다. 길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봐야 하는 세상에서 텅빈 공황상태에 있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괜찮냐고 보듬어주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한문장 한문장은 그들의 마음을 노크하고 어루만지며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데 익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는 어디선가 자신을 겨누는 총신에서 불을 뿜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을 뚫고 전쟁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희망 그 자체로서 존재했다. 그가 켜는 '아다지오 G단조'는 음악 이상의 힘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으며 예전의 평범한 시절로 되돌아갈 의지를 심어주며 인간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이 책은 전선없는 전쟁 상태에서 실험용 쥐가 된 듯이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삶을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꿈을 잃고 원하지 않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없기에 음악으로 상처를 치유해고자 나선 한 남자를 얘기한다.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지켜낸 애로와 첼리스트 같은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병든 사람에게 약을 전달하러 위험한 길을 나선 에미나, 소시민적 삶 속에서도 조금씩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간을 만나보시라. 일부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그 속에 떨어진 희망 한 조각을 줍는 의미를 넘어서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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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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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부호들이 없는 문체가 낯설었지만,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이 책은 시험에 나온다고 달달 외우기도 하는 문장부호란 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용면에서는 사람의 본성과 인간사회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묘사로 감탄을 자아내고 있어, 거장이란 말이 그에게 참 잘 어울린다는 것을 실감하고야 만다.

운전 중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는 남자를 둘러싼 수런거림.
다행히 도움을 자청하는 한 남자를 의지해 집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눈먼 남자는 집에까지 들어가 말벗이 되어주겠다는 과잉친절을 의심해 그냥 돌려보낸다. 잠시 의심이 들었다. 그는 선의였을까, 나쁜 목적이 있었던 걸까? 눈먼이를 도와줬던 남자는 이런 절반의 의심을 비웃듯 눈먼 남자의 차를 훔쳐 달아난다. 이것은 인간의 아름답지 못한 본성을 맛보기로 조금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독자들은 이제 수용소에서 펼쳐지는 추악한 본성을 마주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다양한 군상들의 집합체가 모인 것이 세상이기에 때때로 약해지더라도 근본만은 정의롭고 선한 사람들의 존재가 힘을 준다는 것이다.

눈먼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수용소에 감금되어 군인들이 전해주는 식사만을 제공받으며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눈이 머는 병은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력이 있어서 군인들조차 그들 곁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죽기를 바라기도 한다. 절대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정도는 눈감아버리는 세상, 그게 어디 수용소 안만의 풍경일까?
이제 수용되는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식량을 빼돌리고 훔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눈먼 깡패집단이 무기와 폭력을 휘두르며 식량을 점거하고 금품과 여자를 요구할 때는 그 몰염치함과 폭력성이 절정에 치다른다. 눈먼 사람들의 사회에서조차 힘을 무기로 못가진 자의 몫을 약탈하고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주제 사라마구는 이렇게 눈먼 이들의 세상에서 눈뜬 이들의 세상을 그려낸다. 

오로지 혼자만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의사부인은 모든 눈먼 자들의 치다꺼리를 해줄 수 없었기에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도왔고, 깡패들의 불의에 항거했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편리했지만, 수용소의 온갖 역겨운 행위와 볼썽사나운 것들을 여과할 장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외로운 책임감에 시달렸을 그녀의 무게감이 책 속에서 전해졌다.
관심이 갔던 또 한 명의 인물은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이다. 그녀는 눈뜬 세상에서 방종한 삶을 살았었고 의사와 한 번의 불륜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엄마 없는 '사팔뜨기 소년'을 보살피던 배려심과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의 내면을 사랑할 줄 아는 열린 마음도 지녔다. 혼탁한 세상에서 방탕함을 배웠지만, 수용소의 생활을 통해 나눔의 미학을 끌어내는 법을 배운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수용소 밖의 세상도 그다지 다를 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 된 세상에서는 네것, 내것의 구별이 무의미하며 한끼를 뱃속에 털어넣으려는 원초적 욕망만이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의사의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그들은 의사부인의 주도 아래 나누고 서로 돕는 삶에 익숙해진다. 정의감 있는 리더의 역할이 난세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녀의 역할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갑자기 눈이 멀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의 눈이 시력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의사부인은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말, 그것이 주제 사라마구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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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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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더 하우스'에 대한 평이 괜찮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가 쓴 다른 소설인 '일년 동안의 과부'에도 관심이 갔다. 따뜻한 가족소설인 줄 알고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농도 짙은 묘사에 당황하게 되었지만, 억지를 부리거나 꿰어맞춘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 소설은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따뜻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듣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이 소설처럼 부적절한 관계가 치부를 드러내는 와중에 한참을 돌아서야 이것이 결국 따뜻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경험은 그리 흔하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소설은 아니었으나, 결국엔 인물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가고 이해하게 되면서 사랑과 가족이란 것의 존재를 다시한번 느끼게 된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두 아들을 잃은 메리언의 끝도 없는 슬픔과 그녀를 흠모하는 16세 소년과의 나이를 넘어선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지탄이 되기에 알맞았지만(한국에서라면 더욱 더) 37년을 떨어져 있으면서도 변함없는 그들의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과 색깔이 살짝 다를 뿐, 사랑이라 부르기에 흠잡을 것이 없었다. 메리언이 4살짜리 딸아이 루스를 마음에서 밀어내려 했던 것은 아들들의 경우처럼 사랑을 잃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은 상처를 받은 자만이 하는 극단적 행동이다. 루스가 자라 어른이 되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엄마가 되었을 때,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떠난 엄마를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스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건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나서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질수록, 이미 두 자식을 잃은 메리언이 또 다른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심정이 가슴 깊이 이해되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수락하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는지를 생각하면, 루스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또다른 자식을 낳을 엄두를 냈다는 사실만큼 경이로웠다. 별안간 왜 어머니가 그녀을 떠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매리언은 세 번째 아이를 잃는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루스를 사랑하길 원치 않았다.(p267)--

