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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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정보라와 정도경이 같은 작가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이 때문에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집에 이전에 사 놓은 정보라와 정도경의 소설들이 있기에 괜히 반가웠던 것이 생각난다.

읽으려고 사 놓고 묵혀 둔 책들 중 하나란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아마 부커상 후보가 되지 못했다면 이 작가의 소설은 점점 더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것은 작가가 참여한 적지 않은 단편집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장르의 단편집인데도 말이다. 물론 많은 단편을 낸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정보라 이름으로 번역된 수많은 소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대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미국의 마약성 진통제 문제에서 얻었다.

남발된 마약성 진통제 문제가 미국의 아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많은 퇴직 군인들에게 이 약들이 처방되다 문제가 되자 중단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중단된 진통제 대체제로 마약을 사용하는 문제가 생긴다.

작가는 병원에서 이 약들을 잘 관리하면서 마약성 진통제 남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 관리가 가능할까? 처방전을 남발하는 의사가 없을까?

이미 풀린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의문이 들지만 통제의 주체를 병원으로 하고, 병원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이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단순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진통제가 있다면 어떨까? 부작용도 없다.

NSTRA-14의 등장은 고통의 개념을 바꾼다.

이 한 알의 약이 고통을 견딜 필요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린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약을 만든 회사는 나중에 한 종교 단체의 테러 대상이 된다.

재밌는 점은 이 회사가 고통을 느끼게 하는 약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제품이 고통을 자신들의 핵심 교리로 삼는 종교 단체로 흘러간다.

이 종교 단체는 고통을 견디는 것을 자신들만의 단계로 나눈다.

회사에 테러를 한 태는 바로 이 종교 단체의 신도였고, 어렸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글자의 한자 이름을 사용한다.

12년 전 테러를 수사했던 형사의 이름은 륜, 이 테러로 회사를 물려받은 여자는 경.

태러범의 이름은 태, 그의 형은 한, 륜의 파트너는 순.

솔직히 말해 이 한자의 뜻과 등장인물들을 연결해서 해석하면 더 좋겠지만 당장 머릿속이 복잡하다.

실명이 아닌 사람들을 이렇게 한자의 한 단어를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잔인하고, 묵직하면서 무겁게 펼쳐진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고 간단하게 처리해도 되는 부분인데 말이다.


테러의 피해자이자 자신의 삶을 살게 된 경.

테러범이자 자신의 삶이 망가진 태.

이 둘의 섹스는 동물적이고, 그들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이 상처의 원인이 서로 다르지만 고통과 테러가 서로를 잠시 이어준다.

경은 진통제 실험 때문에 생긴 상처이고, 태는 교단의 교리(?)에 의한 것이다.

이 둘만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고, 조금씩 확장되면서 다른 사람의 삶도 나온다.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빛.

교단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연쇄 살인. 원래의 의미가 바뀐 교단의 모습.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교주의 정체와 교단의 행동은 생각할 거리를 가득 던져준다.

육체적 통증은 진통제로 해결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어떨까?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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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전쟁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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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진명의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역시 기대한대로였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이 <살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나도 형편없는 문장과 내용이라 10년 이상 그의 신작에는 손도 뻗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그의 소설은 나왔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완성도만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재미와 취향이란 문제가 있기에 그냥 자나갔다.

이번 책은 국뽕의 작가가 풍수를 어떻게 이야기 속에 녹여 내었을지 궁금해 한 번 읽었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의 풍수 이야기였다.


회신령집만축고선, 나이파 이한필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다.

목차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들이다.

먼저 작가는 현재 대통령을 아주 소탈하고 서민적인 인물로 포장한다.

그의 바뀌지 않은 휴대폰으로 ‘나이파 이한필베. 저주의 예언이 이루어지도다’란 문자가 온다.

‘나이파 이한필베’란 단어의 의미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도 몰라 대통령실 직원에게 이 일이 떨어진다.

담당자는 30대 여성 고시 합격자 은하수다.

그녀는 여러 분야 전문가에 묻다가 학창 시절 다른 공부에 더 열심이었던 형연에게 연락한다.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전국의 풍수사나 무당 등에게 문의한다.


주문처럼 들린 이 단어의 비밀은 우연한 사건으로 해결된다.

작은 해프닝처럼 지나가는 듯한데 오하산인이 일본에서 다이이치 편액 사본을 가져온다.

여기에 적힌 글이 회신령집만축고선이란 단어다.

이 한자를 어디서 끊어 읽을 것인가에 따라 해석과 의미가 달라진다.

