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위에 가랑가랑 물도 약도 아닌 것이 마시면 취하거니 취하메 흥이로다. 아이야, 상 위에 두고 네 벗 어이 찾느뇨.-198쪽
무슨 사내가 남 진달래꽃 따는 데까지 따라다닌대? 내가 언제? 난 아가부터 진달래꽃 따먹고 있었다, 뭐! 참말이여? 내 입 보면 모르것냐? 온통 벌겋잖여. 그럼 내가 오줌눈는 것도 다 봤겠네? 보지는 못했고 소... 소리만 들었어야. 소리 듣는 게 더 이상했지만-. 그 많은 꽃 따서 어디다 쓴대? 떡 해먹지. 이 많은 꽃으로 떡을 다 한다 말여? 반은 남겨 아버지 술 담가 드리고... 너도 배부를 만큼 따먹었으면 나 좀 도와줄라나? 그라제. 진달래꽃으로 술을 담금면 빛깔이 참 곱더랑께.-199~200쪽
술이 저래 맛있을까~, 잉? 맛은...! 쓰기만 하다던디. 시금털털한 술도 있다더라. 그란디 꼭 꿀물을 마시는 거매로 쉽게 마시고 있네. 그랑께 어른이제. 술이 맛있으면 어른이 되는건감? 술 마시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야.-204쪽
동출아-! 예. 다리께 주막 가서 술 한 되 받아오니라. 돈은요? 낭중에 준다고 허고. 알았어라.
도대체 이 안에 무슨 맛이 있간디, 어른들은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겨? 딱 한 번만 먹어볼까나? 안주도 없이 깡술로 먹을라고? 응? 점례구나.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놀란대?-213~214쪽
그래도 뭔 맛이 있길래 어른들이 술술술 허것제? 좀더 마셔보면 맛이 나올라나. 빛깔로 한몫 보는게 꽃술인가벼. 술이란 게 북을 삶아서 만드나 보제? 왜 이렇게 가슴이 콩콩거린대? 나도 꼭 봄볕을 쬐고 있는 것 같어야. 나른한 게 힘이 쪽 빠지고. 숨이 차고... 목소리도... 안 나오지만... 우쨌든 기분은 참 묘... 하다.-221쪽
지나가다 네 목소리 듣고 왔니라. 오늘도 진달래 따먹었는감? 얼굴은 왜 그렇게 벌견 겨? 진달래는 옛날에 졌고요. 오늘은 한잔 했어라. 한잔? 아버지 말씀에 더울 땐 시원하라고 한 잔, 추울 땐 후끈 더우라고 한 잔. 속상할 땐 화 내리라고 한 잔 하신다 했는데, 저는 무슨 맛으로 술을 드시나 궁금해서 한잔 했지라. 그래서 궁금한 것이 싹 가셨냐? 아직도 알쏭달쏭 이네요. 그건 안주 없이 깡술을 먹어서 헛갈리는 모양인디, 안주 좀 줘야겠구먼.-223쪽
에라-! 이 싸가지 없는 놈아! 궁금할 게 없어 술맛이 다 궁금했다더냐? 너같이 어린 것들이 분수 모르고 미친 짓거리하는 덴 몽둥이가 안주랑께! 참나무 몽둥이로 안주를 해야 제맛이 난단 말이여! 인제 술맛을 제대로 알것냐? 알것어? 아우-! 아구구구구! 차라리 벌집을 쑤시지, 다시는 술단지 근처에 얼씬 안 할라요! 그라게, 내 귀에만 살짝 고운 소리하지! 누가 소 잡으라고 큰소리치랬어?
낄낄낄! 키득키득! 허허허!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진달래꽃 근처엔 얼씬도 안 했당께. 그 탐스러운 빨간 꽃을 보면 다리께에서 아버지한테 두들겨맞은 피멍이 생각나서-. 참나무 몽둥이가 생각나서-. 내가 처음 마셔 본 술맛은 쓴 것도 아니었고... 시큼털털한 것도 아니었고... 무지무지하게 아픈 거였지라.-224~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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