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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융이 지음, 류방승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골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금이 우리 생활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몰랐다. 금이라고 하면 단순히 금광이나 골드러시 같은 몇 가지 이미지가 전부였다. 물론 당시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라 비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금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잘 몰랐다. 경제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금본위제 정도가 지식의 전부일 정도로 미천했다. 그런데 이번에 은에 대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백은비사>다. 이 책은 중국 명나라 이후 동서양의 은을 둘러싼 화폐전쟁의 역사를 다룬다.
은이라는 귀금속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모른다. 한국사에서 은괴를 조공으로 바쳐졌다는 것과 중국 역사에서 은이 통화로 사용되었다는 것 정도다. 사실 통화로 은을 사용하는 것을 본 것은 아마 중국 소설이나 영화가 전부다. 역사는 늘 그 당시 발행된 동전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은을 찾기보다 금을 찾는다. 당연히 은은 금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고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당장 반지를 사러가도 금반지와 은반지의 가격차가 상당하다. 세공에 따라 다른 것은 논외로 하고. 이런 교육과 영화 이미지는 은연중에 금을 더 중시하게 만든다.
명 이후 중국 역사 속에서 은은 많은 굴곡을 거쳤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유통되는 통화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정권을 잡은 왕조는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화폐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 개혁은 놀랍게도 지폐의 발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수많은 지폐가 발행되었다는 정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기준이 분명하게 잡히고 지속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대체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은이다. 금은 더 귀하고 비싸 대체할 수 없었다.
은으로 동서양으로 연결하는 데는 정화의 대항해와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대착취가 있었다. 정화의 대항해가 아프리카 동부 연안까지 갔다고 하는데 그 여정 중간중간에 중국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여정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가 거쳐 간 지역에서는 다르겠지만. 스페인의 중앙아메리카 대학살과 엄청난 은의 착취는 나라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 부는 나중에 나라에 독으로 작용한다. 국내 산업과 경제를 좀먹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돈이 넘쳐나니 필요한 것을 외국에서 사면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스페인 제국은 몰락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의 유럽인이 있다. 마르코 폴로다. 그의 여행기는 중국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덕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지만 유럽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도시는 중국에 있었고, 중국은 엄청난 문화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국 문화 중 하나인 차가 유럽에 퍼지면서 무역상들은 찻잎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결제수단은 은이다.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중국에서 차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은을 제공해야 했다. 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 말에 이르면 이 은은 급속하게 빠져나간다. 아편과 전쟁배상금 등으로.
저자는 아편보다 무서운 것으로 금융무지를 꼽는다. 이미 화폐전쟁은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중국에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통화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면서 일어난 착시현상이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민의 부는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엄청난 달러가 쌓여 있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들의 부는 그만큼 사라진다. 숫자로 존재하는 화폐는 항상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때문에 금을 다시 세계의 통화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최근 몇 년만 놓고 본다면 금값보다 은값이 더 많이 올랐다. 금은복본위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은을 통화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많았다. 책 광고에서도 나왔지만 <오즈의 마법사>가 미국의 은화 자유주조 운동과 연관있었다는 지적은 재밌는 해석이다. 기축통화 논쟁은 이미 <화폐전쟁>에서도 다뤘지만 경제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최근 유럽의 경제문제도 바로 이것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마저 이것과 연결시키는 것에서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세계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늘 존재한다. 또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은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든다.
역사적 시간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동서양의 은이 차지한 위치와 어떤 경제적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낯선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거나 몰랐던 부분이다. 특히 13행은 그렇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도와 관료주의가 자리한 중국에서 무역상들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의 부는 정부에 귀속되고 수장은 관료에게 살해되었다. 실리보다 명분이 나라 경제를 망친 것이다. 이것은 금융무지로 이어지고 정치 혼란과 연결되면서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현재의 은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금보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잠재력까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