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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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 소식이 한참 신문지상을 달궜을 때 지구 한편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쟁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어 있을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방관했던 기억이 부끄러울 만큼, 사라예보의 그 시절은 암울한 잿빛이었다. 세상의 어느 전쟁이 참흑하지 않겠냐마는, 자국민의 손에 의해 인종 청소를 당하는 어이없는 현실에 일상적인 생활이 먼 추억이 되고 말았을 때, 또한 그러한 상황이 4년이나 이어진다면 그 시기를 온전한 정신으로 잘 살아낼 사람들이 과연 있기나 할까.

언덕 위의 사람들(세르비아계)은 게임을 즐기듯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 총을 겨눴다. 옆집의 이웃이 물을 길러 가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빵을 사러 늘어선 긴 줄에 폭탄이 떨어져 참사가 빚어지기도 하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그저 하루를 연명해 나갔을 뿐이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이렇듯 메말라가는 감정으로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잊어버릴 뻔했던 감성을 깨우쳐 주었다. 1992년 당시 실제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이 박격포탄에 쓰러져 22명이 사망했을 때,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그 자리에서 22일간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탄생한 소설에서는 첼리스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저격수 애로와 가족들을 위해 나흘에 한 번씩 물을 길으러 목숨을 내놓은 위험의 길을 오가야 하는 케난, 가족을 피신시키고 누이의 집에 얹혀 살며 빵공장에 다니고 있는 드라간의 얘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소설의 흐름은 느리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냐가 아니라, 일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상태이다. 길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봐야 하는 세상에서 텅빈 공황상태에 있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괜찮냐고 보듬어주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한문장 한문장은 그들의 마음을 노크하고 어루만지며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데 익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는 어디선가 자신을 겨누는 총신에서 불을 뿜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을 뚫고 전쟁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희망 그 자체로서 존재했다. 그가 켜는 '아다지오 G단조'는 음악 이상의 힘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으며 예전의 평범한 시절로 되돌아갈 의지를 심어주며 인간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이 책은 전선없는 전쟁 상태에서 실험용 쥐가 된 듯이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삶을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꿈을 잃고 원하지 않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없기에 음악으로 상처를 치유해고자 나선 한 남자를 얘기한다.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지켜낸 애로와 첼리스트 같은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병든 사람에게 약을 전달하러 위험한 길을 나선 에미나, 소시민적 삶 속에서도 조금씩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간을 만나보시라. 일부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그 속에 떨어진 희망 한 조각을 줍는 의미를 넘어서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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