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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 또는 리만 제타 추측은 1859년 베른하르트 리만이 처음으로 형식화한 것으로 수학사에서 모든 미해결 문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문제의 하나다.(위키백과)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내건 상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가끔 수학자를 다룬 책에서 몇 개의 가설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골드바흐의 추측>이란 책을 통해서 이런 미해결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수학자의 노력을 보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런 수학자의 노력을 다룬 것이 아니다. 수학자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 교수가 리만 평전을 쓰려고 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대학 수학교수란 것도 내가 볼 때 결코 평범하지 않은데 그 학계에서는 그냥 평범한 모양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가 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딱 대학 교수에 멈춰있다. 이런 정체된 삶에 돌파구로 구상한 것이 리만 평전 프로젝트다. 그는 ‘평전을 집필하는 것은 그 인물이 남긴 주요 업적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채로 걸러서 보여주는 일’(9쪽)이라고 말한다. 사실 리만 가설이란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리만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가 현대 수학이나 물리학에 끼친 영향도 몰랐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티리에 라이너트 후세 교수는 2005년 5월 9일에 대학교수실에서 사라진 후 행방불명이다. 소설은 실종 나흘 후 딸이 아버지의 기록을 경찰에 가져오면서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은 아버지의 일기부터다. 그 일기를 통해 후세 교수의 숨겨진 삶이 드러난다. 그가 왜 글쓰기를 배웠고, 리만 평전 프로젝트를 위해 어떤 연구와 조사를 하는지, 숨겨진 여자와의 관계까지 말이다. 이런 과정을 일기를 통해 보여주는데 리만과 자신의 이야기가 살짝 겹치는 부분들이 나온다.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그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병행하거나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리만의 삶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밝혀지는 그 시대의 수학계 풍경과 그의 수학이 현대 물리학 등에 끼친 영향이 후세 교수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와 나란히 진행된다면 리만과 화자의 삶이 과거와 현재 속에서 교차한다. 힘든 삶을 산 리만이 훌륭한 업적에 비해 충분한 여유를 누리지 못한 반면 화자는 업적에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산다. 천재의 과거를 쫓는 평범한(?) 작가란 설정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리만보다 자신의 삶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리만 평전은 프로젝트고 그의 새로운 사랑은 삶인 것이다.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후세 교수의 비밀스런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리만 평전 프로젝트를 위해 가입한 글쓰기 강의에서 새로운 여자 잉빌드를 만난다. 이 둘은 각각 가정이 있지만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사랑은 십대의 그것과 비슷하다. 사랑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사랑만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화자의 삶 속에는 그의 과거 추억과 기억과 가족들이 있다. 아무리 새로운 연인을 사랑한다고 해도 현재의 안락한 가정을 무너트리기는 싫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없는 약속과 회의를 만들어 그들은 만난다. 뜨거운 열정에 불타지만 그들은 성인이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킨다. 이 부분은 십대와 다르다.

천재 수학자 리만 평전이라는 기본 설정에 화자의 삶을 덧붙였다. 중간중간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특히 가우스. 아쉬운 것은 수학에 대한 지식이 고3 이후로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다. 물론 리만 가설을 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때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소설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은 더 높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저자는 리만의 비밀스런 삶을 일기 속에서 보여주는 동시 화자의 미스터리한 실종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만든다. 조금 가볍고 빠르게 읽으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읽을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조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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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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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읽는 작가다. 이름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이자 나오키 상 수상작인 <연문>을 예전에 헌책방에서 재수 좋게 구했다. 그런데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지금은 찾지 못하고 있다. 표제작 <회귀천 정사>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단편집 <빨간 고양이>란 작품집에 실려 있다. 제목은 풀어서 <돌아오는 강의 정사>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를 제외하면 미스터리 평론가의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명화이다’ 같은 화려한 평이 전부다. 아! 여기에 꽃으로 장사 지내다라는 의미로 화장(花葬) 시리즈로 불린다는 것을 덧붙여야겠다.

화장 시리즈란 말처럼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은 꽃들이 나온다. 그 꽃들은 화려하게 피었지만 그 화려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작가는 꽃이 주인공이라고 말하는데 분명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사건들은 모두 정확한 추리라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건이 끝난 후 그 의문에 대해 답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사건을 둘러싼 상황과 조건들을 하나씩 맞춰 나가는 도중에 추리로 그 답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추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각각의 이야기에 묻어나오는 감성은 추리소설보다 후일담 연애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등나무 향기>는 대필가의 연쇄살인을 회상하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형식이다. 처음 읽을 때는 대필가가 정말 살인마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화자의 추리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왜 그가 살인자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옥중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고 말이다. ‘누구’보다 ‘왜?’ 에 더 초점을 맞추었는데 읽는 후 여운이 강하게 남는다. 남의 삶을 너무 자세히 아는 것도 결코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삶과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도라지꽃 피는 집>은 유곽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다. 화자는 초짜 형사다. 고참 형사와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력한 용의자를 찾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용의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처음에 그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야기는 후반으로 가면서 변한다. 그 용의자가 꼭 같은 방식으로 살해되면서 말이다. 새로운 범인이 드러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는 애잔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순진하고 순수했던 두 남녀가 현실이란 벽에 부딪히고 서로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어떤 비극이 생길까 하고. 

