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설렘 크로아티아
감성현 지음 / 미디어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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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로아티아. 사실 유럽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이곳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나에게 유럽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이어지는 지중해 연안 국가만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뭐 요즘은 다른 국가에 대한 여행서적이나 소설 등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크로아티아는 낯설다. 그 낯설음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어떤 매력이 있어 그곳에 갔을까 하는 의문도 같이. 그러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 나라의 매력이 하나씩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이미 많은 여행객이 다녀갔다.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여행 노선이 그려진다. 비록 그것이 현실화될지는 모르지만 이 자체만으로 큰 즐거움이다.

 

책을 받고 잠깐 펼쳐보았을 때만 하여도 금방 다 읽을 것 같았다. 다른 책보다 진도가 잘 나갔지만 간결한 에세이와 감상과 사진들이 나의 시선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잡아 놓았다. 멋진 풍경은 어떻게 담았을까 호기심을 자극했고, 늘씬한 아가씨 사진은 다른 블로그에서도 남자의 관심사인 듯했다. 아마 실제 간다면 나의 눈이 쉴 새 없이 돌아갈 것 같다. 몰래 그 멋진 아가씨 사진 한두 장 정도는 당연히 찍고.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 색감은 구도에 상관없이 매혹시킨다. 가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멋진 풍경을 만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찍지 못한 사진들을 생각하면 그가 부럽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작한 일정은 벨리카 고리차에서 끝난다. 가장 가고 싶어했다는 모토분은 미야자키 하야오 때문에 나 자신도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의 여행 중 가장 중요한 목적지였던 곳임에도 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더 적다. 모두 열여덟 도시를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진 탓인지 모토분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실제 보는 것과 사진의 차이는 너무 큰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글 때문에 나의 기대가 더 높아진 탓일까? 그래도 이 책엔 멋진 도시들이 가득하다. 크로아티아가 어딘지조차 모르고 있던 나에게 책 제목처럼 낯선 설렘을 전해주었다.

 

언제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까운 일본부터 동남아 여러 나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혼자 떠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긴 시간을 여행에 할애할 수 없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여행글을 볼 때면 설렘과 열기에 휩싸인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 나의 짐은 정말 가벼웠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면서 여행은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포기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전 여행이 나의 욕심일 수도 있다. 나만의 여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설렘이 여행에 대한 방식에 대한 것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곳곳에 그가 풀어낸 사랑 이야기는 감성을 자극한다. 공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몇 쪽 되지 않는 산문은 그의 여행 경험과 철학이 가장 잘 우러난다. 덕분에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생각의 여백이 에세이나 사진보다 더 작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도중에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보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할 때 그 묘한 감정이 가슴 한 곳을 콕 찌른다. 묘한 울림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 한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여행지에 대해 다른 여행객들과 다른 시각과 행동을 보여주는데 두 개의 생각이 문득 생긴다. 하나는 그렇지라는 공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매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같은 여행지를 두 번 가게 되면 처음과 다른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갈 곳이 많지만 돌아가야만 하는 그의 마음이 간결한 글에 드러날 때, 그리고 도착했다고 말할 때 여행의 향기는 본격적으로 가슴으로 파고든다. 낯선 설렘이 조용히 똬리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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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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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미지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 든 생각은 뭐지? 하는 의문이었다. 숲의 시작이란 제목에서 환상소설의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끄집어낸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한 소년이 실제 생활이 아닌 게임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순간 게임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던전, 레벨, 퀘스트, 게임오버 등의 단어가 이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차분하게 읽으면서 이것이 단지 현수가 삶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게 보면 모두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가장 큰 화자이자 자신의 존재가 공적 기록 상에서 소멸된 현수. 현수의 누나이자 힘겨운 삶을 살아온 누나 미수. 미수의 연인이었고 가족이 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윤. 이 세 명이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삶은 성공한 사람들의 그것과 너무나도 다르다. 아니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너무 다르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거나 그냥 막연하게 보아왔던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공감한다. 물론 그것이 피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현실이다.

