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카드 3
마이클 돕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이제 어카트와 작별할 시간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 있던 그다. 살인도, 정보 조작도, 법 개정도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어카트를 보면 현재 한국 정치가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물론 한국 정치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곳에, 모든 사람에게 뻗치고 있는 권력과 비교할 수는 없다. 대외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속 어카트는 정치가 무엇인지, 권력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한국 정치의 이면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수 있다.

 

어카트는 대단한 정치인이다. 수상이 된 지 10년이 지났다. 위기가 있었지만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은 이것을 넘어간다. 그 위기가 무엇이고, 그가 치른 대가가 어떤 것인지는 전편에서 잘 나온다. 이번 편에서는 1956년 키프로스에서 시작한다.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이 섬은 아주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 비극 중 하나를 만드는 인물이 그 당시 젊은 장교였던 어카트였다. 미숙하고 성급하고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시기다. 그리고 현재로 와서는 그 지역과 그 비극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키프로스 앞바다에서 발견된 유전과 이것을 둘러싼 대결 등이 엮이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수상을 자리에 있었던 어카트는 대처 수상의 재임기간 기록을 갱신하기 바로 전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녹하지 않다. 그의 오랜 재임기간이 국민들의 염증을 불러오고, 당내 대권 도전자의 공격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과 함께 키프로스의 정치가 엮인다. 그리스 계와 터키 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역사는 비극이다. 이 비극은 유전의 발견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이권과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나온다. 고매한 정치 이상은 현실과 미래의 이익에 의해 순식간에 묻혀버린다. 파멸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곳과 사소하게 생각한 것에서 시작한다.

 

어카트가 어떤 인물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불륜으로 문제가 생긴 장관의 걱정거리를 순식간에 날려버린 것이다. 이때 어카트는 자신의 권력과 상대방의 욕심을 묶어 아주 쉽게 풀어낸다. 그와 함께 또 하나의 비밀을 손에 쥐고, 이 비밀을 언젠가 이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사실 계획이라기보다 일종의 보험이자 보호 장치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몰아세운 인물을 권력을 이용한 협박과 공포로 돌려세우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물론 이 장면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유착을 단숨에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런 작업은 어카트에게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욕심은 언제나 충분함을 모른다. 문제는 바로 이때 생긴다. 재임 기간 기록을 갱신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그는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단숨에 제거한다. 10년 장기 집권의 비밀 중 하나다. 이제 충분히 누렸으니 그만둘 때도 되었는데 욕망은 조금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임명권을 가지고 장관들을 휘두른다. 최소한 국무회의에서 그는 독재자나 다름없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장관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그 직위가 더 오랫동안 유지되길 바란다. 그래서 후반부에 군 장군 한 명이 어카트와 대립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이라면 가능할까? 뭐 그랬던 인물들 모두 옷을 벗었지만.

 

영국의 정치를 다루고 있지만 권력과 그 권력을 둘러싼 군상들의 욕망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자신이 정치인이었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권력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권력이 품어내는 광휘가 어떤지도. 읽으면서 전작에서 보여준 어카트와 이번 어카트가 같지만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데 더 노련해졌고, 더 대담해졌다. 비록 내부의 적과 키프로스에서 발생한 사건 등으로 협공을 당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 반격한다. 또 반격한다. 가장 최악의 순간에서조차 그는 반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는 또 다른 반전이다. 정치는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답게 유일하게
우근철 글.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볍고 부담 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가볍다고 한 것은 책 속에 담긴 저자의 고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기록한 방식이 짧은 문장으로 이어져 있어 이렇게 표현했다. 부담 없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진이 실려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단상으로 이어진 글로 인해 생각보다 빠르게 읽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이 청년의 기록은 보통 여행 에세이와 다르다. 두 지역에 대한 여행기지만 머문 시간도 여행한 방식도 다르다. 이 다름이 여운을 남기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두 지역은 스페인과 인도다. 스페인은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것이다. 인도 여행은 장기 배낭여행이다.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그가 보여준 무모함은 어처구니가 없다. 패기와 열정만 가지고 갔는데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첫날부터 그랬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될 것 같고 저렴한 숙소가 많다고 하지만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돈은 너무 적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팬터마임이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생활비를 벌고 주변사람들과 친해지는 유용한 행동이 된다. 신문에도 나왔다고 한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영어 실력이다. 너무 못한다. 나처럼 말이다. 그래도 길을 걷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문제가 없다. 그처럼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을 만나 서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부럽다. 나 혼자 외국 여행 가서 외국인과 대화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단어로 말한 것이 떠오른다. 실제 해외여행에서 영어를 잘 못해도 여행하는데 별로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 순례길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걸어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전에 일본 여행자의 여행과 비교하면 또 다른 모습이다. 제목처럼 당신답게 유일하게 다닌 것 같다. 물집이 잡혔고,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녔고, 힘도 들고, 돈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했다. 멋지다.