<오동나무 관>은 뒤틀린 사랑 이야기다. 전쟁에서 돌아온 한 남자가 전장으로 끌려가기 전 사람 한 명을 죽이게 된 이유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먹고 살기 위해 야쿠자가 되었지만 그를 거둔 형님은 조금 특이하다. 두목에게 사랑을 받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더 특이한 것은 그가 화자를 보내 여자와 성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여자의 향기를 음미하기 위해. 이런 뒤틀린 관계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관계 속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오른손과 향기는 강한 인상과 함께 가슴 속에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 속에 잠긴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흰 연꽃 사찰>이다. 화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계속 품으면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재수 없는 여자이자 마성의 여자로 불렸다. 그녀는 이 때문에 열 살 연상의 절 주지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나중에 불에 타 죽는다. 어린 시절 화자의 기억에 남은 영상은 어머니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쫓는 장면이다. 어머니의 불륜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성장기에 겪었지만 정확하게 유년을 지배했던 장면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기억과 자료와 주변사람의 증언은 그 장면의 비밀을 밝혀준다. 그 속엔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표제작 <회귀천 정사>는 소노다 가쿠요라는 천재 가인의 정사 이유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그는 각각 다른 두 여자와 정사하려다 실패한 후 자살한 가인이다. 그가 정사에 실패한 후 지은 가집들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화자는 이 천재 가인의 삶을 연재소설로 발표했는데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을 정사와 관계있는 유족의 반대 때문에 중단했다. 그리고 2년 후 마지막 정사를 조사하게 되는데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이 비밀이 드러날 때 그가 의도했던 정사와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과연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이 그것이 맞는지 약간 의문이 생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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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싹 - 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김기승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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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이란 부제가 달린 책이다. 실제 이 책은 인문학박물관 ‘우리 인문학의 역사교실’ 1기 강의를 묶어 내놓은 책이다. 강사 중 눈에 익은 사람은 진중권을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강의 대상이 되는 책과 저자를 보면 낯익은 책과 사람이 몇몇 보인다. 하지만 역시 낯선 책과 저자가 더 많다. 나의 지식이 얕아서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더불어 대상이 되는 인문고전들이 일제 시대와 해방 전후에 출간되었고, 저자 상당수가 월북한 인사나 사회주의자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들을 거의 만날 수 없던 것도, 이 저서들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후반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강의는 연대순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유명한 이중환의 <택리지>(1751)다. 이후 안확의 <조선문명사>(1923), 이여성·김세용의 <숫자조선연구>(1931), 이만규의 <조선교육사>(1947), 박열의 <신조선혁명론>(1948), 신남철의 <역사철학>(1948), 김동석의 <뿌르조아의 인간상>(1949), 백남운의 <쏘련인상>(1950), 배성룡의 <농민독본>(1953), 김태오의 <미학개론>(1955), 홍기문의 <조선신화연구>(1964), 이종화의 <우리민중의 노동사>(2001) 등이 강의 대상이 된다. 비슷한 다른 제목들과 이름이 연상되지만 아마 그것은 해방 전후사를 읽으면서 본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목차를 보면서 <택리지>를 가장 먼저 올린 것을 보고 조금 의아스러웠다. 이 책을 단순히 지리서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사 양보경 씨의 설명을 듣다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특히 현대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통찰한 부분을 설명할 때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판적 책읽기다. 다른 저자들이 이 책을 비판한 것도 같이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적인 것으로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이 강의들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현재 나오는 학설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조선문명사>에서 통일신라 대신 남북조시대라는 말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통일신라로 교과서에 표기되었고, 발해가 점점 비중을 높여가는 중이었는데 이미 이 시대에 이런 시대 구분을 한 것이다. <숫자조선연구>는 통계자료가 지닌 의미와 해석 방법이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데 이것은 요즘도 유효하다. 실제 통계나 도표들이 가끔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두 저자가 조선총독부의 통계로 보여준 해석과 분석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것을 보여준다. 