 

가짜이자 다른 사람의 이름과 카드 등으로 살아가는 현수는 어릴 때 엄마의 사채빚 때문에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보상금으로 그 빚을 갚기 위해서다. 사채업자 손에 자란 그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삶을 살아가지 못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조직이 깨진 후 그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다행이라면 자식을 잃은 보스의 도움을 조금 받는다는 것 정도랄까. 이 어린 소년이 자신의 삶을 기억해내고 누나를 찾아낸 후 옆에 살면서 조그만 도움을 주는 것은 혈육의 정도 있겠지만 사라진 자신의 삶을 복원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아련한 아픔과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수는 삼촌집에서 역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친척의 폭력과 무시 속에서 살다가 독립했다. 배경도 돈도 없는 소녀가 현실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한때는 나레이터 모델 일도 했다. 그러다 현재 얻은 직업이 빌딩 안내원이다. 방문객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일이다. 이 일에 그 어떤 열정도 없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기계적일 뿐이다. 그녀에게 삶은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것 정도랄까. 단지 같은 빌딩에 근무하는 보안요원 윤과의 연애기간이 삶의 숨통을 틔워준 시간이랄 수 있을까. 너무나도 협소한 인간관계 속에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동생 현수의 조그마한 미션들을 오해하기에 충분하다.

 

윤은 미수의 연인이었고 현재 부모의 병과 빚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잊고 살아간다. 무심코 지나가는 수많은 빌딩 보안요원 중 하나인데 그의 삶은 짙은 후회와 열등감으로 가득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맞이한 가계 파산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을 이끈다. 이 때문에 미수가 그의 대학 졸업 증명서를 발견했을 때나 동아리 동료를 만났을 때 달아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학자금 대출과 부모의 빚 때문에 저당잡힌 인생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내려앉아 있다. 어쩌면 윤의 모습은 이 땅의 수많은 대졸자들의 현재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도피하고 왜곡하고 게임으로 생각하는 현수의 행동을 윤의 것으로 착각하는 미수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윤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잊고 있던 동생을 찾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일이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정체되어 있던 삶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 속에 꿈이나 환상처럼 등장하는 두 영상은 과연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실제 미래 모습인지 아니면 두 인물의 상상이 만들어낸 또 다른 미래 모습인지 헷갈린다. 단지 이 두 남매의 만남이 새로운 미래로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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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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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초기작품이다. 2003년에 출간되었다. 번역된 작가의 전작을 읽은 나에게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13계단>에서 시작된 인연을 생각하면 더 빨리 번역될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제 번역되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개인적으로 구해놓았다. 그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다른 작가들처럼 작품 수라도 많다면 그렇구나 하고 금방 수긍이라도 할 텐데.

 

소설은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문제가 되는 것을 꼼꼼하게 조사하여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낸다. 이 작품도 임신과 중절과 빙의라는 소재를 잘 엮어서 풀어내었다. 임신과 중절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빙의라는 초자연적 현상과 엮었고, 다시 이것을 정신의학과 연결하여 풀어내었다. 읽다보면 그 시대에 유행했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담겨 있고, 이성과 굳은 의지가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에 초자연적 현상임을 알려주는 설정을 넣어서 독자의 시선과 사고를 흐려놓기는 하지만.

 

<쾌적하게 사는 법>이란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슈헤이. 그는 성공에 도치되어 좋은 맨션을 구입한다. 처음 읽을 때 인쇄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구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계약금을 치를 정도다. 아내 가나미와 열심히 벌어서 이자와 잔금을 갚을 생각을 하는데 덜컥 아내가 임신을 한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중절이란 답을 내린다. 어쩔 수 없이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간 아내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수술은 중단된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다른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중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악령에 빙의된 것 같다.