 

인도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직장을 버리고 떠났다. 보통 인도 여행하면 떠오르는 뭄바이 삐끼들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의 글을 따라가면 낯익은 지명들이 많이 나온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여행서와 들은 방송 때문에 가진 몇 가지 이미지가 이 책에서는 깨진다. 라주와 함께 현지인 가게에서 일하고, 머물고, 술을 몰래 마신다. 라주의 월급 이야기를 듣고 그가 느낀 것과 꿈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의 높은 벽을 보여준다. “꿈? 배운 게 이것밖에 없는데 뭘.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모레도 하는 게 내 꿈이야.” 한국의 취업대란과 이어지지만 너무 많이 현실적이라 씁쓸했다는 그의 말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아픔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인도 여행책과 다른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의 봉사 활동이다. 단지 며칠 동안 머무는데 그치지 않고 한 달 이상 머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몇 년을 머문 사람도 알려준다. 그가 얼마나 긴 시간을 다녔는지 모르지만 이 경험은 그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그의 이력에 나오는 저전가 전달 같은 프로젝트도 이것과 이어지는 일이 아닐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분장을 하고 팬터마임을 했다면 여기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에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정말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그의 글은 크게 과장하는 것이 없다. 간결하다. 읽기에 부담도 없다. 가끔 어순을 바꿔 극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한 청년이 어떻게 여행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관광지의 풍경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이드 책으로는 별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길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어떨까. 지금 당장 떠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속에서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감정을 뒤로 미룬다. 그와 달라 아쉽지만 현실이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아니 내어서 긴 여행을 떠난다면 그때 이 책의 느낌 일부가 불쑥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답게 유일하게 떠날 먼 훗날의 그날을 위해 적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PATH 더 패스 :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 하버드의 미래 지성을 사로잡은 동양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버드 대학 강의가 또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지난번에 읽었던 것이 서양 철학이라면 이번에는 중국의 고전이다. 동양 철학이라고 말하지만 책 내용을 보면 중국 철학으로 한정시킨 문구들이 가득하다. 실제 이 책들의 저자 혹은 인물들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저자들은 중국으로 표기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중국 철학은 이런 ‘현실 안주의 시대’에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를테면 민주주의를 대체할 말한 일관된 사상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아에 관한, 그리고 세상에서 자아의 위치에 관한 반직관적 개념이다. ”라고 말하면서 중국 철학임을 말하는 동시에 이 책의 방향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 철학은 6권의 책으로 대변된다. 논어, 맹자, 노자, 내업, 장자, 순자 등이다. 이중에서 조금 낯선 것은 <내업>이다. 책 제목 정도는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겠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낯설다. 내용도 신과 혼에 대한 것이라 쉽지 않다. 혼을 말하면서 백을 같이 다루지 않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혼백으로 늘 붙어 다니는 두 단어가 떨어져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호흡을 다루고, 이것을 도와 연결한 부분은 또 하나의 신비주의 같은 느낌이다. 물론 저자들이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많은 장점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역시 동양 철학에 대한 서양의 관점에서 벗어나려고 한 부분이다. 하나의 문화나 철학이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그곳의 문화나 철학에 의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현재 서양의 동양 철학에 대한 신비주의는 너무 과한 느낌이다. 특히 영화나 만화 등에서 표현되는 동양의 모습은 판타지 그 이상이다. 물론 이것이 한국과 연결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 외는 별로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의 반대 작용으로 우리가 서양 철학과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동양 철학자들은 모두 고대의 인물들이다. 공자, 노자, 맹자, 장자, 순자 등은 전국시대와 같은 전란의 시기에 태어났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치인으로 성공하지 못했거나 잠시 있으면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가장 유명한 공자만 해도 수많은 나라를 돌면서 철학을 말했지만 정작 살아서는 별로 이룬 것이 없다. <논어>라는 책이 없었다면 역사에 한 줄도 남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뛰어난 제자들의 덕을 봤다고 해야 하나. 저자들은 공자의 삶에서 가장 핵심으로 뽑은 것은 인과 예다. “공자는 오직 예로써 인을 닦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 문장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제사와도 이어진다. 물론 공자가 바라는 것은 핵심은 빠지고 없는 요즘의 제사 같은 것은 아니다.