오하산인을 만나기 전 구룡혈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 하는 곳은 아닌 듯하다.

검색하면 이 책에서 인용한 부분만 나오고 다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신기한 현상이 있었다면 아마 인터넷에 신기한 일로 다루어져 많은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주술의 주문 같은 두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인구절벽과 역사 문제다.

풍수 전쟁이라고 해놓고 이야기는 역사 해석의 한 부분으로 넘어간다.

물론 풍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양념처럼 다루어진다.

인구절벽 문제에 대해서도 양비론적 입장으로 전정권 씨들을 욕한다.

이전 정권들이 출생률을 놓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역사 문제도 하나의 문제가 민족의 정기를 해쳤다는 식이다.

이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회조차 극단적인 장면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게 된 납치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표현도 대단하다.

교육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데 왜 교육 카르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소설은 곳곳에 작가의 상상력과 바람이 가득하다.

문장은 이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지만 캐릭터 등은 전혀 입체적이지 못하다.’

감성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오고, 엘리트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시선이다.

고시에 합격했다고 통달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 고루한 시각에 놀란다.

마지막 마무리 장면은 통쾌함보다 절제로 나아간다. 조금 놀랐다.

정치가 얼마나 많은 이권과 이해관계가 엮이고 꼬여 있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지극히 낙관적이고 우호적인 시선은 역시 그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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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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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장르가 추리, 스릴러이고, 이전 작품에 대한 평이 좋아 선택했다.

생각보다 가독성 좋아 잘 읽히지만 흡입력은 취향을 타는 것 같다.

15년 전 과거 사건에서 비롯한 하나의 살인 사건, 두 명의 화자.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현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거.

현재의 살인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줄 단서는 뒤로 숨겨둔 채 풀어내는 과거.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행동과 우정과 유치하지만 우발적인 모험.

잘 버무려내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과 캐릭터의 힘이 조금 부족하다.

서울에서 파견된 형사들이지만 연우와 상혁의 활약은 조금 밋밋하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두 인물은 연우와 차도진이다.

연우는 수사 도중 칼을 맞고 큰 부상을 당했고, 파트너 상혁은 다른 부서도 떠났었다.

새해 첫날 총경에게 선양으로 가서 수사하라는 전화가 온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상혁. 아직 둘의 관계는 차갑고 거리감이 있다.

피살자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에덴 종합병원 원장 차요한.

그냥 두어도 연명 치료 중단으로 죽을 사람인데 바로 전날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선양 경찰서 경찰들과 함께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최초 발견자를 만난다.

첫 발견과 신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비어 있다.

병원 외부를 둘러보다 피 묻은 병원 30주년 기념 볼펜을 발견한다.

차도진은 연초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그에게 사무장이 아들을 통해 먹을 음식을 보낸다.

그 아이가 도진에게 자신이 받은 물건을 전달한다.

15년 전 사건을 이야기하고, 선양에 가서 한 사람을 반드시 무죄로 만들라는 요구사항이다.

현재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그는 선양으로 떠난다.

15년 전 선양을 떠나게 만든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때부터 15년 전 그와 친구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흘러나온다.

다섯 명의 순수한 남녀 고등학생들. 그들의 아지트.

고등학생들의 재미난 에피소드와 도시 괴담에 대한 작은 모험.

흉기에 지문이 발견되고, 그 용의자에 대한 심문을 하려는 순간 나타난 도진.

그런데 피살자가 자신의 아버지 차요한 병원장이란 사실에 놀란다.

잠시 심문이 중단되고, 연우는 선양 경찰서 팀장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경찰서장이 내정되어 있는데 그가 예정보다 빨리 온다.

이전에 그는 선양 경찰서에서 일한 적이 있는 경찰이다.

무언가 수상하다. 과거 이야기 속에서 그가 어떤 경찰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들, 멈출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작가는 피살자들만 보여주지 살인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왜일까?

모든 단서는 과거에 있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15년 전 사건을 아는 사람이다.

도진과 친했던 네 명의 친구 중 살아 있는 인물은 단 두 명이다.

한 명은 에덴 종합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어 누군가를 연속적으로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이 범인일까? 이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새로운 가능성 둘.

하나는 도진이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이 죽이고 다니면서 몰랐다는 방식.

다른 하나는 작가가 교묘하게 숨겨둔 용의자에 대한 가능성.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나의 아쉬움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비롯했고, 연우와 상혁 콤비의 활약은 조금 약했다.

