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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2 ㅣ 암자로 가는 길 2
정찬주 글,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0년 10월
평점 :
책을 펼치고 처음 만나는 사진 한 장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나무바다 속에 자리한 조그마한 암자 사진이다. 영광 모악산 해불암의 전경을 담은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가끔 여행에세이나 사진을 담은 기행문을 읽을 때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고정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작가가 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보다 나에게 더 와 닿는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재현한다. 풍경에 마음이 빼앗겼다. 이렇게 책 읽기는 잠시 멍한 상태로 시작했다.
목차를 보면서 내가 아는 암자가 있나? 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하나도 없다. 뭐 제대로 암자란 곳을 다닌 적도 없고, 갔다 온 곳도 기억하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남들에게 추천하는 유일한 암자가 남해 보리암인데 이미 1권에서 다루었다. 외삼촌을 따라 가본 깊은 산속 절이나 암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력이 나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굽이굽이 들어가는 길에 시선이 빼앗겨 그 이름엔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언제나처럼 암자는 관심도 없고, 목적지로 가는 데만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저자가 1권에서 지역별로 암자를 나누었다면 이번은 계절별로 구분지었다. 나를 설계하는 봄암자, 나를 성장시키는 여름암자, 나를 사색하는 가을암자, 나를 성숙시키는 겨울암자 등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를 설계, 성장, 사색, 성숙으로 이어지는 삶의 단계로 표현했다. 그냥 가벼이 볼 수도 있는 구분이지만 저자가 책 중간에 십우도를 말한 것처럼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음을 알게 된다.
서른두 곳의 암자를 다루고 있지만 가슴속에 긴 여운을 남기는 암자는 많지 않다. 읽을 당시 나의 기분과 저자가 풀어낸 글과 사진이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한 번 그냥 읽고 지나갈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자리잡고 정독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끔 끄집어내어 사진을 보고, 혹시 가고픈 암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감상에 잠기기 위해서다. 단순히 감상으로 폄하할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은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바로 그 마음의 평화를 줄 사진 한 장과 그 암자를 통해 듣게 되는 저자의 깨달음 한 자락이 나에겐 필요하다.
사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이 암자를 찾아다니기가 쉽지는 않다. 가까운 암자부터 가면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요즘은 차로 암자 밑까지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왠지 암자에서 바라는 고즈넉함이 사라진 기분이다. 이것은 아마도 절과 암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절로 암자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모순된 감정들을 가지고 읽다보면 저자의 글은 활자로만 읽힐 뿐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읽으면 암자와 스님과 역사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 사진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런 반복을 자꾸 경험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잡념과 번뇌가 머릿속에서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다. 경주 남산 칠불암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글을 읽는다. 저자의 체험이 가슴 한 곳에서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다시 펼친 곳은 또 다른 암자다. 이렇게 다시 펼치고 펼친다. 이 반복적인 행동이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하게 만든다. 한 번에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차분하게 잦아든다. 빨리 한 번에 읽겠다는 욕심을 버린 탓이다. 그렇다. 이 책을 바로 조금씩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언제 이 책에 나오는 암자 몇 곳은 꼭 다녀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