 

맹자와 같이 다룬 인물이 묵자다. 최근에 묵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저자들은 묵자의 사상을 현재의 프로테스탄트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직 묵가의 사상을 잘 몰라 이 부분은 낯설다. 그리고 학창 시절 한 번은 들은 적이 있는 맹자의 성선설을 다룬다. 이것과 대칭을 이루는 것이 유학자인 순자의 성선설임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조금 의외다. 노자를 장자와 분리한 것은 최근의 연구와 맞닿아 있다. 노자가 자신의 강함으로 약함을 억누르지 않고, 약함을 이용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했을 때 이유제강의 원리의 다른 면을 보았다.

 

장자의 호접지몽에 대한 너무 유명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사실 가상 현실을 다룰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순자의 성선설은 본능의 나쁜 점과 세상을 개선하고 최고의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현대 교육에서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바가 이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것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과거 제도에 대한 인용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생략하면서 제도와 사회 문화 등의 중요성을 빠트렸다. 분명 동양과 서양이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주제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글이 나올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책이 아니다. 동양 철학자들의 철학을 그렇게 깊게 다루지도 않는다. 저자들이 바라본 핵심만 추려낸 것이다. 하버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목적이다 보니 한계가 분명하다. 아니 이것은 한국에서 자라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동양 철학을 듣고 보고 생활한 나의 방식과 다를 뿐이다. 그리고 ‘도’를 흔히 번역하는 ‘Tao'라고 하지 않고 ’The Path'라고 한 것도 낯설다. 하지만 하나의 상황만 주고 이것을 풀어내라고 하는 기존의 사고 실험과 다른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주 좋았다.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라는 의미는 특히. 공자의 이야기로 이 실험을 피해갈 때는 뭐야? 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얘기가 웃긴다고? 조심해! 나 까칠한 들고양이 에드가야! - 400일 동안 끄적인 일기
프레데릭 푸이에.수지 주파 지음, 리타 베르만 그림, 민수아 옮김 / 여운(주)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만 보고 이 책을 고양이의 일상을 다룬 만화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읽었던 동물 관련 만화처럼 말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읽으니 그림보다 글자가 더 많다. 장르도 소설이다. 우화로 가득한 풍자 소설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까칠한 고양이 에드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무려 400일 동안의 이야기에. 형식은 고양이 일기로 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은 고양이의 습성과 일상이 기본을 이루고, 그 위에 현대의 삶을 고양이 시선으로 풍자적으로 풀어내었다. 아쉬운 점 하나를 꼽는다면 너무 프랑스적인 이름과 내용이 많아 뒤쪽의 주석을 자주 펼쳐 확인해야 한다는 정도랄까.