그리고 결코 빠트릴 수 없는 15년 전 사건의 이유는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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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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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소설집이 펀딩 성공으로 나왔었다.

이 소식을 듣고 관심을 두었고, 읽을까 말까 잠시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이번에는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호러와 기담을 다룬다고 하기에 더 관심이 갔다.

독자에게 악몽을 선사한다는 광고는 흔하지만 솔깃한 문구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한 것만큼 무섭지도 그렇게 기이하지도 않았다.

너무 자극적인 글들을 많이 보다 보니 내성이 생기기도 했지만 작가가 표현을 절제한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흡입력을 보여주었고, 어떤 대목은 서늘하고 섬뜩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단편들이다.

가장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표제작 <신체 조각 미술관>과 <내리사랑>이다.

<신체 조각 미술관>은 제목대로 사람의 신체로 조각을 만들어 전시하는 미술관 이야기다.

사체로 만든 작품에 대한 소개와 제작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실제 이런 공간에서 이런 작품을 본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쉽게 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마무리에 특별히 반전이 있지 않아 조금 힘이 빠지기는 했다.

<내리사랑>은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수상한 여배우의 이상한 멘트.

그녀가 살아온 삶의 여정, 엄마의 아주 특별한 강력하고 질식할 것 같은 집착.

엄마의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과 광기는 그녀의 삶을 옥죈다.

감히 떨쳐내지 못하면서 생긴 삶의 어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블루홀>은 프리다이빙 중 죽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아내가 다이빙 중 잃은 반지를 찾다가 사라진다.

회상과 현재, 그리움과 기이한 현상. 낯익은 장면이다.

<바닷가>의 이야기도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를 여행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마음껏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 역시 예상 가능한 마지막.

<푸른 인어>는 낯선 이야기에 섬뜩함을 더했다.

가지 말아야 할 바다에서 만난 푸른 인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탐욕.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고 섬뜩하다.


<어떤 부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사랑하는 남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평범한 부부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듯한 과정에 아내의 불안과 집착이 더해진다.

우리가 그냥 편하게 보는 그 장면 뒤에 어떤 고통과 힘겨움이 있는지 아내의 말로 표현된다.

산후우울증이란 진단, 그가 바라는 가정의 모습, 잔혹한 선택.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 이후에 나온다. 드라마로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한밤중의 어트랙션>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문이다.

공포 놀이 시설 지옥탐험보트와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더러운 행동들과 징벌.

마지막 장면에서 같은 이름과 상황이 나오면서 혼란스럽다.

<꿈에 관한 이야기들>은 작가의 악몽과 가위눌림에 대한 경험담처럼 읽힌다.

읽다 보면 우리가 한번쯤 경험했던 일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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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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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568권이다.


보통의 시집보다 두툼하다.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 가장 분량이 많다.


시 편수만 놓고 보면 62편으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이보다 더 두툼한 시집도 있지만 선집이 아닌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단지 두툼하기만 하다면 별로 힘들지 않겠지만 쉽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다.


아니 난해하다. 문장이 기호처럼 다가온다.




시집의 제목도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겨를은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미들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인 듯하다.


어떤 삶의 중간 지점에서 이런 시어들이 나왔을까?


시어들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 읽었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내가 성급하게 놓친 부분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읽어왔던 시집과 다른 형식의 시어들.


어떤 시는 점자로 표시된 듯한데 한글로 된 시도 어렵다.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 부분)


“왔다가 가더라도 갔다가 오더라도 못 오더라도/


 상실 언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언니가 갖고 있어”(<상실 언니에게> 부분)


이처럼 말꼬리를 무는 듯한 시어들은 천천히 음미해야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동(東)을 “해日가 나무木에 걸렸다고/ 상형象形을 얘기하고 있었어요” 말할 때 한자를 다시 본다.


영화나 다른 책에서 본 문장을 시 속에 인용해 시를 완성하기도 한다.


비틀즈의 노래 <A day in the life>를 제목으로 한 시에서


“없어진 것이라 보였던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라고 한다.


음악과 시의 공감이자 우리의 인식 문제를 풀어낸 시어다.




시집을 읽을 때보다 이 글을 쓰면서 단편적으로 읽는 것이 순간적으로 더 와 닿는다.


최근 현대시의 난해함에 무력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돋움으로 괴면서 끌어 올리고 있다.” (<뼈가 있으니 살이 있으니>의 부분)처럼 천천히 시의 이해를 끌어올려야 할 모양이다.


이런 시집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지금 보지 못한 이미지나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또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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