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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조안 해리스를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이 <초콜릿>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사실 나에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조안 해리스의 이름을 아로새긴 것은 다른 소설이다. 바로 <블랙베리 와인>이다. 그 당시 분명히 <초콜릿> 영화도 보았는데 이 원작자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었다. 정말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그냥 빨려 들어갔다. 멋지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다른 소설도 모두 샀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책장 어딘가에서 조용히 잠들어있다. 이놈의 고질병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 소설 소개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냥 시큰둥했다. 작가 이름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출판사에 눈길을 주고 다시 한 번 작가 이름을 보니 조안 해리스다. 순간 머릿속에 불이 들어왔다. 사놓은 책은 저멀리 기억 속에 사라지고 신간에 눈길이 갔다. 아! 이 작가의 책이 아직도 번역되어 나오는구나, 하고 살짝 감탄했다. 뭐 계속 책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잠시 동안 잊고 있는 바람에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책을 신청했고 운 좋게도 당첨되었다. 책을 받아진 후 조금은 고민이 되었다. 이전에 읽은 책의 감흥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그 작품의 재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이번 소설은 스릴러와 미스터리 요소를 결합했다. 장소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다. 이 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진행된다. 화자도 두 명인데 한 명은 학교 라틴어 교사 스트레이틀리고, 다른 한 명은 이전 학교 수석수위의 자식이자 가명으로 줄리언 핀치백이다. 스트레이틀리는 30년 이상 이 학교에서 근무했고 그 만큼 많은 경험으로 학생들을 휘어잡고 있다. 반면에 이 학교에 복수하기 위해 온 핀치백은 신분을 위조해서 취직했다. 파괴를 꿈꾸는 그의 음모는 천천히 진행되는데 복수의 대상은 개인이 아닌 학교다. 그리고 왜 그가 이 학교를 파괴하고자 하는지 하나씩 이유를 들려준다.
줄리언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음모를 진행한다면 스트레이틀리 선생은 변하는 학교생활에 저항하지만 흐름에 휩쓸린다. 그 변화 중 일부는 줄리언의 음모에 의해 진행된다. 다른 일부는 세상의 변화에 의한 것인데 그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노련한 경력과 경험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만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에 의해 그의 위치는 점점 흔들린다. 이 과정을 작가는 천천히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가 가진 교권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다. 이 작업에 가속도를 붙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줄리언이다. 그는 한 학생을 통해 스트레이틀리 반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 이 작업이 상당히 효과적이다.
줄리언이 학교를 파괴하기 위해 서서히 조여 가는 과정이 스릴 넘치게 한다면 줄리언의 정체와 그가 왜 학교를 파괴하려고 하는지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예상한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줄리언의 정체는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보아도 충분하다. 의도된 연출로 계속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반전을 펼쳐 놀라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살인사건까지 가미되어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줄리언의 활약을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소설이 바로 <태양은 가득히>다. 이 소설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소년이 금지된 공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세계는 변한다. 금지된 곳이 그에게 활짝 열린 것이다. 우연의 의한 행동은 대중 속에서 그의 정체를 희석시키고, 사람들의 선입견은 그의 정체를 그냥 놓치고 만다. 작가는 개성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런 상황을 새롭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든다. 스트레이틀리를 통해 변화가 최선이 아님을 알려주고, 교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선생들의 보신주의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성인이 되어 나타난 핀치백은 고여 있던 학교를 뒤흔들고 위기 속으로 몰아간다. 그가 학교를 괴물이라고 부른 것에 공감한다. 학교의 잘못은 덮어지고 묻혀가지만 학생의 잘못은 정학이나 퇴학으로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블랙베리와인> 같은 집중도와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겁고 재미있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핀치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더 내놓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