 

에드가의 일상은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놀고의 연속이다. 일기 중 하나를 소개하면 그가 얼마나 자는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일어났다, 후회한다. 도로 잠든다.’(361째 일기의 전문)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것도 있다. 당연히 다이어트 음식이다. 저지방 우유에 대한 수많은 반감은 책 곳곳에 나온다. 맛 차이가 심한 것일까? 사람 입맛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그가 좋아하는 행동 중 하나는 나의 일상의 모습과 닮아 있다. 뭐냐고? 바로 소파에 누워 지내는 것이다. 소파와 일체가 되는 느낌은 에드가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고양이 중심적인 에드가다 보니 자신을 돌보고 키우는 마크 가족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개 파타푸트가 마크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얕본다. 그리고 마크 등이 고양이를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가꾸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이 부분을 확대하면 아이를 교육하는 것과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본능에 충실한 에드가의 행동은 가끔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아주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수고, 찢고, 긁고, 물고, 뛰고, 숨는 등의 다양한 행동이 그렇다. 옷을 물고 찢었다면 어떨까? 태블릿을 살짝 밀어 깨트렸다면?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풀어헤치고 자신의 선물처럼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 등은 그 가족의 반응을 쉽게 연상할 수 있게 만든다.

 

에드가는 까칠하지만 자존심도 강하다. 하지만 유혹에 약하다. 특히 먹는 것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다른 동물이나 고양이가 오면 심한 반감을 표현한다. 높은 나무에 열심히 잘 올라갔지만 내려오지 못했을 때 그의 반응은 오래 머무는 시합을 하는 척하는 것이다. 변기에 빠진 적도 있는데 이 사실은 은밀하게 말한다. 일기니까.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수의사다. 고양이 세계에 악마가 있다면 수의사일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병원이 그렇게 싫은 것일까? 인간들도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얗게 변한 이를 좋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은 고양이의 감정일까? 아니면 인간의 감정일까? 궁금하다.

 

개와 고양이는 생활하는 방식이 다르다. 개와 함께 한 만화 등을 읽을 때를 비교하면 고양이는 훨씬 자유분방하다. 흔히 말하는 길들이기가 불가능한 동물이 고양이다. 그렇지만 에드가는 자신도 모르게 마크의 집에 익숙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때문이다. 잠시 자유를 찾아나갔다가 돌아온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캣닙이다. 이 풀에 대한 고양이의 중독은 약물 중독과 유사한 모양이다. 고양이 캔이 가득한 방에 들어가 갇힌 장면은 귀엽다. 물론 문은 고양이의 손톱에 의해 심하게 긁혀 있겠지만.

 

