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 돌베개 / 2006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유생 6, 7명이 과거 볼 날이 다가오자 동작銅雀강 가의 정자에 나가 학업을 연마하고 있었다. 이때 예조 좌랑左郞으로 있는 벗이 있었는데, 유생들이 그에게 농담삼아 말했다.
"우리들이 집을 떠나 강사江舍에 거처하고 있는데, 풍경이 비록 좋으나 홀아비로 지내는지라 즐거움이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어째서 명기들을 골라 우리 잠자리를 모시게 하지 않는가?"
예조 좌랑은 "알겠네"라고 말했다.
이튿날 유생들이 강가에 앉아 멀리 모래 강변을 바라보니 곱게 단정한 미녀 삼십 여 명이 배를 부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가까이 이르렀는데, 모두 예조 좌랑이 보낸 기생들이었다. 이에 유생들이 몰래 의논하며 말했다.
"전에 한 말은 장난삼아 한 것인데 기생들이 이처럼 많이 왔네. 십릿길을 걸어왔는데 한잔 술로 이들을 위로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전혀 면목이 안 서겠네. 쌀을 모아 밥을 지어 대접하는 것이 좋겠네."
노복 한 사람을 시켜 밥을 짓게 했는데, 더 이상 부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무리들 가운데 나이 어린 사람을 뽑아 일을 맡겼는데 그가 곧 노직盧稙이었다. -152~153쪽

반찬거리를 찾아보니 단지 밴댕이만 십 여 마리 있을 뿐이었다. 노직은 몰래 부엌 뒤편으로 나가 나무 됫박을 엎어 놓고 비늘을 긁고 있었는데, 한 기생에게 그 광경을 들키고 말았다. 그 기생이 여러 기생들에게 이야기하자 모두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트려 마루가 떠들썩했다. 노직은 부끄러운 나머지 달아나 버렸다.
훗날 노직이 장원 급제하여 푸른 도포를 입고 계수나무 꽃을 꽂은 채, 장악원章樂院 앞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두 개의 일산을 펼치고 홍패紅牌를 늘어놓았으며, 많은 악공들이 풍악을 울리는 가운데 뒤따르는 무리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은 장악원에서 음악을 시험 보이는 날이어서 많은 기생들이 모여 있다가 나와서 그 행렬을 바라보았다. 한 기생이 자세히 바라보다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 신래新來는 예전에 강정江亭에서 밴댕이 비늘을 긁던 그 사람이 아니오?"
여러 기생들이 서로 돌아보며 탄복했는데, 노직은 부끄러워서 급히 말을 몰아 지나갔다.-152~153쪽

장악원章樂院 음악의 교육과 교열校閱에 관한 사무를 맡은 관사官司.
홍패紅牌 문과文科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는 붉은 종이에 쓴 교지敎旨.
신래新來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을 이르는 말.-152~15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