 

이소가이. 정신과 전문의다. 그의 환자 중 한 명이 불임으로 고민하다 자살을 시도한다. 이 때문에 휴직을 했는데 슈헤이 부부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원하지 않았지만 임신부와 증상이 그를 자극한다. 환자 치료에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중절 수술을 한 후 전과한 이력이 있다. 이런 그에게 가나미의 상태는 결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슈헤이와 가나미 부부가 겪게 되는 수많은 현상들을 현대 과학과 분석으로 냉철하게 해석한다. 빙의에 대한 그의 설명은 매스컴과 미신이 만들어낸 환상이 얼마나 우리에게 강한 허상과 공포를 심어줬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앞에서 말했듯이 단순히 빙의 현상을 과학의 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내용은 바로 원하지 않는 임신과 중절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중절을 하는 여자들이 있지만 그 고통을 그대로 껴안고 가는 것은 역시 여자다. 물론 남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이 중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면서 슈헤이의 선택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이 남자의 시선이라고 말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여자가 더 쉽게 낙태 수술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현실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변명이 될지 모르지만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초자연적 현상 빙의가 한때 우리나라에도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소설이 나왔다면 좀더 많은 호응을 얻고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이 이야기가 나의 가슴으로 솔직히 와 닿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기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흡입력이 좀 떨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이성적인 분석이 자주 나오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진다. 작가의 장점이 소설의 단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건을 억지로 연결한 듯한 설정은 개인적으로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현실이 더 거짓 같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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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첼로 - 이응준 연작소설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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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이다. 모두 여섯 편이다. 이응준이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장편 <국가의 사생활>이었다. 약간의 불만족스런 부분도 있었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던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응준이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이번 소설을 읽었다. 결코 쉽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고 말이다. 이것이 현실화되었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각 연작 단편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궁금함은 모두 읽은 후 다른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이 연작 소설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은 죽음과 이어져 있다. 첫 단편이자 표제작 <밤의 첼로>는 이것을 가장 쉽게 풀어내었다. 20대의 사랑이 현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 죽음이 잊고자 했던 사랑을 일깨우고 삶에서 가장 혹독한 밤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 전혜린이 나오고 그녀의 삶을 새로운 해석으로 풀어낸다. 이와 같이 작가는 유명인의 삶을 소설 속에서 나름의 해석으로 풀어낸다. 이후 그 둘의 삶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다른 길을 보여준다. 닮았지만 다른 삶의 흔적은 연인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콩트에 가까운 <물고기 그림자>는 이 단편만으로도 매력있지만 다른 단편과 연결되면서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다. 절망의 바닥에 내려앉은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변화가 펼쳐지는데 그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또 다른 절망이 된다. <낮선 감정의 연습>은 화가의 재능보다 돈을 버는데 더 뛰어난 화자를 등장시켜 삶이 결코 밝지만 않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오해가 만들어낸 이별과 그 이별 이면에 담긴 사연들은 화자에게 낯설기만 하다. 과거 속 악연이 현재 관계 속에서 다시 이어지는 모습은 삶의 부조리한 현실이기도 하다.

 