읽다가 반가운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샤샤샤’다. 올해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트와이스의 노래 <치어 업> 중 한 구절인 이것이 나와 ‘뭐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른 의미다. 고양이를 위한 차차차란 의미로 만들어진 조어라고 하는데 왠지 율동을 생각하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400일 동안의 일기라고 하지만 매일 쓴 일기는 아니다. 그리고 아주 프랑스적인 부분이 많아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번역 탓인지, 아니면 저자들의 생각 탓인지 모르지만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자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가는 까칠하고 장난스럽고 식탐 많고 도도하고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수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사이먼 하비 지음, 김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밀수(smuggling)를 검색하면 ‘세관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물건을 사들여 오거나 내다 파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밀수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소한 것 정도는 위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역자가 지적한 것처럼 해외여행에서 금액 한도 초과한 것을 그냥 들고 오는 것이나 금지된 과일이나 책 등을 가져오는 것 등이 대표적으로 사소한 위반 사항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과거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말하고, ‘밀수가 국가의 첨병 또는 선발대 역할을 하면서 그 힘을 떨치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에 국가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밀수하면 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문익점의 목화씨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중국에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다루는 것은 몇 개 정도의 씨앗이 아니다. 수백을 넘어 톤의 단위까지 밀수를 통해 재배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차와 기나나무나 고무나무 등이 있다. 차의 경우는 중국 기술자까지 데리고 갔는데 현실에서 그들의 위치는 높은 기술자가 아닌 단순 노동자 바로 위였다고 한다. 왜 이렇게 차를 재배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것은 엄청난 무역적자 때문이다. 엄청난 아편을 밀수해서 중국에 뿌렸지만 일반 대중들까지 차를 소비하면서 적자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근대의 밀수는 현대의 밀수와 다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가 차원에서 밀수를 장려한 경우가 16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많았다. 밀수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해적이다. 그중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략선이다. 이 책의 앞부분은 향신료를 비롯한 다양한 물건의 밀수를 둘러싼 그 시대 각국의 정책과 그 시대의 유명한 해적과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다. 해적 이야기 부분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카리브 해적 이야기가 조금 떠올랐고, 향신료는 <향료전쟁>의 일부분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중남미를 무대로 한 장들이다. 낯설고 읽기 힘든 긴 이름이 나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다양한 출처를 인용한 부분이 두뇌를 과부하 상태로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장은 역시 사상을 밀수로 전했다는 부분이다. 조선 시대의 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지만 불교나 천주교처럼 종교나 7~80년대의 불온서적이었던 <자본론> 등이 이어서 연상된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신약성경이나 근대 철학자의 서적 등이다. 기존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책들은 언제나 정부의 금서가 된다. 하지만 지적 호기심과 시대의 변화는 이것을 가볍게 넘어선다. 이 책의 재미난 점은 이런 것들을 조금 딱딱하지만 다양한 자료 조사와 인용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많고 낯선 이름이라 금방 질리는 경우도 많다.

 

전쟁이 일어나면 밀수가 줄어들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전쟁 중 밀수가 만연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작가는 영국과 프랑스 전쟁을 말한다. 서로 대치적인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밀수꾼들의 모습은 이익이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는 장사꾼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리고 실재로 전쟁은 밀수를 부추긴다. 당연한 일이다. 적국에 의해 필수품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밀수는 높은 이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북한 고위층의 생활이다. 경제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밀수 말고는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근대 미국은 밀수로 산업을 일으켰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차나 고무나무 등이 없었다면, 향신료 등을 밀수하지 않았다면 그 부는 다른 나라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이 밀수가 현대로 넘어오면 더 복잡해진다. 미국의 밀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무기를 몰래 전해주고, 그 돈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정권을 수립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이때 원조가 지금 부메랑처럼 돌아온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루브르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문화재들이 어떤 식으로 오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밀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노예무역도 있었으니 그 범위는 더 넓어질 것 같다.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는 밀수가 노골적으로 일어났다. 중남미의 몇몇 장소는 해적이 관리할 정도다. 이 때문에 ‘밀수는 불법이지만 밀수품은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팔렸다’라는 말이 더 쉽게 이해된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밀수품이 하나 있다. 바로 마약이다. 중국의 아편과 함께 연상되는데 이 마약은 현재 최고의 금지물품이다. 당연히 유통되려면 불법으로 유통될 수밖에 없다. 동남아 황금의 삼각지와 중남미 마약 재배지는 언제부터인가 나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춤춘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과거와 현재도 역시 같이 떠오른다.

 

정말 방대한 자료가 녹아 있다. 밀수를 이렇게 광범위하게 다룬 책은 처음일 것이다. 해적과 마약과 사상과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인용이 나온다. 소설도 하나의 자료가 된다. 단순히 몇 권 수준이 아니다. 중남미 밀수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정점을 찍는데 보르헤스의 단편들에 대한 갈증을 불러올 정도였다. 밀수는 분명 불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거대한 수준에서 벌어진다면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문익점처럼. 그리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내용도 어렵지만 번역이나 편집에 아쉬움이 많다. 역사를 바꾼 무역이란 부제가 정말 딱 맞는 설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