이 책을 설명한 글 중에 저자가 남자라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세상만사 별별 감정을 다 느껴본 듯한 존 어빙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 감정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등장인물들의 연애행각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는 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상황 설명과 대사와 인물의 마음 전개가 적절히 융합되어 있는 재미와 설득력으로 두꺼운 두 권의 책을 술술 읽게 만드는 건 분명 작가의 힘일 것이다. 다른 작가가 같은 내용을 소설로 쓴다면 어떤 스타일의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루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를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절제되어 있다. 울고 불며 부등켜안아야 정상일 것 같은 그 마지막 장면은 과잉된 감정 없이도 엄마를 만나는 루스의 벅찬 마음에 동화되어버리게 하고 루스를 둘러싼 풍경 속에 우리를 초대한다. 소설은 여운을 남기며 끝날 뿐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다는 자질구레한 설명이 없지만, 독자들은 충분히 느낄 것이다. 가족의 화합과 용서가 이룬 행복한 생활이 보이지 않게 담겨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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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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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번 주르륵 펼쳐본 느낌은 마치 패션잡지처럼 페이지마다 디자인이 되어 있는 듯 화려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왼쪽은 한글, 오른쪽은 영문이라니! 영어공부를 하며 여행서를 읽는 것도 나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 써내려간 바람같은 이야기라면 영어문장도 즐겁게 다가오리라.

네이버 책을 검색해 보니 2002년에 출간되었던 책을 새롭게 꾸며낸 것인가본데, 당시 꽤 인기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개성있는 여행도서들이 여기저기 버티고 있어 왕년만큼 신선한 감각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책의 저자는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다. 저자 약력을 보니, 스무 살 때 영화 '칵테일'에 동경을 품고 대학 중퇴, 찬구들과 아메리칸바를 개점했다고? 실행력 하나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누구는 '칵테일'을 봐도 시원한 풍경과 툭탁툭탁 남녀간의 사랑과 중독성있는 음악의 분위기에 잠깐 심취하고는 곧 잊어버리는데. 게다가 갓 결혼하고선 바로 아내와 2년간의 세계여행이라. 지금도 여전히 활동적으로 살고 있는 그는 방랑기 가득한 에너자이저의 인생을 타고난 것 같다.

정말 안가본 구석이 없다. 인도에서는 고아의 집 시슈바반에 찾아가 봉사활동도 했고, 몽고의 초원에서 유목민과 함께 생활하고,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의 출산 장면도 보았다. 그 뿐인가! 알래스카에서 어미 곰이 새끼 곰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을 가르치는 것도 봤다니 세상에 한번 가보기 힘든 여러 곳을 다 가본 부러운 남자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 하나 제공하지 않고 여행에서 느낀 단상을 쓴 것만으로도 일본에서 꽤 잘 나간 책의 저자가 되었으니,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책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여행의 자유와 기쁨과 고됨까지도 낭만에 실어 보내는 한가득 여유의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얻은 감정의 편린들이 어렵고 난해하지 않으며 친구처럼 소탈해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인지도. 

개인적으로는 그가 쓴 글에 몰입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취했다. 작가가 20대 후반에 2년여간 세상을 여행하며 여행의 순간마다 느낌을 잡아 써내려간 책이기에, 20대라는 것과 남자의 감성이라는 것이 치외법권처럼 발길을 들이밀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가볍게 느껴진다. 또래에게 각광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겐 겉멋들은 남자의 별로 깊지 않은 감정의 끄적거림이다. 내 나이 또래의 여성이 여행한 이야기가 더 끌리는 것은 책의 한계라기보다 나의 한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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