<밤에 거미를 죽이지 마라>는 과거에 버림받은 여자와 현재 버림받은 남자 이야기다. 분노의 감정이 자리잡아야 하는데 여자는 그 감정이 점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남자는 파국으로 끝난다. 살의가 충동질하는 과정에 자신의 삶이 보인다. 반면에 질투가 모든 것이 된 여자의 파국은 결국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 파멸 바로 앞에까지 간 여자가 느낀 고통의 벽을 조용히 인정할 때 삶은 긍정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반전으로 가득한 작품이지만 가장 사랑으로 충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유서를 쓰는 즐거움>은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어떻게 보면 비약일 수도 있다. 사랑을 잃은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다. 갑작스런 가출로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칩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살인으로 그것을 대신하는 사람이 있다. 상실과 실연은 순간과 영원으로 나누어져 삶을 지배한다. 반면에 순수함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10대 소녀는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이 단편부터 전편의 인물들이 분명한 연관성을 가지고 등장하기 시작한다. 뭐 그렇다고 이 단편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가장 긴 단편이자 마지막이면 다른 작품들과 가장 많이 이어지는 것이 <버드나무군락지>다. 신을 불러내어 이야기를 만들지만 왠지 작품과 겉도는 느낌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심각한 이야기지만 너무 감정 과잉과 광신으로 가득한 부분이 많아 약간 집중력이 깨졌다. 반가운 점이 있다면 앞에 나온 이야기들 주인공들이 모두 관계를 맺으면서 왜 이 소설이 연작소설인지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몽고에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인물을 보면서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것은 개인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보니 쉽게 욕할 수 없었다. 삶의 용기와 죽음의 용기를 비교할 때 어느 것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지 묻는 것처럼 죽음을 몰아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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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걷자, 둘레 한 바퀴 - 한국산악문학상 수상 작가의 북한산 둘레길 예찬!
이종성 글.사진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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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 둘레길이 있다는 것을 들은 지 꽤 되었다. 우이동에 살고 있는 직장 동료가 아내와 함께 운동 삼아 둘레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딸들 손을 잡고 둘레길을 걷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둘레길 이전에 제주 올레길이 먼저 대히트를 쳤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곳을 다녀온 다른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아주 좋았고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이 이어졌다. 여기에 제주도에 살고 있는 후배의 말까지 겹치면서 언젠가 한 번 꼭 가야지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단숨에 달려가기에는 쉬운 곳이 아니다. 뭐 1박2일로 다녀올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그런 반면에 북한산 둘레길은 어떤가? 솔직히 마음만 있다면 주말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다. 뭐 마음과 따로 놀고 있는 몸이 문제지.

 

한때 북한산 정상까지 자주 올라간 적이 있다. 자주라고 해봐야 몇 차례 되지 않지만 주말 아침 일찍 전철과 버스로 산 입구까지 가면 그곳에서 나 자신과 싸움이 시작된다. 정상에 올라간 것보다 내려올 때 더 즐겁고 만족스러웠는데 그 당시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다 나의 방심과 게으름이 그 산으로의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 그 후 관악산이나 청계산을 올라갔지만 북한산 같은 재미와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취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나의 건강과 휴일을 책임진 곳이 바로 북한산이다. 그런데 이곳에 올레길처럼 둘레길이 생겼다. 몇 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21개나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흔한 말로 대박이다.

 

제1구간 소나무숲길에서 제21구간 우이령길까지 읽으면서 낯익은 곳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산을 타면서도 지명에 신경을 쓰지 않은 탓도 있고, 산행이 늘 정해진 코스로만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낯익은 지명이 나오면 반갑고, 저자의 글 속에 표현된 장소가 갑자기 다른 이미지로 다가와 놀라웠다. 무심코 지나간 길들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무와 꽃과 장소들이 하나씩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인의 감성에 의해 조금 더 덧칠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반면에 코스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글이 아닌 시인의 감성으로 풀어낸 글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긴 호흡의 문장과 자작시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걷고 싶은 길은 제21구간 우이령길이다. 사전 인터넷 예약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충분히 매력있다. 그 외 집에서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코스도 몇 개 개발하고 싶다. 주말에 집에 뒹굴거리지 않고 산 속으로 들어가 삼림욕도 하고 산보로 몸도 마음도 단련하고 싶기 때문이다. 걷기보다 타기를 더 쉽게 하는 요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주차를 어디에 하지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편함에 익숙해져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렇지만 회사 동료처럼 그 길을 몇 번 걷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코스를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코스만 눈에 들어온 지금과는 달리 시인이 찬찬히 둘러본 그곳의 꽃과 나무와 숲과 사연들이 조금씩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찾아가서 만나고 듣고 발견하고 사색하는 둘레길을 정말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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