조금 낯선 <조선교육사>에 대한 학계의 평을 읽다보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약점에 비해 장점이 너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구분과 실증사학에 입각한 교육사라는 점과 민족사학에 기초한 교육사이자 민중을 강조한 사회경제사학의 교육사란 평가 등이 더욱 부채질한다. 그 유명한 가네코 후미코와의 열애와 천황 일가 테러 음모 혐의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박열의 <신조선혁명론>은 책 내용보다 그의 해방 후 행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강사가 인문학은 항상 상상하는 것이라고 할 때 더 많은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 상상력이 비루할지라도.

개인적으로 한 번 도전하고 싶은 의욕만 있는 책이 바로 신남철의 <역사철학>이다. 대학 때 멋모르고 강의를 들었던 철학자들이 나오고, 가장 부족한 부분 중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실제 손에 든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청중 중에 신남철의 강의를 직접 들은 분이 있다고 했을 때 이 강의에 참석하신 분들의 연세를 세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이분들의 놀라운 학구열과 지식은 이후 강의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목이 강렬한 <뿌르조아의 인간상>은 새로운 지식인 김동석을 알게 되었고, 그의 실천적 삶과 월북 후의 비극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쏘련인상>은 당대 지식인의 대소 인식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사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내용보다 비판적 사고를 통한 냉철한 현실인식을 가졌던 그가 어떻게 그 학문적 성과를 반감시켰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어쩌면 당파성을 지니고 조직에 가담했을 때 지식인이 가지는 한계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농민독본>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마오쩌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그가 레닌과 달리 농민과 연대해서 사회주의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정국에서 왜 토지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했고, 현재의 농협이 지닌 원천적인 문제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미학은 언제나 한 번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다. <미학개론>에서 어느 정도 지식을 얻고 싶었는데 나의 지식이 얕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진중권의 글은 재미있고 유쾌했다. 나중에 그 핵심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항상 있지만. <조선신화연구>는 신화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의 신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언제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우리 민중의 노동사>는 민중과 노동의 의미를 다시 되짚는 기회가 되었고, 왕조사가 아닌 민중 주체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옛날에 왜 이순신 장군은 그렇게 추대를 하면서 그 밑에서 싸운 이름 없는 병사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냐고 했던 것처럼.

사실 열두 권이지만 열두 명의 저자 이야기를 통해 아주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강의 속에 나온 인물이나 책등을 통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재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상 지면상 제약에 의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시대를 이해하고 현재와 과거를 연속적으로 생각할 때 이 저서들과 강의 내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우리의 인문학이란 것과 남북분단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강사보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청중과 그들의 나이다. 그들의 질문과 지식을 보다 보면 아직 배워야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고 조금도 긴장을 풀 수 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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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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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폰이 쓴 최고의 책 <바람의 그림자>를 읽었기 때문인지 그 후에 읽은 몇 권은 사실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만든다. 안개 3부작의 첫 권 <9월의 빛>도 그랬다. 미스터리 모험 소설이란 것과 사폰이란 이름에 이끌렸는데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다. 큰 기대를 했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개연성도 긴장감도 모두 떨어진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도 미숙한 부분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일정한 재미를 유지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특히 미스터리보다 판타지 성격이 더 강한 장면들로 가득한데 이 부분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이야기는 회상으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은 1916년 5월 인도 캘커타 거리에서 영국인 피크 중위가 두 아기를 데리고 도망하면서부터다. 그를 쫓는 암살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쉽지 않다. 아기를 둘이나 데리고 말이다. 아기들을 어느 노파에게 맡기고 그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의해 죽는다. 아기들을 살리기 위해 노파는 아이 하나를 고아원에 맡긴다. 간략한 설명을 더불어 남긴다. 원장은 편지를 보고 아기를 기르기고 마음먹는다. 이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혹시 버려진 아기가 없었느냐고 하면서. 이 질문에 거짓 대답을 하지만 그는 16년 후 나이가 차면 사회로 나가는 관례를 들고 그때를 기약하며 물러난다. 이렇게 과거의 한 사건은 마무리된다.

16년 후 그때 버려진 아이 이름은 벤이다. 그는 고아원 동기들과 함께 ‘차우바 소사이어티’란 조직을 만들어 활약한다. 모두 일곱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들이 고아원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때 한 노파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야미 보세, 16년 전 쌍둥이의 할머니다. 그녀가 쌍둥이를 떼어놓고 도망다니기 시작한 것은 자와할이 지닌 능력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한 정보를 숨기고 왜곡하면서 아이들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그 진실이 밝혀졌을 때 충격적이어야 하는데 조금 밋밋하다. 

한밤의 궁전이란 제목만 보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차우바 소사이어티’ 아이들의 아지터일 뿐이다. 실제 모든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지터스 게이트 역사다. 이곳은 옛날 쌍둥이의 아버지 라하와즈 찬드라 차테르기가 인도의 독립을 꿈꾸며 건설한 기차 역사다. 하지만 화제 사고로 폐쇄되었고, 사고 당시 죽은 영혼의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마지막 결투의 장면이 이곳에서 펼쳐지는데 사실 영상으로 옮긴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문장만으로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 허무한 결말이라고 해야 하나?

