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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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는 세계여행을 다녀본 것이 분명했다. 경험 없이 단순조사나 자료만으로 많은 나라들의 섬세한 특징과 풍광을 이 정도로 잘 그려낼 수는 없었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에 '팝툰'과 웹진 '문장'의 도움이 있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지원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덕분에 많은 경비가 드는 세계여행을 352일 동안 지속하며 글을 쓸 수 있었던 게다. 

그런데, 살짝 드는 배신감은 뭘까? 그렇다. 소설을 만족할 만한 감정으로 읽지 못했었는데, 그 이유가 여행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소갈머리 좁은 생각이 들어서다. 유석과 쇼타가 '야마 자화상'을 찾기 위해 많은 나라를 거친 것은 작품의 개연성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저자의 여행길을 따라 돈 것이구나 하는 허탈함,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돌아서 간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소설을 써보지 못한 입장에서 작가마다 어떤 고심의 과정을 거쳐 창작물을 내놓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글이 뭔가 정리되자 않고 앞뒤 개연성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다고 느껴졌던 건 여행과 글쓰기의 두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내기에 벅찬 인간의 한계 같은 것이 아닐지.

천재 화가가 남긴 유작, 아버지의 흔적과 비밀에 쌓인 자화상을 찾아 길을 떠난 아들이란 제법 흥미로운 요소들과 함께 시작됐지만, 이따금씩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내용 전개에 푹 빠져들거나 공감하지 못해서였다. 군데군데 번뜩이는 작가의 기지나 미술분야에 대한 조예 같은 것은 충분히 존경스럽긴 했다. 그러나, 전체적 관점에서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일관적인 힘과 내용의 자연스러운 이어짐 같은 요소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로드 무비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표지, 흥미로운 도입부가 기대감을 품게 해서인지 읽을수록 아쉬움이 들었던 까닭에 적극적인 독서가 되지 못했고, 유석과 쇼타가 가는 대로 터벅터벅 따라다니다가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결말을 지켜보는 구경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456페이지에 예술을 정의해놓은 글은 꽤나 공감이 갔다. 현실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말부터 모든 예술가들은 어린아이가 되려고 예술을 한다는 내용을 읽을 때에는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권리. 79년생이니 작가로서는 젊은 나이다. 갖고 있는 글재주에 삶의 여러 경험이 더해져 좀더 다듬어진 내면의 글, 감동을 주는 글을 들고 나올 수 있으리라 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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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마스터 중학 자습서 영어 2 - 2009년용
장경렬 외 지음 / 금성출판사(금성교과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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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자세해서 자습서만 있으면 독학도 가능하겠어요. 배송은 좀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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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 - 당당하게 절대 권력에 도전했던 왕후들의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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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계보를 노래삼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왕들에 대해서는 친숙하지만, 그에 비해 뒤에서 보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쟁에 휘말려 숨은 울음을 참던 왕후들의 역사에 대해 접해본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중학생이었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왕비열전' 전집은 그 나이의 학생이 소화하기엔 낯뜨거운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사를 다룬다기보다 야사 위주의 책이었던 셈이다. 그 외에 혜경궁 홍씨나 인현왕후가 직접 저술한 기록이 읽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왕비들의 삶이 음지에 묻혀있는 편이다. 이 책이 반가운 것은 그러한 왕후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이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조선사회에서는 왕족이라고 하여 그러한 규범을 벗어날 수 없었다. 책 표지에는 '당당하게 절대 권력에 도전했던 왕후들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박혀 있지만, 소개된 16명의 왕후들이 모두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수렴청정 속에서 어린 왕을 조종하여 권세를 누린 대비들은 예외라 할지라도, 기가 센 후궁의 위세에 짓눌리거나 왕의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며 정쟁의 한파를 헤쳐나가고자 애썼던 위태로운 삶들이 자주 보인다. 때로는 장희빈이나 폐비 윤씨처럼 끝이 처참했던 왕후들도 있다.

태종이 왕 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원경왕후 민씨는 후에 태종에 의해 친정가문이 몰살당하는 슬픔을 겪는다. 공교롭게도 16인의 왕후들 중에는 권력의 암투 속에 친정식구들을 사지로 보내고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분들이 많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라서 세자빈 간택을 막아야 할 지경이건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과거 몇백 년의 역사를 반추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알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눈앞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기란 인간으로서 어려웠으리라.

'이수광 조선팩션 역사서'라는 부제처럼 이 책에는 저자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그외 여러 책들을 참조한 과정이 본문에 나오긴 하나, 읽기에 딱딱하지 않고 소설처럼 부드럽게 읽히는 것은 저자의 능력인 동시에 군데군데의 부드러운 덧칠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왕후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봤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이 식민사관의 잔재란 점을 지적하는 등 툭정 사건에 대한 일반적 역사관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역사를 지금의 시점이 아닌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는 동시에 유교적 관점에 싸인 남성의 시각을 걷어올린다면, 인물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몇몇 건에서 저자의 그러한 문제 제기가 역사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유난히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왕들이 많아 독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조선왕조에서 그렇게 남편을, 또는 자식을 떠나보낸 왕비의 감정과 생애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신선하고 의미 있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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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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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와 비난이 고루 존재하는 책 '하악하악'을 '보았다'. 읽기 전에 먼저 주루룩 훑어보기를 하고 있는데, 섬세한 물고기 세밀화가 내게 말을 건넨다.
'나는 반찬이 아니에요. 얼핏 보면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도 나는 엄연히 한 생명이고 꿈을 가진 존재랍니다.'
이놈들. 오징어의 눈을 무서워하고 피보는 게 싫어 생선 다듬기를 꺼려했던 내가 이제는 지느러미 척척 자르고 내장을 손으로 직접 빼내는 가공할 만한 무뎌짐을 갖게 됐는데, 이렇게 감성을 건드리면 어쩌란 말이냐!

