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사이더 하우스'에 대한 평이 괜찮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가 쓴 다른 소설인 '일년 동안의 과부'에도 관심이 갔다. 따뜻한 가족소설인 줄 알고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농도 짙은 묘사에 당황하게 되었지만, 억지를 부리거나 꿰어맞춘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 소설은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따뜻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듣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이 소설처럼 부적절한 관계가 치부를 드러내는 와중에 한참을 돌아서야 이것이 결국 따뜻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경험은 그리 흔하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소설은 아니었으나, 결국엔 인물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가고 이해하게 되면서 사랑과 가족이란 것의 존재를 다시한번 느끼게 된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두 아들을 잃은 메리언의 끝도 없는 슬픔과 그녀를 흠모하는 16세 소년과의 나이를 넘어선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지탄이 되기에 알맞았지만(한국에서라면 더욱 더) 37년을 떨어져 있으면서도 변함없는 그들의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과 색깔이 살짝 다를 뿐, 사랑이라 부르기에 흠잡을 것이 없었다. 메리언이 4살짜리 딸아이 루스를 마음에서 밀어내려 했던 것은 아들들의 경우처럼 사랑을 잃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은 상처를 받은 자만이 하는 극단적 행동이다. 루스가 자라 어른이 되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엄마가 되었을 때,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떠난 엄마를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스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건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나서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질수록, 이미 두 자식을 잃은 메리언이 또 다른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심정이 가슴 깊이 이해되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수락하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는지를 생각하면, 루스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또다른 자식을 낳을 엄두를 냈다는 사실만큼 경이로웠다. 별안간 왜 어머니가 그녀을 떠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매리언은 세 번째 아이를 잃는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루스를 사랑하길 원치 않았다.(p267)--

이 책을 설명한 글 중에 저자가 남자라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세상만사 별별 감정을 다 느껴본 듯한 존 어빙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 감정까지 모두 꿰뚫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등장인물들의 연애행각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는 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상황 설명과 대사와 인물의 마음 전개가 적절히 융합되어 있는 재미와 설득력으로 두꺼운 두 권의 책을 술술 읽게 만드는 건 분명 작가의 힘일 것이다. 다른 작가가 같은 내용을 소설로 쓴다면 어떤 스타일의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루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를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절제되어 있다. 울고 불며 부등켜안아야 정상일 것 같은 그 마지막 장면은 과잉된 감정 없이도 엄마를 만나는 루스의 벅찬 마음에 동화되어버리게 하고 루스를 둘러싼 풍경 속에 우리를 초대한다. 소설은 여운을 남기며 끝날 뿐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다는 자질구레한 설명이 없지만, 독자들은 충분히 느낄 것이다. 가족의 화합과 용서가 이룬 행복한 생활이 보이지 않게 담겨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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