판타지 성격이 강한 전개 속에 흥미를 끄는 것은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고 강한 분야가 있는데 청소년 소설의 전형처럼 느껴지지만 대단히 흥미롭다. 상상력이 풍부한 벤, 의사가 되려는 이언, 탁월한 그림 솜씨를 가진 마이클, 정보와 학식이 뛰어난 세스, 미모에 행동력이 강한 이소벨, 이소벨을 사랑했던 시라지, 상업에 관심이 많은 로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가세하는 벤의 쌍둥이 여형제 쉬어가 있다. 이들이 살인자이자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자와할을 상대한다. 이때만 해도 뭔가 긴장감을 고조시킬 사건들이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무력하게 승부는 한쪽으로 기운다. 반전을 통해 다른 결말을 보여주지만 강한 인상을 줄 정도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와할의 정체를 통해 미스터리를, 그의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능력을 통해 판타지를, 그에 대응하는 아이들을 통해 모험을 보여주는 구조다. 이 구성물들이 나름 잘 짜인 것은 사실인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세부적인 것을 살리지 못했고, 마무리가 너무 약하다. 아이들의 특징을 좀더 부각시키고 자와할과의 대결을 조금 더 긴장감 있게 그려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분량도 늘리고 말이다. 읽으면서도 읽고 난 후도 계속해서 <바람의 그림자>와 비교하게 되는데 모든 아쉬움이 바로 여기서 생기는 것 같다. 이 소설부터 먼저 읽었다면 조금은 달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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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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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간과 쓸개>는 2009 황순원 문학상에서 먼저 읽었다. 그 후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서 다시 만났다. 솔직히 한 번 읽었는데 예전 서평을 찾아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문구가 보인다. 아마 김숨이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도 <간과 쓸개>였을 것이다. 이 단편을 읽기 전 다른 사람들이 그냥 일상을 그려내는 작가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선입견처럼 작용했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이후 나오는 단편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모일, 저녁>만 해도 일상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식 때문에 내려왔다가 집에 다니러 온 화자의 시선을 통해 한 가족의 저녁 풍경을 그려낸다. 어떻게 보면 비루하지만 일상의 대화가 오고 간다. 단지 아버지가 뱀장어를 잡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 살짝 뒤틀린 현실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와 동물원을 배경으로 현실 그 너머의 풍경을 그려낸다. 마지막에 현실에서 그녀가 선택한 코끼리처럼 제자리걸음 걷기는 최후의 희망이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북쪽 방>은 한 전직 지구과학 교사 곽노의 퇴락한 삶을 보여준다. 북쪽 방은 아내가 그를 유폐시킨 공간이자 안식처다. 그가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 퇴적암의 단면과 마주하던 그 순간이다. 곽노의 삶이 유기질보다 무기질에 더 흥미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몸무게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지와 단상들이 교차한다. <흑문조>는 단층 양옥을 장만한 아내의 시선으로 삶의 한 면을 그려낸다. 이 부부의 삶은 너무 건조하다. 보일러 배관 공사 현장이 이 부부의 현재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다시 덮은 그 모습 말이다. 

<룸미러>는 참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난다. 뒤끝이 찝찝하다. 어떻게 보면 종말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고, 아이들이 깨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그 어떤 이미지도 연상되지 않는다. <육의 시간>은 예상한 결말이지만 그 진행이 너무 메말라 있다.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여자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 기묘한 동거는 기이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변하지 않는 육체가 만들어낸 균열이 조금씩 자리를 잡을 때 시간마저 정체된 듯하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남편이 늘 말하는 그들이 간 곳이 광화문 어디인 것 같은데 결코 도달하지 못하거나 되돌아오지 못할 공간처럼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화자의 시선이 닿는 곳과 사람들이 결코 범상하지 않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는 것은 이웃들에 의해서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럭키슈퍼>는 동네 구멍가게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그 시절 그 공간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밑바닥부터 보여준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위조밖에 없다. 그것이 성공할지는 둘째 문제고 말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많이 곤혹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문장들이 불쑥 나오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나 가족관계는 보이지 않고 병들거나 지리멸멸하다. <흑문조>의 부부가 늙으면 <북쪽 방> 노부부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 <룸미러> 속 아내의 불안이 <내 비밀스런 이웃들>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어쩌면 이런 연결이 억지일지 모른다. 현실을 뒤흔들고 뛰어넘은 장면들과 묘사가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김숨이란 작가에 대해 그 어떤 평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잠시 유보하고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고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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