때마침 간 마트에서 갈치와 고등어를 사고 있는데, 우럭 한 마리가 얼음 위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 찬 얼음 위에서 아가미가 들쑥날쑥 움직인다. 눈동자를 보니 먼저 간 옆자리 친구보다 말갛고 투명한 것이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럴 경우 안락사는 어떻게 시켜야 하나? 한때는 물 속에서 신나게 헤엄쳤을 우럭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빠른 속도로 기운차게 움직인다. 얼른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며, '하악하악'의 물고기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물고기와 '하악하악'은 무슨 관계?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어울린다. 그것이 열대어와 같은 외국산 물고기가 아니고 우리의 토종 물고기이기에, 한국적 된장찌개와 같은 이미지의 이외수 씨와 뭔가 맥이 통하는 바가 있다. 거기까지는 좋다. 왜 마음이 거북한가 생각해 보았더니, 무의식중에 여백이 아깝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한데 몰아붙이고 사이사이에 물고기 그림 넣으면 양이 팍 줄어서 책값도 내려갈 수 있을 텐데... 동양화도 아닌데, 꼭 여백의 미가 필요하나?'
생각해 보니, 여백의 효과는 나름 존재한다. 물고기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글 하나 읽고 난 사이의 여백만큼의 여유 속에서 마음이 넓게 퍼져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인가?
어떡하나? 그래도 아깝지 말입니다. 

책을 읽으니, 짧은 문장의 내용들이 가히 촌철살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울림을 주며 와 닿는다. 개중에는 그냥 우스개이거나, 이외수 씨의 개인적 생활을 담은 것도 있지만, 색깔과 맛이 다른 나물들이 모여 맛있는 비빕밥이 되듯이 짬뽕되어 '하악하악'이라는 책의 이미지를 완결시켜 놓고 있다.
어쩌면, 이외수표 비빔밥이라서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비빔밥을 내왔다면, "아저씨, 비빔밥의 나물과 나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네요. 양에 비해 값이 비싸요." 하면서 흠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책이란 게 무엇이더냐. 지식 전달, 재미있고 놀랄 만한 이야기, 마음을 잔잔히 울리는 글모음. 시대에 대한 발전적 비판. 그 모든 게 책의내용이 될 수 있다. '하악하악'은 그 어느 쪼개진 범주 안에 넣기에 다소 애매하며 우리가 블로그에 가끔 끄적이는 듯한 글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이거 나도 쓰겠네 하며 덤빌 만한 도전의식에 불을 지피는 면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날 보고 이외수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쩐다.'라는 48번의 글에 '이외수'란 말 대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으면 맹숭맹숭하다. 이 문장엔 이외수란 이름이 딱이다. 이 책은 이외수가 썼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 책이 맞다.
이것이 칭찬인가, 흉인가? 나도 모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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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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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장마다 마사와 스콧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지면서 두 아이 주변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화자가 두 명 이상인 소설은 주인공의 입장에만 치우치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면서 개인별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더한 것 같다. 왕따를 당하는 마사의 대열에 끼는 것이 편치 않았던 스콧의 마음이 우정을 넘은 사랑으로 변해가는 감정을, 마사의 1인칭 시점으로만 전개했다면 이만큼 잘 잡아내지 못했으리라.

대화체가 많아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은근히 무겁다. 마사는 학교에서 대놓고 왕따를 당한다.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니는 마사는 책 제목처럼 '누더기 앤'이라고 친구들로부터 놀림받는다. 집이라고 해서 편한 것도 아니다.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교회의 교리에만 충실한 마사의 부모는 아이의 감정과 생활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폭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마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친구와 친해서도 안되고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마사의 언니는 집을 나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다. 언니에게서 온 엽서는 마사에게 큰 위안이 되어, 나이를 먹으면 언니처럼 집을 나가 살 희망을 갖고 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기댈 곳이 없어 의기소침하게 지내던 마사에게 스콧이 나타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마사를 두둔하다가 함께 왕따를 당하는 스콧은 반듯하신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서인 왕따에 잘 대처하며 마사와의 우정을 거리낌없이 키워나간다. 

마음놓고 맞서도 되는 사람이 아닌, 가족으로부터 자행되는 폭력은 참으로 정신을 혼란하게 할 것만 같다. 아마도 '애증'이라는 낱말이 딱 어울릴 만큼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마사 부모님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혐오'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혐오'가 무엇인지 알고는 상당히 놀랐기 때문에, 책 뒷편을 미리 보고 싶은 유혹을 참고 스릴넘치는 기분으로 읽어나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소설 속의 허구일지라도 6년간 빛을 못보고 산 작은 생명의 존재는 생각만 해도 안쓰럽다.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마사의 언니와 연락이 닿으면서 탈출은 극적이고 신나게 이루어진다. 학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느샌가 학대를 받고 있었던 마사의 이야기는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진 일부 부모들의 행동에 경종을 불러 일으킨다. 부모란 잠잘 곳을 마련해주고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다가 아님을 소설은 얘기한다. 또한,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고 인간적 권리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당연한 진실, 그리고 그것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마사같은 아이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스스로의 의사를 밝히기엔 너무도 어린 아이가 사이비 종교단체의 부모들에 의해 어이없는 일을 당한 사례를 티비 프로그램으로 본 기억도 난다. 마사는 다행히도 스콧이라는 믿음직한 친구가 생겨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었지만, 정작 우리 주변의 마사들은 도움을 청할 곳이 그리 많을 것 같지가 않다. 우리가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이렇게 억압당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존재가 있는지 사회적 감시가 필요한 까닭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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